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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방분권운동을 위한 제언

시민, 그리고 마을/지역자치분권운동

by 소나무맨 2016. 12. 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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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방분권운동을 위한 제언

 

김 형 기(경북대 교수,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고문)

 

 

1. 지방분권운동의 등장 배경과 전개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지방에 결정권을, 지방에 세원을, 지방에 인재를’ 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그동안 전국 각 지역에서 지방분권운동이 전개된 배경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지방의 위기와 껍데기뿐인 지방자치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모든 영역의 자원과 구상기능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앙집권-서울집중체제 아래에서 전국 대부분 지역의 삶터와 일터가 황폐화되고 있는 현실이 지방분권운동이 일어나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인 것이다.

아울러 ‘결정권 없는 지방자치, 세원 없는 지방자치, 인재 없는 지방자치’로 특징 지워지는 한국의 지방자치가 지방분권운동이 등장하게 된 또 다른 주요 배경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중앙정부가 핵심적 결정권과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 자치단체에는 인사권과 조직권이 없다.

이처럼 사회 모든 영역에서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서울수도권 집중, 지역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법과 제도 그리고 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세원도 부족하며 인재도 부족한 지방자치 현실이 지방분권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다. 요컨대 지방의 위기와 지방자치의 위기가 이 운동의 등장배경이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지방민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순응, 퇴장, 발언이라는 세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순응은 주변화되고 있는 지방에서 다소간 불평불만을 가지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주어진 체제 아래 살아가려는 대다수 지방민들이 취해온 태도이다. 순응은 분수를 지키는 것으로 미화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존심도 자부심도 없이, 현실을 타개하려는 적극적 의지도 없이 혁신할 의지와 능력도 없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퇴장(exit)은 지방의 소수 상층민과 다수 서민층 사이에서 나타난 대응방식이었다. 서울의 더 높은 지위로 상승하거나 더 좋은 교육문화 향유기회를 위해서, 혹은 지방의 폐쇄성, 배타성, 보수성에 실망하여 지방을 탈출하는 소수의 엘리트층이 있다. 다수의 서민들은 먹고 사는 취업기회와 생업을 위해서 지방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이러한 퇴장은 지방의 황폐화를 가속화시키고 서울집중을 강화하였다.

순응과 퇴장은 본의 아니게 중앙집권-서울집중체제를 고정화시키고 더욱 강고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서울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모든 문제를 서울 중심으로 생각하는 서울중심주의가 이러한 순응과 퇴장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그 동안의 중앙집권-서울집중체제는 이러만 지방민들의 적응과 퇴장이란 대응방식에 힘입어 요지부동으로 유지되어왔다.

발언(voice)은 이러한 적응이나 퇴장과 달리 지방에 남아서 살면서 중앙집권-서울집중 체제라는 구조를 개혁하고 지역의 자기혁신을 추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려는 태도이다. 지방분권운동은 이와 같이 자신의 삶터와 일터의 황폐화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개혁과 자기혁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행위이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방분권운동은 전국 각 지역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집단적 발언(collective voice)행위이다. 지방의 위기에 단순 적응하거나 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집단적 발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방분권운동은 중앙정부의 지원에 의지하여 지역을 발전시키려는 중앙정부 의존적 태도와도 구분된다. 결정권과 세원과 인재를 가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지역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적극적 태도가 바로 지방분권운동으로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인식과 태도를 가진 전국 각 지역의 각계 지식인들이 2001년 9월 3일에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전국 지역 지식인 선언’을 함으로써 지방분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정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일 먼저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강원, 광주전남, 대구경북, 대전충남, 부산경남, 전북, 충북 등 7개 지역별로 선언을 마치고 오후 3시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전국의 대표들이 모여 공동으로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지식인 지방분권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은 학계 1,281명, 문화계 163명, 의약계 155명, 교육계 344명, 여성계 126명, 언론계 391명, 종교계 165명, 법조계 100명, 기타 31명 등 총 2,757명이었다.

선언문에는 지방의 위기의 근본 원인이 중앙집권-서울집중 체제임을 밝히고 지방을 살리기 위해 획기적인 지방분권 정책을 실시할 것을 정부당국에 요구하는 한편, 지방분권 실천을 위해 지방분권운동에 나설 것임을 다짐하고 국민들에게 지방분권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지식인 선언은 한국지역사회학회라는 조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지역사회학회는 대구의 대구사회연구소, 부산의 부산경남지역사회연구센터, 광주의 전남사회연구회, 전북의 호남사회연구소 등 영호남의 4개 연구단체가 모여 2001년 2월에 창립한 학회이다.

이 학회의 창립이 있기 전에 이들 영호남 4개 지역연구단체 대표들이 2000년 10월 말 지리산에 모여 지방분권을 위한 지식인선언 관련 논의가 있었다. 즉 영호남 4개 지역연구단체의 대표자회의에서 지방분권 공동연구와 지방분권운동 공동 추진을 합의하였다. 이 모임이 바로 오늘의 지방분권운동이 태동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모임이 되었다. 이 모임에서는 공동으로 창립할 한국지역사회학회를 지방분권연구에 특화하는 전문연구단체로 위상을 부여할 것을 합의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인 선언이 있기 전에 두 가지 중요한 지방분권 흐름이 있었음을 기록해야 한다. 그 하나는 2000년 10월 지역의 NGO단체들이 중심이 된 ‘지방분권과 자치를 위한 전국시민행동’의 출범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처음으로 지방분권과 자치를 위한 행동을 선언한 뜻깊은 이 연대 조직은 별다른 실천 없이 사실상 NGO선언으로 끝나고 곧 해산되고 말았다. 이 흐름은 행정학자들과 이들 NGO들이 참여한 ‘지방자치헌장 선포’(2001년 3월)로 연결되고 흡수되었다.

‘지방분권과 자치를 위한 전국시민행동’과 자치헌장 선언 그룹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중 지방자치를 강조하는 편이었다. 지방분권을 중심 키위드로 채택한 것은 지식인 선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호남의 시도지사들이 2000년 5월에 지역균형발전을 요구하는 선언을 한 바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키워드로 내세운 시도지사 선언의 내용에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내실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지방분권운동에서 사용하는 지방분권 개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학자들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는 지방분권이란 개념은 크게 보야 다음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한다. 하나는 중앙정부에서 자치단체로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수도권에서 지방/비수도권으로 자원을 분산하는 것이다.

