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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기행)절대의 성채, 히말라야 - 말만 들어도 웅장한 2,400㎞의 성스런 ‘신의 거처’

정치, 정책/복지정책, 문화 기획

by 소나무맨 2013. 10. 1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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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의 성채, 히말라야
말만 들어도 웅장한 2,400㎞의 성스런 ‘신의 거처’
2011년 09월 29일 (목) 김판용 시인 APSUN@sjbnews.com

<김판용 시인의 지구촌 여행기> 네팔기행 (3) 절대의 성채, 히말라야

말만 들어도 웅장한 2,400㎞의 성스런 ‘신의 거처’

히말라야, 말만 들어도 웅장함이 느껴진다. 2,400㎞의 장엄한 산 준령, 그러나 그것만으로 히말라야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는 신의 영역인 설산(雪山)의 연속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히마(hima)’는 눈 쌓인 산을 의미한다. 그리고 ‘알라야(ayaya)'는 거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성스러운 신의 거처가 바로 히말라야이다. 물리적인 높이만이 아닌 정신적 높이까지를 기려 붙인 이름인 것이다.

나는 눈 쌓인 히말라야를 몇 군데에서 봤다. 우선 운 좋게 비행 중에 조망할 수 있었다. 카투만드로 들어가는 비행기 안에서 본 히말라야는 아스라했다. 두 번째는 나가라곳에서였다. 방문 3일째, 해발 1920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카투만드에서 인근 나가라곳은 산을 멀리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안성맞춤이다. 이곳을 안내한 후배 김형효 시인은 세 번을 방문했지만 제대로 본 적이 없다면 걱정을 했다.

   
  ▲ 트레커들을 위해 집을 나르는 세르파들이 산행을 하고 있다.  
 
그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새벽 한기가 끼쳐 네팔의 전통차인 찌아를 시켜 마셨다. 온몸으로 스며들던 한기가 일시에 가신다. 그런 사이 에베레스트 능선 쪽에서 해가 떠오른다. 장엄한 일출에 히말라야 산군 전체가 흰빛으로 반짝인다. 아마 하늘에 이빨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두 번째로 본 히말라야는 눈이 부셨다.

네팔에 온 주목적이기도 한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출발한다. 트레킹은 네팔 안의 제일 관광도시이자 중앙 네팔의 중심지 포카라에서 시작된다. 포카라는 해발 800m에 위치한 네팔 제2의 도시이다. 그곳에서 8,000m급의 산들을 목전에서 볼 수 있으니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고도차가 크다고 할까? 또 히말라야가 만든 분지라서 히말라야의 물들이 모두 여기로 모인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아름다운 페와호에 어린 히말라야, 그 세 번째 모습은 그야말로 장엄했다.

그러나 분지인 만큼 어느 쪽에서 가더라도 길은 험하다. 특히 룸비니에서 포카라로 가는 길은 천 길 낭떠러지라서 마치 놀이기구 자이언트드롭을 타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160㎞ 정도의 거리를 차로 6시간 달려 밤늦게야 포카라 호텔에 묵을 수 있었으니 짐작이 갈 것이다.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포카라공항으로 향한다. 포카라는 히말라야로 가는 관문인 만큼 도보는 물론 차량과 비행기로도 가능하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비행기가 뜨지 않아 며칠씩 기다려야 한다. 또 구름이 일어나기 전인 아침시간만 가능하다.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은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일단 뜨기만 하면 20분이면 상대편 공항으로 옮겨다 준다. 네팔에서는 그야말로 순간이동이나 다름없다. 운명의 저 히말라야만 넘어서면 되기 때문이다.

조금 연착이 됐지만 비행기가 움직인다. 카투만드에서 룸비니로 가던 비행기보다 더 작은 18인승이다. 승무원이 귀를 막을 솜과 사탕을 준다. 이윽고 구름 위로 비행기가 날았다. 구름을 뚫고 오르자 하얀 능선들이 보인다. 포카라에서 가장 가까이 보이는 마차푸차레가 들어온다. 산꼭대기가 둘로 나뉜 마치푸차레는 물고기의 꼬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하늘의 물고기가 거꾸로 매달린 격이다. 그것도 순간 바로 비행기가 착륙한다. 흙이 온통 검은 사막 사이의 좀솜공항이다.

