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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론 논란의 내용과 실체

경제/경제와 경영, 관리

by 소나무맨 2013. 7. 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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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론 논란의 내용과 실체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webmaster@selfg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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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07  11: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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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제 :  유철규(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Ⅰ. 들어가며

- 이 글의 목적은 창조경제론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신정부의 경제정책이 갖는 지향과 성격을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 새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창조경제’는 야권은 물론이고 여당으로부터도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급기야 4월에 들어서는 대통령이 직접 개념잡기에 나서야하는 판국이 벌어지기도 했다.

- 비판은 야권으로부터 보다는 여권으로부터 더 많이 나왔다. 이렇게 된 데는 야권 내부의 정책혼선과 이념적 혼란도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겠지만, 사실 대선 공약으로서 창조경제가 제시하고자 했던 내용에 대해 야권이 이의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큰 원인이다.

- ‘창조경제’라는 용어 자체를 둘러싼 논란도 흥미로울 수 있지만, 그 말뜻을 각자의 상상 속에서 구성하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현 한국경제의 위기와 과제를 어떻게 포착하려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어떤 계급적 관점에 서 있는지와 상관없이 위기와 과제를 나름대로 붙잡고 있는 것이라면 그 용어는 ‘창조경제’가 되던 ‘스마트 뉴딜’이 되던 아니면 다른 무엇이 되던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 앞으로 창조경제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갈지 아직은 열려있고 평가도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다. 여전히 창조경제론의 실천계획이 마련 중이며 일부 발표하면서 계속해서 후속조치들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동산 종합대책, 추경예산 편성, 투자 활성화 대책, 그리고 금리인하까지 초기 경기 부양 정책이 마무리되었고, 관련부처들의 업무보고도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론 삼아 향후의 방향을 진단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Ⅱ. 창조경제론 논란의 내용

-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어떤 명확한 대상을 두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서 혼란으로까지 불릴 만 했다. 새정부 경제정책의 핵심 용어로 알려져 있는 것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이지만 어느 것이나 모두 명확하게 대상이 설정되지 않은 채 논쟁의 도마에 올라와 있는 모습이다. 여타 정부의 출범 초입에 나타나는 통상적인 정책논란과 달라 보이는데, 이명박 정부의 경우 4대강 사업이라는 구체적 사업을 두고 논쟁이 진행되었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 ‘창조경제’를 두고 특히 혼란이 컸는데, 논자에 따라서는 그 내용이 없는 것 아닌가, 알맹이 자체가 없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을 일찍부터 제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내용을 갖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서 마지못해 했든 아니든 간에 새 정부가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서 경제민주화를 인식했고 공약으로나마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창조경제도 한국경제의 어떤 과제를 포착한 용어로 본다면 그것이 갖는 합리적 부분을 찾아볼 노력을 할 만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합리적인 독자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며 김대중 정부의 IT 벤처붐 정책과도 다른 부분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이명박 정부의 토건정책과도 달라야 할 것이다. 나아가 박정희식 국가개입과의 차이도 있어야 할 것이다.

1. 창조경제를 주요 대상으로 해서 경제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혼란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사업기회를 기대하는 자본의 관점에서 오는 불만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 재정자금과 금융자금이 어디에 쏠릴지를 알고자 하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느 산업, 어느 업종, 어느 기업에 투자해야 돈이 되는지를 알고자 하는 욕구를 새 정부가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창조경제의 키워드로 정보통신기술(ICT), 과학기술, 창업, 벤처기업을 언급하자 증권가에서 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흘러들 것으로 지레 기대되는 수혜주가 들썩거리는 이치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IT 벤처 붐은 경기부양삼아 “이번엔 테헤란이다!”라는 신호를,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번엔 건설업이다!”라는 사인을 시장과 자본에 던져주었다.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개벌연대에는 마찬가지로 “중화학 공업이야!”이었을 것이다.

- 창조경제가 특정 산업이나 업종, 기업을 선정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앞의 불만과 비판은 내용이 빈곤한 것이며 헛짚은 것이 된다. 비록 대통령의 말을 반복하는데 그쳐 창조적인 아이디어나 설명은 많이 모자란다는 비판을 듣고 있지만 경제부총리가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고 선언한 이상 과거의 경험과 다른 것을 추구한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물론 추구하는 게 다르다고 해서 현실도 달라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정부의 창조경제도 혼란을 빨리 종식시켜 먹을거리를 던져 달라는 시장의 요구에 예속되어 “이번엔 OO야!”로 마무리되고 말지도 모른다. 조금 더 상황이 진행되어 의도적으로 용어의 혼란을 증폭시키려는 시도를 촉발하는 단계에 이른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재정과 금융이 움직이고, 붐과 거품을 일으키고, 그 거품의 파열과 함께 관료와 관련된 각종 게이트들로 끝날지도 모른다.

