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 왜 국민이 행복하다고 하나

2013. 10. 27. 20:43세계와 여행이야기/부탄 이야기

부탄서 “가장 행복한가” 물어보니
“GDP 높으면 행복한가…”

등록 : 2013.06.21 19:40 수정 : 2013.06.23 21:11

 
언덕에서 내려다본 부탄의 수도 팀푸 전경. 12만명이 밀집한 이 도시는 긴 협곡을 따라 형성됐다. 집들은 길게 띠처럼 이어지다가 막히면 위로 올라간다.

[토요판/르포] 국내언론 최초 부탄 ‘국민총행복 정책’ 현장취재

▶ 신비와 은둔의 아주 작은 나라, 히말라야의 샹그릴라(이상향)로 불린 나라. 부탄이 지속가능한 국가발전 모델의 큰 실험에 나섰습니다. ‘나라는 부유해졌는데 사람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21세기 가장 어려운 질문에 도전한 거지요. 그들이 국정의 최고 지표로 삼은 건 성장(GDP)이 아니라 행복(GNH). 국왕은 스스로 왕권을 내려놓고 민주정부를 세웠습니다. 부탄은 행복과 민주주의, 그리고 가난의 탈출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까요? 한국 언론 최초로 부탄 국민총행복 정책의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고봉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는 파로공항에 착륙했다
인구는 70만명에 못 미치고
1인당 국민소득 2121달러,
티베트 자치구와 인도에 끼인
초미니 국가 부탄을 만났다

한국·중국·베트남 등은
국민총생산(GDP) 중심 성장모델
99%의 불행이라는 빚 후세에 남겨
GDP를 GNH(국민총행복)로 대체한
부탄의 새로운 발전모델은 지금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항공기가 활주로로 바싹 다가가자, 창밖의 깎아지른 준봉들이 한꺼번에 내리덮칠 듯 아찔해진다. 순간적으로 ‘앗!’ 비명이 새어나왔다.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우리 부탄 조종사들은 세계 최고입니다. 고도의 훈련을 받았어요. 다른 나라 조종사들은 우리 공항에 들어올 엄두를 못 내요.” 다음날 침미 펨 부탄관광청 국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의구심은 풀렸다. 부탄에서 유일한 파로(Paro)국제공항의 해발고도는 2225m. 짧은 활주로에 바싹 붙어 솟은 히말라야 봉우리들은 두배 이상 치솟은 5000m에 육박한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공항을 낼 수가 없다. 주위의 산맥 덩어리를 파로의 활주로와 평평할 때까지 다 쳐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탄으로서는, 극한적인 조종사 훈련으로 불안한 지형을 극복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왕립도서관 벽에 걸린 왕추크 왕가의 사진. 맨 뒷줄 가운데 두 남자가 4대 국왕(오른쪽)과 5대 국왕이다. 부탄은 관공서나 식당, 가게 어디를 가도 역대 국왕 또는 5대 국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당신들이 가장 행복한가?” 물었더니…

부탄의 국영 드루크항공은 2004년 100명 이상 태울 수 있는 항공기 2대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주도면밀한 안전성 테스트를 거쳐 118인승 에어버스 A319 기종으로 결정했다. 늘어나는 관광객을 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전까지는 80~90인승 낡은 항공기를 운항했다. 부탄의 관광산업은 청정 산록에 굴뚝 연기를 뿜지 않으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보물단지이다. 네팔 카트만두와 인도 콜카타(캘커타)에서 파로를 연결하는 노선은 대자연이 제공하는 멋진 경치로 이미 유명세를 탔다. 아슬아슬한 히말라야의 공중쇼를 펼친다.

부탄은 인구 70만에 못 미치고, 2011년의 1인당 국민소득이 2121달러(구매력평가기준 6112달러)에 불과한 미니 국가이다. 초강대국 중국의 티베트자치구와 북쪽 국경을 맞대고, 나머지 삼면은 또다른 거대 국가 인도로 둘러싸여 있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 5분의 1쯤, 그나마 무수한 봉우리들이 바닥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7000m급 고봉만도 15개이다. 12만명이 밀집한 수도 팀푸(Thimphu) 또한 긴 협곡을 따라 도시가 형성됐다. 집들은 길게 띠처럼 이어지다가 막히면 위로 올라간다. 지세는 척박하고 주변 정세는 위태롭다.

