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식량안보·지역경제 활성화 열쇠”‘세계 가족농의 해’
워크숍
세계 기아문제 해소·지속가능한 발전 등 밑거름 농업계 주요 현안과
연계…공감대 확산 급선무
2010년 기준, 식량부족에 따른 기아인구가 약 10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 세계인구
7명 중 1명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농산물의 완전한 자유무역을 통해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이 무참히 깨져버린 지금,
국제연합(UN)은 ‘가족농 및 소농’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식량문제 해결은 물론 인류의 지속가능을 위한 대안이 가족농과 소농에게 있다는
것이다. UN 산하 식량농업기구(FAO)가 올해를 ‘세계 가족농의 해(International Year of Family Farming)’로
선정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난 11일 환경농업단체연합회가 ‘2014 세계 가족농의 해 선정 관련 논의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농업계에서 가족농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선정배경 및 의미=UN 은 △기아와 빈곤의 종식 △식량안보 해결 △삶의 질 개선
△자연자원 관리 △환경보전 등을 위한 가족농과 소농의 중요성을 알릴 목적으로, 올해를 ‘세계 가족농의 해’로 선포했다. 5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가족농과 소농이 식량안보를 지탱하고 지역공동체와 경제를 유지하는 동력이자, 환경보호 및 지속가능한 사회를 일구는 밑거름이라는
것이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UN은 인류의 지속가능을 위해 해결해야 할
중점과제로 에너지, 환경, 식량, 기아·빈곤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해결방법을 모색해왔다”면서 “지난 2012년 ‘협동조합의 해’ 선정이나
올해 ‘가족농의 해’ 선정 등도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WTO(세계무역기구)체제
출범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양극화를 심화시켜 빈곤층의 증가를 초래했고, 2000년대 이후 만성적인 식량공급 부족으로 인한 총체적 식량위기를
불러왔다고 진단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UN 밀레미엄정상회담에선 2015년까지 기아인구의 비율을 1990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이는
목표를 설정했지만, 기아인구는 1990년 약 8억5000만명에서 2010년 약 10억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흔히 기아인구를 줄이기 위해 생산의 확대가 필요하고, 생산의 확대는 대규모 투자에 기반을 둔 농업개발 프로젝트를 통해서 쉽게 달성될 것으로
생각해 왔다”며 “그러나 2007년 식량위기 이후에 전개된 상황들은 이러한 통념들이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해외식량기지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에서 국제적인 농업투자가 급속도로 진행됐지만 식량상황은 더욱
악화됐고, 이는 가족농업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가족농 및 소농의 중요성=UN 산하 FAO는 가족농과
소농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중동지역의 식량 공급의 70% 이상을 떠맡고 있으며, 지구촌의 환경과 지속가능한 발전, 생명다양성, 식량안보,
청소년 교육 등을 위해서 가족농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기업농이 아닌 가족농이야 말로 기아와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의 지역 내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 지속가능한 지역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가족농을
육성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김성훈 슬로푸드문화원 사무국장은 “우리의 미래, 즉 후손이 맞닥뜨릴 현실은 생명다양성,
환경, 식량안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가족농과 소농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윤병선 교수는 “유엔이
가족농업에 주목한 이유는 소규모경영에 대한 지원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봤기 때문”이라며 “주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규모의
경제’에 주목했다면 가족농업은 해체되어야 할 존재로 지목했겠지만, 현실에선 소규모경영이 식량문제의 해결에서 지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의 소규모 영농에 종사하고 있는 농가는 최소 2억5000만호이고, 경작 가능한 농지의 10%를 이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
식량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윤 교수는 “소규모경영은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고용흡수력이 높고, 농산가공이나
농민시장과의 연계를 통해서 새로운 고용창출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며 “대규모 집약농업이 자원약탈형
농업이라면, 소규모경영에 바탕을 두고 있는 가족농업은 훼손된 농과 식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들을 복원하는 생명의 농업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살림의 경제’”라고 설명했다.
▲향후 과제 및 활동방향=UN 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세계 가족농의 해’
선정 의미를 확산시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2012년 ‘협동조합의 해’와 달리 올해 ‘가족농의 해’는 선정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정부의 무관심과 사회적 의제 및 이슈로부터 외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장경호 부소장은 “가족농업의 해 선정 배경 및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공유 및 확산시키며, 그에 맞는 사회적 의제와 이슈를 발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쌀시장 전면개방, 동시다발적 FTA와
TPP 등 주요 현안과 직접적으로 연계하는 활동이 요구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식량주권이라는 대안 패러다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다양한 부문 및 영역에서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정기환 국민농업포럼 상임이사는 “농업농촌의 가치 제고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가족농과 소농 보호를 위한 정책 수단 마련이 요구된다”며 “이를 위한 정책대안 마련과 6.4지방선거에서 지역단위 먹거리와
교육·문화·환경·복지정책의 연계 발전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기환 상임이사는 “시민사회의 자율성, 창의성,
주도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기획해 실행하되 거버넌스형 민관협력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며 “한국조직위원회를 결성해 환경과 여성, 노동,
복지, 지역운동 및 사회경제영역으로 세계 가족농의 해 선정 의미를 공유하고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기노leekn@agrinet.co.k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