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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12) 제주도 올레길

경제/경제와 경영, 관리

by 소나무맨 2013. 7. 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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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12) 제주도 올레길

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ㆍ서민 살찌우는 경제, 올레~ 그 길을 보았네

2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맨발의 경제학’을 연재하면서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주로 짚었다면, 이제는 희망의 단초라도 보여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첫 케이스를 제주올레길로 잡았다. 내가 한국경제가 지향해야 할 한 방향으로 이름붙인 ‘올레길경제’를 현장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올레길경제’라는 것을 처음 떠올린 것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초여름 4박5일 동안 제주 올레길을 걸은 적이 있다. 제주도에는 이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예닐곱 차례 간 적이 있었지만 올레길을 걸을 때만큼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적이 없었다. 이른바 ‘제주도의 재발견’이었다.

올레길은 피라미드 꼭대기에만 맴돌던 돈들이 밑바닥 서민가계 사이에서 돌도록 해준다. 2010년 제주올레의 생산유발효과는 2528억원이다. 올레길 경제는 낙수효과, 토건개발, 재벌 독식,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모델로 이미 현실화·구체화되고 있다. 관광객들이 올레8코스 구간 중문색달해변가에서 해녀들이 직접 판매하는 해산물을 먹고 있다. | 정지윤 기자


■ ‘렌터카 대신 도보’ 관광객 소비패턴 변화

그런데 예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와 올레길을 걸을 때 나의 소비 패턴이 상당히 달라졌음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됐다. 과거에는 제주도에 내리면 렌터카(주로 금호그룹이 운영하는 금호렌터카를 빌렸던 것 같다)를 이용했다. 며칠씩 제주도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렌터카로 가는 게 최고였다. 이 때문에 성수기에 가도 손님들을 기다리는 택시들의 행렬이 길었다. 나는 렌터카를 이용해 호텔이나 콘도로 가서 숙박했고, 식사도 그 안에서 해결한 적이 많았다. 그때는 제주도에 갔다고는 하지만 렌터카와 호텔, 콘도 체인을 운영하는 롯데호텔이나 호텔신라, 하얏트 등 대기업의 돈벌이를 시켜줬던 셈이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지만 골프 여행객들 경우엔 대기업 돈벌이를 시켜주는 비율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반면 올레길 여행에서는 소비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제주도까지 가는 데는 여전히 재벌계 항공사를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달랐다. 올레길을 걷는 도보여행을 해야 했기에 렌터카는 처음부터 불필요했다. 대신 제주공항에서 서귀포 주요 지점을 도는 600번 리무진버스를 단돈 5000원으로 이용했다. 올레 8코스부터 시작해 제주 해안길을 따라 걷다가 배가 고프면 길에서 가까운 동네 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었다. 길을 걷다가 중간에 목이 마르면 생수나 아이스크림을 길가의 슈퍼나 구멍가게에서 사먹었다. 잠도 올레길 근처의 민박이나 펜션에서 잤다. 잠들기 전에 동네 근처나 서귀포 시내의 호프집에서 회포를 풀기도 했다. 결국 제주 올레길 여행에서 내가 쓴 돈이 돌아간 곳은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같은 제주도에 갔지만 그 안에서 내 소비가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크게 달랐다. 물론 내가 지출한 액수는 예전 여행 때보다 크게 줄었으나 나처럼 올레길을 걷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적지 않은 규모다. 개인적으로는 여행할 때 지출액은 줄었어도 여행의 만족감은 훨씬 더 높았다.

그 때 올레길을 걸으면서 머릿속에 흐릿하던 개념 하나가 구체적인 형상을 얻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낙수효과, 토건개발, 재벌 독식, 양극화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경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모델로서 내가 생각하는 구상이 있었다. 한 국가에서 생산되는 부가 소수 상류층이 아니라 대다수 서민들에게 널리 공유되는 그런 경제모델 말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던 추상적 경제모델이 제주올레에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2일 단 하루지만 올레길 여행 겸 취재에 다시 나선 것도 ‘올레길경제’를 현장에서 다시 체감하고,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제주공항에 내려 예의 600번 리무진버스를 타고 제주 풍림콘도 근처에서 내려 오전 9시경부터 올레 7코스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서울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으나 제주도에는 이따금씩 부슬비만 내리는 정도여서 걸을 만했다. 오히려 해가 쨍쨍한 것보다는 간간이 내리는 보슬비가 땀을 식혀주어 좋았다. 간간이 반대편에서 오는 올레여행객들과 마주쳤지만 여행객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이 1년 중 가장 비수기였다. 봄, 가을이나 장마가 끝난 여름 휴가철이 붐빈다고 한다.

