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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시대의창

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by 소나무맨 2014. 6. 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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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종자'를 잃어버린 나라가 됐나

오마이뉴스 | 입력 2014.06.08 13:03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 (시대의 창 펴냄)는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을지도 모를 책이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식량의 기본인 '종자'를 둘러싼 전쟁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텃밭을 얻은 어머니는 밭 가득 참깨를 심었다. 참깨는 잘 자랐고, 어머니의 기대는 커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참깨 한 톨도 얻지 못했다. 농사를 잘못 지었어도 한 줌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한 줌은커녕 한 톨도 얻지 못했으니, 어머니에게는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 종자,세계를 지배하다 > 책표지

ⓒ 시대의 창

그런데 이 귀신이 곡할 노릇을 나도 겪었다. 아버님이 마당의 텃밭에 호박 몇 포기를 심어줬는데, 꽃은 무성하게 피었으나 호박은 단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늦가을까지 잎만 무성했던 것이다.

"종자 기업들은 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벼의 1세대 잡종개발에 주력해왔다. 벼 종자는 본래 이듬해 다시 파종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농민이 해마다 종자를 사도록 만들기 위해서 각종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마침내 기업들은 식물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할 수 있게 됐고, DNA를 선택적으로 설계해서 수확물이 종자로써 다시 싹을 틔울 수 없도록 만들었다. 터미네이터 기술의 개발이다.

터미네이터 종자는 수확을 마치면 파괴되도록 유전적으로 조작돼 있다. 벼 종자에 새로 삽입된 유전자가 씨앗이 여물기 전에 스스로 독소를 배출해 배아가 파괴되도록 고안된 것이다. 기업이 판매하는 1세대 종자는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지만, 수확된 2세대는 종자로써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능력이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 트레이터 기술(기자 주 : 아래 박스기사 참고)이라는 것도 개발됐다."( <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 중에서)

'트레이터 기술'? 그게 뭔가요

트레이터 기술이란 1990년대 말 유전공학 기업들이 개발한 '형질 특이적 유전자 사용 제한 기술'로, 식물의 번식력만이 아니라 유전적인 특징까지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 유전자와 연결되는 촉진자를 식물 세포에 주입해 특정물질을 쓸 때만 촉진자가 활성화하도록 하는, 화학적 물질을 이용해 식물의 생장을 통제하는 기술인 것이다.

예를 들면, 몬산토와 신젠토가 판매하는 종자는 그 기업들이 판매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야만 해충이나 돌림병 같은 병해에 강하다. 이런지라 이들 종자를 받아들인 농민은 화학적 물질(농약 등)까지 함께 사야만 한다. 초국적 종자 기업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농민들이 종자와 화학물질을 동시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참고로 초국적 종자 기업들은 농산물 수집과 유통 등에도 관여함으로써, 특정 종자만 심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당연히 소속회사의 종자를 요구한다. 초국적 종자회사들은 이런 방법으로 현재 세계를 장악해 가고 있다(책 속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나와 어머니는 옛날처럼 씨앗을 받아뒀다가 심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기다렸다가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이었다.
우리는 초국적 종자 기업들이 '수확물이 종자로써 다시 싹을 틔울 수 없도록 만든' 슈퍼종자'(터미네이터 종자, 트레이터 기술 등으로 만든 종자)를 심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아버님은 동네 어느 집 호박이 유독 탐스럽게 열려 씨앗을 얻어 심은 것이었다. 싹을 틔우고 꽃은 피우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종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 종자가 기형 종자인 것을 몰랐다.

어디 참깨와 호박에만 이런 일이 생기겠는가. 종자를 주제로 한 책 < 내 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 > 와 < 토종곡식 > 에 의하면 우리가 오늘날 심어 가꾸는 작물 중에는 나와 어머니가 실체를 경험한 참깨·호박 같은 게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수확량이 많다거나 병충해에 강하다는 초국적 종자 기업들의 홍보에 속아 이제까지 심어오던 토종 종자들을 버리고 선뜻 선택한 그런 종자들 말이다.

