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의 부탄 여행과 책 밖으로의 부탄 여행

2022. 11. 11. 11:28세계와 여행이야기/부탄 이야기

 

 

책 속으로의 부탄 여행과 책 밖으로의 부탄 여행

 국민총행복전환포럼  2022. 11. 3. 13:47

글·전태희

올해 열여덟이 된 나는 3년차 학교 밖 청소년이다. 

 

학교 교육에 대해 갖고 있던 의문과 반항심이 코로나 19로 인한 온라인 클래스로 빵 터져 버리면서 중학교를 그만두고 정규 교육과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지 어언 3년차. 책 속으로의 여행과 책 밖으로의 여행을 두루 많이 하며 미래를 설계해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건만 예상치 못한 전염병의 유행으로 책 속에 갇혀 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 소개된 부탄 여행자 모집을 보고 국민총행복 정책의 나라 부탄으로의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게 10월 10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선생님들과 함께 나의 부탄여행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방콕을 거쳐 해발 2200m 정도의 좁은 협곡 사이 사이를 날아 이틀만에 부탄에 도착했다. 부탄의 공항은 세계로 떠나는 커다란 비행기들이 뜨고 내리는 넓은 활주로와 각종 면세점과 라운지 등으로 화려한 내부를 갖추고 있는 내가 봐온 공항들과는 사뭇 달랐다.

작은 규모의 목조 건물과 짧은 활주로를 갖추고 있는 파로 국제 공항에 들어서니 ‘아 내가 진짜 부탄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입국 절차를 밟고 나오자 마자 가이드와 운전기사님으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일행 모두에게 흰 스카프(환영과 축북의 의미로 흰스카프를 걸어준다고 한다)를 둘러주며 ‘welcome to Bhutan’ 이라고 환영 인사를 해준 스리자나의 이름은 그 이름을 내가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했는데 그 이유는 여행을 오기 전 읽었던 박진도 교수님의 책에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가이드 아룬드아이와 함께 수도인 팀푸로 가며 비행기가 부탄으로 들어오기 위해 지나야 하는 협곡이 매우 좁고 공항 자체가 많은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어 비행기 조종사들로부터 아주 특별한 비행기술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우 위험해서 사실상 조종사들에겐 하나의 도전과도 같은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한 번 난 적 없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파로에서 팀푸로 가는 도로는 강을 따라 가게 되어있는데, 처음에는 파로 강을 따라가다 20분 정도 후엔 파로 강과 팀푸 강이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팀푸 강을 따라 수도 팀푸에 도착했다. 팀푸는 수도라 그런지 이미 현대화가 많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국가의 제재로 5층이 넘는 건물이 없고 부탄 특유의 문양대로 만들어진 창문이 이곳이 부탄임을 보여주는 듯 했다. 가이드의 말로는 젊은 인구가 더 이상 농촌에서 먹고 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로 이주하는 추세라고 했다. 부탄도 한국과 비슷한 도시화 문제를 갖고 있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 뒤 팀푸의 축제가 열리는 타쉬체 드종에 방문했다. 부탄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나라다. 정신적인 부분은 종교가, 국민들의 민생은 국가 정부가 담당한다는데, 그럼에도 사원과 국왕의 집무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여러 번의 지진으로 무너졌다가 설계도 없이 다시 재건된 건물을 둘러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동행한 선생님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음식은 생각보다 내 입맛에 잘 맞았다. 부탄에 있는 일주일 내내 음식이 안 맞아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산골에서 양과 소를 주로 가축하는 부탄은 유제품과 제철 야채, 곡물, 그리고 인도 등에서 수입해온 고기(불교가 국교로 살생을 금지하지만 나중에 가이드에게 들은 얘기로는 산에서 내려와 농사를 망치는 동물들을 죽이기도 한다고.)를 주식으로 먹는다.

 

다음 날 아침 일정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을 보는 것이었지만... 이런. 가는 길에 밤새 난 자동차 사고가 수습이 되지 않은 채로 길을 막고 있었다. 여기서 알게 된 건 부탄사람들은 부처님을 믿어서 그런지 매우 느긋하고 평화로운 심성을 갖고 있다는 것. 한국인인 우리는 렉카를 대신 운전하지 못해 안달이었지만 가이드와 운전 기사는 늘 있는 일인 양 조용히 기다렸다. 결국 오래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다음 일정인 학교에 먼저 방문하게 됐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학교는 부탄 내에서 가장 크고 좋은 교육 시스템을 갖춘 학교 중 하나로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다닐 수 있는 국립 학교였다.

