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11) ‘소돔’ 같은 광주 상무지구
우석훈 |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경제학 박사
ㆍ광주에게 묻는다… ‘토건놀이’가 발전이고 아픔을 치유하는 길이냐고
광양, 여수, 영암, 영광, 곡성, 나주, 장성, 담양, 함평, 무안, 순천, 장통, 화순, 해남, 강진, 신안, 보성, 진도, 고흥, 목포, 완도, 구례 그리고 광주. 이 도시의 이름은 젊은 극우파들이 ‘홍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태어난 곳이다. 일반적인 지역 분류로는 광주전남이라고 부른다. 이 도시 중에서 곡성이라는 곳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구례는 수년 전 귀농하면 살려고 생각했던 지역 중 하나다. 열거한 도시들은 한국은행이 2013년 5월 발간한 ‘전라남도 22개 시군 경제지표 비교’라는 보고서에서 1인당 지역소득(GRDP)으로 열거한 순서 그대로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이 있는 광양이 제일 잘살고, 그 다음이 화학공단이 있는 여수, F1 대회를 유치한 영암, 원전을 가지고 있는 영광이 앞에 있다. 그 뒤를 잇는 곡성과 영광 사이에는 연간 소득 기준으로 1000만원 이상 확 차이가 난다. 나주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2270만원으로, 앞의 세 지역과 확 차이 난다. 그리고 순서에 상관없이 광역 도시로 분류되어 있지만 광주전남 통계에서 같이 처리하는 광주, 2010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1540만원의 지역내총생산을 기록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이 자료를 보다가, 만약 자신의 고향이 광주전남이어야 하고, 그중 하나를 고른다면, 광양이나 여수 정도 아니면 영광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다. 그리고 광주에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 전남 지역의 평균 1인당 지역총생산인 2640만원보다 한참 떨어지는 광주의 1540만원, 수치만 보면 그렇지 않은가? 수도권의 시각으로는 광주 인근 베드 타운 정도라고 할 수 있는 나주보다도 지역내총생산이 낮다니! 서울식으로 말하면 일산이 오히려 서울보다 지역소득이 높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강남보다 분당이 더 잘산다. 이 통계와 추계 분석은 그런 얘기를 해주고 있다.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광양이나 여수는 국가공단을 가지고 있고, 영광 역시 국가시설물인 원자력발전소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영암은 최근에 F1이라는 국제 자동차대회를 유치한 곳이다.
이 수치 그대로 본다면, 그 지역 생태계가 죽거나 말거나, 무조건 철강이나 석유화학단지를 유치해야 하고, 그도 아니면 F1 경기장 시설 혹은 원자력발전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맨발의 경제학> 전편에 나왔던 포항과 울산의 현장 조사 내용이 보여주듯이 수출 의존형 한국 경제에서 이 수치들은 그야말로 도깨비 보고서 같은 것이다. 그 지역 시민들의 실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다.
광주의 1인당 연간 지역내총생산은 전남 평균보다 떨어지고, 1인당 대출액은 광주전남에서 가장 많다. 그런데 재정자립도는 가장 높다. 신도시 놀이, 토건 장난이 만든 이상한 수치다. 광주의 새 중심지 상무지구는 토건 외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다. 사진은 상무지구 내 평화공원과 빌딩군(위).
■ 지역 내 총생산은 떨어지는데 재정자립도는 최고
또 다른 수치, 재정자립도를 보자. 광주는 46.6%, 광주전남 지역 최고이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 그런 지자체 행정의 눈으로 보면 단연 광주는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남지역에서 가장 잘산다는 광양은 39.5%밖에 안되고, 화학공업의 남해안 중심도시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여수는 이보다 훨씬 낮다. 여수엑스포의 후유증 때문에 여수 행정기구를 통째로 팔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 상황을 감안하면, 지역총생산이라는 수치가 얼마나 특정 지역에서 왜곡된 현실을 보여주는지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전남 평균의 재정자립도는 17.2% 정도이다. 역으로 말하면 중앙정부에서 80% 이상의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기 어려운 곳이 전남이라는 지역의 특성이다. 이걸 뒤집어 보면, 경상도 지역에서 불만을 가지는, 아무것도 없는 전남지역에 민주당 정권 10년 동안에 엄청 퍼주기만 했다는 얘기가 된다. 뭐, 비율만 보면 그렇지만 절대 수치로 그렇게 간단하게 얘기할 것은 사실 아니다.
