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와 콘돔: 미스터 콘돔, 나라를 구하다. 사회적 기업

2013. 12. 31. 20:56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양배추와 콘돔: 미스터 콘돔, 나라를 구하다. 사회적 기업

2012/06/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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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홀과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취해 팟타이와 똠양꿍, 신선한 생오렌지 주스를 맛있게 먹고 나서는 길, 계산을 하자 미소를 머금은 점원이 영수증과 함께 작은 비닐로 포장된 무언가를 건넨다사탕인가 싶어 열어보니 세상에, 콘돔이다.


임신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인간의 2대 욕망은 성욕과 식욕이라고 했던가. 태국을 여행해본 적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레스토랑‘캐비지 앤 콘돔 (Cabbages & Condoms: 양배추와 콘돔)’은 이 두 가지 욕망을 직접 한 곳에 배치했다. 콘돔과 레스토랑.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두 가지 아이템을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올리자면 비위가 상할 만도 하건만, 이 레스토랑은 콘돔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은 마네킹, 성기를 묘사한 다소 낯부끄러운 그림들, 그리고 천장의 조명까지 온통 콘돔으로 도배해놓았다. 그러나 분위기는 기괴하다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쪽에 가깝다. 실제로 캐비지 앤 콘돔은 태국 방콕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다.



OUR FOOD IS GUARANTEED NOT TO CAUSE PREGNANCY. 우리 레스토랑의 음식은 임신 걱정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메뉴판을 받아 들자마자 보이는 농담 섞인 한 줄의 문구는 사실 이 레스토랑의 코드와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실 콘돔 장식이 가득한 레스토랑 그 자체만 두고 보면 무슨 철학이냐 싶을 것이다. 콘돔이라는 코드는 그저 ‘엽기적인 레스토랑’이라는 화제성을 위한 수단이 아닌가. 경영자 별명도 웃기다‘미스터 콘돔 (Mr. Condom)’혹은 ‘콘돔왕 (Condom King)’이란다. 레스토랑을 열게 된 이유도 콘돔을 사기 위해서였다. 이토록 낯뜨거운 줄도 모르는 인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될 미스터 콘돔의 일대기를 듣게 된다면 실로 그는 태국의 영웅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에피소드
 1: 미스터 콘돔 비긴즈

미스터 콘돔, 본명은 메차이 비라바이디야 (Mechai Viravaidya). 태국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학공부를 마치고 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태국정부의 정책전문가가 되어 안정적이고 평온한 나날을 보냈지만, 모국인 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태국정부는 경제발전을 이룩하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잘 진행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각 가정의 가계상황 또한 매우 불안했다. 벌어들이는 수입 대부분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소모되었고, 그들은 하루하루 끼니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고전을 면치 못하던 태국에도 폭발적인 상승곡선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인구증가율이었다. 당시 태국의 한 가정 내 평균 자녀 수는 7명이었고, 인구증가율은 3.3%에 육박했다.소득은 정체되어있었으나, 부양해야 할 가족의 수는 불어만 갔다. 그들은 갈수록 가난해졌다.

메차이는 이 점에 주목했다. 그는 국민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답은 있었다. 산아제한이었다. 그러나 성관계를 금지할 수도, 생긴 아이를 낙태시키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법적인 조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로 이때, 그는 실용적인 방안을 하나 떠올린다. 바로 피임을 위한 ‘콘돔’이었다. 콘돔은 부작용이 없고,가장 효과적인 최고의 피임수단이었다. 하지만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콘돔의 사용을 권장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콘돔을 사용하게 하는 방법은 콘돔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콘돔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었다. 안으로 감추고 싶은, 콘돔이 본래 갖고 있던 느낌을 뒤집는 것, 그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었다. 메차이는 영리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콘돔을 사용하세요!”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빠른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스터 콘돔이 되기로 결심한다. 스스로 콘돔의 아이콘이 되기로 한 것이다.


에피소드 2: 미스터 콘돔과 PDA

배트맨과 셜록 홈즈, 그들에게 만약 집사 알프레드와 닥터 왓슨이 없었다면 그만큼 빛날 수 있었을까. 영웅에게는 늘 최고의 파트너가 존재키 마련이다. 미스터 콘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동료는 바로 PDA (The Population and Community Development Association)였다.미스터 콘돔은 혼자의 힘으로 국민의 생각을 바꾸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스터 콘돔이 되기로 결심한 후,그는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정부직책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의 파트너 격인 PDA를 설립하게 된다. 그와 함께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PDA로 몰려들었다. PDA의 열정적인 성원에 힘입은 그는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한다. 그는 어떻게 하면 국민이 콘돔을 친근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거듭했다.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최대한의 노출과 유머였다.

