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과 군사안보 쟁점 : 유엔군사령부와 미국의 유엔헤게모니 해체
이시우(평화운동가)
Ⅰ. 서론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는 한미동맹체계의 산물이다. 유엔사는 유엔체계의 산물이다. ‘동맹’은 독일식세력균형체계인데 비해 ‘협조체계’는 영국식세력균형체계이다. 미국이 추구한 동맹은 독일식세력균형과는 다르다. 세력균형이 5~6개국으로 구성되는 다극체계인데 비해 미국의 동맹은 소련과 양극체계하에서 만들어졌고 이제는 일극체계이다. 이는 패권체계일 뿐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본질은 이름과 달리 세력균형체계가 아닌 패권체계이다. 유럽식 세력균형체계에 대한 혐오감이 컸던 미국은 집단안보체계를 선택했고 그 결과 유엔이 창설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권력과 유엔의 권위를 결합시킨 구조로 중세에 황제의 권력과 교황의 권위를 결합시킨 구조와 유사하다. 유엔군사령부는 미국패권이 주도한 유엔체계의 모순을 집약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유엔체계를 적극 활용했고 아직도 한국문제는 유엔문제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과연 한국전쟁시 ‘유엔조치’ 혹은 ‘유엔활동’이 존재했는가? 결론만을 말하면 유엔조치는 없었다. 16개 참전국의 행동은 유엔행동이 아닌 개별국가의 행동일 뿐이다. 또한 유엔군사령부도 미국통합군사령부로서 유엔과는 무관한 기구이다. 작전권과 관련하여 본다면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군통수권을 이양한 ‘서한’이 54년 한미합의의사록의 작전통제권이양, 78년 한미연합사로의 위임등 모든 작전권문제의 근원이지만 이것은 다음에서 살펴보듯 무효이다. 작통권은 환수대상이 아니라 이양 자체를 취소하여 무효로 할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통권환수과정은 굴곡과 정체와 원점회귀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 유령처럼 유엔군사령부가 있다.
Ⅱ. 이승만의 군통수권이양 무효
한국전쟁시 미군의 참전과 미군에로의 작전지휘권이양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즉 전자가 있었기 때문에 후자가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7월 15일, 작전지휘권은 흔히 이승만대통령이 자발적으로 맥아더에게 이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굴든은 새로운 증언자료에 입각하여 다른 사실을 주장했다. 6월 28일 대전으로 이승만을 찾아간 무초는 이승만에게 그가 알기로는 내각과 국회가 잠정적으로 기능을 정지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전쟁은 이승만 내각 혹은 다른 한국민들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여 한미군사전문가들의 처분에 맡겨져야 할 것이며, 미 군사장교선발대가 곧 파견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굴든은 이를 무초가 정식으로 한국군에 대한 군 통수권을 요구한 것으로 보았다. 무초와 이승만의 관계가 노골적으로 불평등하게 역전된 것은 굴든에 의하면 이승만이 애초약속과 달리 무초에게 알리지도 않고 서울을 도망친 행동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초는 앞으로 수개월간 이것을 심리적으로 교묘히 이용했다. 양대현은 이 대화의 분위기를 분석하길 무초가 이승만에게 반협박조로 말하면서 국군지휘권을 정식으로 요청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승만은 대전으로, 다시 대구로 두 번이나 도망가며 사실상의 통수권을 포기했다. 그가 실질적으로 통수권을 포기한 사실은 맞지만 법적으로 통수권이 이양되지는 않았다. 지휘권이양서한 전까지 이승만 명령은 합의문서도 없이 구두로 이루어졌다. 7월 15일 지휘권이양서한을 조약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사후입법 혹은 소급입법에 해당한다. 과연 이승만의 ‘국군통수권이양공한’은 법적으로 유효한 것인가? 첫째는 국내법 위반사실여부와 둘째는 국제법적 조약문서로서 효력을 갖는지의 여부가 문제된다. 국내법절차에서는 국회동의등 절차의 위법성 여부, 통치행위로 간주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쟁점이 된다. 국제법적으로는 조약으로서 효력을 가질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첫째, 국내법절차의 위법성 여부를 보자. 우선 이 서한이 오가기 전에 이미 한미연합작전이 실시되고 있었으므로 이전의 실질적 지휘권이양 행위에 대한 문제가 있다. 제헌헌법23조는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대해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소급입법금지를 정하고 있다. 따라서 18일 이전까지 취해진 한미간 지휘권관련 행위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음으로 무효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 서한이 국회동의권을 위반했는지의 여부를 보자.