수치 얘기 하나만 더 하자. 비상식적인 수치, 즉 1인당 대출금이 10만원밖에 나오지 않는 신안군을 제외하면 전남 지역에서 가장 대출이 적은 지역은 구례군으로 281만원이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곳은? 1인당 1317만원의 대출을 가지고 있는 목포다. 다른 산업활동 등 기타 통계를 감안하면, 목포는 현재 투기, 그것도 부동산 투기의 도시다. 목포 시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은 아파트 대출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보다 높은 곳, 그곳이 바로 광주다. 1인당 1404만원의 대출금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수치를 결합시키면, 한 가지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광주는 별 산업이나 소득도 없이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면서 시민들에게 더 많은 대출을 가지게 하였고, 그것을 통해서 지역세를 확보해 광주전남 지역에서 보기 드문 46.6%의 재정자립도를 갖추게 되었다…. 인간의 말로 하면, 광주는 토건의 힘으로 광주 시민의 뼛골을 빼먹는 도시였더라! 당연히 국가공단의 힘으로 부동산이 힘을 갖춘 여수나 광양에 토건 현상이 벌어지는 게 맞을 터다. 그보다 더 많은 1인당 대출금을 기록한 광주의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 시절의 많은 친구나 동료들은 광주를 충장로나 금남로라는 지역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추억 속의 한마디! 서울에서 종로가 고령화되는 것에 비해서 훨씬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시가지에 불과하다. 요즘 광주에서 뜨는 지역은 바로 상무지구라는 곳이다. 조선대에서 출발해 금남로를 거쳐 광주역을 넘어 전남대까지 가는, 마치 1980년대 대학생 성지순례와도 같던 그 광주의 거리는 이제 죽어가는 구시가지의 상태일 뿐이다. 2013년의 광주는 바로 상무지구다. 광주의 서쪽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과 김대중 컨벤션센터를 잇는 선의 한가운데 5·18기념공원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 상무지구가 있다. 아, 그리고 그 한가운데 지금의 광주시청이 있다. 광주의 그 쓰라린 아픔을 가지고 신도시 놀이를 하면서 토건으로 장난치고, 유료 순환형 도로를 몇 개씩이나 놓는 그 상황이 너무 가슴 아파서 오랫동안 이곳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정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그 상무지구를 방문했다.
광주시청 전경. | 광주시청 제공
■ 정치인은 5·18로 권력장사 하고 경제인은 토건장사
포항에서, 울산에서 그리고 부산에서 보았던 무슨무슨 파크류의 고층 아파트로 이루어진, 서로 자신의 도시의 강남이라고 자칭하던 바로 그 모습을 광주시청 인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것만 보면 지역 경제에 관한 온갖 통계가 전부 수치상의 장난으로만 보일 듯이 별천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광주시에서 우리도 4대강 사업을 할 수 있게, 정말 열성적으로 유치한 바로 그 영산강이 왼편으로 펼쳐진다.
솔직히 말해보자. 나는 5·18을 두고 민주화인사들이 기껏해야 자신의 자리다툼에 이용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 추억을 가지고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마음껏 토건놀이하는 것도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게 광주의 발전인가? 광주시민의 1인당 대출금을 다른 전남지역과 비교해서 보라. 금남로의 그 아픔을 가지고 민주화 10년 동안 토건놀이하던 곳이 광주시다, 그렇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는 통계치가 내 눈에 보이는 게 없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면서 지난 수년간 내가 만난 경상도 사람들이 “우 박사, 광주의 토건을 봐라. 왜 우리한테만 이렇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냐”고 말하는 것을 눈을 질끈 감고 참았다. 왜냐? 바로, 광주의 이야기니까.