파로공항에서 수도 팀푸까지 50㎞, 자동차로 족히 1시간이 걸린다. 부탄에서 시속 50㎞로 길게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도로이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부탄 도로의 평균 시속은 25㎞ 안팎. 굽이굽이 끝없는 산길이고, 겨울 한철 지나면 눈 녹은 도로 곳곳이 파인다. 부탄의 느린 삶은 선택이 아니라 자연이 내린 숙명이다. 팀푸는 교통신호등이 없는 세계 유일의 수도이기도 하다. 자동차가 3만대를 넘었는데도 교통경찰의 절도있는 손신호로 차량을 통제한다.

17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푸나카 종(Dzong) 근처의 작은 식당. 일본 할머니 안도 요시코(68)를 만났다. 푸나카 종은 왕의 대관식과 결혼식을 치르는 세계적인 관광명소이다. 지역마다 세워진 종은 정부기관과 사원이 동시에 들어서 있는 부탄의 전통 성곽이다. “8살 때 부탄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어요. 그때부터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으로 여행 떠나는 소망을 품었지요. 60년 만에 꿈을 이뤘어요.” 마흔한살의 젊은 친구 마쓰다 와카코가 요시코 할머니의 행복한 동행이었다. 두 사람은 “특별함이 있겠나. 여기 사람들이 그냥 느긋하고 편안한 게 참 좋다”고 말했다. 건너 테이블의 미국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부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죽기 전에 꼭 찾아와봐야 할 곳”이라고 응수했다. 500년 역사의 근처 사원에서는 어린 승려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불교 경전을 소리내어 외고 있었다. 쏟아지는 햇살과 어우러져 더없이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부탄 사람들은 ‘당신들이 가장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거리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행복’을 단박에 느끼기는 어려웠다. “우리 부탄 사람이 가장 행복한가? 아마 그거는 아니겠지요. 가난한 나라이고, 기본적인 생활물자도 많이 부족해요.” 카르마 치팀 국민총행복위원회(GNHC, Gross National Happiness Commission) 장관은 “중요한 것은 우리 부탄 사람들이 행복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지수를 개발해 국민총행복(GNH)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성장을 많이 해도 사람들이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 정책은 실패한 거잖아요. 우리는 지디피(GDP)라는 불완전한 잣대를 지엔에이치로 대체하는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20일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브뤼셀의 벨기에예술센터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유엔이 정한 ‘제1회 세계 행복의 날’ 기념식이었다. 유엔과 행사를 공동주최한 소남 총 부탄 대사가 부탄의 행복정책을 소개하자, 자리를 꽉 채운 500명의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성장과 행복의 균형을 이루려는 작은 나라의 도전에 찬사를 보냈다.

5대 국왕 남기엘 왕추크가 먼저 입헌군주제 도입

2차 대전 이후 지디피 총량을 확충해 가난 탈출에 성공한 성공모델은 있었다. 독재정부의 힘으로 근대화를 일으킨 한국의 불균등 성장 전략이 대표적이다. 중국과 베트남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지디피 중심의 성장모델은 하나같이 99%의 불행이라는 빚을 후세에게 남겼다. 또 어떤 선진국도 행복지수를 국정 전반의 목표로 삼아 실천에 옮긴 나라는 없었다. 행복한 가난 탈출이라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전하는 부탄의 발전모델이 선진국과 후진국을 망라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부탄의 행복정책은 1972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가 성장(GDP)이 아니라 행복(GNH)을 국가발전의 잣대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부탄의 행복정책이 제대로 꽃을 피우기까지는 30년이 더 걸렸다. 2008년에 들어선 부탄의 첫 민주정부가 국민총행복을 국정의 핵심 틀로 채택하고,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의 실천에 들어갔다. 부탄의 4대 국왕은 1998년 총리에게 국정 권한을 위임한 데 이어 2006년에 아들에게 왕위를 이양했으며, 5대 국왕 지그메 남기엘 왕추크는 2년 뒤인 2008년 스스로 왕권을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했다. 그해 제정한 부탄 헌법에서 “국가는 국민총행복 정책을 추진하는 여건을 마련하고”(9조) “모든 개발행위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총행복의 증진에 있다”(11조2항)고 천명했다. 미래에도 행복정책의 안정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헌법에 대못을 박아놓았다.