농가가 초국적기업에 내는 특허사용료... 이 정도일 줄이야



현재 청양고추 종자는 몬산토의 소유로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되고 재배되던 청양고추 종자는 이제 중국의 산둥성에서 채종돼 국내 농민들에게 팔린다.

ⓒ wiki commons

2009년에 농촌진흥청이 우리나라에서 재배돼는 재래종 작물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관찰했다. 이에 따르면 고추·수수·기장 등은 더 이상 재래종이 재배되지 않았고, 조사한 작물 중 평균 26%만이 재래종이었다고 한다. 책 <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 는 "우리나라에서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재배돼온 종자의 74%를 잃어버린 셈"이라고 진단한다.

"현재 청양고추 종자는 몬산토의 소유로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되고 재배되던 청양고추 종자는 이제 중국의 산둥성에서 채종돼 국내 농민들에게 팔린다. 몬산토를 비롯한 초국적 종자 기업들의 소유로 전락한 우리 종자들이 국내 종자 시장을 장악하고, 소비자들의 밥상에 오르고 있다.

2012년 국내기업인 동부팜한농이 몬산토 코리아가 갖고 있던 삼복꿀수박, 불암배추, 관동무 등 채소 종자 300여 품종에 대한 특허권을 인수했지만, 채소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시금치 등은 여전히 몬산토의 권리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농민들이 외국 기업에 지불하는 특허 사용료 비용은 2005년 183억여 원, 2010년 218억여 원에 달했다. 그런데 2012년부터 이후 10년간 특허사용료 지급액은 79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롭게 특허 사용료를 지급해야 하는 6개 품목[기자 주 : 딸기, 감귤, 나무딸기, 블루베리, 양앵두, 해조류(김·미역·다시마 등)] 등 6개 품목에 대한 특허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 중에서)

이 책은 KBS스페셜 <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 를 만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방송이 나간 뒤 자료들을 조금 더 보충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방송 당시인 2011년 2월 마지막 일요일 방송 직후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아마 위에 인용한 책 내용도 독자들을 놀라게 할 것 같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30%도 안 될 정도로 턱없이 낮다는 것, 우리의 토종 종자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 그리고 1980년대 초에 개발된 청양고추마저 이미 몬산토 소유라는 사실이 말이다.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효자나무'로 불렸던 감귤도,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주로 먹는다는 김·미역·다시마 같은 해조류에도 로열티를 물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더욱 당황스럽다.

'종자산업 육성'의 실효성은?



몬산토 CI

ⓒ 몬산토 누리집 갈무리

그렇다면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난 걸까.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종자회사들이 몬산토와 같은 초국적 종자 기업들에게 매각된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는 세미니스(현재 몬산토에 합병)에, 서울종묘는 노바티스(현 신젠타), 청원종묘는 사카타에 매각됐다.
이는 곧 기업들이 보유한 종자들이 고스란히 초국적 기업의 소유가 된다는 의미다. 국내 종자 기업이 매각되면서 초국적 기업은 1300억~1500억 원에 이르는 국내 채소 종자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했다.

이렇게 우리는 '종자를 잃어 버린 나라'가 됐다. 책은 우리처럼 종자를 잃어 버린 나라들의 농업 현실과 초국적 종자 기업들의 종자 무기화 전략들과 실태,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만들어진 GMO 작물(유전자변형작물)이나 터미네이터 종자들의 진실과 인류에 끼치는 영향(폐해), 종자 주권의 필요성 등 종자를 둘러싼 그 치열한 싸움과 현실을 다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농림식품부는 2012년부터 10년 동안 총 8149억 원을 투자해 2020년까지 종자에 관한 역량을 강화하고 2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겠다는 '골든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종자산업 육성을 통해 종자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의심스럽다. 10년 동안 투입되는 8149억 원이라는 예산은 실제 초국적 종자기업 몬산토의 1년 치 연구비보다 적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의 계획은 토종 종자를 보존, 복원하는 일은 도외시하고 주로 GMO 관련 기술을 지원하는데 집중돼 있다. 골든시드프로젝트 추진 자체가 GMO의 국내 상업 재배를 추진하기 위한 대국민 홍보 구실을 하고 있다."( <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 중에서)