법환리를 지나자 올레길 양쪽으로 게스트하우스와 펜션, 카페, 식당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다위 올레 펜션’ ‘올레 커피’ ‘막숙올레맛집’ ‘우리올레’처럼 상호부터가 올레꾼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법환리 포구 근처에 있는 ‘바당소풍’이라는 곳은 ‘속이 얼얼 션하게 들고 먹는 컵빙수’ 등의 문구가 씌어진 칠판을 길 옆에 세워놓고 올레꾼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올레커피’에 들러 캐모마일 아이스티 한 잔을 시켜서 잠시 땀을 식혔다. 제주도 토박이 자매가 2년 전쯤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올레꾼들이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해서 나오는데 다른 올레꾼들이 땀을 식히러 들어오기도 했다. 조금 더 걸어가다가 올레길 바로 옆에 근사한 외관의 브런치카페가 보여서 샌드위치를 시켜 먹었다. ‘카페 7373’이라는 곳이었는데, 근사한 외관 때문인지 주로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더 걷고 싶었지만 중단하고 큰 도로로 나와 택시를 타고 제주올레사무국을 찾았다. 서귀포시내 근처 해안가에 자리 잡은 사무국 건물에는 10여 명의 직원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직원이 총 13명이고 1년 예산이 4억원 정도여서 박봉이 분명할 텐데도 직원들의 얼굴은 활기차고 열정이 넘쳤다.

■ 밑바닥까지 돈이 도는 ‘실핏줄 경제’

사무국에서 만난 허지효 기획팀장은 제주 올레길이 생긴 이후 올레길 주변에 들어선 카페나 펜션 등만 해도 최소 200곳이 넘을 거라고 했다. 새로 생긴 곳만 그렇지 기존에 있던 마을 슈퍼나 민박, 펜션 등에 사람이 더 몰리는 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허 팀장은 “모든 곳이 다 장사가 잘 되는 건 아니어서 숙박업소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하는 등 좀 더 많은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또 제주올레 코스가 지나는 마을과 기업들을 결연해주는 1사 1올레 마을 결연사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고 한다.

허 팀장은 올레길의 경제적 효과를 설명하면서 ‘실핏줄 경제’라는 표현을 썼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제주도에 오면 제주시내와 중문단지, 서귀포시내, 그리고 성산일출봉 정도만 둘러보고 가는 관광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올레길이 열리면서 과거에는 가지 않던 곳까지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닿고 있어요.” 올레길은 과거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만 맴돌던 돈들이 밑바닥 서민가계 사이에서 돌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지역까지 사람들 발길이 가닿게 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이건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상에서 아주 미세한 틈새시장까지 만들어진다는 ‘롱테일경제학’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구현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서귀포 올레7코스 종점의 동네 슈퍼(위)와 골프장. 렌터카로 이동해 호텔·콘도에서 머무는 골프장 이용객의 소비는 주로 대기업 이윤 창출에 기여한다. 반면 도보 여행 중 동네 가게에서 먹고, 동네 민박·펜션에서 자는 올레길 여행객의 소비는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준다. | 정지윤 기자


아이들과 함께 본 애니메이션 <카스(cars)>에는 미국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발길이 끊긴 시골의 멋진 풍경이 나온다. 우리도 고속도로를 곳곳에 만들면서 물류 흐름을 앞당겼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 집중을 가속화시켰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지역 곳곳의 특성은 잊혀지고 나중에는 사라지게 됐다. 그런데 올레길은 제주도의 후미진 곳곳을 다시 실핏줄처럼 이어 살려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제주 올레의 경제적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문화체육관광부 의뢰로 작성된 ‘도보여행 활성화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제주올레에 의한 생산유발효과는 제주지역에서만 연간 2528억원, 전국 3311억원으로 추정됐다. 당시 전망치이기는 하지만 2015년에는 이 수치가 각각 9548억원, 1조2505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됐다.