헌법59조는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하고 비준하며”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헌법42조는 “국회는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통상조약, 국가 또는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과 선전포고에 대하여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헌법은 현행법과 달리 국회에 대해 ‘체결’이 아닌 ‘비준’에 대해서만 동의권을 명시하고 있으므로 대통령의 조약문서 체결은 국회동의가 필요 없었고, 서한 내용에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한다는 내용이 없으므로 비준이 필요한 조약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회동의권은 현행헌법이라면 몰라도 당시 헌법하에서는 위법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국군통수권이양이 아예 입법사항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헌법61조는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현행헌법 74조 1항처럼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하도록 되어 있지 않으므로 입법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주장은 국군통수상 발하는 필요한 명령은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이라 할 때 이는 일반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이다. 국군에 대한 지휘권은 군통수권의 핵심요소이다. 또한 군통수권은 주권의 본질적 구성요소이고 주권의 최후의 보장수단이며 불가양의 권리이므로 위기하에서 일시적으로 지휘권을 이양한다해도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으로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1950년 당시 헌법하에서 작전지휘권의 이양이 국회동의 없이 이루어졌다 해도 이는 위헌이 아니라는 견해는 좀처럼 납득이 어려운 견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는 국회동의권 밖에 있었다. 당시 헌법 제66조는 “대통령의 국무에 관한 행위는 문서로 하여야하며 모든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국무위원의 부서(副署)가 있어야 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당시 헌법은 반드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할 13가지 사항 가운데 ‘군사에 관한 중요한 사항’(제72조 제7호)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이 국무회의에서 작전지휘권이양에 관한 의결을 거쳤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이 서한에는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이 함께 서명한 부서도 명백히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 법적하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측 자료에 의하면 “이 대통령의 작전지휘권 이양에 관한 공한은 대통령비서실의 보좌나, 국무회의 의결이나, 외무부의 역할이 개입된 흔적이나 혹은 미국 대사관의 역할이 개입된 사실을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이 대통령 공한의 합법성이 문제시 될 수도 있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적법절차를 거쳐 보완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 공한에 의한 주권 일부로 간주될 작전지휘권 이양이 위헌으로 주장될 소지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이대통령이 국내법적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고 독단적으로 맥아더장군에게 지휘권을 이양하는 내용의 문건을 전달했기 때문에 국내법적 절차를 다 거친 공한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개인적인 서한일 뿐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따라서 헌법을 위반한 개인적 서한을 조약으로 보는 것은 무리하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46조에서도 조약체결권에 관한 기본적 국내법규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은 조약을 무효로 한다고 하고 있다.
둘째, 통치행위여부이다. 이 서한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주장이 있다. 통치행위로 인정된다는 것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으나 다수설은 조약이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며 헌법의 하위에 있음으로 법원이나 헌법재판기관의 심사대상이 된다고 본다. 이는 대통령의 통치적 재량권을 넘어선 행위로 대통령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으므로 주권의 본질적 요소이고 군사주권의 핵심인 국군작전지휘권을 포기한 것과 같기 때문에 원인무효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작전지휘권이양을 규정하는 조약이 한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이 서한 작성에 강제와 강박이 존재했는가의 여부이다. 7월 상황은 이승만이 심리적 공황이라 할 만큼 극도의 혼란에 처해 있었고, 그의 주관적인 판단과 무관하게 처치와 무초를 통해 국가주권의 침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정치적 압박이 실제 존재했다. 이처럼 위협(intimidation)과 강제(coercion)등 강요된 동의는 조약을 형성하는 당사자의 동의가 될 수 없다. 요컨대 조약을 형성함에 있어 계약법의 제1원리인 당사자의 동의라는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넷째, 오해와 착오의 여부이다. 당사자의 동의로 조약이 체결되었다 할지라도 조약체결기관의 의사표시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진정한 동의로 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오해(error)로 인하여 동의가 이루어졌거나, 사기(fraud) 또는 착오(delusion)에 의해 합의된 조약은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의사의 일치가, 법적으로 중요한 의사의 흠결로 인한 것일 때에는 해당조약을 취소할 수 있다. 예로 이승만서한에서 조약 당사자문제에 대한 오해와 착오를 들 수 있다. 이승만은 맥아더유엔사령관에게 이양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는 7월 25일에야 창설되므로 10일전인 15일 현재 유엔사령관은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7월 7일 유엔안보리 결의는 ‘미국통합군사령부’의 창설을 권고 했을 뿐이다. 맥아더를 유엔사령관으로 확정할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이승만의 서한에서는 ‘군 통수권’을 이양한다고 했으나 맥아더의 서한에서는 작전지휘권을 이양 받는 것으로 했다. 통수권과 작전지휘권의 엄청난 차이로 볼 때 이는 사소한 착오로 간주할 수 없는 내용이다. 결국 서로 다른 내용을 합의한 것이다. 즉 동의되지 않은 것이다.
