신들의 도시 네팔 카트만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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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사원…날마다 기도하며 사는 ‘신들의 도시'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한 분지 인구 백만명…거리마다 마을마다 사원 없는 곳 없어 여행은 새로운 문물을 보려고도 하지만 오래된 과거를 꿈꾸게도 한다. 과거가 꿈꿀 대상인가, 아니면 회상의 대상인가 하는 것은 여행을 임하면서 매우 중요하다. 한없이 그리운 과거,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우리는 꿈꾼다. 네팔은 과거를 꿈꾸게 하는 땅이다. 국민소득 500여 달러의 가난한 나라여서가 아니다. 꿈꿀 과거는 비극적 가난에만 놓여있지 않는다. 가난 자체가 사람을 비극으로 몰고 가지 않는 마음의 평정이 바로 과거 귀향의 본질이다.
인구 백만 명의 도시 카트만두는 사람보다 신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들이 주로 믿는 시바와 힌두교는 범신이다. 그래서 각자 믿는 신들이다르다. 그들이‘시드야’라고 부르는 여명이 시작되면 시내 곳곳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와 함께 거리나 사원마다 걸린 수많은 종이 울린다. '건따'라고 불리는 종은 밤사이 침묵을 깨고 신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의식이다. 이때부터 긴 아침기도에 들어간다. 네팔 사람들에게 기도는 일상이다. 신에게 의지해 살 듯 기도 없이는 하루를 열 수가 없다. 그 긴 기도로 인해 아침 출근 시간은 10시까지가 대분이다. 관공서나 유적지의 개장도 그때 이뤄진다. 만일 그전에 가는 사람이라면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 곳이 많다. 학교 역시 10시에 문을 열기에 학생들은 느긋하게 학교에 간다. 하교시간이 오후 4시쯤이니 언제 공부할 시간이 있느냐고 따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는 우문이다. 신을 섬기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시내에 나가면 사원으로 기도하러 가는 사람 외에는 별로 사람을 볼 일이 없다.
눈을 뜨면 기도부터 하는 영적인 그들은 가난하게 산다…하지만 부처님께서 깨달았다는필과나무 그늘에 가서
그만큼 그들이 믿는 사원도 도처에 깔려있다. 거리마다 마을마다 사원이 없는 곳이 없다. 힌두의 사원이 대부분이지만 불교사원도 있다. 카트만두 서쪽 근교에 언덕 위에 있는 숴염부나트는 티벳 불교 사원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숲이 우거진 계단을 한참 오르면 문수보살이 축조했다는 웅장한 수트파가 나타난다. 언덕 위에 있으면 서 규모가 커서 가히 위압적이다. 전설에 의하면 카트만두는 원래 호수였다고 하는데 문수보살이 이 호수의 물을 마르게 하자 작은 섬이 나타났고, 이곳에 쉐염부 사원을 세웠다고 하는데 물이 없어지자 호수가 분지로 변해 사람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분지인 카트만두를 이곳에서 보면 호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원에 오르다보면 사람만큼이나 많은 것이 원숭이들이다. 그래서 쉐염부를 일컬어 일면 원숭이사원이라고도 부른다. 카트만두의 사원 중 가장 압권은 파슈파티사원다. 갠지즈 강의 지류인 성스러운 강 머그머티 강기슭에 위치한 파슈파티는 힌두교 사원이자 인도대륙에 있는 4대 시바사원 중에 하나이다. 모든 종교가 혼재해 있는 듯한 이 사원은 그래서 늘 붐빈다. 인간뿐이 아니다. 소도 자유롭게 활보하고, 원숭이들이 사람 곁으로 다가와 음식 봉지를 빼앗아 달아나기도 한다. 파슈파티에서 가장 이채로운 것은 바로 옆 머그머티강가의 장례식장과 화장터일 것이다.