인문 교양서인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생명을 위협받는 충격과 답답함에 휩싸였다. '종자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책 4부 제목이 섬뜩하게 와 닿았다. 두 눈 뜨고 우리의 종자들을 잃어 버렸음에, 그리하여 우리의 식량이나 먹거리를 초국적 종자 회사들이 쥐고 있다는, 좀 비약하면 우리의 생명을 그들이 쥐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식량이 위협받는다면 발전된 경제와 문화가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런 위기의식에 동감해 가급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이야기에 관심 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행이다.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누구나 선뜻 접근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딱딱한 주제인데,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책을 펴내서 말이다.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는 2011년 2월 27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이후 3년, 초국적 기업의 종자 지배 현상은 흔들림이 없고, 종자를 둘러싼 전쟁은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취재는 됐으나 시간 제약상 방송되지 못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문헌 자료, 사진 등 KBS 스페셜 제작진이 축적한 방대한 분량의 취재물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저자소개

프로듀서 정현덕│구성작가 고은희│촬영감독 김승환

목차

출판에 부쳐 / 종자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정현덕

1. 비극의 기록 - 농민, 종자의 덫에 갇히다
ㆍ 자살을 부르는 씨앗 || 인도 면화 농민들의 자살 / 면화 재배의 만병통치약, Bt면화와 몬산토 / Bt면화의실체
ㆍ 농약 비가 내리는 마을 || 아르헨티나를 뒤덮은 GMO 콩밭 / 대규모 단작화로 인한 피해
ㆍ 고소당하는 농민 || 미국의 유전자 수호 경찰과 유전자 특허 / 세계 최대의 GMO 농산물 생산 대국, 그 이면에는 / GMO 종자만을 사야 하는 미국 농민
ㆍ 종자를 잃어버린 나라 || 식량 위기를 부른 종의 단순화 / 한국, 종자를 잃어버린 나라

2. 비극의 배경 - 농업의 산업화, 그리고 녹색혁명
ㆍ 종자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
ㆍ 녹색혁명과 종자 || 식생활의 혁명적인 변화를 낳은 녹색혁명 / 하늘ㆍ땅ㆍ사람이 아니라 기계와 기술이 짓는 농사 / 녹색혁명이 부른 단작 / 갈수록 돈이 많이 든다 / 빠른 것이 최고, 속도를 추구하는 농업
ㆍ 누구를 위한 녹색혁명인가 || 경쟁력이 없는 가족농과 소농은 필요 없다 / 먹거리 생산의 주역인 농민은 사라지고 /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형 농업의 확산 / 대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종의 단순화
ㆍ 녹색혁명과 농업의 세계화 || 녹색혁명과 농산물 자유무역 / 농업을 파괴하는 자유무역 / 먹거리의 세계화, 세계농식품체계

3. 기업은 어떻게 종자를 독점하게 되었는가 - GMO의 탄생
ㆍ 씨앗을 남기지 못하는 농민들 || 생물다양성 소실과 식량 위기는 가난한 농민들 때문이다 / 농민들로부터 지속 가능한 이익을 독점하라 / 종자 독점을 위한 기업의 투자, 생명공학 연구 / 기업을 위한 농업 정책, 회전문 인사
ㆍ 전통 육종 기술에서 GMO로 || 개발되는 종자 / ‘발명된 GMO’의 위험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 라운드업과 라운드업레디의 모순 / 잡종 벼, 스스로 죽는 터미네이터 종자 그리고 트레이터 종자
ㆍ 전 세계에 확산되는 GMO || GMO 재배 면적의 확대 / GMO 쌀과 GMO 밀까지
ㆍ 먹거리에서 산업 원료로 || 공장형 식품 원료, GMO / 고부가가치 3, 4세대 GMO
ㆍ GMO에 관한 거짓말과 진실 || GMO 개발의 논리 / GMO 종자는 편리하다 / GMO 종자는 제초제 사용을 줄인다 / GMO 종자는 영농 비용을 줄인다 / GMO는 안전하다 / GMO 종자의 생태계 유출
ㆍ 한국의 GMO || 한국은 GMO 수입 대국 / 국내의 GMO 연구 개발 / 서류로만 검사하는 GMO / 식품 안전성 심사 제도 / 반쪽짜리 GMO 표시제