2008년 당시 정부는 세가지 중요한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국민총행복을 집행하는 위원회(GNHC) 조직을 세우고, 국민총행복 지수라는 부탄의 고유모델을 개발했으며,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국민총행복위원회를 관장하는 카르마 치팀 장관은 “행복정책을 펴는 나라가 없지는 않지만, 경제의 일부 분야 또는 의료나 자연보호에 국한돼 있다. 우리는 모든 정책에 대해 행복 증진이라는 잣대를 적용해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각 부처 장관이 모두 참석하는 위원회의 권한은 막강하다. 각 부처에서 입안하고 집행하는 모든 국가 정책은 반드시 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예산배분권도 행사한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위원회는 박정희 시대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이끈 경제기획원을 연상시킨다. 부탄의 국가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또 우리의 한국개발연구원(KDI) 격인 부탄연구센터(CBS, Center for Bhutan Studies and GNH)에서는 2년마다 광범위한 설문조사로 정책을 뒷받침한다. 연구센터의 다쇼 카르마 우라 소장은 “2008년과 2010년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문조사를 하는 데 10개월이 걸렸다. 60여명의 조사원이 일일이 산골마을을 찾아갔다. 8500명의 충분한 샘플을 확보해 9개 영역, 33개 세부지표를 나눠 조사를 벌였다. 세부 조사항목 등은 계속 수정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행복정책의 실험을 작은 나라 부탄이 이끌고 있다. 세계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부탄의 행복정책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다. 특히 지디피의 지속가능한 발전 대안을 찾는 세계의 연구자들에게 부탄은 보물단지”라고 말했다. 충남발전연구원은 부탄 사례를 충남도 행복정책 도입의 벤치마킹 모델로 삼고 있다.

서부 부탄의 하 마을 주민들이 전통 방식으로 어울려 집을 짓는 모습. 긴 절구 같은 나무막대기로 진흙을 한칸씩 다져 올리는데, 완성까지 서너달이 걸린다. 공동체의 활력은 국민총행복을 측정하는 9개 영역 중 하나이다.

관광객한테 하루 200~250달러 받는 이유

부탄에는 공장이 거의 없다. 건축자재는 인도에서, 음료수는 타이에서 수입한다. 농축산업(2008년 지디피의 20%)을 제외하고는 수력(20%), 관광(2%), 광업(2%)이 주요 산업이다. 국민총행복의 철학과 가치는 여러 산업의 집행에도 속속들이 스며든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부탄은 직접적으로 관광객 수를 통제하지는 않는다.

