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계획경제의 평가와 제도개혁 가능성 -양문수(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2013. 10. 17. 22:24정치, 정책/통일, 평화, 세계화

 

 

   
 

   
 

북한 계획경제의 평가와 제도개혁 가능성

양문수(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머리말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변화’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다. 정치의 영역에서든 경제의 영역에서든 북한이 변했느니 변하지 않았느니 하면서 지겨울 정도로 갑론을박해왔다. 특히 북한의 변화라는 것이 우리의 대북정책의 주요한 목표로 설정되고 나서부터 이러한 논란은 더욱 거칠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은 다분히 소모적이다. 굳이 따진다면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엇을 변화라고 볼 것인가,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만 변화인가 하는 ‘정의’와 ‘기준’의 문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혹은 변화 그 자체라기보다는 변화의 양상, 성격, 의미를 따져야만 논의가 생산적일 수 있다.

이 글은 북한 경제 시스템의 ‘변화’ 문제를 다룬다. 특히 흔히들 ‘개혁·개방’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관점에서 북한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토론의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은 초미의 관심사이다. 더욱이 새롭게 출범한 김정은 정권의 개혁·개방 문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이른바 ‘6·28 방침’ 및 관련 정책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즉 주로 경제개혁의 문제를 다루고 경제개방의 문제는 보조적으로 언급하는 선에 그치기로 한다.


Ⅱ. 북한 계획경제의 위축과 시장화의 확산

1. 계획경제의 위축․약화

사회주의권 붕괴의 여파로 북한의 제3차 7개년 계획(1987~1993)은 실패로 끝났다. 북한정부 스스로도 제3차 7개년 계획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을 정도였다. 1994~1997년은 대규모 아사와 ‘고난의 행군’으로 대변되듯 북한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던 시기로 기록되었다. 한국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실질성장률 기준)을 나타냈다. 이 기간에 북한의 GDP는 무려 30.0%나 감소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북한의 계획경제를 근저에서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경제위기로 인해 에너지를 비롯해 거의 모든 산업에서 생산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에 따라 원자재의 극심한 부족 현상이 발생했고, 원자재 공급의 불안정성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원래 중앙집권적 원자재 공급체계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물리적 토대 역할을 수행하는데 경제위기로 인해 이러한 원자재 공급체계가 사실상 파괴됨에 따라 계획경제체계 전반이 크게 동요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계획화체계의 양대 기둥인 ‘대안의 사업체계’와 ‘계획의 일원화․세부화’가 크게 약화되었다. (대안의 사업체계가 경제관리의 기본 방침을 주로 기업 관리운영체계에 구체화한 것이라면 계획의 일원화·세부화는 그 방침을 국가의 경제운영체계에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계획경제에 있어서 대안의 사업체계는 미시적 차원의 제도이고, 계획의 일원화·세부화는 거시적 차원의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여러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나 핵심적인 것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종전의 지배인 유일관리제 대신에 공장 당위원회에 의한 집단지도체제를 기업 관리운영의 중심에 둔다는 것이다. 둘째, 원자재를 위에서 책임지고 아래에 현물로 내려준다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중앙의 계획당국의 지휘 아래 성, 위원회 등에서 공장과 기업소에 대한 자재공급의 책임을 지는 체계인 것이다. 계획의 일원화는 국가계획위원회의 통일적인 지도 밑에 계획화의 유일성을 철저히 보장하는 것으로서 국가가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의 경제활동을 통일적으로 장악하고 전국가적 범위에서 생산의 물적·인적 조건을 장악할 수 있게 해준다. 계획의 세부화는 말 그대로 될 수 있는 한 세부적으로 계획화한다는 것으로서 국가계획기관이 직접 전반적 경제발전과 기업의 경영활동을 밀접히 연결시키는, 즉 중앙으로부터 지방과 기업에 이르기까지 국민경제의 부문 간, 기업 간 및 지역 간 그리고 그것들 내부 상호 간의 모든 경제활동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계획에 구체적으로 맞물리게 하는 방법이다.) 물론 ‘대안의 사업체계’의 핵심요소의 하나인 중앙집권적 자재공급체계는 ‘계획의 일원화․세부화’ 방침과 마찬가지로 이미 1990년대 이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경제위기 속에서 더욱 약화되면서 사실상 와해상태가 되었다. 사실 중앙의 계획당국이 기업에 대해 원자재공급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계획의 실행수단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도 중앙의 계획당국이 기업에 대해 계획달성을 요구한다면 계획의 실행을 위한 실질적인 권한은 기업에게 상당 정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기업활동에 대한 중앙의 장악력․통제력은 현저히 약화되고 이에 따라 ‘경제 분야에서 중앙집권적 규율을 강화하는 가장 올바른 길’인 계획의 일원화․세부화는 공허한 슬로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울러 계획화의 영역이 크게 축소되었다. 1990년대의 경제위기 당시에는 공식적인 경제체계가 거의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2000년대의 부분적인 산업생산 회복기에도 계획화를 통한 전면적인 균형은 불가능했다. 정상적으로 생산이 이루어지는 기업이 극히 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전면적인 균형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계획화는 발전, 금속, 기계, 건설 등과 같이 공식경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일부 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가계획위원회가 생산 목표를 설정하고, 생산을 위한 물자를 공급한다는 의미의 계획화 대상이 되는 기업의 범위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계획화가 이루어지는 기업이 어느 정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지방산업공장들은 계획화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중앙공업 가운데 ‘특급기업소’들은 내각경제 소속이든 당경제 및 군경제 소속이든 공식경제의 유지를 위해 핵심적인 기업으로서 계획화체계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급기업소를 제외한 1급 이하 대부분의 기업들은 생산이 이루어지는 기업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들 기업들에게 계획화는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의 계획화는 전략적인 부문을 중심으로 매우 축소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계획이 경제전체의 균형을 전혀 보장하지 못한다.

