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17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새출발

2013. 9. 8. 18:00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예술가 17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새출발

 

* 서울 독산동 남문시장 골목 - 신나는문화학교 자바르떼
자바르떼의 예술 노동자들이 28일 사회적협동조합 전환을 위한 자체 교육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회적기업도 결국 1인기업 폐단 빠지기 십상…월급쟁이 직원을 넘어 진정한 주인 되자는 것”

이탈리아 볼로냐에는 테스토니 라가치라는 오래된 어린이연극 전용극장이 있다. 이 극장에서 공연하는 극단의 이름은 라바라카, 협동조합이다. 라바라카의 주인(조합원)은 21명의 연극배우들이다. 각자 2500~3000유로의 출자금을 부담했다. ‘외부’ 조합원으로는 다른 협동조합 2곳과 개인 후원자 2명이 참여했다. 이탈리아 뿐 아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문화예술 분야의 협동조합 사업이 활발하다. 3000개 이상의 협동조합 기업이 활동하고 있고, 3만2000명이 넘는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의 협동조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 독산동의 재래시장(남문시장) 골목에 뿌리를 내린 건실한 사회적기업이 물꼬를 텄다. 지난해 10억원의 매출을 올린 ‘신나는문화학교 자바르떼’이다. 상근 노동자인 음악과 미술, 연극, 기획 분야의 예술인 17명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새출발하는 작업에 나섰다. 지난 25일과 3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두차례 공개 설명회를 가졌다.

“2004년에 자바르떼를 비영리민간단체로 세웠어요. 반백수 예술인들이 월급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세워보자는 취지였죠. 해마다 6만명의 예술가 지망생이 사회로 배출되는데, 안정적인 일자리는 참 드물잖아요. 저희 이름 자바르떼(jobarte)도 일(job)과 예술(arte)의 합성어예요.” 이동근 대표의 말이다.

2008년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자바르떼는 2011년에 인천과 경기지부가 독립하기 전까지, 한때 60명 가까운 상근자를 먹여살리기도 했다. 특히 독산동의 남문시장에서 3년째 진행하는 ‘문전성시’ 사업은 재래시장의 회생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남문시장 상인들의 풍물반, 합창반, 밴드반은 자발적인 동아리로 발전했고, 그중에서도 풍물반은 지역사회 행사에 초청받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상인운영위원회와 여성상인회 발족으로 이어져, ‘상인 협동’의 단초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바르떼는 지역의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놀이교육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나누리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 11명과 1년 동안 어울리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연말에 선생님과 후원자, 가족들 앞에서 ‘선비와 사또’라는 창작 공연을 했어요. 감동적이었지요. 아동센터에서는 올해에도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하네요.” 자바르떼의 연극강사 고윤희씨의 말이다. 자바르떼는 상근 음악강사들로 구성된 6인조 유명 어쿠스틱밴드 ‘신나는섬’도 운영하고 있다.

“왜 사회적협동조합이 되려고 하냐고요? 사회적기업도 결국 1명의 대표자가 나머지 직원들을 모두 책임지는 1인 기업의 폐단으로 빠져들기 십상이잖아요. 이제 사회적기업의 월급쟁이 직원을 넘어 사회적협동조합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겁니다. 사업의 꼴을 갖추면서 책임도 공유하자는 거지요. 협동조합이라는 법인격이 우리 자바르떼에 딱 맞는 옷이죠.”(이동근 대표)

비영리민간단체인 지금의 법인격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자바르떼의 상근 예술인들은 250만원의 출자금을 똑같이 부담하기로 했다. 자바르떼 공연자나 강사로 그때그때 참여하는 비상근 조합원의 출자금은 100만원으로 정했다. 공연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자주 이용하거나 후원하겠다는 사람은 1만원 이상의 출자금으로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자바르떼는 사회적협동조합 전환을 통해 어느 정도 자립할 수준까지 재원을 확충할 수 있게 된다. ‘협동조합간의 협동’이라는 연대의 가치가 자바르떼의 마케팅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란 기대감도 갖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7월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세계협동조합의 날 기념 행사의 문화체험 부스와 공연 기획을 우리가 맡았다.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정식 발족하면 여러 협동조합들이 우리 자바르떼의 우량 고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0만~160만원대에 머물러있는 상근자 급여를 지금보다 좀 올렸으면 하는 희망도 갖고 있다. 연극강사 고씨는 “자바르떼는 오래 전부터 문화예술생산자협동조합을 지향한다는 미션(임무)을 갖고 있었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인들의 새로운 협동조합 탄생은 올 한 해 줄곧 이어질 전망이다. 예술인들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외부 투자 없이도 알찬 협동조합 사업체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홍대 앞의 소규모 음악인들은 2011년 8월 자립음악생산조합을 결성해, 조합원들의 음반과 공연 기획을 지원하는 사업을 지금껏 벌이고 있다. 회비를 적립한 쌈짓돈을 재원으로 삼는다. 이들은 ‘경쟁이 아닌 상생으로’ ‘분열이 아닌 연대로’ ‘의존이 아닌 자립으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만화가들은 출판물의 전권을 직접 행사하는 은하만화협동조합동맹(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의 공예 작가와 디자이너들은 올 5월 경기 파주의 헤이리마을에서 나흘동안 ‘모두 모여라 손으로 만든 것들(모모손)’이라는 대규모 손공예 장터를 준비하고 있다. 손공예 협동조합이 움틀 수 있는 좋은 싹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