4. 종자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 종자 전쟁의 역사
ㆍ 미국, 종자 사냥에 나서다 || 미국 대두 산업의 모태가 된 한국의 토종 콩 / 미국이 종자 사냥에 열성이었던 이유 / 우리 유전자원의 수난
ㆍ 허가된 종자 약탈, 특허권의 탄생 || 생명체에 대한 특허 허용 / 생물 해적질, 특허
ㆍ 종자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 종자를 판매하는 기업 / 자유무역과 지적재산권 그리고 종자 시장 / 세계를 장악하기 위한 종자기업의 몸집 불리기 / 종자에서 식탁까지 : 초국적 농식품복합체
ㆍ 종자 산업의 새로운 도전, 끊임없는 시장 개발 || 기후변화 대응 종자와 새로운 이윤 창출 / 국가 전략 산업과 생명공학의 만남, 기업 이익의 세계화

5. 종자 주권을 위해 - 독점의 시대에서 나눔의 시대로
ㆍ 종자 전쟁,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 미래를 보는 서로 다른 시선 /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ㆍ 농민권 vs 특허권 || 내 농장이 GMO에 오염되었는데, 내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 농부 퍼시 슈마이저, 50년 세월을 몬산토에 빼앗기다 / 포기를 모르는 농부, 몬산토에 승리하다 / 전 세계에서 이어지는 수많은 슈마이저와 거대 농기업의 싸움
ㆍ 미래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
ㆍ 생물다양성협약과 식물유전자원조약 / 인류의 보편적 이익 vs 특정 기업의 이익
ㆍ 살펴보기 1 농민권이란 무엇인가
ㆍ 생물 해적질에 맞선 토종종자운동 || 기업의 종자 독점에 대한 저항과 대안 / 인도의 나브다냐 운동 /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세이버스네트워크 / 브라질의 사회적 기업 바이오나투르
ㆍ 살펴보기 2 식량주권운동
ㆍ 한국의 토종종자운동 || 소 잃은 외양간 / 토종 종자를 지키는 사람들, 씨드림 /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토종 씨앗 지키기
ㆍ 종자 독점에서 종자 주권으로 || 종자 주권이란 무엇인가 / 종자 주권을 지키는 방법, 공개와 나눔 / 생명과 미래를 위한 선택
ㆍ 살펴보기 3 비아캄페시나 《발리 씨앗 선언문》