이와 함께 국가계획위원회의 기능이 유명무실화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0년대의 핵심 산업의 붕괴로 중앙집중적 물자공급체계는 사실상 기능을 멈추었으며, 2000년대의 부분적인 산업생산의 회복 이후에도 극히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기능이 회복되었다. 그것은 2000년대의 부분적인 회복 이후에도 내각경제가 관장할 수 있는 자원은 극히 제한적이며, 당경제 및 군경제 등 특권경제로부터의 자원 유입이 없이는 내각경제조차 작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각경제가 경제의 전체적인 산업순환을 관장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계획위원회가 북한 계획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없게 되었다.

계획의 수행을 위해서 필요한 자원의 상당 부문은 당경제나 군경제 등 내각경제 외부에서 조달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가계획위원회는 사실상 별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울러 계획화의 대상이 크게 줄어든 것도 국가계획위원회의 역할 축소에 한 몫을 했다. 결국 국가계획위원회는 계획화를 통하여 경제를 조정하고, 균형을 보장하는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계획을 작성하는 역할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정부차원에서의 물자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자주 계획이 변경되기도 한다. 또한, 한정된 재원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최고지도자의 결정에 따라 기존의 계획과는 다르게 우선순위가 바뀌는 상황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중앙정부 내부에서도 경제계획 준수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하다. 예를 들면,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라고 할 수 있는 ‘방침’이 결정되어 하달되면, 이와 관련된 사업은 기존에 수립된 국가의 경제계획보다 우선하여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북한에서 대규모 재원이 요구되는 경제건설사업은 정부의 자체적인 계획에 따라 추진이 된다고 하기 보다는 김정일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경제계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은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최고지도자가 되면서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화되는 모습조차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북한에서 국가차원의 경제계획은 매년 수립은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다.


