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초 ‘친환경 먹거리 학교매점’ 활짝 피었어요

2013. 9. 8. 18:03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국내최초 ‘친환경 먹거리 학교매점’ 활짝 피었어요

 

* 서울 구로구 영림중학교 매점 - 여물점
영림중학교 학생들이 5일 낮 서울 구로구 학교 안 매점 앞에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물건을 들어 보이고 있다. 뒷줄의 어른이 박수찬 교장과 홍은숙 학교운영위원장이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여물점’(영림중학교 매점)으로 학생들이 떼지어 모여들었다. “성희야, 안녕!” 매점 안에 서 있던 홍은숙 학교운영위원장이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대부분 딸아이 친구이거나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해요.” 옆에 서 있던 김현아 매점운영위원은 “어떤 화장품이 좋은지 여학생들한테서 되레 배운다”며 웃었다.

서울 구로구 영림중의 학부모와 교사들이 일을 냈다. 지난해 10월 25명이 327만원을 공동 출자해 매점 운영을 시작했다. ‘여유롭고 물 좋은 매점’이란 뜻을 담은 여물점은 국내 최초의 친환경 먹거리 학교매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5월께였죠. 학부모들이 매점을 직접 운영하겠다고 학교운영위원회에 제안했습니다. 사업자가 돈벌이 수단으로 매점을 운영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자녀의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할 수 없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김윤희 학부모회장의 말이다. “매점 운영을 맡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세우자는 데도 뜻이 모였어요. 학부모와 교사·학생들이 참여하고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가장 적절한 지배구조라고 생각했죠.”

학부모들이 매점 운영을 맡기로 했지만 당장 규정이 걸림돌이었다. 공개입찰을 통해 최고가를 써낸 사업자에게 공공수익시설인 매점을 임대해야 한다고 돼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쪽에서는 ‘친환경 제품이 판매 물품의 8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영리사업자의 참여를 사실상 봉쇄했다. 두 차례 유찰 끝에 지난해 10월 학부모들이 임대료 600만원에 학교와 매점 운영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어렵게 여물점의 문을 열고 두레생협과 아이쿱생협의 우리밀 과자, 빵과 유기농 음료를 주로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자극적인 맛에 길든 탓에 “싱겁고 맛이 없다”는 불만이 나왔다. 심지어 “한 달 안에 망하는 데 내기를 걸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입맛은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다. 김현아 위원은 “불량식품을 먹기 싫어해 그전 매점을 찾지 않던 학생들도 이제는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학교나 교사들은 교복 물려주기 행사나 졸업식 행사의 부상으로 매점 상품권을 지급하기도 했다. 조윤성 수석교사는 “친환경 매점이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고 있다. 매점에서 생협의 친환경 먹거리를 소비하는 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사회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생 대표로 매점추진위원회에 참여한 최승준(3학년)군은 “처음에는 가격이 비싸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1g당 가격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차차 반응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두레생협에서도 국내 최초의 친환경 학교매점 지원에 나섰다. 홍은숙 운영위원장은 “지금은 두레생협에서 특별히 도와주고 있지만 우리 학교만으로는 주문 물량이 너무 적다. 근처 학교들이 친환경 매점을 시작해 공동주문을 추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간 임대료 600만원 또한 학부모들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인건비를 아껴 임대료를 내는 형편이다. 학부모 2명이 자원봉사로 매점에서 일하고 있다.

여물점의 출자자들은 지금의 개인사업자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총회를 열었다. 학교 매점을 운영하는 첫 협동조합 사업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홍 운영위원장은 “사회적 협동조합 같은 비영리법인과는 임대료 없는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규정을 개선했으면 좋겠다. 대신 매점 운영의 이익금을 모두 학교에 기부하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toyann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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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림중학교 학생들이 5일 낮 서울 구로구 학교 안에 마련된 매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학교매점 최고가 낙찰제, 학생건강 갉아먹는 주범

월 임대료 비싸지는데
학생들 구매력은 작아
제조사 불분명 제품도

“나도 교장이 되기 전에는 학교 매점에 이런 구조적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 영림중학교(서울 구로동) 박수찬 교장의 얘기다. 학교 매점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팔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사업자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 매점 임대는 공개입찰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최고가 임대료를 써낸 사업자가 낙찰받는 구조다. 이로 인해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서는 매점 임대료가 월 400만원대로 치솟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싼 임대료를 지급한 사업자는 그 이상의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용돈을 받아 쓰는 학생의 구매력이 클 리 없다. 지난해 영림중 매점추진위원회가 학생 150여명을 대상으로 매점이용 실태조사를 해보니 한차례에 평균 500~1000원, 일주일에 평균 1000~2000원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점 처지에선 학생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값싼 과자나 빙과류, 탄산음료나 햄버거를 많이 팔 수밖에 없다. 이전 매점에서도 과자는 500원짜리, 빵은 800원짜리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제조회사가 불분명하거나 원산지와 성분 등이 제대로 표기되지 않은 먹거리도 많이 취급된다. 학교 매점용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가 따로 번성하고 있다.

학교 매점을 수익시설로 간주해 최고가 낙찰제를 고집하는 현행 제도가 합법적으로 학생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학교 매점을 학생 복지시설로 여기는, 교육 당국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