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애완견을 산책시킬 때 필수로 지참해야 하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
1. 신나서 뛰어가는 것을 방지해줄 수 있는 ‘목줄’
2.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귀엽고 깜찍한 ‘옷’
3. 가지고는 가지만 절대 쓰고 싶지 않은 ‘배설물 처리용 비닐봉지’
개를 산책시키면서 배설물 처리용 비닐봉지를 챙겨야 하는 것을 모르는 애견인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지고는 가지만 절대 쓰고 싶지 않은’ 이라는 수식을 붙인 것은 아무리 사랑하는 애완견이라도 그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아티클의 주제, 바로 사랑하는 애완견의 배설물에 대한 이야기다.
지뢰밭 공원,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에디터 역시 공원이나 거리를 걷다보면 개의 배설물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작은 소도시에서도 상황이 이런데,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애완견들을 기르는 대도시의 공원은 지뢰밭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실 애완견과 함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외국의 경우 애완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수준도 높지만, 반대로 애완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기에 당연히 처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배설물의 수 또한 많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의 애완동물 배설물 처리 업체인 DoodyCalls의 조사에서는 미국인의 40%가 애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다고 답했다.
물론 절대적인 애견인의 수가 작은 우리 나라의 거리나 공원에서 개의 배설물을 보거나 밟는 것은 단순히 ‘재수가 없는’ 경험에 지나지 않는 것도 사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애견인 수를 감안해봤을 때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설치는 쉽지만 효과는 없는 표지판
원론적으로 개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것은 애완견과 동행하는 사람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 책임이 자율적으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침해되는 지역 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를 장려하기 위한 조치들을 실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조치들의 실효성이다. 우리 나라에서 역시 대부분의 조치는 경고문을 기재란 표지판 설치에 그치고 있으며, 이는 개의 배설물로 인한 불편을 더 많이 겪고 있는 외국의 도시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대처방식은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애완견의 절대적인 숫자만큼이나 애완견에 대한 사회적 의식 수준이 높은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왜 표지판의 경고 메시지는 공염불에만 그치고 있을까? 먼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2가지로 나눠 분석해보자.
1) 적절한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경고문만 일방적으로 기재된 표지판에는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낼 유인이 부족하다. 더구나 일반적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장소가 집 인근의 공원이기에, 동일한 표지판이 빈번하게 목격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표지판과 같은 지시적 형태의 메시지가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것이라 예상하기 힘들다.
2) 메시지에 대한 수용도가 낮다
공공 장소에 세워지는 표지판은 대상자뿐만 아니라 비대상자들에 대한 사전 인지 역시 목표하고 있다. 즉, 지금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있지 않더라도 ‘개의 배설물을 직접 치워야 한다’는 인식을 미리 심으려 하는 것이다. 표지판의 설치에 있어 접근성이 중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역으로 대상자들에 대한 직접적 효과를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안내하거나 지시하기 위해 항상 이용되는 수단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민들의 체감도가 이미 낮아져 있다는 것이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수도 없이 발견하는 표지판 사이에서 개의 배설물에 관련한 내용만 특별하게 수용될 리가 만무하다.
수동적 표지판에서 능동적 캠페인으로
이처럼 애완견의 배설물을 해결하기 위해 사실상 유일하게 이용되는 표지판은 그 실효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 이에 이번 아티클에서 스페인과 영국에서 각각 시도된 캠페인을 통해 애견 배설물 처리를 위한 새로운 차원의 캠페인을 제안하고자 한다. 누군가가 읽어주고, 이에 따라 행동해주길 바라는 ‘수동적’ 메시지의 표지판에서, 누군가가 볼 수 밖에 없게 하고 행동을 바꿀 수 밖에 없게 하는 ‘능동적’ 메시지를 이용한 캠페인들이다.
- ‘지금 피했어도 나중에 불쾌해질 수 있습니다’ 스페인 브루네뜨
개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는 간단하다. 애견에 대한 애정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더러운 배설물을 치우는 것 자체는 유쾌한 경험이 아니기에, 벌금을 내는 등의 직접적인 처벌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를 치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일단 배설 직후 자리를 잘 뜨면, 추적당할 일도 없으며 사후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다는 경험적 지식은 도시의 공원을 지뢰밭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요약하자면, 이들의 비양심적인 행동에는 ‘지금만 피하면 불쾌하지 않아도 돼’ 라는 심리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 마드리드 주 근교의 브루네뜨(Brunete) 에서 광고 대행사 McCann(http://www.mccann.es/index.php)이 정부와 함께 벌인 캠페인은 바로 이 심리를 공략하는 캠페인을 시도했다.