2. 시장화의 확산

북한에서 시장의 형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기존에 합법적으로 존재하던 소규모 농민시장이 1990년대 경제위기 속에서 대규모 암시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국영 상업망의 기능이 떨어지고 소비품 공급부족사태가 심각해지면서, 특히 식량배급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급기야는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기간에 배급이 사실상 중단되는 등 국가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국가가 식량과 생필품을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함에 따라 개인들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이른바 ‘장사’로 불리는 상행위를 통해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표 1>에 나타난 바와 같이 개인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장 활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암시장의 창궐에 대해 북한당국이 취한 태도는 통제와 묵인의 반복이었지만 큰 흐름으로 보아서는 묵인에 가까웠다. 북한당국은 암시장을, 국가배급제의 마비로 인한 주민들의 식량 및 생필품의 심각한 부족 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식, 암시장의 확산을 대체로 묵인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1998년 김정일 시대의 공식 출범 이후 북한정부는 경제위기로 인한 내부적 혼란, 특히 암시장의 창궐에 따른 경제 사회적 질서의 동요를 수습하고 체제 및 제도 정비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내적으로는 1998년부터 커다란 정책적 기조로서 이른바 실리주의, 실리사회주의를 내세웠고, 대외적으로는 외부세계와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이하 7․1 조치)가 등장했다.

7․1 조치는 여러 내용과 의미를 담고 있는데(표2 참조) 여기에는 시장경제 메커니즘의 부분적 도입도 포함되어 있다. 즉 기존에 진행되던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를 공식제도 내에 일부 수용한 것이다. 특히 2003년 3월부터는 종합시장을 신규 도입했다. 이는 기존의 ‘농민시장’을 ‘시장’으로 명칭을 바꾸고 유통물자의 범위도 종전의 농토산물에서 탈피해 식량 및 공업제품으로 대폭 확대한 것이다. 종전의 암시장을 합법화해 주는 형태로 소비재시장을 공식 허용한 것이다. 북한정부는 이 시기부터 시장을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3. 계획과 시장의 공존

7. 1 조치 이후 북한에서 계획경제부문과 시장경제부문은 공식적으로 공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계획과 시장은 어떤 형태로 공존하고 있을까.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한데 여기서는 지면의 제약상 한 가지 대표적인 형태만 서술하기로 한다. 기업은 생산의 주체인데 <그림1>에 나타나 있듯이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요소 확보 및 생산물 처분 과정에서 계획과 시장은 공존한다. 기업은 계획 부문에서, 즉 국가재정 및 은행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수도 있고, 시장 부문에서, 즉 생산물의 시장판매를 통해 현금수입을 획득하거나 돈주(錢主) 등 개인으로부터의 대부 또는 투자를 통해 현금을 확보할 수도 있다. 기업은 또한 계획 부문에서, 즉 국가계획체계의 원자재 공급망에 의해 원자재를 조달할 수도 있고, 시장 부문에서, 즉 타 기업 또는 생산재시장을 통해 원자재를 구매하거나 임가공을 의뢰한 개인으로부터 원자재를 제공받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한 자금과 원자재를 가지고 기업은 제품을 생산하고, 그 생산물을 계획 부문에서, 즉 국가계획체계에 따라 타 기업 또는 국가 상업망에 인도할 수도 있고, 시장 부문에서, 즉 종합시장 등을 통해 생산물을 판매하거나 임가공을 의뢰한 개인에게 인도할 수도 있다. 물론 개별 기업에 따라 생산요소 확보 및 생산물 처분 과정에서 계획과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이하다. 국가적으로 중요도 및 우선순위가 높은 기업은 계획의 비중이 높을 것이고, 우선순위가 낮은 기업은 시장의 비중이 높을 것이다.