맺음말 / 종자는 농민의 손에 관리되어야 한다
엮은이 후기 / 농사꾼은 종자를 베고 죽을지언정 결코 먹어 없애지 않는다-장경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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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를 충격에 빠뜨리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면화의 원산지 인도, 11월 초 인도 남부는 수확 철을 맞았다.
전체 경작지의 20퍼센트가 면화밭인 비다르바 지역은 면화의 주요 생산지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곳에 농민들의 자살이 속출하고 있다.
면화 농사를 짓던 아그라왈 씨의 남편은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면화 씨앗을 사다 쓰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불어난 부채 때문이었다.”
-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2011년 2월 27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의 도입부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분노를 동시에 안겨주며 큰 화제가 되었다. 초국적 종자기업 몬산토의 BT면화가 인도에 도입된 이후 지난 10년간 20만 명에 이르는 인도 농민이 자살했다. 평균 30분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식량 자급률이 30퍼센트도 안 되는 우리나라는 이미 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농산물을 초국적 종자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큐멘터리는 수만 년 동안 농민의 것이었던 종자가 최근 100년도 안 되는 동안 초국적 종자기업에 의해 사유화되는 과정과 그에 따른 문제를 짚어보고, 종자전쟁 시대에 토종 종자를 지키고자 국내외에서 펼쳐지는 여러 움직임을 소개하며 바람직한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책으로 더 깊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종자 전쟁’
방송 이후 3년, 초국적 기업의 종자 지배 현상은 흔들림이 없고, 종자를 둘러싼 전쟁은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취재는 됐으나 시간 제약상 방송되지 못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문헌 자료, 사진 등 KBS 스페셜 제작진이 축적한 방대한 분량의 취재물들을 재구성하여 이 책을 만들었다.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의 내용을 더 깊고 자세하게 풀어 쓰고, 최근의 정보를 풍부하게 추가했다. 초국적 기업의 성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여러 도표를 실어 이해를 도왔다.
※ 출간을 기념하여 우보농장과 함께 ‘토종 종자 나누기’ 캠페인이 5월 한 달간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시대의창 블로그 참조.
종자는 누구의 것인가
옛말에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를 베고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먹어 없애지 않는다고 했다. 종자는 농사의 출발이고, 이것은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 수천 년을 면면히 지켜온 불문율 같은 것이다.
세계 식량 위기가 회자될 때마다, 새로운 무역협정이 조인될 때마다 ‘농업’을 살리자는 말들을 한다. 그사이 농업은 점차 산업화 과정을 겪어왔다. 또한 몇몇 초국적 기업이 개발한 특정 품종의 종자가 농민과 농업을 잠식해왔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의 다양한 민족들이 대대손손 개량해오던 수많은 토종 종자 대신 종자기업의 종자가 세계 논밭을 장악해가고 있다.
종자 전쟁은 두 가지 차원에서 벌어진다. 하나는 종자를 차지하기 위해 자본과 자본, 기업과 기업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수 자본이 독점한 종자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되찾아오려는 시민과 농민이 자본과 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 곧 ‘종자 독점’ 대 ‘종자 주권’의 전쟁이다. 전자의 전쟁은 결국 후자로 귀결된다. 씨앗은 기업이 ‘개발’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가, 수천 년 동안 농민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내려온 인류 공동의 유산인가.

농업의 산업화 그리고 단작화
예로부터 농사는 땅과 하늘, 그리고 사람이 짓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녹색혁명과 산업화는 기계와 기술이 농사를 다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농업이란 바로 땅과 하늘의 힘을 인간의 기술로 모두 해결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산업화된 농업에서 농산물은 상품일 뿐이기 때문에, 국내 생산 비용이 높거나 수요가 적어 수익을 낼 수 없는 작물은 생산을 포기하거나 외국에서 수입해버리고, 빨리 재배해서 바로 팔 수 있는 품목과 품종에 생산이 집중된다. 그리고 농민도 여러 작물을 재배하기보다 잘 팔리는 몇몇 작물을 집중해서 재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이 때문에 한 가지 작물을 집중해서 재배하는 ‘단작화monoculture’ 방식으로 농업 형태가 변화했다. 결국 녹색혁명은 농업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고, 몬산토, 카길, 신젠타 등의 초국적 기업은 단작화를 가속시켰고, 종자는 산업화한 농업에서 제품 생산을 위한 원료로 전락했다.