2. 정책을 구체적으로 담당하고 집행해야 할 관료의 입장에서 보면 작금의 혼란은 충분히 근거를 갖고 있다.

- 정책의 최상위 목표(최종목표)를 설정하고 성과를 측정할 방식과 지표를 정하고, 지표의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한 하위 정책목표(중간목표)들과 정책수단들을 설정하여 실행의 우선순위를 세우는 과정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창조경제가 표방하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무엇이 되던 간에, 또 그것이 특정산업이나 업종을 선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관료는 예산을 수립하고 재정을 투입할 대상을 선정하고 심사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목표를 선별된 특정 산업의 육성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말하는 순간 관료의 업무 수행에는 긴장과 모순이 발생한다. 이를 현 정부가 해소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공무원들이라면 정권 초기 자기 부처의 창조경제는 뭐라고 할까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이 긴장과 모순이 한계를 넘어가면(그 한계는 대부분 시간적 제약이 될 것이다), 각 부처가 이전부터 붙들고 있던 역점사업 앞에 ‘녹색’을 지우고 ‘창조’를 덧붙여서 보고서를 끝낼 것이다. 창조농업, 창조유통, 창조금융, 창조국방…. 온갖 창조가 난무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전 정부에서도 한국의 관료는 녹색성장을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정의했다.

- 관료에게 부과되는 이 긴장과 모순은 정책의 목표도 성과를 측정할 지표도 자기가 만들고 그 지표의 측정과 평가도 자기가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예산을 집행할 대상의 선정과 지원과정에서 관료의 자의성(자율성이 아닌)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 일본을 위시한 동아시아의 국가주도적 경제발전이 보여준 놀라운 성과를 토대로 해서 한동안 신고전파적 주류 발전론과 대립각을 세워 성가(聲價)가 높았던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론이 주목했던 것이 관료의 자율성이었다. 이 자율성은 시장과 정치 모두로부터의 자율성이다. 그러나 이 자율성이 자의성으로 바뀌는 순간 평가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관료가 갖는 자의성의 확대는 최악의 시나리오 즉, 부정적(negative)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아니면 보신주의와 복지부동의 길을 쉽게 열어준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용어의 혼란을 한층 부추겨 국정의 최상위 과제(예를 들어 ‘창조경제’)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길도 관료가 만나는 긴장과 모순을 해소하는 길일 수 있다.

3. 경제정책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서 혼란이 생기는 데는 정치권내에서 뚜렷한 대안적 정책이 형성되지 못한 것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최근 몇 주간에 걸쳐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통한 올해의 사업방향이나 추경예산편성 등의 경기부양책과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려는 개략적인 정책들이 일부나마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야당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 양에 비해 대안의 수준에 이를만한 핵심적인 내용은 빈약했다. 추경은 필요하지만 부자감세의 철회를 약속해야 국채발행에 동의하겠다거나, 부동산 경기 침체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일부 지역과 일부 계층만 수혜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니 수혜대상을 확대하자거나 하는 비판들이 주를 이룰 뿐이다. 따라서 민주통합당이 정권을 잡은 경우라 하더라도 총론에서는 비슷했을 것이고 기껏해야 각론수준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평가도 설득력이 있다.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현재의 위기와 과제를 어떻게 다르게 진단하고 풀 것인가 하는 총론수준의 정책 논쟁을 창조경제론과 관련해서 뚜렷이 부각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야, 좌우의 정책대립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아서 어느 쪽 하나라도 선명하면 다른 쪽도 선명해 질 터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4. 공약으로서의 성공이 가져온 혼란이 있을 수 있다.

-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 융합의 터전 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 창조경제는 사람이 핵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을 좌절하게 하는 각종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것”(대통령 취임사)이다.