“부탄 여행은 자유롭습니다. 누구라도 비용만 내면 됩니다. 2012년 관광객이 10만5천명인데, 2018년까지 2배로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침미 펨 관광청 국장의 말이다. 부탄은 ‘하이 밸류, 로 임팩트’ 전략으로 영리하게 관광객 수를 관리한다. 고급·고가 정책으로 관광객 홍수를 자연스럽게 제어하는 것이다. 부탄 관광객은 여름과 겨울의 비수기에 하루 200달러, 성수기에는 하루 250달러의 패키지 여행비를 입국 전에 미리 내야 한다. 3성급 호텔과 식사, 교통, 관광, 가이드 비용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우리 관광산업은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있습니다. 굴뚝 연기도 내뿜지 않잖아요. 행복과 성장의 균형을 이룬 성공사례인 셈이죠.” 침미 펨 국장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재원이 바로 관광산업에서 나온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관광객이 내는 여행비 중 정부 로열티로 들어가는 하루 65달러가 그 재원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부탄의 가장 중요한 관광자원은 불교사원과 히말라야 트레킹이다. 최근에는 부탄의 국민총행복 정책 자체가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부탄의 산업자원부는 1년이 넘도록 신규 광산 개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국민총행복위원회의 정책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1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26개 지표를 놓고 각각 1~4점까지 점수를 매깁니다. 산업자원부는 광산 개발의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비판 논리를 폈죠. 땅속에 묻힌 자원은 미래 세대의 것이니까요. 최소한 국민총행복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 중립적 점수인 총점 78점을 받아야 하는데, 그에 못 미쳤습니다.”(카르마 치팀 장관) 산업자원부는 위원회 재상정을 위해 환경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산림의 벌목에도 제동이 걸렸다. 1957년 이후 부탄의 벌목정책은 오락가락했다. 부탄은 이미 숲 면적을 영구히 전체 국토의 60%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제정했다. 지금 부탄의 숲 면적은 72%이다. 2007년에는 벌목을 할 경우 그 이상의 식재를 해야 한다고 국가환경보호법에 명시했다. 산악지형을 이용한 수력은 인도로 수출하는 부탄 최고의 효자상품이다. 하지만 부탄에서 큰 댐은 눈에 띄지 않는다. 수력발전 건설이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국민총행복위원회의 엄격한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부탄 하면 흔히 무릎까지 내려오는 남자들의 ‘원피스 전통옷’을 떠올린다. 사원과 관청, 학교에서는 반드시 남녀 전통옷인 ‘고’와 ‘키라’를 입어야 한다. 전통옷은 거리에서도 가장 흔한 복장이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키라’에 하이힐을 신은 신세대 패션이 퍼져나가고 있다. 건물의 창문과 지붕 등도 전통양식으로 짓도록 법으로 규제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오리엔탈투어의 스리자나 구룽 대표는 “행복정책에서 전통문화 보존은 아주 중요하다. 전통옷과 전통건축이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팀푸 거리를 활보하는 부탄의 신세대들. 팀푸에선 나이트클럽 5곳이 밤늦게까지 영업한다.

부탄의 민주주의 실험 또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부탄의 민주주의와 국민총행복은 쌍생아이다. 민주국가 부탄을 지탱하는 핵심 정책이 국민총행복이다. 부탄에서는 2008년에 이어 사상 두번째 총선이 올해 치러지고 있다. 4월23일 25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했고, 5월31일에는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예비선거가 있었다. 4개 정당 중에서 득표수가 많은 2개 정당이 7월의 본선거에서 맞붙는다. 지금은 47개 하원 의석 중 집권당인 부탄평화번영당(DPT)이 45석을 독점하고 있다. 7월 선거에서는 야당 의석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중도좌파를 표방하며 여성 대표를 내세운 2개의 신생 정당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오랜 왕국의 나라, 부탄이 과연 민주주의를 안착시킬 수 있을까? 부탄의 선거를 보도한 세계의 여러 언론들은 ‘민주주의 정착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공통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나라는 작지만, 다민족 사회이고 2주일씩 걸어가야 하는 산골이 허다하다. 4월 선거에서는 헬기가 뜨고 내리지 못해 세차례나 투표용지를 공급하는 데 실패한 마을도 있었다. 11개 언어의 혼용으로 투표용지에 표기된 종카어(국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탄 사람들은 “민주주의는 아직 멀다. 민주주의 도입 5년이 지난 지금도 90% 이상이 여전히 왕정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카르마 치팀 장관도 “2008년 민주주의를 처음 도입할 때는 99%의 국민이 민주주의를 원치 않았다. 민주주의를 서서히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왕이 권력을 내려놓았다 하나, 여전히 절대적 권위를 누리는 존재이다. 국군통수권을 쥐고 있으며, 국가의 토지를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권한도 왕이 행사한다. 국왕이 호출하면 장관과 고위관리들은 만사 제치고 달려간다. 기존의 2개 정당도 왕과 가까운 사람들이 지배한다.