Ⅲ. ‘북한식 경제개혁’의 특징

1. 개념 정의

오늘날 북한경제는 경제개혁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개혁이라고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개혁이 아니라고 평가할 것인가. 예컨대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경험했던 경제개혁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개혁이 아니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오늘날 북한경제의 시스템 변화가 중국, 베트남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수십년전, 예컨대 경제위기 이전 1980년대의 북한경제, 이른바 고전적 사회주의 경제 시기와 비교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날 북한경제의 성격을 전통적인 계획경제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 커다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경제개혁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물론 개혁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다. 사회주의 경제 이론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코르나이(Kornai)의 정의에 따르면 개혁은 첫째, ①공식적 지배 이데올로기 또는 공산당 지배에 의한 권력구조, ②국가소유권, ③(관료적) 조정 메커니즘 등 3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 이상에 변화가 발생하고, 둘째, 그 변화는 적어도 ‘적당히 급진적’ (moderately radical)이어야 한다.

보다 단순화시키면 경제개혁은 사회주의 경제제도의 대폭적인 변경으로서 자원배분 메커니즘으로서 시장 메커니즘의 이용, 혹은 시장경제적 요소의 대폭적인 도입이 그 변경의 핵심요소이다. 따라서 경제개혁은 방향(시장지향성)과 수준(범위와 정도), 차원(공식제도)이 동시에 중요하다. 따라서 개혁은 그 포괄범위와 수준이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속성을 지닌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이 하나의 준거를 형성한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에서는 우선적으로 ‘시장’이라는 요소가 중요하다. 물론 여기에서의 시장은 ‘장소(place)’로서의 시장이 아니라 경제 내 자원배분 메커니즘, 조정 메커니즘, 시스템으로서의 시장을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북한에 있어서 시장이라는 것이 어떠한 존재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북한에서 시장은 20여 년의 역사를 보유하게 되었다. 경제위기도 장기화되고 있지만 시장화 역시 ‘장기화’되고 있다. 시장은 이제 북한경제 내에 깊숙이 편입되었으며, 시장 없는 북한경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험이 중국, 베트남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구별되는 특징이 존재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오늘날의 북한경제를 두고 ‘경제개혁’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잠정적으로 ‘북한식 경제개혁’이라고 명명하기로 한다. 그리고 북한식 경제개혁의 특징을 추출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2. ‘북한식 경제개혁’의 특징

‘북한식 경제개혁’의 특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개혁의 대내외 정치적 조건의 미성숙을 지적할 수 있다. 북한의 경제개혁은 대내외 정치적 조건의 미성숙이라는 조건하에서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의 정치적 리더십이 과거와 단절하기 어렵다는 조건과 대외관계의 미개선(특히 미국과의 관계)이라는 조건이 중요하다.

둘째, 경제개혁의 제한적 공식화·제도화이다. 즉 공식적인 제도만 놓고 본다면 경제개혁의 진전 정도는 매우 낮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의 북한경제를 ‘경제개혁’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핵심 요인이다.

