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 U시티 한계 뛰어넘을 해법 찾아라
[테크M=황치규 기자]연초부터 스마트시티가 이슈다. 최근 막을 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주제도 스마트시티였고 비슷한 시점에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스마트시티를 성장 동력으로 강조하고 나섰다. 민관 협력 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엔 스마트시티 특별 위원회까지 만들어졌다.
얼핏보면 스마트시티라는 큰거 한방이 한국에서 바로 터질 것 같는 분위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알맹이 없이 여기저기에서 구호만 울려퍼지는 상황에 가깝다. 스마트시티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홈처럼 실체를 갖춘 생태계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갈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술 중심의 접근 벗어나야
스마트시티가 화두가 된 것은 최근이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스마트시티는 대형 이슈였다. 당시에는 스마트시티보다는 U시티(U-city)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당시 U시티는 구호에만 그친게 아니라 상당한 실체를 갖춘 키워드였다. U시티를 표방하는 프로젝트들도 진행됐다. 2003년부터 시작된 송도국제도시 U시티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송도 U시티 사업은 결과적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비전을 현실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와 거대기업들이 송도 U시티 사업에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사용자들 사이에서 생각보다 확산이 되지 않으면서 존재감이 서서히 약해졌다. 2000년대 초반의 U시티 프로젝트는 현재 많은 이들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있다.
당시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송도 U시티는 ICT 위주였다. 센서 네트워크 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센서 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스마트폰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는 스마트시티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0년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기술적인 걸림돌들은 대부분 제거됐다. 센서 가격도 많이 내려갔고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돼 센서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마트시티 관련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송도 U시티에 적용했던 접근법을 지금 재활용하면 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술에 너무 집중하면 같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많다.
남영숙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사무총장은 “세계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들을 보면 주민 참여에 기반하고 있다”면서 “기술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 콘셉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스마트시티기구에 따르면 주목받는 스마트시티는 유럽에 많이 포진해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싱가포르, 스웨덴 스톡홀름, 스위스 취리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스마트시티로 꼽히고 있다.
남영숙 총장은 “유럽은 오래전부터 시민 참여 문화가 자리를 잡다 보니 환경, 에너지, 의료, 교육 등에 초점이 맞춰진 스마트시티가 강조되고 있다”면서 “유럽은 사용자가 실험한 뒤 직접 써보고, 그걸 바탕으로 솔루션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잘 돼 있다. 이와 관련해 활동하는 스타트업들도 많다”고 전했다.
플랫폼 전략을 강조하는 이유
유럽과 한국은 문화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유럽과 같은 주민 참여 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주민 참여 문화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질 리도 없다. 그런 만큼 한국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말은 그럴듯 해보이지만 사실 스마트시티를 명쾌하게 정의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황종성 미래전략센터 연구위원은 “스마트시티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의가 제각각이다. 서비스 중심으로 보느냐 플랫폼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스마트시티의 모습은 다르게 보일 수 밖에 없다”면서 “어떤 스마트시티를 만들 것이냐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비스 중심으로 보면 스마트시티가 갖는 의미는 좁아진다. 교통이나 복지 등 사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질 경우 큰 그림을 담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크게 보려면 플랫폼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종성 위원은 “지금은 스마트시티를 서비스 관점에서 보는 이들이 많지만 판을 크게 그리려면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앞으로의 도시는 자율주행차가 제대로 다닐 수 있는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로 나눠질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도시 구조를 유지하면 자율주행차가 제대로 달리기 어렵다. 황종성 연구위원은 “기술과 제도가 여기에 모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떤 스마트시티를 고민하느냐에 따라 서비스 수준 차이가 엄청날 것이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반 스마트시티는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 스토어처럼 스마트도시도 플랫롬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경쟁력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만만치는 않지만 플랫폼을 제대로 만들어야 큰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 차원의 스마트시티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싱가포르가 꼽힌다. 황종성 연구위원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국가 차원에서 플랫폼 전략을 그리고 필요하면 글로벌 기업과도 적극 협력했다. 자체 역량과 글로벌 기업들의 전문성을 결합해 의미있는 스마티시티 환경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싱가포르 외에 다른 나라들도 플랫폼 중심의 스마트시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스마트시티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이후 연방정부가 나서서 생태계 확산을 위한 판을 까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이후 뉴욕, 시카고,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의 도시에서 스마트시티 관련 생태계가 확산되고 있다.
남영숙 총장은 “중앙 정부가 주도하는 가운데 도시, 민간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오래전부터 스마트시티에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행보가 눈에 띈다. 알파벳 산하 사이드워크랩스(Sidewalk Labs)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이드워크랩스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도시 교통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공 교통, 자가용, 자전거, 도보 등 사람들이 이동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의 비율과 방향 등이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측정돼 의사결정 과정에 그때 그때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스마트시티에 대한 구호는 많이 울려퍼지고 있지만 정확한 방향은 잡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4차산업 혁명위원회 내부에서도 방향에 대한 논의 정도가 이뤄지고 있어, 큰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는 확실치 않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플랫폼적 접근, 이해 관계자들 간 협업이 미래 지향적인 스마트시티를 구현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로 강조되고 있다.
[테크M=황치규 기자(delight@techm.kr)]
<본 기사는 테크M 제58호(2018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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