이처럼 권한이양과 자원분산을 포함하는 지방분권이 이루어져야 지방자치도 제대로 실시될 수 있고 지역균형발전도 가능하다. 지방분권은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핵심적 필요조건이다. 이런 까닭에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는 그룹들이 약간의 차이를 가지면서도 지방분권운동으로 하나로 폭넓게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지식인 지방분권 선언 이후 지식인그룹과 NGO그룹이 결합하여 지방분권운동조직이 광역단위 지역별로 결성되기 시작한다.

2002년 2월에 ‘지방분권운동 전국조직 준비소위원회’ 제1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지식인선언그룹과 NGO그룹이 중심이 되어 지방분권운동 전국조직을 창립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각 지역별로 조직화 작업에 들어갔다. 2002년 4월 13일에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가 창립되었다. 이어 6월 7일에는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는 처음으로 지방분권운동포항본부가 창립되었다. 9월 25일에는 지방분권운동안동본부가 창립되었다.

2002년 10월 12일에는 지방분권운동 전국조직 준비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여기서 조직구조를 대표자회의, 상임공동대표, 운영위원회, 정책위원회, 사무국 체계로 하기로 하였다. 10월 26일의 2차 회의에서는 제2차 준비위원회에서는 조직명칭을 ‘지역균형발전과 민주적 지방자치를 위한「지방분권국민운동」으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조직의 네트워크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표자회의, 운영협의회, 주사무국 체계로 변경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전국 조직이 준비되고 있는 가운데 10월말에서 11월초에 걸쳐 지방분권부산운동본부 창립(10. 30), 지방분권운동광주전남본부 창립(11. 5), 지방분권운동대전충남연대 창립(11. 5), 지방분권운동강원본부 창립(11. 6) 등으로 지역조직이 창립되었다. 아울러 기존의 전국 조직으로서는 처음으로 경실련이 참여하기로 하였다.

마침내 11월 7일에는 ‘지역균형발전과 민주적 지방자치를 위한「지방분권국민운동」’ 창립대회가 대구의 경북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창립 당시 참여한 조직은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지방분권운동부산본부, 지방분권운동광주전남본부, 지방분권운동대전충남본부, 지방분권운동강원본부 등 6개 지역조직과 경실련이었다.

창립대회에서는 지방분권특별법, 지역균형발전특별법, 지역혁신촉진법 등 ‘지방 살리기 3대 입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를 하고, 지방분권 10대 의제를 발표하였다. 지방분권운동의 정신을 담은 창립선언문을 채택하고 지방분권운동이 지방과 서울을 동시에 살리는 상생의 운동임을 밝히면서 운동에 동참을 호소하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하였다.

전국 조직 창립이후 지방분권운동충북본부 창립(11. 18), 지방분권운동전북본부 창립(11. 22)이 이어졌다. 현재 지방분권운동경기본부와 경남본부가 준비위원회 상태에 있고 서울본부도 만들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전국의 각 광역 권역별 운동본부의 네트워크 조직이 전국조직인 ‘지방분권국민운동’이다. 이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사회운동조직이 중앙집권적으로 조직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방분권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각 지역조직은 중앙조직의 지부(branch)가 아니고 독자성을 가지는 본부(center)이다. 하향식(top-down) 조직이 아니고 상향식(bottom-up) 조직이다. 전국조직은 있으나 중앙조직은 없다.

전국조직 창립이후 지방분권운동은 지역수준에서 심포지엄, 토론회, 캠페인, 지지선언 유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전국수준에서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지방분권 국민협약을 받아내는 활동을 하고 전국 동시 지방분권 캠페인을 개최하였다.

때 마침 16대 대통령선거 시기에 지방분권을 최대한 이슈화시키기 위해 각 지역 신문과 방송의 후보 초청토론회와 정책 공약 분석 작업등에 지방분권운동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특히 지역별 대선후보 TV초청토론회에서 지역언론들이 지방분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함에 따라서 대선 후보들이 지방분권 관련 공약을 주요 공약으로 채택하게 만들었다.

대선 시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활동은 대통령 후보들에게 지방분권 국민협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지방살리기 3대 입법의 제정과 지방분권 10대 의제의 실현, 지방분권을 추진하는 강력한 기구를 대통령 산하에 둘 것을 약속하는 협약을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12월 6일 대전),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12월 8일 대구),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12월 11일 부산)가 지방분권 국민운동 의장과 체결하였다.

지방분권 국민협약은 주요 대선후보들이 모두 체결함으로써 새 정부가 지방분권을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틀을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마침내 정치권에서 지방분권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지방분권 국민협약을 지킬 것을 확인했지만 아직까지 지방분권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지방분권의 한 측면인 자원분산은 역대 어떤 정부에 비해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측면인 권한이양은 기대와 달리 별 진전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대안적 발전운동으로서의 지방분권운동

 

지방분권운동은 과연 어떤 운동인가? 이 운동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지방분권운동은 지역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운동이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은 과잉과 과밀로 엄청난 낭비와 비효율이 초래되고 있고 지방은 부족과 과소로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앙집권-서울집중체제는 지방과 서울의 경쟁력을 모두 떨어뜨리고 있으며, 지방주민과 서울 주민의 삶의 질을 함께 떨어뜨리고 있다. 지방분권은 중앙정부에서 자치단체로 권한을 이양하고 서울/수도권에서 지방/비수도권으로 자원을 분산시키는 과정이다. 이러한 지방분권을 통해 지방이 결정권을 가지고 서울과 수도권의 과잉과 과밀이 해소되면 국가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으며, 지방민과 수도권 주민의 삶의 질을 다 같이 높일 수 있다. 말하자면 서울이 다이어트를 해야 서울과 지방이 함께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지방분권운동은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여 지방/비수도권과 서울/수도권을 동시에 살리는 상생의 운동이다.

 

둘째, 지방분권운동은 대안적 발전 운동이다.

지방분권운동이 단순히 중앙정부로부터 자치단체로 권한 몇 개를 더 이양하고 서울에 집중된 자원을 지방으로 좀더 분산하자는 운동에 머문다면 굳이 이를 사회운동 차원에서 전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방분권운동은 ‘지방분권-주민자치-지역혁신’을 통한 지역경제의 내발적 발전을 추진하려는 운동이다. 더 나아가 지방분권운동은 ‘참여-연대-생태’라는 기본가치를 지향하는 지역의 내발적 발전(endogenous development)을 도모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발전(alternative development)운동이다. 대안적 발전모델은 주민중심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이며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이다. 이러한 대안적 발전모델은 한국에서 21세기 새로운 지역발전모델일 뿐만 아니라 국가발전모델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지방분권운동은 국가경영패러다임을 바꾸는 운동이다.

 

셋째, 지방분권운동은 정치운동, 경제운동, 교육운동, 문화운동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개되는 총체적 사회개조운동이다.