팀푸는 신호등이 없는 세계 유일의 수도이다. 관광객들은 절도있는 교통경찰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다.
“집부자 많이 생겨난다” 우려도

국민총행복의 여러 지표 평가에서도 민주적 관리(굿 거버넌스)가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시민들의 정치 참여 경험이 없고 시민사회의 형성이 부진한 탓이 크다. 낮은 교육수준 또한 민주주의와 국민총행복의 발목을 잡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 50%에 이르니 사회적 가치의 민주적 공유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탄에서는 대학 졸업자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차별적인 규제도 용인된다.

2011년에는 부탄 여성의 70%가 ‘남편이 아내를 때릴 권리가 있다’고 응답했다는 통계청의 공식 조사 결과가 발표돼 국제적 망신을 사기도 했다. 국민총행복과 민주주의를 새로운 국가 브랜드로 내걸었지만, 단기간에 봉건적 유습을 떨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9%에 이르는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현실적인 불안요인이다. 국민총행복위원회는 지금의 성장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킨리 도르지 팀푸 시장 또한 “지금 너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데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팀푸 시민들은 더 빨리 성장하자고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건축이 너무 많았어요. 다들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지었는데, 세입자가 채워지지 않으면 큰 위기가 일어날 겁니다. 더욱이 건축자재는 모두 인도 루피화로 수입해요. 이제 건축 허가를 줄여가고 있습니다.” 팀푸의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전형적인 도시문제도 속출하고 있다. 마구 버리는 쓰레기가 쌓이고 있고, 도시의 주차난도 심각해지고 있다.

부탄의 민주주의가 더디게 전진하고 있다. 시골마을 벽보판에 붙은 4·23 상원의원 선거의 투표 독려 포스터. 영어와 종카어, 2개 언어로 제작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팀푸 시민은 빈부격차 심화를 우려했다. “우리 월급이 300달러인데, 방 2개짜리 집세가 200달러나 합니다. 친척이나 고향사람 여럿이 집 하나를 빌려 같이 살아야 해요. 그런데 빌딩을 여러채 가진 집부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1억원짜리 외제 자동차를 타는 사람도 있어요.” 그는 “이제 부자들의 욕구가 분출하고 있어 10년 뒤면 빈부격차가 극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위성티브이 보급과 유학파의 증가로 신세대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팀푸 시내에 5개로 늘어난 나이트클럽은 부유층 자녀들의 사교장이 되고 있다.

영국의 해외개발연구소(ODI)는 2011년의 짤막한 보고서에서, 부탄의 도전이 성공하려면 농촌지역 공동체의 참여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광사업의 수혜가 도시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보전 때문에 야생동물을 잡지 못해 농사를 망치게 된 시골사람들은 오히려 행복정책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지난해 말 부탄 최대 신문인 <쿠엔셀>은 부탄에서 가장 좋은 직업인 공무원이 너무 많다는 매킨지의 컨설팅 결과를 보도했던 적이 있다. 절반가량의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건축 허가 내는 데 드는 비용이 1인당 국민소득의 150%에 이른다고 비판했다. 스리랑카에서의 건축 허가 비용은 국민소득의 7%에 불과하다.

그래도 국민총행복과 민주주의를 향한 부탄의 도전이 과거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더디지만 행복과 부를 함께 추구하는 선순환의 기운을 탔다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무엇보다 행복정책은 세계적인 자연환경과 신비의 불교문화자산을 보유한 부탄의 현실과 딱 부합하는 국가경영전략이다. 국민총행복이 국가브랜드와 관광산업 등의 경쟁력을 배가하는 순기능을 한다. 공장이 없으니 엄격한 환경규제의 경제적 반작용도 크지 않다. 부탄의 경제 또한 수년째 평균 8%대의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지식인들의 주목

왕권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도입한 국왕의 절대적 권위가 부탄 모델의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힘으로 작용한다. 정치안정은 행복정책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게다가 불교라는 강력한 정신적 공동체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 여행 가이드인 가 추는 “국왕은 정부청사 맞은편의 작은 집에 살고, 개인재산도 없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다. 여느 개발도상국과 달리 공무원 사회도 대체로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탄은 일찌감치 영어로 학교교육을 했다. 그래서 교육받은 세대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부탄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또하나의 사회적 자산이다. 전반적인 교육 환경도 급속하게 개선되고 있다. 높은 문맹률은 성인 세대의 문제일 뿐이다. 지금 아이들은 거의 100% 학교교육을 받고 있다. 10학년까지 전국민 무상교육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공부를 조금만 잘하면 대학까지 무상으로 다닌다. 수력이 풍부한 덕에 전기보급률과 위성티브이 보급률도 100%에 육박한다.