다섯째, 조약성립의 문제가 있다. 공문이나 각서와 같은 문서의 교환(exchange of instruments)이 조약으로서 효력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서자체에 문서의 교환이 조약으로서의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되어 있거나 다른 방법으로 입증되어 있어야 한다.(조약법에 관한 비엔나조약 제13조)
그러나 이 서한은 그러한 규정이 없고 다른 방법으로 입증된바 또한 없다. 유일한 것은 대통령의 서명뿐인데 서명이 구속력 있는 동의로 간주되려면, 서명이 구속력을 갖는다는 것을 조약이 규정하고 있는 경우, 서명이 그러한 효과를 갖는다고 교섭국이 합의한 것이 다른 방법에 의해 증명된 경우, 서명에 그런 효과를 부여하려는 국가의 의도가 해당국 대표자의 전권위임장에 명백히 표시되었거나 교섭과정에서 증명된 경우에 행해진다.(조약법에 관한 비엔나조약12조1항)
위와 같은 근거로 우리는 작통권환수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고민해 봐야한다.
Ⅲ. 작통권환수과정과 유엔사의 강화
작통권환수논의 당시 유엔사가 문제되었다. 미국은 한국군에 대한 유엔군사령관의 지휘권과 한미연합군사령관의 지휘권은 별개의 개념이라고 주장하면서 한미연합사가 해체될 경우 작전통제권이 유엔사령부로 자동적으로 환원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 국방부 훈령 제237호(78.4.18)는 “연합사가 해체되면 한국군의 작전지휘를 한국군 독자적인 체계에 의해 수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의 주장대로라면 연합사를 해체해도 작통권은 언제든 유엔사로 환원될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한국군은 작통권환수를 유엔사해체가 아닌 연합사해체로 방향 잡았다. 그러나 2006년 작통권환수논의를 전후하여 미군은 유엔사를 지속적으로 강화시켜 왔다.
2002년 경의선지뢰상호검증단 제안이후 2000년 11월 17일 「유엔사와 인민군간에 체결된 남북관리구역에 대한 합의서」를 부정하고 유엔사는 다시 유엔사령관의 비무장지대 관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1년간의 대치 속에 한국정부가 편법을 마련하고야 남북철도공사는 간신히 재개되었다. 이 사건으로 유엔사의 존재감이 부각되었다. 2003년에는 라포트가 유엔사령관 자격으로 합참의장과 연합사부사령관 신일순을 일본에 있는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로 초청하는 형식을 빌려 일본 후방기지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급기야 라포트는 미의회 청문회에 참석 유엔사령관자격으로서 증언하길, 앞으로 유엔사 직원 수를 늘리고 유엔군 참전국을 불러들일 계획임을 밝혔다. 그리고 신임 벨 사령관 역시 2006년 3월7일 미의회 청문회에서 이를 재확인하며 유엔사를 전시우발 상황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유엔사 스탭을 통해 보다 영구적인 토대위에 연합관계를 더 늘려가기를 희망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유엔사의 구조가 강화된 결정적 증거는 2005년 5월 10일부터 있었던 유엔사특수전 회의였다. 남측정부에 의해 5029작전계획이 중단되었다는 보도이후 5029작전계획을 발전시키기 위한 회의가 있었음을 10일이나 지난 뒤에 언론에 흘렸다. 이는 한미연합사에 평시작전권으로서 위임된 연합위임사항(CODA)중 ‘작전계획의 수립’을 한국정부가 문제제기 했을 때 너무나 쉽게 유엔사의 이름만으로도 진행할 수 있음을 증명해준 사건이었다. 5029작전계획에 대해 유엔사가 작전계획수립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작전계획 뿐 아니라 교리도, 이에 따른 교전수칙과 군사연습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6년 9월 7일, 현대경제원 주최 ‘21세기 동북아 미래포럼’ 에서 벨사령관은 “미국은 한국정부의 전시작통권에 대한 갈망을 지원”하며 “한국의 전시작통권 행사가 2009년에 가능할 것”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벨 사령관은 연합사의 전시작통권을 한국군에게 전환함에 따라 한국과 미국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첫째, 한국정부의 전략적인 전쟁의 목표, 군사목적, 요망하는 전쟁 최종상태의 기준 설정, 둘째, 미군이 전쟁에 투입할 미군전력의 적합한 수준 결정, 셋째, 새로운 지휘구조아래 유엔사의 정전 유지에 관한 임무수행능력 영향과 북한과의 정전협정 관련 문제로 대치 시 정전 및 위기관리 방법 등 시급한 당면과제가 먼저 해결되어야만 전시 작통권의 전환이 한국 안보에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것으로 지적하였다. 