사실 제주올레의 간접적 효과까지 생각하면 그 파급효과는 훨씬 커질 것이다. 북한산 둘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등 전국 곳곳에 생겨난 트레일들을 생각해보라. 제주올레는 외국에 수출도 되고 있다. 일본 규슈에 올레코스를 개설하는 등 올레 브랜드와 시스템을 수출한다. 제주올레는 올해에만 구마모토 아마쿠사 등 일본에 네 개 코스를 추가로 개설하는 사업을 맡고 있다. 국내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에 물소리길 코스를 개발해 주기도 했다.

이 모든 사업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 거의 한 푼 없이 제주올레재단이 뜻있는 시민들의 후원과 자체 수익사업에서 나온 소액의 예산으로 6년여 동안 일궈온 결실이다. 나는 모든 정부 예산사업 가운데 이 정도 돈으로 이 정도 성공을 이뤄낸 경우를 보지 못했다. 현실은 투자한 비용도 못 뽑아내는 대규모 낭비성 사업들로 넘쳐나고 있다.

■ 대기업만 살찌우는 ‘골프장 경제’를 넘어서

지금까지 제주도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도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2003년 발표된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포용하는 국제교류도시, 경제를 선도하는 청정산업도시 등 여러 슬로건을 내걸며 거창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거액의 재정을 투입해 각종 관광지와 레저스포츠 시설을 만드는 부동산개발사업으로 귀결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같은 부동산 개발사업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은 제주국제컨벤션센터는 파리를 날리며 매년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의 적자를 쌓고 있다. 정부와 제주도 돈으로 그 시설을 지은 재벌계 건설업체에 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다. 설사 그런 식의 대규모 리조트나 시설을 지었다고 해도 결국 혜택을 보는 것은 주로 대기업이었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식의 경제발전 방식을 채택해 왔다. 국민의 세금을 이용해 대규모 토건사업을 벌이거나 재벌대기업을 집중 육성해 수출하는 식으로 성장했다. 워낙 민간자본이 취약하다 보니 정부가 해외 차관이나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모은 민간자본을 ‘큰 놈’들에게 배분해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대기업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늘고 소득도 증가하는 시기가 있었다. 이른바 낙수효과가 작동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낙수효과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특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기업들은 정리해고를 일상화했고 비정규직을 늘렸으며 외주를 일상화했다. 다단계 하도급과 협력업체 납품가 후려치기도 더욱 심각해졌다. 그 결과 재벌 대기업들의 배는 불렀지만 아래로 떨어지는 떡고물은 점점 줄었다. 대규모 개발사업도 재벌 대기업들만 독식할 뿐 하도급 업체들은 늘 쫄쫄 굶었고, 재벌 대기업은 협력업체들의 납품가를 후려쳐 배를 더욱 불렸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관광 활성화 등 막대한 효과가 생길 거라고 떠벌리며 22조원이나 투입한 4대강 사업이 지금 어떻게 됐나.

쉽게 말해 현재 한국경제는 골프장 경제와 같은 방식이다. 어느 지역에 골프장이 지어졌다고 해서 그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골프장에 가면 골프 이용료를 내고 게임부터 식사와 숙박까지 모두 골프장 안에서 해결한다. 골프장 18홀 한 곳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150~200명 정도의 인력을 고용하지만 대부분은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은 50~6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 골프장 안에서 발생하는 수익 대부분은 개발업자가 챙길 뿐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경제는 돈이 재벌기업 등 소수의 수중에서 돌 뿐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 경제, 낙수효과가 사라진 경제다.

이제는 피라미드의 밑바닥을 살찌우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앞서 소개한 올레길이 대표적 모델이다. 올레길은 밖으로 열려 있으며 올레길 주변의 동네 곳곳에 여행객들이 떨어뜨리고 간 돈이 돈다. 더구나 그 돈들은 서민들 사이에서 돈다. 서민들에게 그 돈 한두 푼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서민경제가 튼튼해진다.

또한 그런 흐름이 만들어지면 제주도 주민들은 과거처럼 난개발식 관광지 개발보다는 비용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 제주의 자연스러운 경관을 살리는 생태관광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자연경관도 더 잘 보존된다. 이 같은 흐름이 확산되면 얼마든지 밑바닥에서부터 물이 솟아올라 경제 전반에 활력이 생기는 ‘분수효과’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는 골프장 경제에서 벗어나 올레길 경제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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