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어민 폭력으로 가둔 채 새만금 강행 발표 -2001년 5월 25일

2013. 5. 10. 09:55전북 소식/새만금에 대하여

서해어민 폭력으로 가둔 채 새만금 강행 발표 -2001년 5월 25일

 



서울역에서 하룻밤 농성을 마치고 '새만금 시국선언'이 있을 프레스 센터로 이동중인 계화-내초 어민들. 처음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정부 발표가 25일에 있을 줄은 예상을 못했었다.

 

프레스 센터 정문에서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왜 우리는 우리의 삶의 터전 갯벌을 두고 서울 아스팔트 길 위에서 이래야만 하는가.

 

 "절대로 갯벌을 내줄 수 없어. 농토라도 갖고 농사 짓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겠지. 근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들들도 죽어…” 계화도에서 오신 황선구 할머니(71). 어젯밤 한 데서 밤을 새우시고도 피로한 줄을 모르신다.

 

이 시간 각계 인사 1,445명은 프레스 센터 강당 안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었다.

 

 

 시국선언을 하는 문규현 신부

<시국선언문 보기>

 

 시국선언장에서 계화도 청년회 김한태 회장은  '김대중 정부는 새만금사업을 강행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서해 어민들은 다 죽을 수 밖에 없다.'며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새만금갯벌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시국선언이 끝나고 전북에서 올라온 모두는 보도를 평화적으로 행진하며 발표가 있을 정부종합청사로 향했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 앞에 다다르자 전경들이 막고 나섰다. 얼마나 뒤가 저리는 일이었기에 평화적 시위도 못하게 막는단 말인가.

 

그들은 애써 만든 깃발과 피켓, 플래카드 등을 탈취해가려 하였다. 의사를 표현할 기회마저 박탈한단 말인가. 누가 시켰는지 참으로 비겁하다. 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서울지역 환경 동아리 대학생들과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시던 문정현 신부님이 실신하셨다.

 

투구와 방패로 무장한 병력에 의해 철통같이 에워싸인 새만금 지킴이들. 신형록 대표와 김한태 청년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새만금사업 강행의 논리란 말인가. <사진/경향신문>

 

이런 틈을 타서 계화도의 이순덕 아주머니(53)께서 마침내 종합청사 정문 앞에 이르렀다.

'거짓말쟁이 한갑수 놈 나와라! 계화도에서 너를 만나러 왔다.'

굳게 철문이 닫혀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병력을 동원하여 겹겹이 에워싸고 쌌다. 이런 가운데 '새만금 사업 순차적 추진'은  발표되고 있었다.

 

4시30분경 정부의 새만금 강행이 발표되자 시위대원들은 피켓을 바꿔들었다.

'근조새만금'

노벨평화상 대통령 김대중 정권은 새만금갯벌에 그의 무덤을 파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진/허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