즉, 북한이 다시 침략할 경우 대한민국을 어느 지역까지 방어할 것인지 또는, 반격하여 북한을 수복할 것인지에 관하여 전쟁 최종상태를 결정할 군사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것인지, 또는, 주한미군과 미증원군을 어느 수준까지 증원 받아 연합으로 전쟁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전쟁에 대한 전략과 계획이 미비한 상태를 지적한 것이다. 2007년 1월 19일 외신기자클럽에서 벨사령관은 그간 추상적으로만 언급하던 유엔사강화론의 실체를 완전히 드러냈다. 연합사로 ‘위임’됐던 유엔사의 작통권은 ‘이양’ 된 것으로 유권해석 하기로 합의했다는 정부당국자의 확인은 벨사령관의 신년기자회견 발언까지만 해도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19일 외신기자클럽에서의 벨 사령관이 내놓은 유엔사강화론은 그간의 합의과정에서의 착오와 미세한 틈을 발견하여 마침내 작통권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4일 뒤인 2007년 1월 23일 주한미군사령부가 '유엔사의 미래에 대한 주한미군사령부의 입장' 자료를 통해 "유엔군사령관은 작통권(전작권)이양 이후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1월 19일과 23일 발표 중 어느 것이 미국의 본심일까? 2년이 지난 뒤 샤프 사령관은 2009년 11월 4일 일본 도쿄의 유엔군사령부 후방사령부에서 열린 제64차 유엔의 날을 기념하는 환영연회 연설에서 "유엔군사령부는 (아․태)지역 내에서 갈등 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효과적인 기구로서 어떠한 적대행위로부터 한반도를 방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유엔사강화는 지속되고 있다. 2013년 6월1일 국방부는 미래지휘구조개편안을 발표했다. 원래는 연합사해체 후 한국군 주도, 미군지원의 두 개 작전기구안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연합사체계를 유지하는 단일전구사령부안으로 돌아간 것이다. 단 미군이 한국군의 지휘를 받는다는 점이 차이다. 그러나 과연 미군이 타국군대의 지휘를 받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무성하다. 미군지휘교범상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양국이 이런 안을 합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단 한가지의 가능성 때문이다. 유엔군사령부이다.
Ⅳ. 위기관리권
유엔사령관의 지휘권한 중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한부분일 뿐이다. 78년 연합사창설시에 위임했던 것도 바로 이 한부분만이다. 설령 연합사해체와 작통권 환수가 원안대로 실현된다고 가정하고 유엔사를 살펴보자. 우선 몇가지 개념정리가 필요하다.
평시는 평화시의 준말이다. 정전시는 정전상황시의 준말이다. 평화시를 뜻하는 평시는 상대국과의 관계가 평화조약이나 평화협정등이 체결된 상태이거나 혹은 정상수교국이어서 이미 평화조약을 포함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1994년 12월 환수 받은 ‘평시’작전통제권이란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당시 미군이 돌려준 것은 ‘정전시’작전통제권이었다. 일반 군정권을 제외하고는 대간첩작전 ‘진돗개’ 정도가 한국군이 수행할 수 있는 작통권의 전부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간첩은 군인이 아니기에 전쟁법이 아닌 형법의 대상이며, 군대보다는 경찰의 영역에 속한다. 한미연합사가 정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주면서도 남겨둔 6가지의 연합권한위임사항(CODA:Combined Delegated Authority)의 첫 번째 조항이 ‘전쟁억제, 방어 및 정전협정준수를 위한 한미연합위기관리 권한’이다.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유엔사이므로 이 권한의 근원도 유엔사이다. 벨사령관이 유엔사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로 수차례나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이 바로 정전시 위기관리였다. 유엔군사령관의 우선적 임무는 ‘유엔사 규정 551-4, 한국정전협정준수’ (2003. 9. 22)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한반도의 정전협정 관리와 유지에 있으며, 이와 관련한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는데 있다. 연합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 미8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의 정전관리 임무수행을 위하여 지원할 책임이 있다. 정전상태아래 한국군의 작전통제아래 있는 특수전, 대간첩작전 등 임무수행도 유엔군사령관의 감독을 받는다.