대부분의 지역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매고 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유망한 미래 산업이 드물며, 미래 비전이 없다는 점에서 위기상황이다. 지역경제의 위기는 실물부문의 침체뿐만 아니라 금융부문의 심각한 위축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방대학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서울소재 대학과 지방대학간의 교육자원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지식기반경제에서 지역발전의 중심축이 되어야 할 지방대학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지역문화를 꽃피울 인적 물적 자원이 빈약하기 그지없다. 문화가 곧 경쟁력이 되고 있는 21세기에 지역문화의 빈곤은 지역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지역 언론도 빈사 상태에 있다. 이를 극복해야할 지역정치는 중앙정치에 종속되어 지역발전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무기력증에 빠져있으며 오히려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러한 지방의 총체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방분권운동은 한국사회를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총체적 사회개조운동일 수밖에 없다.

 

넷째, 지방분권운동은 주민자치운동 및 지역혁신운동과 보완성을 가지는 운동이다.

지방분권운동이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중앙집권․서울집중 체제라는 구조에 대한 개혁운동을 의미한다면, 지역혁신운동은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지역 자신의 낡은 패러다임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주체개혁운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개혁과 주체의 혁신은 맞물려있다. 지방분권이란 구조개혁이 있어야 지역혁신이란 주체의 혁신이 가능하고 지역혁신이 있어야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실현할 수 있다. 지역혁신을 통한 지역주체들의 능력 향상이 없으면 지방분권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없다. 주민자치운동은 지역수준에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운동이다. 주민자치와 지방분권이 결합되어야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주민들에게 더 좋은 정치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주민들로부터 그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갈 수 있다.

 

다섯째, 지방분권운동은 대안적 발전을 추구하는 지역내외의 각계계층이 참가하는 계층연합․지역연합운동이다.

지역 내에서 지방분권운동은 지방분권에 동의하는 각계계층이 동참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지방분권운동은 대안적 발전모델을 지향하는 주민자치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존의 개발지상주의적 성장연합(growth coalition)과는 다른 참여․연대․생태의 가치를 지향하는 대안적 발전연합(alternative development coalition)에 기초하여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분권운동은 지역내 대안적 발전연합의 지역간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역연합운동이다. 요컨대 지방분권운동은 대안적 발전모델을 추구하는 계층연합․지역연합 운동이다.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방분권운동은 지식인 그룹, NGO그룹, 자치단체가 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새로운 사회운동이다.

여섯째, 지방분권운동의 철학은 지역의 자기결정과 자기책임에 기초한 자주관리이다.

자기 지역의 일은 자기 지역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짐으로서 자기 지역을 스스로 관리해가는 것, 이것이 지방분권운동의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에 기초하여 지방분권운동의 기본방향은, 지방에 결정권을, 지방에 세원을, 지방에 인재를, 이란 3대 기조에 따라서 전개되어야 한다. 지방에 결정권이 주어지고 지방에 세원이 확충되며 지방에 인재가 모여야 자기결정과 자기책임에 기초한 자주관리 사회를 지향할 수 있다. 각 지역의 자기결정권은 지역간 협력을 전제로 한다. 지역간 협력 없는 각 지역의 독자결정은 지역간 분열과 대립을 초래할 것이다. 자기결정권과 자기책임을 가지는 지역들 간의 자유로운 연합과 자율적 협력을 통한 새로운 공동체 사회의 형성, 이것이 바로 지방분권운동이 장기적으로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의 비전이다.

 

 

3. 지방분권운동의 과제

 

지방분권운동은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문제의식 아래 황폐화되고 있는 지방을 살리려는 지방민들의 절박한 생활상의 요구에서 일어났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이 운동은 국가경영 패러다임을 바꾸는 운동으로서 상생의 대안적 발전운동이다. 이 운동은 기존의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서 한국사회의 새로운 길-이를 ‘제3의 길’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을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이다. 현재 이 운동의 추진 주체는 지식인그룹, NGO그룹, 자치단체이다. 이러한 3주체의 정립을 통해 이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세계 다른 나라에서 그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운동이다.

새로운 사회운동인 만큼 지방분권운동은 많은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새로운 실험인 만큼 가능성이 열려 있으나 그 앞날은 아직 불확실하다. 새로운 운동인 만큼 그 참신함으로 기대가 클 수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으면 곧 시들해질 수 있다.

지방분권운동은 특정 이슈의 해결을 위해 일시적으로 연대하는 한시적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천년의 역사를 가지는 중앙집권체제를 지방분권 체제로 바꾸는 장기에 걸친 항구적인 운동이다. 국가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는 운동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이 운동은 국민 다수가 참여하는 긴 호흡을 가지는 운동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방분권운동은 한편으로는 국가경영 패러다임을 바꾸는 법과 제도를 구축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정치운동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지방민들의 삶터와 일터가 있는 지역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자기혁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문화운동이다. 이와 같은 구조 개혁의 정치운동과 자기개혁의 문화운동이 결합되어야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운동이 성과를 거두려면 이름 그대로 각계각층의 광범한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운동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수 지식인이 하는 운동으로는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 지방분권에 반대하는 반분권 세력이 완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중앙집권 세력은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각 영역에서 중추관리기능과 구상기능을 장악하고 있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그들의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운동은 합리적인 지방분권 정책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매우 전문적 정책기능이 필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운동보다도 ‘찬 머리’(cool head)가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지방분권운동은 지역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방분권을 가로막는 세력과 맞서야 하기 때문에 ‘더운 가슴’(warm heart)이 필요하다.

이 운동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되어서는 안되고, 회비 안내는 회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역과 나라를 살리려는 모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자신의 소액의 돈과 약간의 시간을 내어 참가하는 참여민주주의 대중운동이 되어야 한다.

4. 지방분권 추진의 필요성

 

지방분권(decentralization)은 중앙정부에서 자치단체로의 권한 이양(devolu -tion)과 서울(수도권)에서 지방(비수도권)으로의 자원의 분산(deconcentration)이란 두 측면을 포함한다. 따라서 지방분권은 경제력의 지방분산, 행정과 재정의 분권, 교육과 문화의 분권을 의미한다. 지방에 사람과 돈과 정보가 모이고 행정과 재정에서 결정권이 지방으로 이양되는 것이 지방분권이다. 특히 지방행정과 지방재정의 자율성 확보가 지방분권의 핵심적 과정이다.

행정과 재정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현재 한국에서 지방분권화란 서울 일극집중(一極集中)의 ‘집권적 집중체제’에서 지역중심의 ‘분권적 분산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결정권이 중앙정부에 있는 집권체제로부터 결정권이 지방으로 이양되는 분권체제로, 집행권이 중앙정부에 있는 집중체제로부터 집행권이 지방정부에 있는 분산체제로 체제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지방분권이다.

