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배신 --- 오홍근

2014. 6. 4. 15:02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오홍근 칼럼집. 저자는 한국 사회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특히 국가 권력의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 여론을 제대로 반영해야 할 주요 언론 역시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를 지탱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기둥들이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 오홍근은 정부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생각이 없거나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통일, 경제민주화, 인권 등 국가적 의제에 대한 정부 주도의 정상적 대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선순환이 가능한 시스템인데 우리 현실은 민주주의가 작동 가능한 기본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쉽게 갖추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예수의 구원이 그렇듯 자본의 힘에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이상이란 말 그대로 꿈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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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이비 전성시대

그러나 마음 한켠에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허약한 민주주의였던가. 국가 공권력이 특정 후보를 위해 대규모 여론 조작에 나서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모르지 않지만 우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민주주의의 성’을 포기하고 마는 시민들이었다는 것인가. 지난 선거는 많은 이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선거였고, 오늘의 현실은 그 고통스런 느낌이 공연한 것은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때는 이 나라 정치판에서 ‘원칙’과 ‘신뢰’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던 게 정치인 박근혜의 이미지였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논쟁이 뜨겁던 때 박근혜 의원의 한마디는 천근의 무게로 이 나라 정치판을 평정했었다. “정치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깨진다면 끝없는 뒤집기와 분열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게 일갈했다. 그러나 박근혜표 원칙과 신뢰는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서 사실상 풍비박산한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에 ‘약속 뒤집기’와 ‘불신 조장’과 ‘이른바 언론’들과의 ‘정치공작’까지 자리를 잡은 듯하다.
미래로 가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던 그녀는 지금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며 ‘과거’로 가고 있다. 자상하게 보고 받고, 자상하게 수첩에 적고, 자상하게 지시하는 자상한 대통령이면서, 그래서 몰랐을 리 없는 일도 그녀는 태연히 몰랐다 하기도 하고, 직접 국민들을 향해 말하는 것까지 회피하고 있다. 정정당당한 바른 정치를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 개입이라는 분탕질을 감싸고 가려주려는 ‘이른바 언론’의 피나는 노력은 누가 봐도 눈물겨웠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들과 그 수많은 방송들이 여권의 당·정·청과 합세해 총력전을 펼쳤다. 나쁜 것을 나쁘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는 수많은 지성인들과 시민단체·학생들의 대선 개입 규탄 성명이나 ‘촛불’도 도대체가 눈에 띄지 않았다. 사실도 아닌 NLL 포기 발언 쪽으로 죽기 살기로 여론을 몰아갔다.
제 역할 못하는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언론이라고 불릴 뿐이다. 따라서 적합한 이름표를 붙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른바 언론’이란 이름표를 붙였다. 한마디로 ‘이른바 언론’들의 작태는 국정원이나 경찰의 분탕질 못지않은 분탕질이었다. ‘이른바 언론’ 외에도 최근 분탕질을 덮어주고 감싸려 한 모든 기관의 행태가 더 나쁜 분탕질이다.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이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대단히 두려워하는 듯하다. 국민 앞에 직접 나서려 하지 않는다. 잘못된 일이다 싶으면 솔직하게 나서서 직접 사과하는 게 옳다. 그걸 피한다. 윤창중 씨 사건 때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국민 사과문을 읽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바로 나서서 국민들에게 입장을 밝히고 잘잘못을 철저히 가리도록 조치해야 했다.
거의 한평생을 한눈파는 데 일로매진해온 국정원에 대해서도 “국정원이 알아서 자체 개혁하라” 할 일이 아니었다. 그게 되는 일이 아니다. 국가 기밀인 대화록을 공개한 국정원장을 바로 해임하고 국민의 양해를 구하면서 새로운 국정원의 모습을 그려 내놓아야 했다. 그런 게 대통령이 할 일이다. 구름 위에서 간접화법으로 선문답을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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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신문 2014년 5월 19일자 출판 새책

최근작 : <민주주의의 배신>,<그레샴 법칙의 나라>,<칼의 힘, 펜의 힘> … 총 3종 (모두보기)
소개 :
전북 김제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수료하고 일본 도쿄대학교 사회정보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1968년 T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한 후 TBC가 강제 통폐합되자 중앙일보로 옮겨, 사회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판매본부장 등을 거치며 30여 년 동안 언론인으로 재직했다. 판매본부장으로 일할 때는 통칭 ‘조동중’으로 알려져 있던 메이저 신문의 구독부수 서열을 ‘조중동’으로 바꿔놓아 언론계를 놀라게 했다.

1976년 ‘비무장지대 르포’로 방송대상 기자상, 1979년 ‘농촌 특집’으로 기자협회 한국...

한국의 현실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따라 작동되고 있는지 회의스럽다. 이 문제는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형식이 있다고 내용까지 당연히 수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 사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국가 권력의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 여론을 제대로 반영해야 할 주요 언론 역시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를 지탱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기둥들이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 오홍근은 정부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생각이 없거나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통일, 경제민주화, 인권 등 국가적 의제에 대한 정부 주도의 정상적 대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선순환이 가능한 시스템인데 우리 현실은 민주주의가 작동 가능한 기본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호의 선장실은 사실상 비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쉽게 갖추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예수의 구원이 그렇듯 자본의 힘에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이상이란 말 그대로 꿈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권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왜곡이다. 더 민주적인 사회가 더 강한 사회라는 믿음에 위배되는 모든 종류의 시도를 단호히 거부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한국호의 비참한 실상을 반추해 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