한국정부가 전쟁주권을 문제 삼아 전시작통권을 환수하고자 했던 핵심은 전쟁절차가 아닌 위기절차에 있었다. 전쟁절차는 국내법적으로는 선전포고를 위한 의회의 결의가 필요하고, 국제법적으로는 유엔안보리의 절차를 필요로 하는 등 군사, 외교, 법률분야에서의 복잡하고 장기간에 걸친 준비를 요구한다. 때문에 만일 미국이 이라크전과 같이 북을 상대로 전쟁절차에 들어간다면 국내법과 국제법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도 충분히 정보를 교류하며 판단을 조절할 수 있기에 미국에 의한 전쟁주권의 일방적인 침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한미연합사의 전쟁결정 구조가 한미정부의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전제는 전쟁절차가 진행될 때는 일리 있어 보이는 것도 그 같은 이유이다. 그런데 왜 한국정부는 전쟁주권의 문제를 제기하며 전시작전통제권환수를 제의 했을까?
위기절차 때문이다. 1968년 푸에블로호사건, 1969년 EC-121기 격추사건, 1976년 판문점 미루나무절단사건, 최근의 서해교전 등은 모두 위기절차로 시작되었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위기가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미 간에는 오랫동안 연합위기관리에 대한 방침을 공유해 왔고 정교하게 발전시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관리체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위기로 규정하는 시점이다. 전 장영수 국참대총장은 “전쟁억제 방어 및 정전협정 준수를 위한 연합위기관리에 대한 위기상황의 시점 판단이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 따라 작전지휘권이 전환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유엔사ㆍ연합사령관이 겸직하고 있는 위기조치관리관이란 직책은 세간엔 잘 알려지지 않은 무척 낯선 직책이다. 이는 1994년 래피드썬더 연습당시 게리 럭 연합사령관 본인에 의해 확인됨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럭 사령관은 정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준비과정에서 자신이 위기조치관리관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연합위임권한(CODA)목록에 정전위기관리권을 추가시키도록 지시했다. 1995년 위기관리에 대한 시행세칙이 합의됐지만 현재와 같은 한미연합위기관리체계가 구체화 된 것은 1998년, 작전계획5027-98과 개념계획5029를 만든 존 틸럴리 사령관 당시이다. 이때 개념계획5029가 북의 붕괴를 가정한 위기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위기관리체계가 새롭게 보강된 배경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한국군도 1998년판 국방백서에서야 비로소 이전에 한번도 목차에 등장한 적이 없던 '위기관리체계'란 항목이 새로이 추가되었다. 위기절차를 다룬 미국 합참문서에도 지역을 책임지는 총사령관이 위기발생시 교전수칙에 의한 즉각 대응조치를 취하고, 워싱턴 국가군사지휘본부에 상황에 대한 평가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 평가는 위기절차 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의 전문적 평가이기 때문에 총사령관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점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미국의 위기판단 기준이 이해관계라면 한국은 원한관계일 때가 많고, 그만큼 위기에 대한 감수성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이해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한 위기에 대한 한국과의 견해차를 조절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합사해체가 분명 고민거리를 안겨준 것이라면, 유엔사강화는 반대로 명백한 해결대안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유엔사가 정전시 위기관리에서의 지휘통합을 요구하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2007년 1월 19일 벨사령관의 유엔사강화론이 지금까지 가장 세밀한 의도를 드러낸 성명이다. 유엔사의 구조에 대해 벨 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① (정전유지를 위해)전시와 같이 평시에도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② 정전에서 위기가 고조되어 전시로 전환될 때 유엔사 지휘관계에서 하나의 통합이 필요합니다. ③ 유엔군 사령관은 지원 역할을 수행하는 모든 유엔 지원전력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보유할 것입니다. ④ 일본 내 기지 접근은 유엔사 임무에 중요합니다. ⑤ 주한미군 사령관이 현재와 같이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언론들은 ②, ③이 유엔사가 한국군을 지휘하겠다는 의도 외에 달리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날 주한미군의 ‘해명’자료는 이에 대해 전혀 해명하지 않았다. 벨사령관의 발언을 요약하면 ‘작통권환수로 한국군부대에 대한 즉시접근권이 사라졌다. 그래서 미군의 정전유지, 관리가 불가능해졌다. 정전유지의 핵심은 위기관리이기에 유엔사아래 한국군과 정전유지를 위한 평시조직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는 정전시의 위기에서 전시로의 이행이 매우 짧아 지휘구조를 변환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지휘구조를 하나로 통합하자. 그러나 유엔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은 유엔사령관이 보유하며,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직한다.’는 것이다.
