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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인천강을 걷다

강과 하천/전북의 강 이야기 시리즈

by 소나무맨 2017. 4. 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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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인천강을 걷다


< 인천강 하류 연기교에서 바라본 인천강의 모습>


 "향수병에 시달렸던 소년은 가난 때문에 비가 오지 않아도 눈물이 젖고, 바람 불지 않아도 취한 듯 흔들거렸던 가난에 몸부림한 고향 사람들의 힘겨웠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 김상휘 인천강 모래톱 사람들 중


 고창 출신인 김상휘 소설가는 인천강에 대한 향수가 무척 진하다.

 그의 소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소제목을 달면서 인천강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봄이면 꽃비 내리는 소릿재의 빨래터 이야기, 여름이면 둥근달 아래 멱감는, 가을은 선운산 주홍빛이 비추이는 강물의 일그러짐을....

 그래서 그의 소설을 수채화를 보는 듯 아련하고 구수한 고향의 냄새를 간직했다고 하는 듯하다.


 인천강은 참 묘한 매력을 지닌 강이다.

 전북의 강을 말하자면 만경강과 동진강, 금강, 섬진강을 이야기하며 4대강으로 표현한다.

 여기에 5대강을 말할 때에는 인천강이 포함된다.



<고창천(왼쪽)과 고수천(오른쪽-인천강 본류)이 만나는 인천강 두물머리.



 인천강은 퇴계 이황 문하의 변성진 서생으로부터 출발하면 좋을 듯하다.

 그 이유는 인천강이라는 명칭은 바로 그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인천강은 조선 명조 때 변성진이 지금의 인천강변 영모정마을에 초당을 짓고 살았는데 해마다 여름철이면 홍수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입자 강을 어질게 다스려 주민들의 근심을 덜어줘야 한다는 뜻에서 '어질고 인자로운 강' 이라고 지었다.

 또 다른 얘기는 변성진의 호가 인천이어서 그의 호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하기도 한다.

 강의 이름이 어떠하든 변성진이 인천강변에 초당을 지은 것은 강변 기암절벽들이 즐비하고 산수가 비경에 이르고 있어, 감탄했기 때문이란다.

 

 고창군민들이 인천강으로 부르고 있지만 법적 명칭은 주진천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서 인천의 별칭이 이진천이라고 하다 다시 주진천으로 변했는데 그 시기가 일제강점기라 한다.

 주진이라는 이름의 등장은 1899년 발간된 고창군읍지 교량조에 주진교재관문서거이심리로 나와있기 때문이다.


 인천강(속칭 인내강)은 총 3개의 지류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고수천(인천강 본류)으로, 고수천은 고수면 은사리 수량동 명매기샘에서 발원하며, 이곳이 바로 인천강 가장 긴 지류의 발원지이다.

 두번째는 고창천이다. 고창천은 월산리에서 발원하여 고창읍을 관통한후 도산마을에서 고수천과 합류한다.


<고창읍내를 관통하는 고창천. 강살리기 고창군네트워크가 이 곳의 수질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


<맑은 도랑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 실천할 내용을 담은 실천안내판>


세번째는 주진천인데 성송명 판정리에서 발원해 고창선과 합수해 흐른다.

참고로 이 지역 주민들은 고수천을 본류로 보고 있으며 국토해양부는 주진천을 본류로 정리하고 있어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인천강 여정에서는  고창천을 따라 이동했다.

 고창고인돌테마공원과 선운사로 이동하는 길목 학전교에서 선탄마을 앞 고창천을 담아봤다.



 이어 아산면교차로에서 인천강변로를 따라 이동하는 길을 택했다.

 이 길을 가는 이유는 2가지.

 고수천(인천강 본류)과 고창천이 만나는 장소가 있을 뿐 아니라 생태다양성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다는 운곡저수를 방문하기 위함이다.

 고수천과 고창천이 합수되는 두물머리지역은 하갑리 독곡마을 근처.

 이 곳 두물머리를 좌우로 하갑리와 대동리로 나눠지는 경계이기도 하다.

 이 곳 두물머리에서는 바로 앞산의 기암절벽이 눈에 띈다. 이 곳에서 만난 한 할머니(마을주민)의 말로는 그 산의 이름은 범벅산이라고 한다.