왜 지금 한국에서 이러한 지방분권이 절실히 요청되는가? 그 이유는 크게 다음 다섯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지방의 총체적 위기 극복을 위하여, 둘째, 지방자치의 내실화를 위하여, 셋째, 지역혁신을 위하여, 넷째, 복지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다섯째, 지역통합과 민족통합을 위하여.

 

지방의 총체적 위기 극복을 위하여

 

지금 우리나라의 각 지방은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전반이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 우선 대부분의 지역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매고 있고 미래산업이 없다. 특히 21세기 ‘신경제’(New Economy)의 두 바퀴에 해당하는 정보통신산업과 금융산업은 거의 전부 서울에 몰려 있다. 지역별로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테크노파크를 설립하여 신산업 육성을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그 전망은 불투명하다. 지역경제는 미래 비전이 없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교육은 어떤가? 지방대학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자들이 서울소재 대학으로 진학하려고 하지 지방대학에 갈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 지방대학 나오면 취직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서울소재 대학과 지방대학간의 교육자원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특히 재벌기업들의 대학지원이 수도권의 소수 대학에 집중되고 있고 이들 대학과 지방대학들간에 대학발전기금의 격차가 엄청나다. 지식기반경제에서 지역발전의 중심축이 되어야 할 지방대학의 위기는 지방의 위기와 직결되고 있다.

아울러 지역문화를 꽃피울 인적 물적 자원이 빈약하기 그지없다. 올해가 지역문화의 해라 하지만 지역문화가 중흥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는 거의 모든 문화자원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극히 드물다. 21세기는 문화가 경쟁력이라고 하는데 지역문화의 빈곤은 지역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학문과 언론의 중앙집중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지방에서 학문후세대 양성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고 지역언론기관은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지방의 위기는 무엇보다 과도한 중앙집권과 서울집중 때문이다. 중앙집권과 서울집중 현상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중앙집권과 서울집중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총체적 초집중’(total hyper-centralization)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화되기는커녕 강화되어왔다.

예컨대 수도권의 지역총생산(GRP) 비중은 1970년 37.2%에서 1999년 46.3%로 증가하고, 수도권의 인구비중은 1970년 28.3%에서 2000년 46.3%로 증가하였다. 특히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정보기술(IT)산업과 금융산업의 서울집중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서울 혹은 수도권에 인적 물적 자원이 집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거의 모든 중앙행정기관이 서울에 있고 그 중앙행정기관이 국정의 핵심적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으며, 조세의 대부분이 국세로 징수되고 있고, 교육과 문화의 향유 기회와 취업기회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구상 및 기획기능과 중추관리기능이 서울에 독점되고 있기 때문이다. 1968년 시점 한국의 정치경제상황에 기초하여 그레고리 헨더슨(G. Henderson)이 제시한 ‘중앙집권이 수도권 집중을 초래한다’는 명제는 오늘날 더욱 현실적합성을 가진다.

물론 지방 위기의 원인을 중앙집권과 서울집중이라는 구조에서만 찾는다면 일면적일 것이다. 지방자신의 능력 부족, 즉 자치단체와 지역의 기업, 대학, 지역주민의 능력부족이라는 주체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지역사회의 각 영역에서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능력의 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서울이 지방의 거의 모든 자원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고, 중앙정부가 핵심적 결정권을 독점하며 조세의 대부분이 국세로 겉이고 있는 상태에서, 자치단체와 지역 기업과 대학이 안간힘을 써봐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진단이 올바르다고 한다면, 지방의 총체적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추진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방자치의 내실화를 위하여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자치단체에 사무가 일부 이양되고 있지만 결정권은 여전히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다. 국가행정사무의 지방이양이 진전되고 있지만 입법권, 인사권, 재정권 등의 중요 권한의 이양이 아니라 대부분 단순행정사무의 위임수준에 머물고 있다(성경륭 2001).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촉진 등에 관한 법률’에 기초하여 1998년에 설치된 지방이양추진위원회가 이양한 실적은 극히 미미하다. 게다가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사무위임이 이루어져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까닭에 자치단체는 정책입안권, 조직권,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 지방차지는 현재 결정권과 집행권을 모두 중앙정부가 가지는 ‘집권적 집중체제’로부터 결정권을 중앙정부가 가지고 집행권을 지방정부에게 넘겨주는 ‘집권적 분산체제’로 조금 나아가고 있는 단계에 있다. ‘결정권 없는 지방자치’, 이것이 한국 지방자치의 제1의 특징이다. 이처럼 지방에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지역이 창의성을 가지고 독자적인 조직과 인사를 통해 정책을 수립하여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지방자치의 물질적 토대인 지방재정이 취약하기 짝이 없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지방재정의 확충은 국세와 지방세간에 세원을 재배분하는 세제개혁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자치단체에 재정지원을 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이재은 2000). 1991년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 세목이 지방세로 이양된 국세는 없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81.5 대 18.5로서 지방세 비율이 매우 낮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낮다. 자치단체의 세입에서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 국가재정 중 지방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41%에서 2000년 31%로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난 10년간 크게 하락하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지방교부세, 지방양여금, 국고보조금 등의 형태로 시행되는 지방재정지원제도는 자치단체간의 세원 불균등을 조정하는 데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지만, 특별교부금이나 국고보조금 등은 자치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세원 없는 지방자치’, 이것이 한국 지방자치의 제2의 특징이다. 자주재원이 취약하여 세입의 자치가 없고 중앙정부의 예산편성지침으로 인해 세출의 자치가 없다. ‘세원 없는 지방자치’는 곧 물질적 토대가 없는 허구적 자치일 뿐이다.

지역발전을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우수한 인적자원이 지역에 집결하지 못하고, 지방에서 양성된 인재의 서울로의 유출이 심각하다. 이는 무엇보다 연구직, 전문직, 행정직 등의 일자리를 지방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방대학 위상의 지속적 하락도 인재유출의 주된 요인중의 하나다. 인재의 유입이 거의 없고 인재의 유출만이 심화되고 있다. ‘인재없는 지방자치’, 이것이 한국 지방자치의 제3의 특징이다. 우수한 인적자원이 모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결정권 없는 지방자치’, ‘세원 없는 지방자치’, ‘인재 없는 지방자치’로 특징 지워지는 한국의 지방자치를 내실화 하여 진정한 지방자치로 되게 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이 필수적이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지방분권 없는 지방자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의 지방자치의 경험은 지방분권 없는 지방자치의 허구성을 여실히 들어내었다 할 수 있다.