북한에서 경제개혁의 제도화 수준이 매우 낮은 것은 시장 메커니즘과 관련된 분야에서도 발견되지만 소유권과 관련된 분야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시장화, 분권화가 크게 진전되어 있으며, 사실상의 사유화도 상당 정도 진전되어 있다. 따라서 공식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매우 큰 것이 ‘북한식 경제개혁’의 큰 특징이다. 더욱이 7.1 조치로 양자간 갭을 어느 정도 메워주었으나 이후 그 괴리의 폭은 다시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셋째, 경제개혁의 점진성 및 지그재그성이다. 경제개혁은 공식제도의 영역에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지그재그형 혹은 갈 지(之)자 형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는 개혁에 대한 경제적 압력과 정치적 부담간의 관계(타협 혹은 충돌)가 주된 요인이다. 다만 큰 흐름으로 보아서 경제개혁은 서서히 진전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북한식 경제개혁’의 특징을 시장화의 관점에서 재정리할 수도 있다.
첫째, 계획경제의 물적·기능적 토대의 와해이다. 북한에서 시장이 싹트고 발전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계획경제의 사실상의 붕괴이다. 계획의 공백을 자연스럽게 시장이 메워갔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국내 자원 고갈 등으로 계획경제의 물적 토대가, 게다가 시스템도 무너졌기 때문에 현재의 조건하에서는 계획경제를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시장화가 진전됨에 따라 계획경제의 물적 기반은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북한에서의 시장화는 개인·기관·기업의 국가자산 절취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는 각급 기관·기업소, 그리고 지방에 대해 자력갱생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주민들의 생계에 대한 책임을 기관·기업소, 그리고 지방에 전가하고 있다. 원자재와 자금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더라도 각급 조직들이 자체적으로 종업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라는 것이며, 시장경제적 방식에 의해 생존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국가는 이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중앙정부는 무조건적으로 자력갱생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당, 군, 내각의 기관에 대해서든 지방과 공장·농장에 대해서든 대외무역에 대한 접근성을 대폭 확대해주는 식으로 새로운 여건을 조성해 주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각급 경제주체들에 대해 대외무역이라는 공간을 열어주는 한편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식으로 체계를 재편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북한에서 시장의 발달은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생산보다는 유통의 발달, 특히 무역의 발달에 기인한다. 즉, 북한에서 시장의 발달은 뚜렷한 생산력 증대를 수반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북한에서 소비재 시장의 발달은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농촌에서의 시장 발달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 이는 결국 북한의 시장화가 대외의존도 심화를 수반한다는 특성을 낳았다.
넷째, 시장에 대한 국가의 의존도는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또한 시장화의 수혜자는 일반 주민에서 권력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시장세력이라 하여 권력층이 시장의 최대 수혜자로 대두되고 있다.

다섯째, 국가에 의한 과도한 수탈이다. 북한에서는 시장경제에서 발생한 잉여가 국가에 의해 과도하게 수탈당하고 있다. 사용료, 납부금이라 이름붙인 사실상의 조세뿐만 아니라 가계의 세외부담, ‘보호세(protection rackets)’ 명목의 뇌물 징수, 개인 재산의 ‘합법적 몰수’등 준조세의 부담도 결코 가볍지 않다. 시장경제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창출한 경제적 잉여의 상당부분을 국가 및 계획경제에게 수탈당함으로써 스스로를 확대할 여력을 상실하게 된다.

여섯째, 시장화의 진전에 따라 국가자산은 축소되고 개인자산은 확대되고 있다. 즉 공적 경제 영역이 축소되는 반면 사적 경제 영역은 확대되고 있다. 북한정부 스스로 고백했듯이 “국가에는 돈이 없고, 개인에게는 돈이 넘쳐 나는” 상황이다.

일곱째, 시장화의 장기화 및 안정화이다. 이제 북한경제 운영에서 시장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 시장은 이제 어느 정도 시스템으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느덧 북한정부는 시장에 대한 통제 능력을 상당 정도 상실한 상태이다. 이는 2007-2009년의 시장 억제 조치가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경험이 잘 말해주고 있다.

   

