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권력 이해득실 악용
패권 구도·갈등의 악순환
▲ 최근 인터넷·SNS 통해
무분별한 확대 재생산도
▲ 당장 사회적 제도 바꾸고
지역 넘는 장기적 연대까지
전문가 “정치권 결단” 강조
‘좁은 국토, 같은 언어, 한 민족 뿌리, 같은 문화….’
세계 어느 국가보다 동질성이 강한 한국이지만 실상은 역설적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국토는 광복 70년이 흐른 지금 ‘지역’이란 이름의 벽들로 막혀 있다. 그 지역의 벽은 ‘마음의 칸막이’가 돼 우리 정치·경제·사회 일상을 지배한다.
온갖 폐해들에 우리 사회 모두 ‘지역주의’를 비판하지만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팔도’라는 말처럼 현행 17개 시·도의 왕조시대 경계선을 60~70개 권역으로 재조립하는 ‘행정구역 개편’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문제’를 알면서도, 오랜 지역의 폐습에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매번 막아섰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선거제도 개편’ ‘지역분권 대폭 강화’ 등 단기적 충격요법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십년 지역감정으로 드러난 민낯을 자성하며 지역을 뛰어넘는 ‘연대’를 꾀하는 장기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정희 공화당 후보와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격돌한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와 19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 1990년 3당 합당, 1992년 대선 일주일 전에 불거진 ‘초원복집’ 사건(왼쪽부터)은 지역주의를 격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언제, 누가, 왜’ 만들었나
전문가마다 시각차가 있지만 현대사를 놓고 보면 크게 3가지 장면이 지역주의를 강화시킨 ‘변곡점’으로 꼽힌다.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1960~1970년대부터 가속화된 산업화로 인한 산물이라는 분석이 1순위다. 산업화 벨트가 수도권과 영남 등 주로 ‘경부선’에 집중되면서 호남·충청 등 낙후된 지역 주민들이 대거 수도권으로 이탈했고, 취업 등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역 간 감정의 골이 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지역주의 논란의 상당 부분이 관료집단의 인사 논란 등 서울에 사는 영호남 출향 인사들에서 시작돼 경부·호남선을 타고 하방한다는 지적은 그래서다.
이런 사회·경제적 뿌리가 폭탄의 ‘뇌관’이었다면 이를 터뜨린 건 정치권과 권력이었다. 사적 권력욕망이 지역의 어두운 측면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고 갈등을 악순환시킨 대표적 나쁜 정치의 사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공화당)과 김대중 후보(신민당)가 맞붙은 1971년 대통령 선거는 그런 권력의 민낯이 공개 분출한 계기였다. 당시 국회의장 이효상은 “경상도 정권을 세우지 않으면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고 선동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예상보다 적은 96만표 차로 박 전 대통령이 신승하고, 김 후보가 부산에서 42.6%를 득표하는 등 영남권에서 선전하자 권력층은 위기감에 빠졌다. 이 대선은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을 감행하는 한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을 거치면서 지역감정은 ‘사상’ 문제로까지 비화된다.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광주의 민주화항쟁을 ‘빨갱이들의 국가 전복 시도’로 덧씌웠고 언론이 이를 그대로 전하면서 ‘반호남=반공’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엔 ‘야권 내분’에 지역주의가 이용됐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당시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충청’을 상징하는 정치인들인 노태우 대통령과 민자당의 김영삼·김종필씨가 손을 잡으면서 호남을 상징하는 평민당 김대중 대표를 고립시키는 지역구도가 형성됐다. 민주화를 위해 함께 싸웠던 기억은 잊혀지고, 지역주의의 상처만 남았다.
■ 디지털과 만난 신지역주의
1992년 대선 일주일 전 불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은 지역주의가 정치권의 ‘비밀 아닌 비밀 병기’로 애용돼온 역사를 공개한 사례다. 당시 여당인 민자당 김영삼 후보 측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등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등의 모의를 한 녹음파일이 공개된 것이다.
정치권은 지역주의 해소를 외치면서도 이처럼 이해득실에 따라 이를 이용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여왔다. 이 같은 정치권 지역주의의 또 다른 단면이 선거 때면 더욱 활발해지는 ‘향우회·동창회’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친목모임 차원을 넘어 ‘밀어주고 당겨주는’ 장이 되는가 하면 압력단체로 기능하기도 한다.
21세기 들어 기술의 발달로 사라질 것 같았던 지역주의는 외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만나면서 더욱 확대, 재생산됐다. 인터넷·SNS상의 막말과 험담은 신종 지역주의 유행어를 양산하기도 했다. 호남을 일컫는 ‘홍어’ ‘전라디언’, TK를 지칭하는 ‘고담대구’ ‘과메기 냄새’ 등 비하성 막말이 퍼져갔다.
이를 두고 해가 갈수록 늘어가는 명예훼손 고소·고발 사건보다 지역주의를 모르던 청소년들까지 여과 없이 무분별하게 지역주의를 답습한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역주의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확대되고 세습돼 가고 있는 셈이다.
■ 해법은 없나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대증요법과 장기적 치료를 동시에 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증요법으로는 사회적 제도 자체를 바꾸는 것이 첫손에 꼽힌다. 정치적으로 보면 선거제도의 개편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채택하고 있는 ‘소선거구-단순다수제’ 선거제도를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광역을 기반으로 한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영호남에서 굳어진 특정 정당의 지역패권 구도를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것으로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재의 1인 승자독식의 선거제 개편을 통해 영호남에서 각각 다른 지역 출신 후보가 당선되면 지역감정이 완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선 정치권의 결단이 중요하다. 실상 지역주의를 양산하고 확대시켜온 주체인 만큼 이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도 정치권에 있다.
사회·경제적으로는 지역분권 정책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된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지역감정의 시초가 되기도 했던 1960년대 이후 수도권 중심의 산업화·고도화를 일부러라도 깨는 시도가 더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인구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몰리는 분위기에서 지역주의 자체가 깨지기를 바라는 건 요원하다는 것이다.
지역주의 자체가 없어질 순 없다는 전제하에 장기적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영호남 출신으로 같은 직업군의 노동자들이 그 직업군에 대한 어려운 현안을 함께 만나 얘기하고 대안을 만드는 움직임에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장기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지역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준거집단과 틀거리를 찾으며 공통점을 찾아간다면 수십년 쌓여온 지역 간 감정과 이해의 충돌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란 진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