   
  ▲ 무스탕왕국에서 왔다는 마방들은 왕복 15일이 걸리는 행상을 나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찬 기운이 확 끼친다. 해발 2,800m로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가장 높은 곳이다. 짐을 찾고 산악비자와 입장권을 보여준 후 안나푸르나 코스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트레킹(Trekking)는 네덜란드어의 여행을 뜻하는 트렉(Trek)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말이 일반화 된 것은 1960년대 네팔 정부에 의해서이다. 히말라야를 이용해 외화벌이를 할 목적으로 등산과 다른 상업적 목적의 트레킹이란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해발 6,000m 이상을 오르는 것을 등산이라 하여 아주 까다롭게 입산을 허가한다. 신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에 비용도 엄청나다. 그러니까 트레킹은 해발 6,000m 아래의 산에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네팔어는 산에 관한 어휘들이 발달했다고 한다. 역시 산악 국가답다. 눈 쌓인 산은 ‘히말’이고, 눈이 없이 그냥 높은 산은 ‘파하르’, 언덕처럼 낮은 산은 ‘떠라이’라고 한다는데 트레킹은 주로 떠라이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일부는 파하르를 오르는데 그 역시 전문가가 아니면 수월치 않은 일이다. 고산증세가 심하기 때문에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고. 절벽이라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좀솜 마을을 나서자 강이 세차게 흘러간다. 이 강을 차로는 극복을 못한다. 나무다리를 건너서 사람과 말, 염소 등만 오갈 뿐이다. 물살이 엄청나게 거세다. 히말라야의 고도를 생각하면 물살의 흐름은 짐작하겠는데 왜 이리 물은 검은가? 온통 흙탕물이다. 검은 강이라는 이름을 지닌 ‘칼리간다기’이다.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사이를 흐르는 이 강은 온통 모래뿐인 사막 히말라야 자락 중간 중간 오아시스를 이뤄 사람을 살게 한 생명의 젖줄이기도 하다. 이 강이 만들어 놓은 들판에 히말인들은 메밀이나 감자를 심는다. 또 돌이 많은 곳이라도 수분만 있으면 사과나무 농사도 짓는다.

   
  ▲ 묵디나트성지를 찾아온 인도의 힌두교도  
 
바다였다는 것 증명하듯 강가의 검은 돌을 깨면 암모나이트 나오기도
해발 3,000m 넘어서자 온통 허브향기 가득

히말라야가 한때 바다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강가의 검은 돌을 깨면 암모나이트가 나오기도 한다. 현지에서서 3달러씩에 팔지만 운이 좋으면 그냥 주울 수도 있어서 검은 돌을 깨뜨려 봤는데 모두 허사였다. 그러나 강을 따라 걷는 길은 꿈 속 같았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한여름의 기온이 초가을처럼 서늘하다. 이곳에서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로지 하늘과 산만이 눈에 가득하고, 바람과 물소리만이 귀에 찼다. 실로 37년 만에 한가로이 히말라야 자락을 걷는 친구와의 인연과 우정을 새기며 참 많은 대화를 행복하게 나눈 시간이기도 했다. ‘운명 속에 우연은 없다’고 했던가? 이 풍족한 시간을 허락한 지난날 우리들의 노고와 주변 분들의 헌신과 사랑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순례의 시간이기도 했다.

가끔 사람들이 지난다. 트레커보다는 주로 현지인들이다. 이곳 현지인들은 티베트계의 ‘보테’라는 종족으로 피부색이 검고 키가 작다. 이들은 소똥을 줍거나 소 먹일 풀을 뜯는다. 또 땔감을 주워오기도 한다. 대나무 광주리에 짐을 가득 채워 이마에 걸고 가면서도 인사를 하면 머리 위로 합장하며 ‘라마스테’를 외친다. 참으로 순박한 사람들이다. 무스탕에서 장사를 하러가는 길이라는 마방들은 한번에 왕복 15일이 걸리는 행상을 나왔다고 했다. 그들이 모는 말들이 내는 ‘건띠’라는 방울 소리가 찰랑찰랑 고요한 히말라야 계곡에 울려 퍼졌다.