이 캠페인에 동참한 자원봉사자 20명은 공공장소를 돌아다니며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시민들을 찾아냈다. 이후에 마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이들에게 말을 걸어 애완견의 이름과 품종을 알아냈고, 지역 애완견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해당 시민의 집 주소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시민이 치우지 않은 애완견의 배설물을 지역 분실물 센터에서 발송된 소포를 통해 배달했던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는 ‘지금만 피하면 불쾌하지 않아도 돼’ 이다. 그러나 브루네뜨 지방의 캠페인은 이 점을 공략해 ‘지금 피했어도 나중에 불쾌해질 가능성’을 시민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아준다는 분싦물 센터의 이름을 이용해서, 그리고 다음에 또 걸리면 벌금이라는 문구도 함께 적어서 말이다. 시민들의 심리를 분석해 이를 공략한 브루네뜨 지방의 캠페인은 주효했다. ~ 간의 캠페인 이후 거리와 공원의 애견 배설물은 자그마치 70%가 감소했다.
- 직접 치우면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Mexico City
브루네뜨 지방의 캠페인은 (장기적으로는 문제의 원천 방지라는 목표를 갖고 있긴 하지만) 문제를 발생시킨 시민 개개인에 대한 1:1 사후대처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와는 반대로 아예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사전방지 방식의 캠페인 역시 시도된 바 있다. 그리고 이 캠페인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행동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Mexico City)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의 하나로 이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물론 이번 글의 주제인 애완견의 배설물 또한 높은 인구밀도의 도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회문제 중 하나이다. 이에 멕시코의 인터넷 회사인 Terra는 광고 대행사 DDB MEXICO와 함께 거리에 방치된 애견의 배설물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을 개선하고자 하는 캠페인을 시도했다. 물론 이는 자사의 인터넷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한 프로모션의 성격을 갖고 있으나, 그 세부 내용을 보면 다른 지방 자치단체에서도 직접 실시할 수 있는 공익적 캠페인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Terra와 DDB MEXICO는 멕시코시티 곳곳의 10개의 공원에 특별한 쓰레기통을 설치했다. 이 쓰레기통의 이름은 ‘POO WIFI’. 말 그대로 개의 배설물을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 무게만큼의 무료 와이파이가 일정 반경 내에 제공되는 것이다. 내 개의 배설물을 치움으로써 나 또한 무료 와이파이라는 선물을 받고, 그 선물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착한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 이 캠페인의 목표. 말 그대로 개의 배설물을 잘 치우도록 장려했던 것이다.
규제와 장려 사이, 정답은 아직이다
브루네뜨와 멕시코시티에서의 캠페인은 각각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다. 브루네뜨의 경우 실제로 잘못을 한 시민에게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처벌의 직접성을 보장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통한 탐문수사를 실시했으며, 기존에 확보된 애완견 데이터베이스와 분실물센터라는 공공 인프라를 활용했다. 철저하게 시스템화 된 규제책인 것이다.
이에 비해 멕시코시티는 자신과 타인들에게 무료 와이파이라는 선물을 주는 긍정적 경험을 선물함으로써 양심적 행동을 장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무료 와이파이를 선물하기 위해 (기존에 처리하지 않던) 배설물을 치우는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시민들은 자신의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는 행위가 단순히 개인적 의무가 아니라, 다른 시민들의 공공권을 보장하는 선의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됐으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 역시 무료 와이파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방법론의 2가지 캠페인 중에 단기적인 실효를 보인 것인 대상자를 찾아 직접적인 처벌을 가한 브루네뜨의 캠페인이었다. 이에 더해 멕시코시티의 캠페인의 경우 개의 배설물이 아니라 일반 쓰레기를 POO WIFI 쓰레기통에 넣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비용을 투자한 캠페인은 실효를 거둘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 캠페인의 실시 여부에 있어, 단기적 효과만이 결정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쩌면 당장은 효과가 없어 보이더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물한 멕시코시티의 캠페인이 장기적으로 더 유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멕시코시티의 캠페인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파급효과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상반된 이 두 개의 캠페인 중 어느 방식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두 사례에는 분명한 공통점 또한 존재한다. 적어도 사람들의 눈길과 행동변화를 기다리는, 흔해 빠진 표지판보다는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볼 수 밖에 없게 하고 행동을 바꿀 수 밖에 없게 하는 ‘능동적’ 메시지를 이용하는 캠페인. 머지 않아 지뢰밭이 될 수도 있는 공원을 관리하는 우리 나라의 지방 자치단체들에게 전달된 스페인 브루네뜨 지방과 멕시코 시티의 핵심 지령이다.


Latest posts by 김정찬 (see all)
- 감각기관이 된 스마트폰, 눈과 귀를 넘어 육감을 전달하라 – October 22, 2013
- 이 구역의 축구짱은 나야! 아마추어 축구 네트워크 ‘풋플러’ – October 9, 2013
- 도킹스테이션의 생존전략, 올빼미 Housekeeper로의 변신! – September 27, 2013
- 유모차+캐리어= Baby Carriagage, Baby Carer로의 도전! – September 23, 2013
- 사면초가 옥외 광고, Dual Message로 위기를 탈출하라! – August 20,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