유골은 물론 시체들 일부가 그대로 버려지는 강이지만 이 강물은 보통의 강이 아닌 영혼이 숨 쉬는 성스러운 강이다. 그래서 강물에 뛰어들어 목욕을 하거나, 피골이 상접한 힌두의 고행자들이 물을 퍼 올려 토굴 밖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원뿐이 아니다. 카트만두에는 유난히 왕궁들이 많다. 2008년 왕정이 무너진 후 샤 왕조의 왕궁이었던 나라연히티는 지금 박물관으로 바뀌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네팔 역사를 통틀어 말라왕조가 가장 번성했는데. 15세기 야크왕 때에 황금기를 이룬다. 그러나 그의 사후 세 아들은 각각 다른 왕국으로 갈라지는데, 모두 유네스코에 지정된 문화유산이기도 한 왕궁들을 카투만두와 파탄, 그리고 벅터푸르에 남겼다. 말이 세 왕국이지 사방 삼십여 리 정도의 거리에 모여 있어 둘러보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카트만두 왕궁 더르바르 광장은 네팔 문화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찾던 날이 마침 힌두교의 중요한 신인 크리슈나 탄신일이어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크리슈나는 실제 인물이었다고 하는 하는데 특히 에로스적인 요소 때문에 문예, 조각 등의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조상신을 앞세워 나온 각 가문들의 가장행렬로 축제는 시작된다. 제일 앞에는 예쁘게 치장한 아동들이 선다. 어떤 가문은 소에 황금색 천을 씌워 나오기도 하고, 조상의 영정을 들고 흰 띠를 두르고 나온 가문도 있다. 또 축제장에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먹이며 소가 상징하는 축복을 비는 할머니도 있고, 축제일에 맞춰 학교 공부를 미루고 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도 볼 수 있었다. 이 국민적인 축제의 장에 서면 네팔의 다양한 민족과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쿠리마 사원에는 살아있는 신(神)인 쿠리마가 있다고 한다. 쿠리마는 아름다운 소녀로 신으로 추앙받는다. 쿠리마는 가문이 좋은 집안에서 피가 오염되지 않은 소녀 중에 뽑는데 생리가 시작되면 사원을 떠나야 한다. 1년 내내 갇혀 지내다가 9월 축제 3일 동안만 시내를 순회한다. 이때는 앞만 응시해야한다. 축제 당일에는 국왕도 찾아와 무릎을 꿇고 축복의 상징인 띠까를 받는다. 그러나 이 의식은 공화정이 되면서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어 몇 년째 축제일에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라고 한다.
이 화려하고 웅장한 사원을 축조한 것은 기원전부터 카트만두분지에서 살았던 솜씨 좋은 네와르족이다. 기도만 하다가 결국 나라를 남의 손에 넘겨준 네와르족은 석공은 물론 목각이나 금세공 등 다방면에 재주가 좋아서 왕궁지역 안에서 수공품을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왕궁에 비해 벅터푸르는 시 외곽에 있어서 한적하기 이를데 없다. 과거 벅터푸르 왕국 자체가 그대로인 이 작은 도시는 중세 네팔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도시가 온통 붉은 벽돌로 조성돼는 화려했던 당시의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귀의자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벅터푸르는 베르나르도 베를루치 감독의 영화 <리틀 붓다>에서 출가한 싯다르타가 살았던 배경으로 촬영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현대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다. 중앙에 있는 나트폴 사원은 카트만두 인근에서 가장 높은 5층목탑으로 18세기경에 세워진 것이다. 돌로 쌓은 5층의 높은 기단을 오르는 계단 양쪽에는 전설의 전사와 코끼리, 사자, 그라핀여신의 석상이 수호신으로 마주서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힘이 10배씩 강해진다고 한다. 이 계단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면 갈색의 도시와 푸르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때 화려하고 웅장한 문화를 이룬 기상은 어디로 간 것인지 계단을 오르는 길목에 어린 아이들이 자꾸 구걸을 한다. 어쩌면 그들은 기상을 버리고 자연의 일부이기도 한 신에게로의 귀의를 택했는지 모르겠다. ‘라마스테’라는 인사는 신의 품안에서 안녕하라는 뜻이다. 곤궁해 보이는 삶을 풍요롭게 버티고 있는 네팔 사람들의 운명이 담긴 인사말이다. 그런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눈을 뜨면 기도부터 하는 영적인 그들에게 모든 가치를 달러로 환산해 들이대는 우리의 잣대는 옳은 것인가? 카트만두가 자꾸 나에게 묻는 질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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