종자도 팔고 농약도 팔고, 종자기업이 추구하는 이윤 극대화의 그림자
초국적 종자기업은 종자뿐만 아니라 농업 전체를 장악해가고 있다. 대부분 농화학회사를 소유하고 있어서 농약에 맞춰 유전자 조작으로 종자를 개발해 농약도 팔고 종자도 판다. 미국의 대평원 농민들은 수확한 농산물을 내다 팔려면 카길 같은 기업의 ‘곡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한다. 몬산토는 아르헨티나 농민들에게 자사 종자와 농약을 살 수 있도록 대출도 해준다. 그들은 농민에게 GMO(유전자 조작) 종자와 부채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다.
더구나 기업의 종자 독점은 식량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도리어 특정한 식량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수확이 보장된 일부 작물만 재배하다 보니 농산물 시장에서 그 작물의 가격은 크게 떨어진다.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한 농민은 자살을 택하거나 굶주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 세계 기아 인구의 4분의 3이 농촌에 거주한다는 역설적인 현실에 직면한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리는 것이다. 지천에 먹을 것이 깔려 있던 과거 ‘농촌’의 모습은 사라져간다.
많은 학자들은 이와 같이 종자기업이 내놓는 상품성 작물만 재배되는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 종자 기업은 품종을 단순화시켜 개발 비용과 관리 비용을 줄여 이익을 키우려 할 것이다. 많은 품종을 팔기보다 몇 가지 품종을 많이 파는 것이 낫다. 그런데 만약 질병으로 그 몇 가지 품종이 전멸한다면? 그래서 학자들은 ‘종의 단순화’가 식량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두고 뭉친 기업과 정부
전 세계 생물 유전자원의 90퍼센트는 제3세계 국가들에 있는 반면, 이 생물 유전자원에 대한 기술 특허는 상당수가 선진국과 초국적 기업에 있다. 전 세계에서 수집된 유전자원은 기업이 발명한 종자로 둔갑하여 전 세계 농민들에게 팔린다.
그리고 각국 정부들이 이들 기업의 뒤를 밀어준다. 미국에서 종자 산업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첨단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종자 개발의 타당성을 옹호하는 기초적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상용화에 중점을 둔 기업들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은 합작 투자, 연구 제휴, 대학 연구기금 지원 등의 방법을 통해 종자 관련 연구에 관여하거나 연구를 직접 통제한다. 몬산토는 2000년 10월 6일 자 《사내 소식지Monsanto Inhouse Newsleter》에서 다음과 같이 장담했다. “11월 선거에 어떤 후보가 승리하든, 농업생명공학 산업은 내년에 백악관 주인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종자는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콩의 원산지는 만주와 한반도이다. 1929~1932년 미국의 도셋Dorsett과 모스Morse가 이끈 본격적인 첫 콩 원정대(정식 명칭은 동양농업탐사원정대Oriental Agricultural Exploration Expedition)는 우리나라(조선)에서만 약 3500점(전체의 약 76퍼센트)을 수집해갔다. 미국이 현재 보유한 콩 유전자원 1만 8905점의 18.8퍼센트에 해당한다. 이들이 모은 종자는 미국 대두 산업의 중요한 모태가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먹는 것, 곡식이든 채소든 고기든, 그것은 씨앗으로부터 출발한다. 씨앗은 곧 식량이다. 즉 종자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종자를 둘러싼 기업과 기업의 전쟁, 농민과 기업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기업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농민과 우리 먹거리 생산과 시장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통일벼’, ‘녹색혁명’에 대해서도 간략히 살펴본다.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의 ‘식량주권운동’과 우리나라에서 최근 움직임이 커진 ‘토종 종자’를 지켜 나가려는 운동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책속으로

내 어릴 적 기억으로, 농부였던 아버지는 해마다 수확한 곡식 중에 일부를 골라 창고에 따로 저장하셨는데, 이듬해 햇살이 따뜻해지면 어김없이 그 씨앗으로 파종 준비를 하셨다. 물과 소독약이 적당히 섞여 있는 커다란 고무 대야에 씨앗을 한가득 붓고서는 온도계로 일일이 온도를 맞춰가며 파종할 씨앗을 애지중지 살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방법은 그때와 많이 달랐겠지만, 수천 년 전부터 농민들은 해마다 그렇게 좋은 종자를 선발해왔고, 그 농민들의 노고에 힘입어 우리는 건강하고 좋은 곡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불과 40여 년 만에 현실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 해마다 봄이면 농민들은 종자기업들이 생산한 씨앗을 사기 위해 시장으로 달려간다. 자신이 키운 씨앗이 아니기에, 좋은 씨앗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돈을 주고 산다. 사는 것 외에 씨앗을 구할 방법은 없다. 농민들에게 씨앗이 없기 때문이다. 농민의 씨앗은 40여 년 사이에 거의 다 사라졌다. 무엇이, 누가, 농민의 씨앗을 빼앗아 간 것일까? 어떻게? 農夫餓死枕厥種子(굶어 죽더라도 농민은 그 종자를 베고 죽는다)라 했는데 말이다. - 《출판에 부쳐》, 본문 5쪽