 

지역혁신을 위하여

 

당면한 지방의 위기를 극복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과 함께 지역혁신이 추진되어야 한다. 지역혁신은 지역의 대학, 기업, 정부, 연구기관을 포함하는 지역혁신체제(regional innovation system)의 구축, 정치, 경제, 문화 등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시스템 혁신을 의미한다. 그것은 창의성 있는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과정이고, 지역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낡은 패러다임을 파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과정이며, 낡은 가치관을 가진 기득권층으로부터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혁신주도층(innovator)으로 지역 리더쉽이 교체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발전 메커니즘을 구축하려는 것이 지역혁신의 목표이다.

지역혁신은 지식기반경제의 지역경제발전의 새로운 전략적 요소이다. 지역의 특성에 적합한 지역혁신체제를 구축하여 가치창출을 위한 지식을 부단히 창출하고 확산시킬 때 지속적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지역혁신은 지역의 지역발전의 잠재력인 자생력을 키우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교육과 문화는 자생력 형성에 결정적 중요성을 가진다. 따라서 지역교육과 지역문화의 부흥은 지역혁신에 필수적이다. 지역혁신체제는 경제권과 생활권을 중심으로 구축해야 한다. 즉 대구경북, 부산경남, 광주전남, 전북, 대전충남, 충북, 강원 등 통합된 광역 지방정부 단위로 지역혁신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방분권 없이는 지역혁신이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 지방분권은 지역혁신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지방이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지역에 인적 및 물적 자원이 없으면 독자적인 지역혁신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이 서울이 지방의 거의 모든 인적 및 물적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앙집권․서울집중 체제에서는 지역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지역혁신을 위해서는 산업정책의 분권화를 통한 산업자치가 필요하다. 산업자치를 통해 지역산업정책을 수립할 수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적 및 물적 자원이 지역에 존재할 때 비로소 지역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지방의 자주성 없이는 지역의 혁신능력이 함양될 수 없고, 지방에 인적 물적 자원이 모이지 않으면 지역혁신을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방분권은 지역발전을 위한 지역혁신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지방분권은 가치의 분배라는 공평성의 관점에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치의 창출이라는 효율성의 관점에서도 요청된다.

복지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아울러 지방분권은 교육, 의료, 육아, 양로 등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현물급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 단위의 복지공동체 실현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주지하는 바대로 우리 나라는 아직 복지국가가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여 실업급부금과 생활보조금 지급과 같은 화폐급부를 행하는 복지국가를 구현하는 것은 빼 놓을 수 없는 과제이다. 현금급부 중심의 사회복지는 중앙집권적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전국 일률적인 국민적 최저수준(national minimum)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지행정의 중앙집권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선진국이 경험한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미리 예방하여 수준 높은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을 추진하여 현물급부에 의한 사회안전망을 펼쳐야 한다. 현물급부 제공은 ‘가까이 있는 정부’인 지방정부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神野直彦 2000). 이처럼 지방분권은 복지국가(welfare state)에서 복지공동체(welfare community)로 나아가는 새로운 복지 모델 구축에 필수적이다. 복지공동체는 지방분권이 이루어져야만 실현될 수 있다. 복지공동체는 복지국가를 해체하여 복지서비스의 시장화 방향으로 나아가는 신자유주의적 대안과는 달리 복지국가의 모순을 해결하고 시민사회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그것을 넘어서려는 민주적 대안이다(Lipietz 1992).

복지공동체에서는 사회보장정책의 대폭적 분권화를 통해 광역자치단체가 현물급부 중심의 사회보장정책을 실시한다. 이때 지방정부와 지역시민사회의 비정부기구(NGO) 혹은 비영리기구(NPO)가 파트너쉽을 형성하여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제3섹터’(Third Sector)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장부문(제1섹터)도, 정부부문(제2섹터)도 아닌 민관합작(民官合作)의 제3섹터는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현물급부 중심의 복지서비스인 어린이 교육, 환자의 간호, 유아의 육아, 노인의 양로 등과 같은 준사적재(準私的財)를 생산하여 공급하게 된다.

현 정부가 새로이 제시한 사회보장제도인 생산적 복지(productive welfare)는 중앙집권적인 현금급부 중심의 복지국가 요소와 지방분권적인 현물급부 중심의 복지공동체 요소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의 과제와 복지공동체의 과제를 동시에 압축하여 수행해야 하는 것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지역통합과 민족통합을 위하여

 

지방분권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한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망국적인 지역패권주의와 지역감정을 해소하여 지역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권력과 경제력, 그리고 교육문화자원이 모두 중앙에 집중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배타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지역패권주의가 나타났고 그 결과 지역갈등이 심화되어온 측면이 강하다. 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되어 지방정치가 활성화되고 자원이 지방으로 분산되면, 중앙권력 쟁취를 위해 각 지역이 사활을 걸고 패권을 다툴 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지방분권이 새로운 지역패권주의와 지역갈등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지방분권이 ‘한국은 하나다’ 혹은 ‘민족은 하나다’는 민족공동체 이념에 따라 추진되고, 지방분권정책이 진정으로 지역의 자율성과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실시된다면, 그것은 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전국 어느 지역에서 살던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떳떳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할 것이기 때문에, 지역화합과 지역간 협력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편 통일이후의 새로운 한국의 발전은 지방분권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시기 남북정상이 합의한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려는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 지방분권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지역간 격차를 줄이는 지역균형발전은 자원의 분산과 권한의 이양이 이루어지는 지방분권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민족경제의 균형발전도 남북한을 통털어 실현되는 이러한 지방분권이 있어야 비로소 기대할 수 있다.

7천만 민족구성원들의 사회적 통합을 위해서는 계층간 분열과 함께 지역간 분열을 반드시 해소해야 하는데, 지역간 분열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선결 조건은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추진하는 것이다. 민족통일이 정치통합과 경제통합 그리고 사회통합의 장기적 과정이라고 한다면 지방분권은 통일한국의 발전모델의 필수요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집권적인 자본주의 남한과 중앙집권적인 사회주의 북한이 ‘지방분권적인 새로운 민주한국사회’로 통일되어야 한다.

