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가?

2013. 6. 23. 10:03세계와 여행이야기/부탄 이야기

[하도겸 칼럼]부탄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가?
    기사등록 일시 [2013-06-19 06:01:00]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12>

전 국민 97%가 ‘나는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나라가 부탄왕국이다. 왕국이라고 해서 전제군주가 있는 나라는 아니다.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을 도입했던 전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가 통치업무를 내각위원회에 넘기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은퇴하면서 이미 입헌군주제를 약속한 것이다.

2006년 12월 17일 즉위한 부탄 신임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절대 권력을 포기하고 나라를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영국과는 달리 왕의 정년을 다른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65세로 정했다. 갑작스러운 위로부터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국민은 오히려 격렬하게 반대했다. 왕은 “국민이 행복하려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며 국민을 설득했다.

부탄 선거위원회는 2008년 3월 24일 치러진 사상 최초의 부탄 하원 총선에 후보자를 낸 2개 정당 가운데 국왕에 충성적인 왕당파라고 할 수 있는 부탄 통일당이 전체 47개 의석 가운데 44석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4명의 왕비를 배출한 왕실의 외척 상가이 응게덥이 주도한 국민민주당은 예상과는 달리 참패했다. 왕실 외척과 귀족들에 대한 그동안 국민의 불신을 보여준 것이다. 당선자조차도 왕정이 끝난 것에 대해 “가슴이 찢어질 만큼 비통한 일”이라고 했다.

또 한 정당의 당수는 “우리는 이데올로기나 비전이 있어 정당을 만든 게 아니고 왕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왕이 만들어준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비판도 제시됐다. 하지만 선거결과를 통해 왕의 양위와 갑작스러운 입헌군주제로 전환의 의도가 보인다. 왕권을 제한하려는 왕실 외척과 귀족에 대한 지나친 간섭으로부터 왕은 국민의 손 즉 협조를 이끌어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지나친 사대부의 당쟁과 간섭으로 몇 번이나 환국(換局)을 거행했던 조선 시대 왕들의 지혜인 셈이다.

2006년 4월 22일 주변 국가인 네팔의 갸넨드라 국왕은 국민의 거센 민주화 요구 시위와 함께 미국이 국왕의 강제 퇴위 가능성을 경고한 이후 국민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왕정이 붕괴한 것이다. 세계에서 아니 부탄 주변에서 인도, 시킴, 네팔 등 이제 왕정은 찾아볼 수가 없다. 주변 국가의 급변하는 정세와 외척 귀족들의 득세를 두려워 한 옥스퍼드 대학 출신 신왕은 입헌군주제 도입이라는 숨겨진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왕까지 정년이 있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왕위마저 양위하고 은퇴생활을 즐기는 나라 부탄은 정말 행복한 듯하다.

하지만 부탄 사람은 어렵게 생활한다. 국민 대부분 고산에서 농지를 개간해 자급자족한다. 의복 등 필수품은 수도 팀부까지 좁고 험한 비포장도로를 몇 주씩 걸려가야 한다. 이 때문에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팀부에는 인구의 15%가 넘는 10만 명이 살고 있다. 식수도 모자라며, 쓰레기 처리는 부탄 정부의 골칫거리다. 교통 혼잡과 주택 부족 문제 등은 여느 나라보다도 심각하다. 부탄의 GNH 조사 결과를 보면, (심리적) 안정감, 언어소통, 가족관계 등에서는 90% 이상이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주택, 기부활동, 읽고 쓰기 능력, 지식수준 등에 관한 만족도는 50% 미만으로 확인됐다.

최근 부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TV 등을 통해 서구식 삶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확장 일로에 있다. 불교와 농사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부탄에 1999년 TV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축구팬들이 ‘1998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을 터트린 것도 한 이유였다고 한다. 14년이란 긴 시간이 지난 지금 할리우드 영화나 인도의 드라마 등으로 부탄의 전통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GNH의 내용은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 및 경제 발전’ ‘문화 보존 및 진흥’ ‘환경보호’ ‘굿거버넌스’ 등 4개 축을 중심으로 9개 부문 33개 지표로 구체화해 있다. 그러나 이 지표가 정말 행복을 대변하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1998년 영국 런던정경대의 조사에서 방글라데시, 2004년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조사에서는 중남미의 푸에르토리코가 1위였다. 2010년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는 새로운 웰빙 지수인 GDH(Gross Domestic Happiness)를 개발하고 있다.

부탄은 정말 행복한 나라일까? 혹시 가난한 나라가 자기 합리화를 통해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의 저자 최성각 풀꽃평화연구소장은 여행 작가 김남희와 함께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을, 문화인류학자 쓰지 신이치가 ‘행복의 경제학’에서 부탄의 현실 등을 외면하거나 보려고 하지도 않은 것들이 불편하다고 한다. 모든 매체에서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강조하다 보니 가난과 문맹 등 많은 어두운 사회적 문제들이 감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탄에서 온갖 궂은일은 인도 비하르 지역에서 온 불가촉천민들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또 부탄 정부가 20여 년 전 교육비와 의료비를 무상으로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힌두교를 믿는 10만여 명의 네팔계 부탄인 대부분을 강제로 추방했다. 국민 6분의 1에 달하는 이들 가운데 현재까지 총 7만 8000명이 네팔에 체류하다가 서방국가로 이주했다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는 밝혔다. 물론 부탄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일부 힌두교도들에게는 총선에서 선거권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들의 GNH는 조사조차 되지 않았다. 부탄에서 태어난 힌두교도들은 GNH는 절대로 높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탄은 여행자로서도 불자로서도 가고 싶은 나라임에는 변함이 없다.

6월 12일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현재 주라오스 한국 대사관에서 신병을 관리 중인 탈북자 20여 명은 조만간 한국 소환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6월 13일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협력포럼(FEALAC)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 역시 지난 5월 28일 탈북 청소년 9명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일을 언급하면서 탈북민 관련 업무에 대한 라오스 측의 협조를 당부했다.

대부분 북한 이탈 주민은 삼엄한 감시를 뚫고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이나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을 오랫동안 전전하다 남한에 들어오는 사례가 많다. 북한 주민, 그리고 탈출에 성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새터민들의 GNH는 어떨까? 박근혜 대통령은 6월 6일 “한반도 행복시대를 열어가는 큰길에 북한 당국의 적극적 동참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6월 11일 시진핑에게 등 떠밀려 회담장을 향하던 북한은 보란 듯이 오바마와 시진핑의 미·중 정상회담 이후에 남북당국회담을 무산시켰다. 북한의 핵보유국 불인정과 비핵화에 대한 미·중 양국의 합의가 매우 불쾌했을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6월 27일부터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북 핵에 문제에 대해서 미국과의 합의서가 채 마르지도 않은 상황에서 중국의 말에 북한이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가 미지수이다. 국민행복시대에 남북 이산가족과 새터민 나아가 북한주민 등이 잘 먹고 잘살면서 정말로 행복해하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dogyeom.h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