- 취임사에 담긴 위의 말들은 이전의 수차례 정권교체 속에서 제시되었던 한국경제의 결함과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주요한 정치적 논의들을 상당 부분 담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 제시된 ‘지식기반경제’, 참여정부의 ‘혁신주도형 경제’나 ‘동반성장’,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추종자에서 선도자로의 전환’ 구호까지 얼마든지 연상시킨다. 그 속에는 18대 대선에서 야권이 움켜쥐었어야 했을 대안적 정책들이 포괄적으로 담겼다.

-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신년사에서 “…우리경제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드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첨단산업과 전통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그리고 상하위 계층 간의 심화된 격차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급한 과제… 대한민국 공동체의 공존과 번영을 위한 협력이 필요… 바로 동반성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대표 재벌들의 총수들이 이구동성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외치고 재벌의 ‘사회적 책임’ 수행을 약속하고 나섰다. 그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와 내용을 가질지는 나중에 밝혀질 일이라 해도 당장 야당으로서는 허탈할 노릇이다.
 
- 또 17대 대선 당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야권의 한 후보자(문국현) 진영은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이 인적 자본의 육성을 통한 혁신 주도형 발전 전략 수립에 몰두하고 있는데,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과거 개발주의 성장을 고집하고 있는 현실에 우리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창조경제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이러한 방향의 비판도 무력화시킨다.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월에 펴낸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에 ‘협동조합 및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까지 창조경제의 핵심 국정과제로 포함시켰으니 웬만한 재야의 이견까지 쓸어 담은 모습이다.

- 따라서 창조경제를 긍정적으로 적극 해석한다면 한국경제성장 모델의 전환에 관해 지난 10여년 이상 모색해 온 대안적 아이디어들의 종합판이다. 형식적으로만 본다면 야당이 ‘일자리’, ‘소상공인’, ‘중소기업’, ‘불공정 행위’,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지 않고 정권을 비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야권이 ‘사람이 핵심’이라는 취임사의 주장을 비판하기는 더 어렵다. 현재까지가 새 정부의 국정기조에 대해 대응하는데 야권이 겪는 곤란의 현주소이다.

- 창조경제의 개념이 갖는 모호성이 문제가 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들이 난무하게 된 것은 대선공약으로서 야권을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 결과이고, 그 반대급부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의 서구적 출처가 뭐고, 그 출처들에서 본래 쓰인 뜻이 뭐냐를 따지는 것은 덜 중요한 문제들이다.


Ⅲ. ‘창조경제’의 특징: 경제민주화

- 새 정부 국정기조의 줄기는 대체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로 모아져 왔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도 두 개념에 집중되었다. 두 개념 각각에 대한 논란도 컸지만, 이 둘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첨예한 대립적 이해방식이 등장한다. 창조경제를 이야기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따로 뗄 수 없는 이유는 경제민주화가 창조경제의 조건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 창조경제 하나만 떼어내어서는 그 의미와 내용,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행과제와 순서를 잡고 평가하기가 아직은 어려운 실정이다. 여권내부의 많은 비판도 여전히 창조경제라는 ‘이름’만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 창조경제가 신정부의 정책기조를 대표하는 브랜드라면 이전 보수정부의 성장정책과 차별적인 부분이 무엇일까를 보아야 할 텐데, 그 차별의 핵심요소가 경제민주화이다. 보수정당의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수용한 것이 이전 보수후보와의 가장 중요한 차별점이기 때문이다.

- 이제 창조경제의 개념자체의 모호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정권 초반 두어 달 간의 논란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국책연구소나 민간연구소들에서 관련된 연구성과들도 조금씩이나마 나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합리적으로 창조경제를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는 경제민주화를 창조경제의 ‘제도적 인프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재벌을 필두로 재계 쪽에서 나름대로 정책에 대한 해석과 호응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큰 쟁점은 경제민주화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신년사처럼 경제민주화를 창조경제의 조건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이 둘은 모순적인 것으로 볼 것이냐이다. 모순적으로 보는 견해는 창조경제란 ‘창조적 파괴’와 그에 따라 불가피한 ‘실업’, ‘도산’, 그리고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성장정책이라고 본다. 기존의 업종을 새로운 업종으로 바꾸는 ‘고통의 과정’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보면 경제민주화는 이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눈속임이고 미사여구에 불과하며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한 창조경제는 불가능하다.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창조적 파괴 과정을 가로막고, …이런 것들은 산업과 기업을 인위적으로 보호하며 소비자 주권을 침해하고 기업가의 창조와 혁신적 활동을 억제하는 조치들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미래성장 동력’과 ‘창조경제’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가의 끊임없는 재창조와 발견 과정이 방해받기 때문이다.” (안재욱, 한국경제신문 컬럼, 2013.3.31)

- 반면 다르게 보는 견해는 ‘경제민주화 없이 창조도 없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현재의 사회 양극화,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의 불균형, 비정규직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차별대우, 장시간 노동, 청년실업 및 노인빈곤 등을 그대로 두고는 성장이고 뭐고 불가능하다. 하루하루 버텨가는 경쟁이라는 아귀다툼 속에서 창조나 창의가 무슨 말이냐 라는 게 될 것이다.