 

5. 지방분권을 통한 대안적 지역발전

 

분권-자치-혁신에 기초한 내발적 발전

 

위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지방분권의 이유에는 지방자치와 지역혁신에 기초하고 복지공동체와 지역통합을 지향하는 새로운 대안적 지역발전모델을 실현하려는 문제의식이 그 기초에 깔려있다. 지방분권은 지금까지와 같은 중앙집권적 개발독재체제와 재벌지배의 경제체제 아래 서울과 재벌에 의존하는 종속적 지역발전과는 다른 새로운 지역발전 모델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 지방분권은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두말할 필요 없이 지방분권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지방분권은 대안적 지역발전모델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지방분권은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과 자주관리(self-management)라는 철학적 기초 위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자기 문제는 자기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사고, 조직과 집단의 문제는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한다는 사고, 자기혁신을 통해 자기 지역을 발전시킨다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 위에서 지방분권이 대안적 지역발전에 기여하려면, 지방분권은 지역혁신 및 주민자치와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

먼저 지방분권은 반드시 지역혁신과 결합되어야 한다. 지방분권이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중앙집권․서울집중 체제라는 구조에 대한 개혁을 의미한다면, 지역혁신은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지역 자신의 낡은 패러다임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주체의 개혁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개혁과 주체의 혁신은 맞물려있다. 지방분권이란 구조개혁이 있어야 지역혁신이란 주체의 혁신이 가능하고 지역혁신이 있어야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실현할 수 있다. 지역혁신을 통한 지역주체들의 능력 향상이 없으면 지방분권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없다. 지역혁신체제는 지역의 자생력, 창출능력을 지방분권의 경제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지방분권은 주민자치와 결합되어야 한다. 주민자치는 지역수준에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주민자치와 결합되지 않는 지방분권은 지방정부 관료와 토호들의 권력만 강화하여 지역수준에서 새로운 관료적 권위주의를 낳을 것이다. 주민자치를 위해서는 주민의 자치능력이 향상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주민의 자기개발 노력과 참여의식은 주민자치의 필수적 조건이다. 자치는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과정이기 때문에 주민의 자치행정에 대한 주민의 적극적 참여가 보다 중요하다.

지방분권에 기초한 주민자치를 통해 지역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분권화된 광역(廣域)지방정부(市道) 내에서 협역(狹域) 기초자치단체(市郡區) 단위로 주민이 참여하여 창의성과 적극성을 발휘함으로써 지역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최근의 지역혁신체제(RIS)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역혁신은 지역을 학습지역으로 만들어 주민들의 혁신능력을 높일 때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소수 엘리트중심의 지역혁신이 아니라 지역주민 주체의 지역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주민의 자치능력과 혁신능력을 높여야 지방분권에 기초하여 지역혁신에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지방분권-주민자치-지역혁신’의 3결합이 실현될 때, 대안적 지역발전의 핵심을 이루는 내발적(內發的) 지역발전(endogenous development)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내발적 발전이란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중앙정부의 사업이나 외부 대기업 유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내부의 기술․산업․문화를 토대로 지역산업연관이 존재하는 지역경제구조를 형성하고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해 학습하고 계획하고 경영함으로서 자생적인 지역발전을 꾀하려는 것이다(宮本憲一 1989, 황한식 1995).

내발적 발전의 요체는 지역내부에서 형성되는 발전 잠재력을 토대로 지역을 발전시키려는 것에 있다. 그것은 결코 지역내에 완결된 분업구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며 국내분업이나 국제분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생산의 글로벌화 추세속에서 내발적 발전은 다면적인 국제분업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도 일정한 지역산업연관을 가지고 지역혁신체제에 기초한 자기중심성을 가지는 지역경제구조를 형성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에미리아 로마냐(Emilia Romagnya)주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내발적 발전 모델은 지방분권에 기초하여 산업자치가 실현되고 지방정부와 협동조합조직, 민간기업, 시민간에 민주적 협력관계가 형성되며 시민․기업가․행정담당자가 높은 자치역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Piore&Sabel 1984, 重森 曉 1992). 제3이태리의 유연전문화(flexible specializa -tion) 모델의 성공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내발적 발전은 글로벌화와 포스트 포디즘(Post-Fordism) 시대에 분권-자치-혁신에 기초한 새로운 대안적 지역발전 모델로서 가능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참여-연대-생태를 지향하는 대안적 지역발전

 

분권-자치-혁신에 기초한 내발적 지역발전은 참여, 연대, 생태라는 세 가지 보편적 가치에 따라 추구되어야 한다.

여기서 참여(participation)는 지방정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종 정책결정과 정책평가 과정에 지역주민이 일정한 형태로 참가하여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주민의 직접 참여와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NGO의 참여를 포함한다. 참여에는 일반시민 참여와 전문가 참여가 결합되어야 한다. 지역수준에서 실현되는 참여민주주의, 즉 지역민주주의가 구현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방정부에 대한 지역시민사회의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연대(solidarity)는 시장경쟁에서 탈락하거나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한의 조건이 보장됨으로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연대는 시장만능주의를 거부하며 시장의 역동성을 살리면서도 공동체 내부에서 사회정의와 공평성 실현을 지향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연대는 복지국가와 복지공동체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 추구되어야 한다.

생태(ecology)는 생태계 보전을 통해 지속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 -nt)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업이 환경친화적 생산방식을, 지방정부는 환경친화적 지역계획을 도입하고, 주민들은 생태주의적인 대안적 생활양식을 영위하는 것이 생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장지상주의에 반대하고 중앙집권적 경성 에너지 경로가 아니라 지방분권적 ‘연성 에너지 경로’(soft energy path)를 지지한다.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은 이러한 참여-연대-생태라는 보편적 가치에 따라 추진되어야 대안적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주민참여 없는 지방분권은 지방정부 관료와 토호들의 권력만 강화할 것이다. 따라서 지방분권은 참여민주주의로서의 풀뿌리 민주주의와 결합해야 한다. 중앙집권적 개발독재 국가가 해체된 이후 시장이 국가를 대신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시장 지향적 분권’ (market-oriented decentralization)이 아니라, 지역공동체가 지방정부와 함께 국가를 대신하는 민주적인 ‘공동체 지향적 분권’(community- oriented decentralization)이어야 한다.

연대 없는 지역혁신은 소수의 엘리트만을 위한 혁신이 될 것이다. 지역혁신의 성과가 공동체 실현의 관점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배분되는 메카니즘이 구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없는 지역혁신은 지역주민 대중을 배제한 엘리트 지향적 사회를 만들 것이다. 따라서 참여와 연대를 지향하는 지역혁신이 되어야 한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은 지역발전을 지속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생태를 지향하지 않는 지방분권은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지역수준에서의 환경파괴를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생태를 지향하지 않는 지역혁신은 성장의 대가로 환경파괴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생태를 지향하는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참여-연대-생태를 지향하는 지방분권-주민자치-지역혁신은 21세기 대안적 지역발전 모델이다. 동시에 그것은 동시에 대안적 국가발전모델이기도하다. 이 대안적 지역발전모델은 내발적이고 주민중심(people-centred)이며 공동체 지향적이며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이다. 참여민주주의와 인적자원개발을 촉진하고 복지공동체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인간발전(sustainable human development)이란 비전을 실현하는 길이다.