미스터 콘돔은 일단 콘돔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콘돔을 구매할 여력이 없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콘돔을 무료로 배포하고자 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에는 정부원조와 기부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평소 개인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을 고쳐 레스토랑을 만들기로 한다. 그곳이 바로 캐비지 앤 콘돔이다. 레스토랑이 성황을 이루자, 리조트 사업에도 뛰어든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 줄 아는 그는 사업가로서의 기질을 발휘해 모두 큰 성공을 이룬다. 그렇게 하여 벌어들인 수익금은 콘돔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그는 또한 콘돔을 어디에서든 구매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태국 내 시장에 ‘가족계획 (Family Planning)’이라는 간판을 내건 노점을 운영하게 했다. 나라를 바꾸고자 하는 그의 노력에 불교계도 움직였다. 승려들은 사찰을 찾는 이들에게 성수와 함께 피임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콘돔사용권장캠페인과 동시에 피임에 대한 교육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그는 이러한 성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진지함만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는 콘돔을 부끄러움 없이 꺼내 들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콘돔을 친구처럼! 그것이 그가 세운 전략이었다. 그는 국민을 대상으로 콘돔 크게 불기 대회나 미스 콘돔대회 등을 개최하거나, 콘돔을 직접 만지고 가지고 놀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콘돔과 친숙해지도록 유도했다. 기상천외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통했다. 1973, 한 가정당 7명이던 자녀의 수는 2000년대에 들어서 1.5명으로 대폭 감소했고, 3.3%대이던 인구증가율은 0.5%로 낮아졌다. 가계 부담이 줄어들자 경제활동이 활발해졌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는 발판이 갖춰진 것이었다.


에피소드 3: AIDS의 역습

그러던 1980년대 후반, 태국에 위기가 닥쳤다. AIDS(AIDS/HIV: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출현이었다.관광지로 주목받던 태국에서는 성매매 문제로 골치를 겪고 있었는데 그와 함께 AIDS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1991, 태국의 AIDS감염자 수는 142,819명에 달하게 된다. 나라가 붕괴할 지도 모르는 엄청난 문제였다.

이에 미스터 콘돔과 PDA의 활동은 다시 한 번 탄력을 받게 된다. 그는 AIDS의 감염경로가 대부분 성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콘돔의 사용이 AIDS 예방과 안전한 성관계를 위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임을 주창했다. 그는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캠페인을 진행해 나가고자 태국정부의 상원의원직을 겸임하면서 “100% 콘돔사용프로젝트”라는 정책을 발표하며, 자국민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콘돔의 사용을 적극 권장했다.




태국은 그야말로 콘돔 천국이 되었다. 공항에도, 호텔의 객실에도, 택시 안에도, 경찰의 주머니에도 온통 콘돔이 가득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콘돔이 있었다. 콘돔이 사람들에게 노출된 것이 아니라,사람이 콘돔에 노출되었다. 안 쓰고는 못 배길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치밀하고, 집요한 그의 방식은 이번에도 통했다. 1990, 142,819명에 달하던 AIDS 감염자의 수가 2006년에는 14,889명으로 90%가량 급감했다. 미스터 콘돔은 77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에필로그:
 미스터 콘돔이 될 수 있겠습니까?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상 수상, 타임지가 선정한 70인의 아시아 영웅에 선정, United Nations Population Award (UNPA) 수상, The Ramon Magsaysay Award for Public Service 수상…

화려한 수상이력과 지방발전, 환경, 교육에 이르기까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그와 PDA의 각종 사회 공헌활동들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배제하고서라도 그의 위대함은 이 질문 하나에 녹아있다.

“그 누가 스스로 미스터 콘돔이 될 수 있겠습니까?

배트맨의 배트카는 멋있다. 아이언맨의 수트는 세련됐다. 영웅들의 무기는 그렇다. 그러나 콘돔은 영웅이 갖기에 썩 멋진 아이템은 아니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을 유쾌하게 꺼내 들고,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자기 자신을 미스터 콘돔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것이 바로 미스터 콘돔이 위대한 이유다. 그는 진정한 이 시대의 실용주의적인 영웅이었다.


에디터 정제인

Photo(CC) by adaptorplug, Jeremiah Ro, Patrn/ flick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