- 따라서 경제민주화와 성장정책으로서의 창조경제론 간에 어떤 관계가 설정되는지도 창조경제론이 갖는 성격을 보는데 중요한 관점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현 정부 경제민주화정책의 성격도 드러날 것이다.

Ⅳ. 새롭지 않은 창조경제론과 그에 대한 불신

- 창조경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편에서는 “한국경제성장 모델의 전환에 관해 지난 10여년 이상 모색해 온 대안적 아이디어들의 종합판”이지만, 또 다르게 보면 이질적이어서 서로 섞이기 어려운 것들의 잡탕이기도 하다.

- 인수위원회는 창조경제를 위한 국정전략으로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를 내세웠다. 중소기업이 주역이 된다는 것은 이전의 주역이 바뀐다는 것을 뜻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재벌구조가 파괴되어 새로운 경제구조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경제의 세계적 특징인 수출의존이 약화되고 내수가 획기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내수가 확대되려면 수출과 대기업에 직접 의존하지 않는 내수형 중소기업이 성장해야 하고, 수출대기업의 주요 경쟁력 원천인 노동비용절감 전략이 폐기되어야 한다. 임금과 서민의 가계소득은 비용이라기보다는 내수 구매력의 기반으로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거치며 창조경제 뒷받침 투자, 동반성장을 재벌의 총수들이 외치고 나서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 동안 혁신이니 구조조정이니, 신성장 동력 창출이니 내세우며 세워놓았던 기존 계획을 창조경제로 이름을 바꾸어 내놓기 시작했다. ‘심형래’는 ‘싸이’가 되었다.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옛 모토는 노벨상 육성 프로젝트가 되었다. 지난 3월 설치가 결정된 전경련의 ‘창조경제특별위원회(가칭)’가 모으는 창조경제사례는 지속가능경영, 준법‧윤리경영, ‘기획경영’, ‘예술경영’들이다. 어느 것 하나 그동안 재계에서 추구한다고 내놓지 않았던 것이 있을까. 그리고는 결국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이런 과정의 전개가 왜 새롭지 않은지 몇 년 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0년 하반기 들어 갑자기 ‘공정’이란 말이 거의 모든 정치적, 정책적 사안에 적용된 적이 있었다. 개각 청문회와 외교부장관의 딸 특혜채용 문제 등을 거치면서 등장했다. 야당까지 덩달아 정부를 비판할 때조차 거듭해서 이 말을 복재해서 유포했으며, 재벌 대기업들도 사회적 역할 또는 사회적 책임이나 협력업체와의 상생에 관한 프로그램들을 연일 만들어 쏟아 내기 바빴다. 공정은 ‘경제적 갑과 을의 불공정한 관계’란 표현에서 사용되듯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경제적 거래의 공정성 문제에 초점을 두고 제기된 표현이었다. 대중소기업 상생은 애초에 대기업의 책임문제로 등장해서 친서민, 친중소기업으로의 정책전환을 강조했다. 그러다가 금세 ‘공정사회 만들기’로 흐름이 정리되고 모아졌다. 당시에는 이를 두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입장도 있었고, 이명박 정부 집권후반기의 국면돌파용 임시 아젠다로 평가절하하는 입장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후자가 옳았던 것 같다. 그 당시 ‘공정소동’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이유는 이미 그 이전 오래 전부터 기업상생이나 공정 같은 말들을 담고 있는 법률이 많이 있었고, 대기업이 적극 찬성한 사례도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5년 5월에 대중소기업상생협력 대책회의가 대통령 주재로 열렸고, 같은 해 8월에는 이에 호응하여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중소기업 협력강화를 위한 정책개선에 관한 의견>이라는 건의서까지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배포했다. 2006년 3월에 기존의 <중소기업의 사업영역보호 및 기업간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을 대체하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법률의 4장에는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납품대금지급문제나 기술 뺏기 문제, 그리고 온갖 종류의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 행위들이 죽 나열되어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나서 새로운 비전이라고 내세운 ‘공정사회’는 ‘법 좀 지키자’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것도 민간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책임의식을 갖고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 이제 2013년에는 포스코 임원이나 제빵회사 회장 사건에 이어 남양유업 사태가 터졌다. 제2, 제3의 남양유업도 대기하고 있다. 남양유업사태는 매출목표 강제 부과, 명절 떡값, 휴가비 뜯어가기, 적반하장식 고소, 밀어내기 등등 나올 수 있는 대기업의 횡포가 모조리 담겨 있다. '재벌·대기업 불공정·횡포 피해사례 발표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보면 그 대부분이 현행법에서 금지하고 있으며 처벌도 가능한 내용들이다. 조금 멀리 <중소기업의 사업영역보호 및 기업간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부터 보자면 20여년 가까이 관련 법률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치권의 문제해결 다짐이 있고, 범정부 차원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 실태조사가 74개 대기업과 59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곧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공정거래확립에 대한 적극 참여 선언도 나올 것으로 본다.

