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의 고질병, 파벌정치를 해소할 방법은 무엇일까.
‘합리적 보수’로 꼽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76·사진)은 “거대 양당 구조의 정치 카르텔을 깨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지난 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러나 기득권을 가진 기성 정치인들이 스스로 바뀌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국 유권자들이 정치 혐오와 불신이라는 감정적 소비를 넘어서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윤 전 장관은 박정희 정권때인 1970년대에는 경향신문 정치부 야당 출입기자로, 1980~1990년대에는 3개 정권에 걸쳐 청와대·정부에서 일했다. 정치인으로서 이회창-문재인-안철수에 이르기까지 여야·정파를 넘나들며 참모·멘토 역할을 한 그는 정치 현실에 냉소를 보내면서도 “역사는 스스로 모멘텀을 만든다”는 지론도 강조했다.
- 파벌정치, 패거리 정치의 뿌리는 어디에 있나.
“유교적 가부장 질서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지만, 1952년 부산정치파동이 타락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쟁 중이라 가능했겠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에서 선출될 자신이 없으니까 군대를 동원해 헌법을 바꿔버렸지 않나. 이런 불의에 대항하라는 국민적 성원 등으로 야당에 보스 중심의 파벌정치가 등장했다. 민주화라는 성취를 이뤘음에도 폐해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두 개의 거대 정당이 카르텔 구조를 형성해 ‘적대적 공생관계’를 만들고 있는 게 핵심적인 문제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게 본래 기능이다. 그런 정당이 지금 존재하나. 여당은 거꾸로 대통령 의사를 국민에게 강요하기 바쁘고, 야당은 공존 불가능해 보이는 세력들이 싸우느라 바쁘다. 이런 정당의 실패가 정치의 실패로, 또 국가 통치의 실패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 제도적인 해결책은.
“원론적이지만 결국 유권자의 힘으로, 압력으로써 바꾸는 수밖에 없다. 지금 유권자들은 정치를 싸잡아 욕함으로써 배설하고 마는 측면이 있다. 정치를 감정적으로 소비하면서 ‘죽일 놈, 살릴 놈’ 하다가도 또 찍어주고, 정당들은 그걸 믿고 안 바뀌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유권자 인식이 투철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본다.”
- 묘수가 없다는 건가.
“어떤 문제현상을 바라볼 때 그걸 제도·환경·행위자 세 분야로 나눠 분석할 수 있을 텐데. 나는 ‘행위자’가 중요하다는 쪽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이런 제도가 한국 정치를 획기적으로 바꿔주지 못한다. 뭘 하든 지금 상태로는 제도의 단점만 드러날 것이다. 제도 탓으로 돌리는 것은 기성 정치인들의 책임회피다.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여야가 논의하는 선거제도 개편도 문제를 해결해 줄 핵심은 아니라고 본다.”
- 정치개혁은 어떻게 가능할까.
“‘안철수 현상’까지 사그라든 지금 신뢰할 만한 제3세력이 (정치권에) 등장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계기는 올 것이라고 본다. 특히 청년층의 불만이 사회적 분노로 옮겨가고 있는 게 보인다. 임계점을 넘어가게 되면 정부는 물론 기성 정치권이 전혀 통제를 못할 것이다. 청년들 분노를 책임 있는 정치적 의지로 발현시켜 줄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환원론일지 모르겠지만 정치도, 민주주의도, 지도자도 그 나라 국민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민주적 시민의식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