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즐기는 책 한권의 ‘여유’
심혜리·심진용 기자 grace@kyunghyang.com
ㆍ‘믿을 만한’ 6명의 추천 책
명절 연휴는 일상에서 벗어난 짧은 ‘휴직’과도 같다. 모처럼 쉬겠다는 사람도, 더 많은 계획을 가진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귀향길 혹은 여행길에 어떤 책을 가방에 넣는가가 그 사람의 ‘현재’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좋아하는, 그래서 읽을 만한 책을 믿고 추천받을 수 있는 여섯 명을 찾았다. 그들로부터 ‘설 연휴에 읽고 싶은 책 1권’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두이노의 비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열린책들
“릴케(1875~1926) 만년의 시 170편이 담긴 시선집이다.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읽고 있는데, 이번에 글을 한 편 써야 해 연휴에 정독하려고 한다. 릴케의 번역 시집이 많은데 조심스럽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들 중에서는 이 번역이 가장 마음에 든다. 평생 릴케를 연구하신 원로 독문학자 손재준 교수님의 번역이다. 원래 시는 번역을 하면 뜻만 남지, 시라는 느낌이 잘 안 드는데 우리말로도 시로써 작동을 한다고 할까. 번역이 너무 훌륭해 ‘이게 릴케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의 체험이다. 설 연휴에 어머니도 뵈러 가야 하고, 처가에도 들러야 하는데, 이동하면서 손에 계속 들고 시집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된다면 최근 동시에 출간된 앤 카슨의 두 시집 <남편의 아름다움>과 <빨강의 자서전>, 그리고 미야모토 데루의 장편소설 <금수>도 읽고 싶다. 데루의 경우 전작인 <환상의 빛>이라는 작품을 좋게 읽어서 기대가 된다.”
<신형철 | 문학평론가>
■사이버 스톰매튜 매서 | 황금가지
“이번 설 연휴에는 매튜 매서의 장편소설 <사이버 스톰>을 읽으려 한다. 사이버 테러로 인터넷이 마비되자 아수라장이 돼 멸망하는 사회를 극사실주의로 묘사한 근미래 SF이다. 겨울 혹한 속 생존기가 담겼다.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는데, 출판사인 황금가지의 안목을 믿는다. 이 소설이 데뷔작인 저자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라고 하니 자기가 모르는 얘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려는 이유? 사실 명절에는 역시 종말 소설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운 친척들 앞에서 억지로 웃고 있을 때 ‘왕창 망해버린 세계’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일도 없다. 또 이 책이 겨냥하는 과녁이 꽤나 정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분명 정보통신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 기둥이 무너질 때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멸망하기까지 할까? 설득력 있는 답을 보고 싶다.”
<장강명 | 소설가>
■도불의 연회 | 교고쿠 나츠히코 | 손안의책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가 교고쿠 나츠히코의 최근작이다. 아직 안 읽었다. 10년쯤 전에 교고쿠의 데뷔작 <우부메의 여름>을 읽었는데 대단했다. 온갖 요괴가 등장하는데 정신이 없다. 막 썼구나 싶을 정도로 규칙이 없고 자유롭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읽고 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가 원래 디자인 하던 사람인데, 1990년대 초반에 망했다. 그리고 ‘노느니 글이나 써보자’해서 쓴 게 <우부메의 여름>이다. 원고를 받은 출판사에서 ‘어떤 미스터리 대가가 우리 역량을 시험하려고 신인인 척 보낸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유명한 일화다. 이 사람 소설에서 나쁜 놈은 요괴한테 꼭 벌을 받는다. ‘나쁜 짓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불의 연회>도 그렇지 않을까. 설 연휴 동안 이 책 읽고 ‘올 한 해는 착하게 살자’ 그런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김홍민 | 북스피어 대표>
■댓글부대 | 장강명 | 은행나무
“사람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하지만 좋은 책은 독자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국정원 댓글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을 때, 댓글 몇 만개가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 회의적이었다. ‘난 도움받은 것 없다’는 대통령 말에 별반 분노하지 않았던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이 책은 댓글이 사람들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정치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냐고 한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향방을 결정하는 게 정치인 만큼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올해는 총선도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우리네 삶이 또 요동친다. 댓글사건 후 4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된다. 비슷한 일들이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니까. 이 책을 읽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꼭 알았으면 한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무한화서 | 이성복 | 문학과지성사
“지난해 내 인생 최고의 책이었다. 이번 설 연휴 때 또 읽으려고 한다. 이성복 시인의 인생과 시를 정리한 글로, 나에겐 ‘삶의 경전’과도 같았다. 제목의 의미는 꽃이 피는 순서를 말하는 과학 용어에서 차용한 것이다. 비천한 세속에서 거룩한 데로 나아가는 시, 구체성에서 추상으로 가는 시의 특징이다. 시론이라고 돼있지만 시와 인생이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핵심적인 시 이야기와 인생의 경구들이 담겨 있어 매일 한 편씩 읽었다. 반복적으로 읽었다. 연휴에 조금 게으르게 지내고 싶을 때, 이 책은 내용이 짧게 나눠져 있어 읽기에도 편하다. 시 쓰기가 인생의 체화 과정이라면 생활 균형감각, 깊은 세상 관찰, 타인에 대한 연민을 명상하게 될 책이니 굳이 어려운 시론집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 번잡함 속에 들어서는 설 연휴에 471개 아포리즘을 읽다 보면 시인의 문구들이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시인>
■세상물정의 물리학
“세상을 좀 합리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재밌게 풀어놓은 책이다. 물리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우리 주변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윷놀이를 할 때 말을 얹을 수도 있고, 상대 말을 잡을 수도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이익인가, 이런 이야기도 있으니 설 명절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어떤 걸 이야기할 때 인상을 가지고 접근하고 세상을 비평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합리적으로 잘 보지 못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좀 더 합리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 나라가 좀 더 밝아지고 명랑해지고 합리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특히 올해는 선거도 있지 않나. 명절 때 재밌게 읽고 사람들끼리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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