- 새 정부에서 창조경제가 진행되는 과정은 어떤가. 창조경제를 이전의 보수정부 정책과 차별할 수 있게 만드는 경제민주화는 인수위원회 보고서에서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질서 확립’이라는 말로 제시되었고, 이후 논란을 거치며 결국 ‘기업상생과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앞으로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제2, 제3의 남양유업이 몇 번 등장하면서 이렇게 굳어질 것이다. 다시 한 번 ‘상생’이고 ‘공정’거래다. 대통령은 엄격한 법집행을 강조한다. 다시 한 번 ‘법 좀 지키자’이다. 그리고 민간의 자발적 자율적 노력이 강조된다. 재계는 그동안 미루어 놓았던 투자계획을 슬그머니 내놓는다. 언론과 홍보기관들은 이것을 창조경제 투자라고 확대 해석한다. 법을 집행한다는 정부가 법을 지키자고 말하면서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하면 그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 남양유업과 같은 경우가 다시 등장하지 않게 할 실질적, 구조적, 제도적 조치들이 나오는가 아닌가가 창조경제를 이전의 보수 성장정책과 다르게 만들지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불과할지를 결정짓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고위 경제 관료들이 대통령의 말을 따라 창조경제를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고 되뇌고 있지만, 바로 직전 이명박 정부에서 제시된 녹색성장을 두고도 관료들은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정의했었다.

- 경제민주화가 ‘공정’으로 격하되어 고착화되는 순간 우리의 창조경제는 ‘공정’을 강조했던 이전 정부와 차별성을 잃게 될 것이며, 경제 질서의 주역을 바꿀 수도 없으며, 고대하는 창조의 꽃을 기대하기는 정말 어렵다.

Ⅴ. 노동과 교육이 빠진 창조경제론

- 인수위원회제안과 대통령취임사를 두고 창조경제론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창조경제의 기본은 개인의 창의력이다.

“이제 한 사람의 개인이 국가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 과거 산업화시기의 성장패러다임이 국가와 기업과 개인을 동일시(국민교육헌장을 상기해 보자)하고, 국가의 발전을 통해 개인적 삶의 개선을 추구하는 방식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개인에 대해 강조한 것은 분명 이와 차이가 있다. 거칠게 말하면 개인의 행복과 발전을 통해 국가의 발전과 경제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그런데 이 개인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김대중 정부의 신지식인으로 등장했던 영화감독일까. 지금 일순간에 세계적 스타가 된 가수일까. 아니라면 우리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는 평범한 사람들일까. 만약 전자라면 창조경제는 대다수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될 수 없다. 몇 명이 다수를 먹여 살리는 방식이 될 테니까. 몇몇 대기업집단의 성장에 국민경제의 성장을 목매고, 일반 국민의 삶은 이들 대기업의 성과로부터 나오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로 개선된다는 과거의 성장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그런데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현 정부에서 창조경제의 전도사역할을 한다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까지의 축약형 전략과 양적성장론으로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경제구조를 과거의 요소 투입형 성장모델에서 창조경제라는 패러다임으로 바꾸어야’한다는 식이다. 이 말은 지금까지처럼 소수 대기업집단 중심의 성장으로는 안 된다라는 것을 의미하므로, 일관성이 있으려면 창조경제의 기본을 이루는 개인은 특출나거나 성공을 운에 맡겨야 하는 몇몇이 아닐 것이다. 바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며 국민의 대다수가 다양하게 생각하며 다양하게 시도하고 다양하게 실패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노동자이다. 한국에는 자영업자가 많다하지만, 서구의 기준에서 보면 이들 자영업자들은 사회서비스업으로 흡수되었어야 했을 노동자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 앞으로 창조경제가 어떻게 해석되고 전개되든지 간에 항상 그 일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식(기반)경제론이다. 지식기반경제라고 불릴 정도로 오늘날의 선진 경제는 노동자의 지식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은 수준에 와 있다. 한국도 이제 그 초입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노동자의 창의력과 지식이 생산과정에서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생산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무슨 일이든 몰두해야 나오게 마련인 좋은 아이디어는 그 일에 대한 헌신에 달려있다. 먹고 살기 위해 죽지 못해 하는 일에 무슨 창의력일까. 실업의 위협과 노동자간 무한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라는 것이 창조경제의 요체가 되어야 한다. 내일의 삶에 불안해하면서 어떻게 참여와 헌신을 끌어 낼 수 있을까.