Ⅳ. 김정은 시대의 경제개혁

1. 6.28 방침

한국 내에서는 6.28 방침이라 불리우고, 북한 내에서는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로 불리다가 언제부터인지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표현이 바뀐 새로운 경제관리개선 조치의 도입은 순조롭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28 방침은 애초 북한정부가 지난해 6월 28일,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내부적으로 공표한 방침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이 방침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방침인지, 계획인지, 조치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 실체의 존재 여부를 놓고도 국내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6·28 방침의 본격 시행은 계속 미루어져 왔으며, 이에 따라 몇 차례 시범운영 하다가 흐지부지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시험운영, 시범운영의 소식은 꾸준히 들려왔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북한정부 스스로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또한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경제개혁적 조치들을 외부세계에 알리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지난 5월 15일 ‘<우리 식의 경제관리방법> 연구완성을’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식의 경제관리방법>을 연구 완성하는 사업도 적극 추진되고 있다”며 “이 사업은 김정은 원수님의 관심 속에 나라의 경제사령부인 내각이 생산현장과의 긴밀한 연계, 철저한 협의에 기초하여 밀고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신보는 “조선(북한) 국내에서는 작년부터 일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이 내각의 지도밑에 독자적으로, 창발적으로 경영관리를 하는 새로운 조치들이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며 “생산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조치들이 근로자들의 노동의욕을 돋구고 증산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내각 사무국의 김기철 부부장과 국가계획위원회 리영민 부국장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작년에 국가계획을 달성한 일부 농장들이 현물분배를 실시했고 공장, 기업소에 독자적인 판매권과 무역권이 부여됐으며 이러한 내용은 현장 근로자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또한 김정은 제1 위원장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내각에서는 연구기관들, 경제부문들과 함께 여러차례 국가적인 협의회도 하고 토론회도 하면서 경제관리개선을 위한 방법을 연구해 왔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협의회, 토론회에서 나온 <좋은 안>들은 일부 생산단위들에 시험 도입하고 성과를 확인한 뒤 전국적으로 일반화하게 된다”며 “지금 내각에서는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수시로 료해(파악)하고 필요한 대책들을 강구하는 사업들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조선신보는 이러한 시도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김 부부장과 리 부국장은 “김정은 원수님께서 작년과 올해 여러 차례에 걸쳐 나라의 경제관리방법을 해결할 데 대해 말씀을 주시고 일군들과 학자들에게 과업을 주셨다”고 밝혔다.

조선신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 2012년 4월 6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의 담화에서 경제사업에서 사회주의원칙을 고수하며 생산과 건설의 담당자인 근로자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여 생산을 최대한 늘릴 데 대해 지적했다고 밝혔다. 조선신보는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3년 신년사에서 이러한 원칙에서 경제관리방법을 끊임없이 개선완성해 나가며, 여러 단위에서 창조된 좋은 경험들을 널리 일반화할 데 대하여 강조했음을 상기시켰다. 조선신보는 아울러 “핵무력-경제 병진 노선이 제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2013년 3월 전원회의 보고에서도 <우리 식의 경제관리방법>의 연구완성은 중요과업으로서 언급되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조선신보는 이러한 시도는 김정일 위원장의 뜻을 구현하는 것이기도 하며,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히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우리 식의 경제관리방법>을 연구완성하는 것은 김정일 장군님의 뜻을 구현하는 사업이다”며 “조선(북한)에서는 2002년 이후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며 최대의 실리를 실현하는 방향에서 경제관리를 개선하는 사업들이 추진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AP통신은 6월 1일, 북한이 지난 4월 1일 생산 촉진을 위해 협동농장과 공장·기업소의 관리자들에게 재량권을 부여하는 새 조치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협동농장에서는 작업단위가 더 작은 규모로 조직되고 각 단위가 담당 농지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게 되어 모든 수확분을 국가에 바쳐야 했던 과거와 달리 각 단위가 잉여 농산물을 보관·판매하거나 다른 물품과 교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함경남도 함흥시 동봉협동농장 관리위원회의 김종진 부위원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로) 생산 열의가 고취되고 생산한 양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몫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공장·기업소의 경우 과거에는 국가가 표준 임금을 결정해 일정액 이상을 근로자들에게 임금으로 지급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경제조치로 임금 통제가 완화돼 기업소들이 수익 일부로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의 리기성 교수는 “개별 근로자들이 많이 일할수록 많이 벌 수 있게 됐다”며 “이 같은 방침이 4월 1일 결정됐으며 일정 기간의 시범운영을 거쳐 실행에 옮겨졌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새로운 경제조치는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7·1조치보다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2004년에 일부 공장․기업소, 협동농장에서 시범 운영되었던 조치보다 경제개혁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범 운영의 성과는 명확하지 않다. 북한 내각 사무국의 김기철 부부장과 국가계획위원회 리영민 부국장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초보적으로 연구한 내용들이 일부 농장, 공장에서 적용단계에 들어섰는데 좋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연구들이 “일정한 성과가 나오면 널리 선전할 수 있지만 좀 더 상황을 보아야 할 것”이라며 유보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들이 제대로 성과를 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배급제, 가격 및 임금 체계, 재정금융 등 경제 전반의 운영 체계 재편이 불가결하다. 북한정부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김 부부장과 리 부국장이 인터뷰에서 새로운 경제관리 조치가 일부 취해지고 있지만 “생산계획, 가격조정, 화폐유통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거기에 맞게 법, 규칙 등을 전반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밝힌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새로운 경제조치들의 진행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밝힌 올해 5월 15일자 조선신보 기사 제목이 ‘<우리 식의 경제관리방법> 연구완성을’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나, 김 부부장과 리 부국장이 인터뷰에서 “아직 대부분이 연구단계에 있다”고 강조한 것들은 매우 시사적이다.