결국 유엔사강화는 현실로 드러났다. 2011년 2월15일, 한미연합사령부는 ‘키 리졸브’(Key Resolve)연습을 시작한다는 보도자료에서 “우리는 재래식 공격을 넘어선 수많은 실질적 시나리오에 맞춰 훈련을 하고 있다”는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의 발언을 소개했다. 훈련에는 전해에 이어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제20지원사령부 요원들이 참가해 북한의 핵 및 대량파괴무기 제거 연습도 강화한다고 보도됐다. 이는 이전까지 ‘개념계획’으로 있었던 ‘5029’가 이 시점에서 사실상 ‘작전계획’화 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앞서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에 맞춰, 미국의 대외정책 수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외교협회(CFR)가 ‘북한 급변사태 대비’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한국군이 북한 지역에 개입한다 해도 한국의 국내법이 아닌 국제법의 적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리하면 국가정책과 군사기구와 군사연습이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Ⅴ. 유엔사와 유엔헤게모니
1951년 9월 체결된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에 의해 일본정부는 한국에서의 유엔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시설과 역무를 지원한다고 했다. 유엔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 한국군을 넘어 주일미군과 자위대까지 미칠 수 있는 근거를 이미 마련하고 있다. 연합사해체와 달리 유엔사해체는 한․일․미 차원의 공동문제이다. 자위대 창설시 헌법개정의 부담을 피해 헌법해석의 방법으로 명분과 실상의 차이를 없애려던 일본정치가 이제는 헌법개정을 노골화하고 있다. 미․일․한군사동맹화 역시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좌절되더라도 유엔사령부가 존속하며,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의 효력이 유지되는 한 언제든 미국은 미․일․한군사기구를 작동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미․일․한 관계는 한국전쟁 당시로 돌아가게 된다. 아니 미․일․한 군사관계는 한국전쟁당시의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유엔사는 일본의 헌법9조와 한국의 헌법3조(영토조항),5조(평화조항)와 충돌한다. 유엔사해체는 진정한 아시아의 평화체제를 이루기 위한 열쇠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요시다-애치슨공문에서 유엔군사령부활동만이 아닌 ‘유엔의 활동’을 언급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문제가 유엔문제이고 일본문제도 유엔문제로 틀 지워져 있는 것이다. 유엔사령부가 아니어도 유엔의 활동이라면 일본은 이 교환공문을 발동시켜 한반도 개입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유엔헌장을 교묘히 왜곡함으로써 한국전쟁이후 리비아사태결의안까지 거의 모든 유엔안보리결의에 이러한 왜곡과 변형을 적용했다. 한가지만 예를들면 헌장39조는 ‘권고하기’와 ‘조치하기’를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권고는 평화적 수단에 대해서, 조치는 군사적 강제조치에 대해서 가능하다. 군사적 강제조치에 대해서는 권고할 수 없으며 지시되거나 명령되어야 한다. 켈젠과 함께 스톤 역시 헌장 39조 규정에 “국제평화 및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을 위하여 권고한다.”는 것은 평화적 수단을 권고하는 것을 의미하며 강제조치에 대한 권고는 포함하지 않으므로, 6월 27일의 결의에서 안보리가 가맹국에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 등을 권고한 것은 헌장에 입각한 결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1950년 6월 27일 안보리결의와 이를 명분으로 한 미군참전으로 하여 유엔헌장은 유린되었다. 유엔헌장에 의하면 한국전쟁시 유엔안보리의 결의는 한국에 대한 ‘유엔의 조치’가 아니다. 한국전쟁시 유엔참전주장은 유엔헌장과 미국패권의 모순을 은폐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다. 정전협정의 서명자는 유엔사령관이지만 당사자는 유엔이라는 주장은 명확한 오류이다. 유엔사의 정전시 위기관리권, 북 점령권, 일본기지사용권등을 들어 이것을 국제기구나 유엔의 권능과 연결시키는 것 또한 오류이다. 유엔사해체와 유엔에서의 미국헤게모니 해체가 동아시아 평화체계에 드리워진 유엔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환상을 깨는 일이다.
토론
이태호 / 참여연대 사무처장
1. 보통국가론과 군사동맹
○ 군사주의 담론으로서의 보통국가
- 일본의 보통국가론은 일본 군사주의의 외피 -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략동맹으로 인식 - 따라서 일본의 보통국가론에 대해 미국은 일면 경계, 일면 활용하는 입장 - 미국은 자국의 군사비 압박을 경감하면서도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일 동맹전환 논의를 진행해 왔고 사실상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미일동맹의 지역적 세계적 역할을 강화해 왔음
○ 자주국방론과 한미동맹 강화론
- 한미동맹에 대한 대항담론으로서 ‘자주’ 혹은 ‘종속성 완화’는 의미는 있으나 한계도 있음. - 역사적으로 자주국방론은 표면적으로는 한미간 갈등을 유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군 군비증강과 한미동맹 강화로 귀결되어 왔음. - 사실상 두 노선 모두 군사적 억지력 형성 우선담론이라는 면에서는 유사한 측면 - 본질적으로 전쟁과 냉전의 산물인 군사동맹은 한반도/동북아시아 평화협력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음
○ 한국은 과연 보통국가인가?