- 그런데 지금까지 제시된 창조경제에는 노동이 없다! 노동과 자본의 대등하고 공정한 파트너십과 상호 인정 없이 어떻게 격화되는 사회적 갈등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며, 이미 한국경제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재벌의 경제력을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사회적 갈등과 경제력 집중의 관리 없이 어떻게 안정적인 경제운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인수위 보고서에 따르면 안정적 경제운영은 경제민주화와 함께 창조경제의 또 하나의 핵심 조건이다.

- 보통 평범한 다수 국민의 삶에 창조적 열의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 실패를 통해 배우는 의지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교육은 신분상승 기회로서도 이미 기능을 못하고,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학창시절 민주주의를 배워 갈등을 해결하고, 동료를 밟고 가야할 대상이 아니라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그런데 창조경제에는 이를 풀기 위한 교육정책이 없다. 창조경제의 성공을 원하는 마음에서 안타깝다. 그래서 믿기 어렵다.


Ⅵ. 변화의 징후

-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서구 주요 국가들은 금융·재정위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금융기업과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기업 활동에 대한 재규제와 시스템리스크의 안정을 위한 규제도입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동안 경제 관료들이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주요 경제 관료들이 신자유주의적 사고틀에 매몰되어 있었던 영향도 크고 작용했다.

- 1997년 위기이후 이명박 정부 전반기까지 경제 관료들의 주된 관심사는 금융허브구축과 금융산업의 대형화·글로벌화를 통한 금융산업의 육성 및 국제경쟁력 강화, 그리고 의료·교육·공공서비스의 민영화 등 시장화를 통한 서비스산업의 발전에 두어져 있었다. 즉 서비스산업의 시장화를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구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신자유주의적 사고틀에 매여 있는 경제 관료들이 중용되고 있었다.

- 그러나 큰 의미를 두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변화의 가능성도 보인다. 동반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 후기이후 18대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말의 변화조짐이 관찰되는 것이다.

- 토건사업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시기 과학기술에 소홀했다는 반작용으로 박근혜정부에서는 과학기술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에 무게 중심이 상대적으로 좀 더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예를 들어 중소제조기업을 활용한 산업구조 고도화) 쪽에 두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아직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신정부의 경제 관료들의 생각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있다. 우선 당장 신정부 금융위원회의 업무보고에서 금융이 전체산업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나타났는데, 이는 금융자체의 성장에 몰두했었던 이전 시기와는 크다면 매우 큰 차이가 될 수도 있다. 취임 후 첫 공식 언론행사에서 경제부총리가 케인스경제학의 고전적 국민소득 모형과 유효수요론을 들고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던 지난 수십 년 간 케인스경제학을 완전히 내몰아버린 미국 경제학계의 동향에 비추어 보면 새로운 일이다.

- 경제 관료의 사고틀이 ‘시장이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국가개입이 필요하다’로부터 ‘시장의 결함을 보정하기 위한 국가개입이 필요하다’로 옮겨갈 가능성이 부분적이지만 나타나고 있는 것은 경제민주화를 위해 긍정적이다. 만약 신정부에서 이러한 전환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비록 대선공약의 한계 내에서라고 하더라도 대기업과 재벌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관료의 저항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Ⅶ.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상위 목표가 합리적 내용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

- 녹색이든 창조든 아니면 다른 뭐라 부르든, 국정의 최상위 경제 목표가 합리적인 내용을 갖고 있는가 여부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잘 진단하고 그에 맞는 과제를 포착했는가에 달려있다.