안철수식으로 얘기하면 새 정치 혹은 정치개혁일 텐데, 내 식으로 그것을 말하면 일본을 망하게 했던 토건정치의 청산이다. 앞에 제시한 수치를 두고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으면 한번 해보시라. 정치인들이 5·18로 권력장사를 한 것처럼, 경제인들은 토건장사를 하고 있던 것 아닌가? 나는 오래간만에 방문한 상무지구에서, 눈앞에 펼쳐진 소돔과 같은 모습에서 우리가 지지했던 지난 10년간 민주당 정권의 허실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왜 우리한테만 이래.” 골프장과 댐 문제, 4대강 사업 때문에 수없이 방문했던 경상도 토호들이 내게 했던 말들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했다.
대선에서 민주당이 지고 나서, 내가 만날 수 있던 많은 민주당 인사들에게 ‘광주가 잘해야 한다’ 또는 ‘박원순의 서울시만큼은 해야 한다’, 그렇게 말을 했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맞아, 광주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서울과 이런저런 통계를 비교하면서 ‘서울은 예산이 많고, 특별한 도시 아니냐’ ‘우리는 돈이 없어 힘들다’ ‘박원순은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말들만 했다. 광주의 발전 방향을 두고 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별도로 광주전남 지역의 통계치만 가지고 분석해보니 광주 토호들 혹은 민주당의 광주 토호들이 그동안 얼마나 5·18을 가지고 토건장사를 해먹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였다.
진보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대선에서 졌고, 어지간해서는 다음번 지방선거에서도 질 거다. 70% 이상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그걸 말해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세계 자본주의도, 한국 자본주의도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고, 하다못해 조선일보마저도 ‘자본주의 4.0’ 같은 얘기를 하는 와중에, 광주 상무지구에서는 토건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과는 다르다’ 같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민주당식 화법 외에는 들은 바가 없다.
쉽게 얘기하자. 광주가 바뀌어야 진보가 바뀌고, 그래야 한국의 흐름을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있다. 지난 대선, 문재인의 선거 공약과 기조는 한국 진보정당의 기조를 뛰어넘었을 정도로 혁신적이다. 그런데 이미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광주를 비롯해서 전남의 어느 도시에서도 그런 새로운 변화를 시행하려는 흐름을 보기 어렵다. 중앙에서 못 하더라도 지역에서는 할 수 있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제한적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복지국가 한국’을 외쳤던 지난 대선의 민주당 기조가 최소한 한국 민주주의의 메카라고 하는 광주에서 흐름 비슷한 것이라도 형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래야, ‘수권능력 혹은 통치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상도나 다른 지역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4대강 사업이 영남만이 아니라 호남에서도 갈급하게 요구되었던 것, 그게 우리가 지난 대선에 졌던 본질적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이기고, 한국 자본주의의 형질을 - 본질이 아니라도 -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광주에서 변화가 생겨나야 한다.
■ 한국 자본주의 형질 바꾸려면 광주가 출발점이 돼야
기술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DJ 선생’과의 자그마한 인연이라도 부여잡으면 정치적 지분을 가질 수 있는 구조 정도는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걸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시작하자고 주장하고 싶다. 개혁하기 어려운 민주당의 호남 국회의원들은 차치하고라도,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복지광주, 복지전남에 동의하는 적극적인 20~30대 주자들로 기초의원들은 전부 물갈이하자고 말하고 싶다. 그런 20~30대의 대물결이 광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의 토건광주가 아닌, 풀뿌리에서 다시금 공동체와 연대 그리고 복지를 주장하는 젊은 물결이 시작되지 않는다면, 광주는 개혁되기도 갱생하기도 힘들다. 안철수가 지금의 민주당 구조를 포기하는 것처럼, 경제학자로서 나는 지금 광주의 거버넌스로는 상무지구 한가운데 편안하게 들어가 있는 광주시청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정치적 변화 없이 경제적 변화를 만들기 힘들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5·18의 광주가 그런 개혁을 할 수 없다면,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그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도시는 없다. 토건이 아니라 복지로, 부채가 아니라 공동체로 가야 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 출발이 광주여야 한다. 그게 내가 광주 상무지구에 다시 와서 내린 짧은 결론이다. 정권교체를 원한다면, 2014년 지방선거는 20~30대, 복지광주의 신념을 가진 젊은 정치인으로 싹 물갈이를 해야 한다. 그 방법 외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