매우 젊은 교장선생님(36)과 학교 선생님들께서 따뜻한 환영 인사와 흰 스카프로 맞아주셨고 우리는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빈 교실에서 부탄의 국민 총행복 정책이 학교 교육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부탄의 모든 아이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으며, 정기적으로 의사가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의 건강검진을 책임진다. 아이들이 교내에서 가정 형편의 격차를 느끼지 않도록 교사들은 학생들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도시락을 싸올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무상 급식도 제공한다고 한다. 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는 양성평등 교육과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환경 교육 등으로 행복한 국가 공동체를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국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실행한다고 했다. 

내가 가장

좋은 인상을 받았던 건 전통 문화에 관한 교육인데,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국민들이 자국의 언어를 잊고, 문화를 잊으면 그들은 나라를 잃은 거다.’ 그것이 부탄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면서도 국어인 종카어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복으로 전통 의상을 고집하며 학생들에게 전통 춤과 노래를 가르쳐 해외에서 온 여행객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공연하는 이유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모국어를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게 유행인데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서로의 부모가 끌고 다니는 차에 따라 서로의 경제적 능력을 가늠하고 전통 문화에 대해선 개인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무지하기 쉬운데 비해 개인의 국가적 정체성이 행복이라는 정신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어릴 때부터 전통 문화 교육과 인성 교육에 힘쓰는 부탄의 모습이 본받을 만하다고 느껴졌다. 

학교에 관한 설명을 듣고 1,4,6학년의 교실을 차례로 돌며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학생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다들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교장실과 교무실을 차례로 둘러보고 나서 우리는 학교를 나섰다. 

 

 

일주일 동안 우리는 불교의 나라에 온 만큼 여러 사원을 돌아다녔다. 주로 드종 안에 위치한 사원과 산 위에 있는 사리탑과 사원을 돌아다녔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사원은 다산을 기원하는 치미 라캉과 해발 3120m의 절벽에 얹혀 있는(내 눈엔 꼭 그렇게만 보였다.) 탁상 사원이다. 1499년에 지어진 치미 라캉은 티벳 출신 승려에게 바쳐진 사원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이 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아이의 이름을 받아가면 아이가 생긴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5일째 되는 날에 올라간 탁상 사원은 부탄 불교 문화의 중심 사원으로 사람이 많이 지나다녀 다듬어진 길이 나 있긴 했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돌로 된 길은 그 가파름의 정도가 아주 흉악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올라가 사원을 한 번 둘러보고 나니 기분이 산뜻해지고 운동한 후의 개운함이 느껴졌다. 

부탄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이 사원과 드종인데, 드종은 종교적, 행정적, 군사 방어적 목적으로 지어진 요새형태의 성 모양의 건물을 말한다. 우리 일행은 첫 날 갔던 타쉬체 드종을 제외하고 두 개의 드종을 더 방문했다. 그중 어머니 강과 아버지 강이 만나 둘러싸고 있는 푸나카 드종은 산을 뒤로한 건물이 강에 둘러싸여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물 내부의 한 가운데에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아래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 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이 곳도 타쉬체와 마찬가지로 사원과 정부 기관이 함께 위치해 있었다. 푸나카 드종의 넓은 마당과도 같은 내부 공간은 매년 축제가 열리는 곳이라고 한다. 또 부탄의 5대 국왕의 결혼식을 진행했던 장소로도 의미가 있다. 옛날엔 티베트의 침략을 견제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국가 행사나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심토카 드종은 부탄에 첫 번째로 지어진 종으로 부탄을 통일한 남걀에 의해 1629년에 지어진 곳이다. 이 사람에 의해 부탄에 국방을 위한 2000개가 넘은 드종이 세워지고 전통 의상과 문화를 강조하게 됐다고 하니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인듯 싶다. 

 

내가 본 부탄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국민들의 마음엔 여유가 있으며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다.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알고 다른 나라들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는 개발도상국임에도 정신적 가치에 대해 먼저 고민하는 지도자가 있다. 물질적 사치가 넘쳐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하지 않을 뿐이지 국민 대다수의 의식주가 충분히 해결되는 부탄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비싼 의료 서비스와 학비로 악명이 높은 몇몇 선진국보다 생활 수준이 높다고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작고 평화로운 나라 부탄을 떠나며 이 나라가 더 이상의 개발을 멈추고 도시화, 빈부 갈등, 저출산과 고령화, 환경 오염 등 선진국들이 떠안고 가는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건 여행객의 욕심일 뿐임을 안다. 다시 오게 되는 때에도 부처님을 닮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의 평화로운 얼굴들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부탄에 있는 동안 즐거운 여행을 책임져주신 가이드님과 운전기사님 그리고 동행한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언제나 인생을 나 자신과의 여행이라고 생각해왔다. 십여년을 살며 나 자신과 사이가 좋을 때도, 사이가 틀어져 오랫동안 스스로를 미워하며 괴로운 여행을 할 때도 있었다. 이번 부탄 여행을 통해 또 다른 나 자신과의 여행을 한 것 같다. 많이 배우고 느낀 좋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