- 이 질문이 “미국 무기나 전력 없이 독자적인 방위산업과 군사력(현재 한미연합전력에 준하는)으로 북의 도발을 언제든지 응징할 수 있는 결심과 실행이 가능한 나라”를 의도하는 것이라면... - 결국에 그 이전까지는 불가피하게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미국의 대한반도 방위공약을 대체할 강한 군사력을 속성으로 형성하자는 결론으로 환원될 우려 - 나아가 현재 한미가 공유하고 있는 공격적인 군사전략(킬 체인, 선제공격, 작계5029 혹은 유사시 북한점령 및 안정화 계획, 능동적 억지전략...)을 바람직한 자주국방의 전략으로 수용할 가능성 - 그런데 이런 군사전략은 한반도에서 취할만한 전략인가? 북한과 일본과 중국이 모두 이런 식으로 보통국가를 지향하면 한반도와 동북아는 평화로워질 것인가?
○ 다시 한국은 과연 보통국가인가?
- 사실 보통국가라는 개념은 없음. 의도를 반영. -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지지 못해 보통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의 취지에는 동의 - 하지만 보복공격, 선제타격을 스스로 결심할 수 없어 보통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듦. - 헌법이 명시한 전수방위 조항이 사문화되었기 때문에 보통(민주)국가로 보기 힘들다거나, 혹은 상호방위의 범위를 양국의 영토로 국한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지 않고 한미동맹을 지역화 세계화하겠다고 양국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보통(민주)국가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 - 나아가 군사주의적 의도를 지닌 ‘보통국가론’ 대신 평화국가 혹은 평화지향국가를 표방하는 것은 어떨지
2.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의미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다양한 의미
- 우선 군사적 주권을 회복하고 독자적인 군사전략을 수립한다는 의미 - 그런데 한미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의과정에서는 사실상 주권도, 독자전략도 사실상 부재 - 미래 한미동맹을 지역화 세계화하고 한미 공동의 대한반도 군사전략과 작전계획을 유지/발전시키면서 다만, 한반도 방위의 역할분담을 조정하는 정도. - 전시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로부터 환수되어도 유엔사가 한반도 위기관리를 책임지고 나아가 단일전구사령부를 지휘하게 될 것이라는 이시우 발제 시사적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독자적 군사전략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이후 독자적 군사전략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없는 상태 - 다분히 우리 스스로 전쟁을 지휘할 수 있다는 정도 - 말하자면 2006년 9월 7일, 현대경제원 주최 ‘21세기 동북아 미래포럼’ 에서 벨사령관이 제기했다는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의 전제들, 즉 “한국정부의 전략적인 전쟁의 목표, 군사목적, 요망하는 전쟁 최종상태의 기준 설정, 미군이 전쟁에 투입할 미군전력의 적합한 수준 결정, 정전 및 위기관리 방법” 등에 대한 독립적이고 평화지향적인 대안이부족한 상황 - 참여연대는 전수방어에 기초한 독자적인 군사전략, 특히 군사력 사용은 방어에 한정하며, 군사력은 합리적 충분성에 기초하며, 최종상태로서 롤백(북진)을 배제할 것 등을 검토할 것을 주장해 왔음
3. 한미동맹과 한반도: 억지력 추구의 딜레마
○ 억지론의 함정
- 최종건 교수 표현대로 군사적으로 ‘억지’라는 개념은 보복능력을 포함하는 개념 - 따라서 강한 억지력은 강력한 방어(방패)와 강력한 공격력(창)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을 의미 - 킬 체인 완성 같은 절대억지의 추구는 대결상대에게는 창도 방패도 소용없는 수 있다는 위협감을 주므로 매우 공격적 메시지를 수밖에 없음. MD가 미사일 방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가장 공격적인 무기체계인 이유이기도 함. - 게다가 상대방이 유사시 점령과 안정화 계획을 군사계획에 포함시키고 매년 실전같은 훈련을 전개하고 있다면...
○ 북한 선군주의와 한미동맹식 선군주의가 빚어내는 안보딜레마
- 북한의 비대칭 전력(핵/미사일/특수부대) 추구는 재래식 전력경쟁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 -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한 완벽한 억지력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핵우산, 재래식 첨단선제공격능력, 유사시 점령능력 등 절대적인 억지력을 추구해온 과정이 도리어 한반도 동북아 군비경쟁을 부추길 수 있음. - 더구나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군사전략과 계획, 훈련 등이 북한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를 군사적으로 긴장시키는 역효과
4. 한미동맹과 동북아: 한미,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의 부메랑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실제?