 특이한 이름이라 다소 믿기진 않지만 어르신의 말씀에 거짓이 있으랴 생각하며 '범벅산이 큰 인천강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곡마을 인근의 고창천(왼쪽)과 고수천(오른쪽) 합수지점>


<두물머리 지점에 있는 범벅산>


 이어 원평교차로에서 운곡로를 타고 운곡저수지로 향했다.

운곡저수지는 생태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으로 운곡습지보호지역이다. 고창의 운곡습지는 산지형 저층습리로,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연환경이 보전된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계단식 논 등으로 이뤄진 과거의 경작지가 더이상 활용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서 폐경지와 같은 유휴농지의 습지복원 사례로 그 가치가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운곡습지는 멸종위기야생동물인 수달과 삵, 말똥가리,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등 5종의 법적 보호종을 비롯해 식물 459종, 포유로 11종, 조류 48종, 곤충 22종, 양서파충류 9종 등 549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운곡저수지의 모습>


<운곡습지 초입부>


<운곡습지 생태탐방로>


 운곡리를 지나 구암리로 들어서면 인천강에 용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이 나온다. 이 곳에 들어서면 탄성을 자아내는 기암괴석을 볼 수 있다. 마치 호주의 에어즈락을 상기시키는 듯한 모습이다.

 바로 병바위가 그것이다.

 봉우리가 기이하며 주변 경관도 빼어나 예로부터 금반옥호와 선인취와의 명단으로 불렸다.

 이를 풀이하면 "선인들이 금 소반에 술상을 차려놓고 술과 풍류에 취해 누워있는 형상이라는 의미다"

 앞쪽 병바위는 선인들이 술에 취해 술병을 꺼꾸로 업어놓은 모양이라고 하고, 인근에 있는 금반등은 금으로 만든 소반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병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 큰바위얼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산초등학교 뒤편으로 두암초당이 전자바위 중턱에 앉아 있으며 인천강이라는 이름의 시초인 변성진 서생이 여기에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왼쪽 병바위와 전자바위>



<다른각도에서 본 병바위. 병바위 앞으로 인천강이 휘돌아 흐르고 있다>



 이 곳을 더 내려와 이제 인천강의 하류지역으로 들어선다. 그 지역을 인천강교가 가로지르고 있다.


<인천강교에서 바라본 인천강>


하류지역은 갯벌과 염생식물 군락이 잘 발달해 있어 하류 지역에서 황새, 검은목두루미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10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인천강 물줄기는 실개천이나 다름 없지만 검은머리물떼새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암교 밑 부근에서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돼 인천강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후도 보인다.


 이제 인천강의 마지막까지 내려왔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연기교가 있다. 연기교가 알려진 것은 인천강을 따라 내려오는 질마재길(총 40km) 3코스의 시점이자 종점이기 때문이다. 질마라는 말은 말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루로 고갯길이 나지막해 숨가프지 않고 넘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연기교에서 소요산이 눈에 들어온다. 구전에 따르면 이 곳 소요산은 8만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된 소요사 1개뿐이다.

 

<연기교 위에서 바라본 인천강의 모습>


<연기교와 소요산>


 이곳을 지나면 인천강의 기수역에 다다른다.

 하구에는 많은 나루터가 있지만 쉽게 찾을 수 있는 나루터는 좌치나루터다.

 좌치나루터는 심원면 용기리와 부안 선운리 고룡동을 연결하던 조선시대 나루터로, 소금장수들이 질마재를 넘어 무장형의 해변에서 소금을 서러 다니거나 심원면 사람들이 부안 난산장을 오가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인천강은 이곳 곰소만에 이르러 강의 이름을 잃고 바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가운데 위편 죽도와 희미하게 보이는 산의 모습이 부안 곰소항이 있는 곳>



※ 이 글은 강살리기 도민홍보사업의 일환으로 전북의 강에 대한 자료취합과 동시에 도민들에게 전북의 강을 알리는 홍보로 쓰이고 있으며, 촬영된 사진은 2017년 4월 18일입니다.

 사진이 필요한 경우 전라북도강살리기추진단에 문의하시면 무료로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출처 : (사)전라북도강살리기추진단
글쓴이 : 강살리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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