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깊게’ 만드는 마을도서관

2016. 1. 2. 15:04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삶을 ‘깊게’ 만드는 마을도서관

프로필이미지 시민기자 김종성

Visit34 Date2015.12.31 14:52

마니차

이사 갈 곳을 고를 때 나만의 기준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동네 인근에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하천이나 강변이 있어야 한다. 물가는 한여름에도 덜 덥게 해주고, 강변길 따라 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돌리면 흡사 마니차(불경을 새겨 넣고 돌릴 수 있게 만든 티베트의 둥근 통)를 돌리듯 마음이 정화된다.

두 번째로 시장이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 해질녘 집으로 가는 길, 동네 주민들과 상인들로 복작거리는 시장통을 기웃거리다보면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진다. 천 원짜리 갓 구운 붕어빵 몇 마리, 뜨끈한 꼬치 어묵, 고소한 호떡에 몸과 마음이 충만해온다. 대형 마트에선 절대 느끼지 못하는 인간미가 있는 곳이다.

더불어 작은 도서관이 동네에 있다면 금상첨화다. 책도 좋지만 정기 간행물 실에 있는 다양한 잡지들은 삶의 중요한 즐거움인 취미를 ‘깊게’ 해준다.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은 작은 도서관이 얼마 전 동네 가까이에 생겼다. 지난 11월 13일 은평구 구산동에 개관한 ‘은평구립 구산동 도서관마을(이하 도서관마을)’이다.

도서관마을

동네 주민들에게 ‘도서관마을’은 여름날 단비 같은 존재다. 이웃 동네에 있는 은평구립 도서관이나 증산정보도서관 등은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 많은 주민들의 요청으로 2008년 도서관을 짓기 위해 구산동 주택 터를 매입했으나, 건축비 부족으로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다행히 2012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도서관 설립’이 선정되면서 무산될 뻔 했던 도서관을 짓는 공사가 시작됐다. 마침내 구산동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의 추억과 삶의 기억을 담고 있는 집들이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도서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연면적 2,550제곱미터(㎡) 규모로 미디어자료실, 어린이자료실, 청소년자료실과 청소년 힐링캠프 공간, 마을자료실, 만화의 숲 등을 갖췄다. 책과 사람이 만나 다양한 삶을 펼치는 ‘도서관마을’은 책의 향기 속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공공도서관임을 표방한다.

도서관

내가 알고 경험해왔던 도서관은 그저 책을 빌리는 곳, 필요한 자료를 찾는 곳, 입시와 취업을 위해 잠깐 거쳐 가는 곳이었다. 이름에 ‘관’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왠지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공간. ‘도서관마을’은 그런 편견을 깨는 곳이었다. 도서관을 지을 때부터 주민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 도서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일반적인 도서관 시설 외에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 엄마·아빠들도 도서관에 모여 책 이야기, 동네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공존했다. 도서관 명칭에 ‘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었다.

동네 골목길 돌아보듯 도서관 서가와 자료실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구립 도서관치고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고민과 공간배치가 맨 먼저 눈에 띄었다. 층간 계단이 교차형인데다, 복도와 열람실 구분이 없어 열린 도서관이란 이런 구조구나 하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복도, 소파, 구석진 공간 등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유모차를 끌거나 휠체어를 타고도 손쉽게 책이 있는 서고로 접근할 수 있다. 어린이 자료실엔 아기와 엄마를 위한 수유실도 따로 마련돼 있다.

도서관

특히 도서관 곳곳에 작은 방과 공간들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평소엔 도서관 이용자들의 소모임 공간으로 사용하다가, 주민과 함께 하는 북콘서트 ‘책톡 먹톡’ (책에 관한 토크, 먹으며 하는 토크), 꾸러기 장터, 언니넷 (청년활동 프로젝트), 주민 동아리 (노는 엄마, 도란도란, 책고리 등) 방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레고를 쌓거나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놀이방도 있다.

아직까지 ‘만화책도 책이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도서관에 오면 시대가 변했음을 알게 된다. 2층부터 4층까지 ‘만화의 숲’이란 자료실이 어엿하게 인기코너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층별로 아동, 청소년, 성인으로 구분되어 있다. 도서관내 작은 만화도서관이다. 다른 자료실처럼 평일 저녁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자신이 직접 작곡을 하거나 노래를 녹음할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도 좋았다.

도서관

도서관을 둘러보면 볼수록 ‘도서관마을’은 마을이 되고 싶은 도서관이구나 싶다. 이 도서관은 이웃사촌이 사라진 삭막한 익명의 도시에서 마을을 꿈꾼다. 이 꿈을 위해 도서관은 마을 사랑방을 자처한다. 코흘리개 아이들과 은발을 휘날리며 인생 2막을 즐기는 어르신들까지 마을 사람 모두가 도서관마을에서 만나고 함께하며 행복하길 바란다.

■ 구산동 도서관마을
 ○ 오는 길 : 6호선 구산역 3번 출구에서 구산동 보건지소 앞 방향, 도보 10분 소요
 ○ 문의 : 02-357-0100
 ○ 누리집 : www.gsvlib.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