묵디나트와 무스탕왕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가그베니에 도착했다. 오면서 점심을 먹고 여유를 부려서인지 오후 4시가 넘었다. 호텔을 잡고 샤워를 한 후 쉬기로 했다. 그 사이 김형효 시인과 람은 마을로 닭을 사러 갔다. 한국에서 가져간 황기백숙 재료를 거기까지 가지고 온 모양이다. 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식당에서 부른다. 저녁으로 닭백숙이 나왔다. 네팔 화가인 람이 직접 닭을 잡았다고 한다. 그렇게 히말라야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

새벽에 일어나 묵디나트로 향한다. 가그베니에서 오르막길로 들어서자 눈 쌓인 닐기리봉과 라울라기리봉이 보인다. 우기에 가까이서 구름을 뚫고 ‘히말’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데 너무 운이 좋은 것이다. 아침빛에 반짝이는 얼음산은 온통 황금빛이다. 황금빛의 히말라야가 천지에 중심처럼 우뚝 서서 우리를 내려 본다. 품 안에서 본 히말라야는 가히 위압적이었다.

해발 3,000m를 넘어서자 온통 허브천지이다. 바람에 향긋함이 베어온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풀과 나무들이 온통 제 향기를 뿜어내며 우리를 맞는다. 우기이기에 볼 수 있는 허브의 아름다운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해발 3,800m 묵디나트에 도착했다.

성지 묵디나트는 힌두신과 붓다를 같이 모신 히말라야 최대의 성지이자, 네팔에서 빠스빠티 다음으로 큰 사원이다. 네팔은 물론 인도에서도 순례자들이 모인다. 이곳에는 108개의 수도꼭지가 물의 벽을 이루고 있어서 그물을 마시면 지상의 죄와 업보가 사라진다고 한다. 또 물 사이로 새오나온 천연가스로 불을 밝히고 있는데 그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아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물과 불’로 이뤄진 사원, 그러나 문이 닫혀져 있어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여기서 마르파까지는 길을 되짚어서 가야한다. 왔던 길이라서 그런지, 고도차이 때문인지 고산증세가 심해진다. 한때 무스탕왕국이었던 가그베니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강변이라서 물소리가 거세게 들린다. 그 바람에 이곳 사람들이 사원을 대신해 세워 놓은 탑에 걸린 오색 깃발 룽타가 나부낀다. 룽타는 ‘바람의 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데 마치 히말인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 일정을 조율하는 일행, 뒤에 히말라야가 보인다.  
 
날이 저물어 가그베니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길을 잡는다. 좀솜을 거쳐 마르파를 들렸다가 다시 좀솜으로 돌아와야 하는 긴 여정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좀솜까지는 그런 대로 괜찮았으나 마르파로 향하는 길은 오후라서 강바람이 몰아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역경이란 이런 걸 두고 이르는가? 바람에 날린 모래가 따갑게 얼굴을 때린다.

그렇게 찾은 마르파, 마르파는 안나푸르나 지역에서도 가장 깔끔한 마을이다. 마을에 도서관까지 갖춘 수준 높은 곳으로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로 가는 초입이기도 하다. 또 사과농사로 유명해서 애플시티라고도 불린다. 눈처럼 하얀 마을 마르파가 히말라야의 진주처럼 느껴졌다. 소설가 박범신은 그의 소설 <라마스테>의 주인공 카말의 고향으로 마르파를 설정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해도 되는가?’ 자본의 야만성과 자연의 순수성을 그린 이 소설이 자꾸 떠올랐다.

히말라야를 떠나는 날 아침, 소설 속에 나오는 티베트 광야의 얼음산 카알리스처럼 좀솜 공항 앞 닐기리봉이 온통 흰빛으로 반짝이며 작별의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지치고 힘들 때, 탐욕으로 멍들어 갈 때 다시 찾아오라는 신호처럼 보였다. 신들의 거처 히말라야와 나는 그렇게 작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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