학자들은 오늘날 지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업에 의한 종자 지배가 장래에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윤을 좇는 기업의 특성상, 종자기업은 많은 종류의 종자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수천 가지 옥수수 품종 중에 A 품종 계열의 종자가 상품성이 좋다고 판단되면, 종자기업은 다양한 품종의 옥수수를 내놓기보단 A 품종 계열만을 판매하고자 할 것이다. 품종이 단순해질수록 개발 비용이나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기에, 종자기업에겐 그만큼 더 큰 이익이 생기게 된다. 많은 양을 파는 것이 중요하지, 많은 품종을 내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종의 단순화’가 초래되는 것이다. - 《출판에 부쳐》, 본문 7~8쪽

라운드업레디 대두는 직접 파종하면 된다. 땅을 먼저 갈 필요도 없다. 지난해 수확을 마친 경작지에 곧바로 씨를 뿌리면 된다. 잡초를 없애는 제초제를 네다섯 가지 뿌려야 했지만 라운드업레디 대두에는 라운드업이라는 제초제만 두 차례 살포하면 된다. 라운드업은 라운드업레디 대두만 남겨놓고 모든 식물을 죽인다고 했다. 파종의 편리함과 농약 비용 절감이 집중적으로 홍보되었기 때문에 라운드업레디 대두의 재배 면적이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
특정 제초제와 이 제초제로는 죽지 않는 제초제 저항성 GMO를 함께 도입하면 제초제 사용량이 줄어든다는 것이 애초의 약속이었다. 라운드업레디 대두를 도입하기 전에는 네다섯 가지 제초제를 번갈아 사용해 잡초에 내성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라운드업레디 대두에 맞는 라운드업만 사용하자 여기에 내성을 갖는 잡초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제초제 사용량이 더 늘어나 매년 100만 리터 정도였던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계열 제초제 사용량이 2005년 1억 5000만 리터로 급증했다. - 본문 33~34쪽

유전자 침식genetic erosion이란 토양 침식에 빗대어 유전자원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2009년 농촌진흥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재래종 작물의 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관찰해 《식량농업 식물유전자원 국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 식물 유전자원이 사라져가는 유전자 침식을 조사해보니 고추, 수수, 기장 등은 더 이상 재래종이 재배되지 않았고, 조사한 작물 중 평균 26퍼센트만이 재래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동안 재배돼온 종자의 74퍼센트를 잃어버린 셈이다. -본문 49쪽

국내 농민들이 외국 기업에 지불하는 특허사용료 비용은 2005년 183억여 원, 2010년 218억여 원에 달했다. 그런데 2012년부터 이후 10년간 특허사용료 지급액은 79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롭게 특허사용료를 지급해야 하는 6개 품목의 외국산 종자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딸기의 경우 국내산 종자 사용 비중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꽤 성공을 거두어 2005년에 채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던 국내산 종자 사용 비율이 최근 61퍼센트대로 높아졌다. 하지만 포도(98퍼센트), 표고버섯(60퍼센트), 장미(82퍼센트), 카네이션(99.8퍼센트) 등 인기 작물의 종자는 여전히 외국산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실정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농림식품부는 2012년부터 10년 동안 총 8149억 원을 투자하여 2020년까지 종자에 관한 역량을 강화하고 2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겠다는 ‘골든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종자산업 육성을 통해 종자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의심스럽다. 10년간 투입되는 8149억 원이라는 예산은 실제 초국적 종자기업 몬산토의 1년 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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