이러한 대안적 지역발전 모델에서 지방정부는 내발적 발전을 위한 지역혁신정책, 산업정책, 인적자원개발정책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고용정책, 복지정책, 환경정책을 독자적으로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지방분권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방분권은 대안적 지역발전 모델 실현을 위한 제1의 전제조건이다.

 

 

6. 지방분권정책의 기본방향

 

지방분권에 기초한 대안적 지역발전 모델은 한국사회가 장기적으로 추구해야할 비전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방분권은 단순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행정권한과 세원 및 예산의 배분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비전의 실현을 위한 지방분권 정책의 기본방향은 ① ‘지방에 결정권을’, ② ‘지방에 세원을’, ③ ‘지방에 인재를’이란 3대 원칙에 따라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지방에 결정권을’. 결정권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양되는 ‘분권적 분산체제’ 구축을 위한 행정개혁을 해야 한다. 현행과 같은 기관위임사무 중심의 중앙권한 지방이양은 집행권만 지방에 내어주고 결정권은 중앙정부가 가지는 중앙집권체제의 새로운 형태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방, 외교, 거시경제정책, 국토종합관리 등을 제외한 행정은 대폭 그 결정권을 지방에 이양하는 진정한 분권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교육, 복지, 문화 등에 관한 결정권을 자치단체에 이양해야 한다. 지방중소기업청, 지방노동청 등 특별행정기관을 자치단체에 이양해야 한다. 지역의 이해가 걸린 전국적 문제의 정책결정 과정에 지역의 자치단체장들이 참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방에 세원을’. 세원을 국가에서 지방정부에 귀속시키는 재정분권이 이루어지는 재정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 지방세 비중이 20%에 불과하여 ‘2할 자치’로 표현되는 지방재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하는 세원재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세입의 자치와 세출의 자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이때 자치단체간 세원 불균등을 시정하는 재정조정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재정분권 없이는 지역혁신을 위한 물적 기초를 확보할 수 없다. 재정분권은 지방자치 실현과 지역혁신 추진의 절대적 전제조건이다. 재정분권과 재정조정을 위해서는 예컨대 소득세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분할하는 공동세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방에 인재를’. 인재가 지역에 모일 수 있는 획기적 개혁조치를 해야 한다. 우수한 인적자원의 존재는 지역혁신의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지방대학 육성은 지역에 인재를 모으기 위한 중요한 방책이다. 인재가 지역에 모이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연구전문직으로 취업할 기회가 크게 확대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미 제기된 바 있는 ‘인재지역할당제’를 한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사법시험, 행정고시 등 각종 국가시험을 지역 인구 비례로 선발하는 인재지역할당제를 예컨대 10년 동안 한시적으로 실시할 경우, 인구의 서울집중을 막고 지역에 인재를 모이게 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이전, 국가연구기관의 지방이전은 행정, 관리, 연구, 전문직 인적자원의 지역 결집을 촉진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지방분권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중앙집권체제를 고착시키고 있는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촉진 등에 관한 법률’과 ‘지방이양추진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이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하고 ‘지방분권추진위원회’를 설치하여 일관되고도 강력하게 지방분권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지방분권추진위원회는 각 지역의 공익을 대변하는 전문적 인사들 중심으로 구성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재정경제부가 입법 추진중인 ‘지역균형발전특별법안’은 광역권이 아닌 낙후지역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약 2,000억원에 불과한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로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하겠다는 취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런 법률을 통해 어찌 지역균형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실효성 없는 법안을 만드는 대신, ‘총체적 초집중’을 해체하고 분권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총체적 지방분권’을 가능케 하는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이 법에 기초하여 앞에서 제시한 지방분권 정책의 3대 원칙에 따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중앙정부와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권한이양과 자원의 분산을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지방분권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방분권 정책은 지방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살리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 서울은 과잉과 과밀로 엄청난 낭비와 비효율이 초래되고 있다. 지방분권을 통해 서울의 과잉과 과밀이 해소되면 서울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방분권은 지방과 서울을 동시에 살리는 상생의 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지방분권은 지역과 나라를 살리는 21세기 국가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이다.

지방분권은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차원의 지방분권추진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지방분권은 상당정도 권리 대 권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방분권을 바라는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된 지방분권운동기구가 꾸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지역의 지식인 사회, 시민사회, 자치단체, 기업사회가 지방분권이란 하나의 원칙에 따라 공동행동을 하는 광범한 헤게모니 블록의 형성이 필수적이다.

이 헤게모니 블록은 성장제일주의를 추구하는 기존의 ‘성장연합’(growth coalition)이 아니라 앞에서 제시한 대안적 발전을 지향하는 ‘대안적 발전 연합’(alternative development coalition)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대안적 발전 연합에는 참여, 연대, 생태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분권과 혁신을 추구하는 모든 개인과 집단(기업, 자치단체, 시민사회단체, 정치단체)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7. 향후 지방분권개혁의 과제

 

1단계 지방분권개혁의 한계

 

지난 2010년은 민선 5기 지방정부가 출범한 해다. 민선 1기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지방분권은 조금씩 진전되어 왔지만, 그 정도는 아주 미흡하다. 과거 노무현 정부때는 권한이양보다 자원분산에 집중하였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추진되었다. 권한이양은 소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자원분산에 주력한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을 비판하고는 권한이양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초기에 공공기관 이전 재검토를 발표하였으나 곧 철회한 바 있고,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 원안을 폐기하고 기업도시로 수정하려 했으나 국회 표결을 통해 부결되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때 시작한 균형발전정책을 수정하거나 폐기하려는 시도는 좌절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명박 정부는 자신이 원래 역점을 두겠다고 발표했던 권한이양에 소홀하였다. ‘지방분권’ 확대를 주요 국정과제로서 추진해왔지만, 지난 3년 동안 추진된 권한이양은 아주 미흡하다.

지금까지 추진된 권한이양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실질적 권한이양과 관련된 주요 의제는 2012년 하반기에 완료할 예정이다. 지방자치법 및 사무구분체계 관련 법령 개정,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에서 기능중심의 포괄적 지방이양 추진, 지방교부세 법정률 인상, 특별행정기관의 제도 발전 모색, 자치경찰제의 전면실시, 자치입법권 확대를 위한 조례제정 근거규정 정비와 기관위임사무 폐지,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등을 정권 초기에 추진하지 않고 권력누수 현상이 나타날 정권 말기에 완료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이 같은 시간 계획은 이러한 지방분권 정책들이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제대로 실시되기가 어려울 것임을 전망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전국시도지사협의가 지방분권국가 실현을 위한 공동성명서에서, “현 정부는 출범초기 ‘지방분권 확대’를 주요 국정과제에 포함, 추진해 왔으나 집권 3년차에 이른 현재까지 실질적 조치가 미흡한 실정이다”고 주장한 것은 정당하다 하겠다. 이와 같이 지방분권정책이 지체되고 미흡한 상황이 지속되면 지역경쟁력의 획기적 강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구호에만 그치고 말 공산이 크다.