부탄 모델을 높이 평가하는 국제적 환경도 조성되고 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안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세계의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작은 나라의 도전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은 “부탄은 싹수가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팀푸·파로·푸나카/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국민총행복 지수 실험

33가지 세부항목 설정

‘2분 명상’등 실천 유도

부탄의 국민총행복 정책을 이끌고 있는 카르마 치팀 장관. 그는 “국가발전의 목표는 행복 증진의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탄은 2008년에 집대성된 국민총행복 정책을 통해 “행복의 여건을 만드는 것이 국가 발전의 목표”라고 천명했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경제적 발전, 문화 보존 및 진흥, 환경보호,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를 국민총행복을 증진하는 4대 축으로 삼았다.

심리적 웰빙, 건강, 시간 사용, 교육, 문화적 다양성, 굿 거버넌스, 공동체 활력, 생태 다양성, 생활 수준의 9개 영역 33개 세부항목을 설정해 이를 측정하는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개발했다. 지엔에이치 지수는 이미 실제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모든 학교에서 2분씩의 명상시간을 운용해 전인교육의 효과를 높이도록 했다.

2010년의 조사에서 부탄 국민의 지엔에이치 지수는 0.743을 기록했다. 대체로 행복하거나 매우 행복하다고 평가되는 점수를 받은 사람은 전체의 40.8%에 그쳤다. 다만 점수가 낮은 사람들의 박탈감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엔에이치를 잣대로 모든 정책을 심사한다는 점이 특히 돋보인다. 새로운 정책이 제안되면, 지엔에이치에 영향을 끼치는 형평성, 부패, 양성평등, 수질과 대기오염, 스트레스 등 26개 항목별로 점수를 매기게 된다. 지엔에이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의 점수를 받지 못하는 한, 정책은 채택될 수가 없다. 지금까지 국가 인적자원 개발, 고등교육, 보건과 같이 지엔에이치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정책은 심사를 통과했다. 하지만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산림, 국토, 광물자원 개발, 관개사업, 영세중소기업, 청소년 등의 정책은 심사를 쉽게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김현대 선임기자


부탄의 외교관계

인도인은 관광비도 면제

중국인은 트레킹도 금지

똑같이 부탄에 국경을 접했지만, 인도는 가깝고 중국은 멀다.

1907년 부탄 전역을 통일한 지금의 왕추크 왕조는 1910년 영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영국은 부탄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대신 부탄은 영국의 외교자문을 받기로 했다. 인도가 1947년 영국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했다. 부탄에서 인도는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부탄의 서부 하(Haa) 지역에는 수천의 인도 군인이 주둔하고 있었다. 티베트 자치구와 인도 국경이 맞물리는 곳이다. 주민들은 인도 군인들을 그리 경계하지 않았다. 인도 사람들은 하루 200~250달러의 관광비를 내지 않고 자유롭게 부탄을 여행하는 특권도 누린다. 비자도 필요 없다. 부탄 화폐 환율은 인도 루피화에 1 대 1로 연동돼 있다. 부탄 지도층의 절대다수가 인도 유학파이고, 인도의 저임 노동력은 부탄 공사 현장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중국 여행객에 대해서는 일부 국경지역의 트레킹도 금지한다. 국경이 모호한 곳도 있어 분쟁의 소지가 내연해 있다. 2004년 이후에야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중국산 소비재 수입도 엄격하게 규제한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 이후 부탄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티베트와는 갈등도 겪었지만, 뿌리가 같은 불교 형제국이다.

김현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