- 2010년 전후까지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연결된 옵션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보장, 한미동맹의 지역적 역할 강화, 유사시 한국군은 대북 안정화작업을 담당하고 미군은 대량살상무기 접수 등으로 역할분담 등을 제시해옴.
- 그 후 연평도 교전사건, 북한의 핵실험 등이 이어지고,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회귀 전략이 구체화되면서 한국 내부의 전작권 환수 연기 여론에 편승하면서 ‘전환’을 위한 옵션들을 늘여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옵션이 MD체계 도입, 한미일 군사협력 등임.
- 자칫하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형식적인 군사주권을 받는 대신, 사실상 한미일 군사협력, 그리고 미국 주도의 대북대중국 MD체계 편입 등으로 미국 주도의 수직적 군사동맹체계에 더욱 견고히 포섭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
- 따라서 전작권 환수는 배타적인 군사동맹과 핵우산 등에 의존하는 공격적인 군사일변도의 억지전략을 수정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될 때만 미래 동북아에서 미래 한국이 진정으로 평화롭고 독립적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할 것임.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이후에도 유지되는 유엔사?
- 이 문제에 대한 이시우의 분석 탁월 - 냉전시기부터 이어지는 이 거대한 궤도를 미중 군사갈등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21세기 동아시아에서 수정하고, 냉전시대의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서는 매우 비상한 노력과 상상력이 필요.
“미국 경제위기의 또 하나의 결과는 동맹국의 비용분담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일본, 한국, 호주에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을 상대로 한 무기판매액은 2010년 15%정도 증가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점점 더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 안으로 편입되고 있다. 비용분담과 무기수출 증가에 이은 세 번째 전략은 동맹국으로 하여금 자국의 군사기지를 건설하도록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기획된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한국건설업자들이 한국정부의 돈으로 짓는 한국 군사기지이다. 그러나 동맹국 협정에 따라 미군 함정과 미군 병력은 제주기지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_ 존 페퍼,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 미국) 책임연구원, “경제위기, 전략적 기회: 미국의 군사전략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미치는 영향”, 2011년 11월 2일
5. 안보의 민주화, 한미관계의 민주화
○ 한미SOFA 개정, 주한미군 주둔경비지원 합리화
- 한국의 사법주권을 침해하고, 오염된 기지의 환경 치유의 책임을 외면하며, 미군기지에 대한 조사권한을 제약하고 있는 한미간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전면 개정하여, 한미군사관계를 보다 대등하고 호혜적이며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도록 한다.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부담을 재검토하고 특히 미군주둔경비지원금(방위비분담금)의 불법전용 저지와 통제력 강화 위한 SMA를 전면재검토한다.
○ 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군사협력 방식 개혁
- 작전통제권을 조속히 돌려받아 방어적 성격의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 작전통제권 환수 이후에는 한국군을 종속적으로 통제하는 비정상적 지휘체계인 한미연합사를 해체하여 한·미 양국군간 동등하고 호혜적이며 민주적인 군사협력이 이뤄지도록 한다.
○ 한미동맹은 한반도 내의 방어적 군사협력에 국한
- '전략동맹‘ 또는 '가치동맹‘이라는 명목 아래 한미동맹의 활동범위가 한반도 이외의 지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다. 아프가니스탄 파병부대와 청해부대를 철수시키고, 이란 경제제재와 같이 유엔 결의가 없는 국제적 경제제재 및 군사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PSI 및 MD, ’정보 및 우주 시스템 안보‘와 같은 한미 군사협력이 한반도와 다른 지역의 평화에 부정적 영향이 있는지 재평가하여 참여를 재고한다. 또한 한미동맹이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협력을 저해하지 않고, 이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공격적 작전계획 또는 ‘북한 비상사태’를 가상한 작전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이러한 계획에 기초한 연합군사훈련은 중단한다.
○ 한미군사협력과 주변국과의 다자안보협력의 균형.
- 정부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의 균형적인 선린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다자 협의체 구성을 주도하여, 역내 현안들을 상호존중적·호혜적·평화적·시민참여적으로 대화하고 해결할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한미관계는 이러한 선린외교 및 다자협력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한미군사동맹은 광범위한 한미관계의 한 부분으로서, 국방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해와 생태적 관심, 문화적 상호이해, 시민사회 교류 등 포괄적인 국가이익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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