북한정부 입장에서 보면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7.1 조치와 마찬가지로 이미 어쩔 수 없게 된 현실을 사후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해 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조치는 현실과 공식 제도의 갭을 어느 정도 메워주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즉 시장과 관련된 제반 불법적 또는 반(半)합법적 활동의 상당 부분을 합법화하고 이를 통해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2.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의 병행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로서는 새로운 경제개혁 조치들이 성과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외관계의 개선, 대외개방의 확대 및 이에 따른 외부로부터의 자원유입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 지도부는 7·1 조치의 교훈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7·1 조치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당초 북한 지도부의 구상, 즉 대외관계 개선을 통한 외부자원 유입 구상이 실현되지 못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실제로 북한은 7·1 조치 직후 몇 달간 일련의 대외개방조치를 취했다. 7·1 조치 2개월 후인 2002년 9월에는 신의주 특별행정구 설치를 발표했고, 나아가 11월에는 「금강산관광지구법」및 「개성공업지구법」을 공표해 이들 지역을 특구로 지정했다. 또한 이 해 9월에는 북일정상회담을 개최했고, 이어 10월에는 미국의 켈리 특사를 북한으로 초청했다.

북한정부도 7·1 조치 성공의 최대 관건은 공급능력의 확충이고, 따라서 무엇보다도 외부로부터의 자원 유입이 중요하다는 것은 사전에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대외개방조치 및 대외관계 개선 노력이 의외의 복병을 만나 제대로 성사되지 못함으로써 7·1 조치의 앞길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신의주 특별행정구 장관으로 임명된 양빈이 중국 정부에 의해 체포되면서 신의주 특별행정구 설치는 좌초되었고, 북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의혹 문제가 불거지면서 북일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고, 2차 핵위기 발발로 북미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한편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북한의 대외개방 확대 노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나선-황금평 경제특구 개발과 경제개발구 사업이다. 북중 양국은 지난 2011년 6월 나선 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ㆍ위화도 경제지대의 착공식을 개최했다. 북한은 이어 같은 해 11월, 나선 경제무역지대무역법을 신규 제정에 가까운 수준으로 대폭 개정하고 황금평ㆍ위화도 경제지대법을 제정했다. 이 두 가지 법은 종전의 법들에 비해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제도적 보장 장치를 대폭 강화했으며, 특히 9년 전에 제정된 개성공업지구법보다 개혁· 개방성의 면에서 진전된 요소가 꽤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현재 두 지역 모두 북중 공동관리위원회가 조직되어 사업을 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조금 진척이 있는 곳은 나선 경제특구 쪽이다. 특히 나진항의 개발· 활용에는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매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2012년에는 중국의 훈춘과 북한의 나진을 연결하는 도로가 확장 개통되었고, 올해 9월 22일에는 러시아 하산과 북한의 나진을 연결하는 철도가 개보수 공사를 끝내고 개통되었다.