21세기 글로벌화와 지식기반경제 시대는 대한민국이 선진적인 지방분권국가로 거듭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 선진국인 OECD 국가들은 대부분 오래전부터 지방분권국가이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더욱 강력한 지방분권국가를 만들기 위해 제도개혁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성실하게 응답하여 현재와 같은 소극적 추진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지방분권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00년대 초 지역 지식인과 지역시민사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들이 협력해서 일으킨 지방분권운동, 국회에서의 지방분권 관련 3대법 제정,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의 지방분권 정책의 실시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난 10년 가까이 추진된 1단계 지방분권 개혁은 중대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지방분권 개혁의 지체 현상을 보면서, 현재와 같은 미약한 개혁정책으로서는 선진 지방분권국가 실현이 요원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보다 강도 높은 2단계 지방분권 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 2단계 지방분권 개혁은 대한민국을 선진 지방분권국가로 전환시킨다는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률에 기초하여 추진된 1단계 지방분권 개혁을 넘어서 헌법에 기초하여 추진되는 2단계 지방분권 개혁이 의제에 올라야 한다. 과거 10년보다 차원을 달리하고 강도가 높은 미래 10년의 지방분권 개혁이 민선 5기를 맞이하는 2010년의 시점에서 일정에 올라야 한다.

 

2단계 지방분권 개혁 의제

 

2단계 지방분권 개혁 의제로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헌법에 대한민국이 지방분권국가임을 명시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이다’는 규정을 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모든 관련 법률이 헌법에 따라 개정 혹은 제정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과 동시에 지방분권국가라는 헌법 조항에 기초하여, 국방과 외교 및 거시경제정책 등을 제외한 모든 국정이 분권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현재 정치권의 권력구조 관련 개헌논의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같이 대통령과 총리간의 분권 문제에 국한되어 있는데, 중앙집권-수도권집중체제의 모순이 심화되어 국정의 비효율이 초래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분권 문제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간의 분권 차원 보다는 지방분권 원칙에 따른 대통령과 시도지사간의 분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회와 지방의회간의 입법권의 분권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지방분권형 개헌 논의가 공론화되어야 한다. 지방분권형 개헌은 남북연합이나 연방제 형태의 통일과 같은 남북통일에 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둘째, 지방분권형 개헌의 또 다른 내용으로서 상원제를 도입하여 양원제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인구유출이 멈출 줄 모르고 2015년경에 인구의 절반이상이 수도권에 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고려할 때, 현재 지역구 인구에 기초하여 정해지는 소선거구제에서 구성되는 단원제 국회만으로는 지방의 문제를 다루는데 한계가 명백하다. 따라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문제 관련 입법과 정책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상원을 둘 필요가 있다.

1단계 지방분권 과정에서 지방분권운동의 전국조직인 ‘지방분권국민운동’은 강력한 국가균형발전 정책 입안과 추진을 위해서 (가칭)국가균형원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 그 기본정신은 상원 설치 취지와 같다. 지역인구 크기에 기초하여 구성되는 현행 단원제 국회는 아무래도 수도권 의원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앞으로 점차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단원제 국회에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과 같은 전국적 지방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상원이 도입되면 단원제 국회 아래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대결을 완화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현행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동일한 일정 수의 상원의원을 선출하여 구성하는 상원을 현재의 국회와 함께 두는 양원제를 실시하고, 전국적 지역문제는 상원에서 다루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상원을 두는 대신 현재의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서 전체적으로 국회의원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하면 국가의 재정부담도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정부에 지방분권위원회를 두고 이에 상응하여 국회에 지방분권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지방분권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의 지방분권위원회에는 지방정부와 지역 경제계 및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사가 위원으로 균형되게 포함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설치되었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는 지방분권 의제가 정부혁신 의제에 밀려 지방분권이 소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그 위원회를 그보다 더 약화된 형태의 지방분권촉진위원회로 바꾸었기 때문에 지방분권 정책이 실효성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분권 정책 수립을 전담하는 지방분권위원회를 정부내에 두고 국회내에는 이에 상응하는 지방분권특별위원회를 두어 행정부와 입법부가 공동으로 지방분권 관련 입법을 하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 지방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할 수 있는 재정분권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먼저, 2010년 도입된 지방소득세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공동세 방식으로 개혁하여 세원과 조세수입면에서 부유한 지방정부로부터 빈곤한 지방정부로 재분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전체 소득세중 지방정부에 귀속되는 비율을 지방정부의 세수 크기에 따라 차등하도록 설계하여 지방정부간 재정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 아울러 지방소비세의 경우, 부가가치의 5%를 일률적으로 지방에 귀속시키는 현행 제도를 개혁하여, 부가치가세의 20% 정도를 지방정부 재정력에 따라 차등적용하여 지방소비세로 전환시켜야 한다.

아울러 사회복지 분야 지방이양사무에 대해 재원도 함께 이양하여 지방정부의 복지예산 지출 증대 요구에 따른 재정 압박을 줄어야 한다. 현재 사회복지 분야 국가사무가 지방으로 이양되고 있지만, 사무이전에 상응하는 재원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자, 지방정부에서는 지방사무를 국가사무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육아, 양로, 교육, 의료 등 사회복지 서비스는 지방정부가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현물 서비스 형태로 급부해야 하므로 지방정부가 스스로 이 업무를 기획하고 실행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회복지 사무의 재원을 국가가 부담하지 않고 지방정부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재원을 보장하는 지방사무로서의 사회복지 사무가 수행되어야 한다. 이럴 때 진정한 의미의 복지공동체(welfare community)가 지방정부 수준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업자치가 가능하도록 초광역경제권 단위에 상응하는 광역행정조직을 설치하고, 현행 기초자치단체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며, 읍․면․동 단위의 주민자치가 가능하도록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특히 현재 경제권과 광역행정단위가 상이하여 행정 비효율이 초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는 광역행정이 이루어지기 못하고 있기 때문에, 광역행정체제를 개편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충남, 부산울산경남 등은 행정통합을 통해 경쟁력 있는 지역경제권을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경제권내에서 지역혁신체제를 구축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지속가능한 지역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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