- 자본주의 국가의 최상위 과제는 체제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장경제의 제대로 된 작동을 의미하며, 그 속에서 자본과 노동의 재생산이 위협받지 않을 만큼 적절한 이윤과 임금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그 체제의 구성원들이 체제에 대해 느끼는 적대감이나 불신이 낮아야 한다.

- 자본주의 체제로서 한국경제의 위기는 첫째, 현재의 재벌구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굴러 갈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한 산업부문에만 독점적 지배력이 나타나도 삐걱거릴 판에 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 걸친 시장경제의 장애가 생겼다. 시장경제의 정당성을 확보해줄 경쟁의 효율성이 죽었다.

- 둘째, 시장경제의 최대 장점인 혁신의 원천이 봉쇄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창업자나 벤처기업의 아이디어가 싹을 틔울 수 없는 것이다.

- 셋째, 수많은 중소기업과 노동자가 재생산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의 이윤과 소득을 시장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은 최소한 이념적으로는 시장경제가 내세우는 경쟁일 수 없다.

- 넷째, 체제의 경제주체들 가운데 점차 더 많은 숫자가 체제에 느끼는 적대감과 불신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에 느끼는 적대감과 불신이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 그래서 경제민주화를 보수 대통령 후보가 수용했다. 그래서 복지고, 재벌 규제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복지 같은 과제를 충실히 수행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전범(典範)이라는 유럽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다. 이전에 하던 방식으로 요소투입을 늘리거나 투자를 확대해서는 더 이상 안 된다 해서 나온 게 혁신에 대한 강조였고, 그게 지식주도 경제라는 수사로 표현되었다.

- ‘지식주도경제’라는 수사는 1990년대 초반부터는 동아시아 신흥공업국 사이에서도 회자되기 시작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지식의 생산, 지식의 적용, 그리고 지식의 상품화를 통해 지식을 생산요소로 만들자는 것이다. 일찍부터 지식혁명에 대한 강조는 세계은행과 OECD의 단골 화두가 되었다. 미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 각국 정부 차원에서 무수한 고민과 아이디어가 프로젝트나 보고서로 나와 있다. 그나마 창조경제라 이름 붙인 것에 내용을 채울 만한 기존의 틀이 있다면 이 정도지 싶다. 어차피 ‘녹색성장’에서도 검토했을 내용이고, 그 이전 정부의 ‘혁신체제’에서도 검토했을 내용들이다. 그래서 기존 사업이나 보고서의 제목에 창조 덧붙이기는 별 의미 없는 일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나 시스템의 변화라는 것은 본래 그 목표가 미리 결정되어 있을 수 없는 것인데, 관료는 명확한 목표를 주어야 자율성을 갖고 창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 모순을 이번 정부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 공약보다 훨씬 강한 수준의 경제민주화에 집중해서 경제 곳곳에 숨 쉴 공간, 중소기업과 노동자의 창의성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Ⅷ. 맺으며

- 앞에서 창조경제가 모호해 진 큰 이유로 공약으로서의 그것이 성공적으로 야권의 공약들을 무력화시킨 결과라고 해석했다.

- 또 정책으로서의 창조경제에는 기업생태계의 세대교체가 한국경제의 절박한 과제라는 인식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몇몇 늙은 장군들만 분전하고 상도 다 몰아 받고 있는 모습이다.

- 기업상생의 문제를 단순히 거래관계의 공정성 문제로만 보지 말고 새로운 산업, 기업 구조의 비전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 그러려면 거의 해체에 가까운 재벌구조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역이 바뀐다.

- 주역이 바뀌는 동안의 혼란을 어떻게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거꾸로 지금 이대로 가면 살길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그 혼란을 줄이기 위해 자본과 노동의 전 사회적 협조와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다. 창조경제의 본래 이름이 ‘스마트 뉴딜’이라고 했다. 미국의 뉴딜을 ‘당시의 대규모 기업집단을 해체에 가까울 정도로 개혁하고 노동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여 대신에 노동생산성을 높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창조경제의 길이 보이지 않는 것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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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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