또한 북한은 올해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개발구 창설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올해 5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경제개발구법을 채택,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6월 5일, “국가가 특별히 정한 법규에 따라 경제활동에 특혜가 보장되는 특수경제지대”로서 “다른 나라의 법인, 개인과 경제조직, 해외동포는 경제개발구에 투자할 수 있으며 기업, 지사, 사무소 같은 것을 설립하고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국가는 투자가에게 토지 이용, 노력 채용, 세금 납부 같은 분야에서 특혜적인 경제활동 조건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경제개발구에는 공업개발구, 농업개발구, 관광개발구, 수출가공구, 첨단기술개발구 같은 경제 및 과학기술 분야의 개발구들이 속한다”고 밝혀 분야별로 특화된 경제개발구들이 세워질 것임을 예고했다. 다만 이 법은 나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 위화도 경제지대,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국제관광특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조선중앙통신은 “국가는 경제개발구를 관리 소속에 따라 지방급 경제개발구와 중앙급 경제개발구로 구분하여 관리하도록 한다”며 지방 각지에 경제개발구들이 건설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올해 3월에 열린 중앙당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은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공식화하면서 ‘인민생활에 이바지할 중요 대상’으로 경제특구와 더불어 관광특구 사업 활성화를 제시했다. 북한은 백두산, 칠보산, 원산, 금강산, 개성 관광특구에 하나를 더해 총 6개 관광특구를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고, 우선적으로 ‘원산-금강산관광지구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산-금강산관광지구를 현재 건설 중인 마식령 스키장에 연계하여 국제적인 관광단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Ⅴ. 맺음말

북한의 이른바 ‘변화’, 그리고 개혁·개방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변화가 근본적인 것이냐, 아니냐 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현재의 여건 하에서 새로운 지도부가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근본적이냐, 아니냐 라는 기준만 가지고 현상을 보면 북한의 현주소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다. 7.1 조치의 경우, ‘실패’라는 평가가 압도적인데 그러한 측면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시장이 ‘정착’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고, 주민들의 생존문제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2009년 말 화폐개혁 당시의 경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민들 상당수는 약간의 현금자산조차 보유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만 놓고 보면 ‘종전과 별로 다를 것 없다’ 내지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실의 추인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예컨대 개혁개방이라는 것은 빅뱅적 접근이 아닌 한,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되는, 때로는 장기간에 걸친 과정, 흐름이다. 7.1 조치가 실시된 지 이미 11년이 경과했고, 그 사이에 현실과 공식제도의 갭은 크게 벌어졌다. 따라서 그 갭을 메우는 형태로의 ‘현실의 추인’이라고 해도 이는 분명 종전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앞에서 잠정적으로 ‘북한식 경제개혁’이라고 규정했던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또한 경제주체의 동일한 행위라고 해도 이것이 합법이냐, 불법이냐 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예컨대 기업경영에서의 시장가격 적용, 나아가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가 불법인 경우과 합법인 경우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업 자신, 여타 경제주체, 나아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상이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책적 조치들은 아직도 구상 및 실험 단계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국내에 입수된 정보의 양이 적다는 사실만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조치들의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아직도 논리적, 현실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개별 경제주체의 자율성 및 인센티브 확대와 같은 미시적 차원의 사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정 문제, 배급제 문제, 국정가격 문제, 임금 문제, 금융개혁 문제 등 거시적 차원의 핵심 이슈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인 제도 개편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의 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 그 때문에 북한정부는 본격적인 시행 여부에 대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울러 전통적으로 개혁개방이 가지는 몇 가지 얼굴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른바 인민생활 향상 효과, 둘째, ‘비사회주의 현상’ 확산, 황색바람 유입, 체제불안 요인 증대, 셋째, 기득권층의 기득권 위협이다. 상기의 요인들에 대해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도 중요한 변수이다.

북한이 현재 개혁·개방과 관련해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의 범위와 심도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는 충분히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의 범위와 심도를 결정하는 변수는 북한지도부의 의지라는 내적 변수도 있지만 한국,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의 대북정책이라는 외적 변수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