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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전주, 새로운 길을 찾다 ③ 국내-충남 예산군 대흥면] 수몰 절망 딛고 주민들 스스로 희망 일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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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전주, 새로운 길을 찾다 ③ 국내-충남 예산군 대흥면] 수몰 절망 딛고 주민들 스스로 희망 일궈

느린꼬부랑길·손바닥정원·달팽이 미술관 등 '의 좋은 형제' 이야기 바탕 다양한 명물 만들어

강인석  |  kangis@jjan.kr / 등록일 : 2016.11.04  / 최종수정 : 2016.11.04  00:54:00


  
▲ 의좋은 형제 공원.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자리잡은 ‘예산 대흥 슬로시티’는 우리나라에서 6번째, 세계에서는 121번째 ‘슬로시티(slow city)’다. 지난 2009년 9월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공식 인증받았다.

대흥 슬로시티는 지난 1964년 서울 여의도의 3.7배에 달하는 9.9㎢ 규모의 예당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마을의 1/3이 물속에 잠긴 사연을 갖고 있는 동네다. 예산군과 당진군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된 예당저수지는 대흥면 주민들에게는 아픔을 준 호수다. 마을이 수몰되면서 주민들이 하나 둘 씩 고향을 떠났고 곳곳에 폐가가 자리잡은 황량한 마을로 변해갔다.

그러나 슬로시티란 새 옷을 입으면서 마을에 활기가 돋기 시작했고, 주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외지로 떠났던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고, 읍내에서까지 자녀들을 입학시키면서 대흥초등학교 학생은 3년새 두 배 이상 늘었다.

대흥 슬로시티의 변화는 주민들 스스로 일궈낸 것이어서 더욱 의미있다. 절망과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주민들은 희망과 자존감,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다.

대흥 슬로시티는 관이 아닌 민 주도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주민들 스스로 행복을 찾기 위해 마을 가꾸기에 나섰고 행정은 주민들을 잘 지원했다. 대흥 슬로시티에서는 지금도 모든 사업을 주민들이 직접 계획하고 실행한다. 지난달 29일~30일 열린 의좋은 형제 축제경비 마련에서 부터 프로그램 운영까지 모든 것을 주민들이 진행했다.

백제 부흥군의 거점인 봉수산 임존성 자락 아래 자리잡은 대흥면은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유래한 마을이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벼 베기를 끝낸 가을밤, 형제가 서로 상대편의 살림을 걱정해 자신의 볏단을 몰래 가져다주다 도중에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내용이다. 전래민담 정도로 알려지던 이 이야기는 1978년 대흥면 상중리에서 ‘우애비’가 발견되면서 고려 말~조선 초 대흥면 동서리에 살았던 이성만-이순 형제의 실화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예산군은 지난 2002년 대흥동헌 앞에 의좋은 형제상을 건립한 뒤 2004년 의좋은 형제 테마공원도 조성했다.

  
▲ 손바닥정원.

지난 2011년 2월 이장협의회와 주민 대표 등 18명이 모여 출범시킨 ‘예산 대흥 슬로시티협의회’는 느린꼬부랑길과 손바닥정원, 느린손 공방, 달팽이 미술관 등 대흥 슬로시티를 대표하는 명물들을 만들었다.

3개 코스로 만들어진 느린꼬부랑길에는 대흥면의 역사와 전통문화, 자연환경이 담겨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나당 연합군과 백제 부흥군을 공격하러 왔다가 배를 묶은 나무라고 전하는 1000년 넘은 느티나무 ‘배 맨 나무’, 이성만-이순 형제의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깃든 5.1㎞ 구간의 1코스 ‘옛이야깃길’.

예산군에 유일하게 남은 옛 관아 건물인 대흥동헌, 달팽이 미술관, 동서리천 물길과 봉수산 중턱을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4.6㎞ 구간의 2코스 ‘느림길’.

어느 날 은행나무 몸 속에 느티나무가 뿌리를 내린 뒤 150년 넘게 한 몸으로 살고 있어 ‘사랑나무’라는 애칭이 붙은 수령 600여 년 된 대흥향교 앞 은행나무, 논두렁과 샘터 등 시골 정취를 전하고 예당저수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3.3㎞ 구간의 3코스 ‘사랑길’.

  
▲ 느린꼬부랑길.

느린꼬부랑길에서 만나는 손바닥정원은 마을 사람들이 집 마당에 직접 가꾼 작은 정원이다. ‘가위손의 덩굴장미 정원’, ‘진회 씨의 하늘정원’, ‘개구리가 있는 연못’ 등 이름만 들어도 정겨롭다.

느린꼬부랑길에는 마을 주민들이 가구별로 2그루씩 나무를 심고 이름표를 달아 관리하고 있고, 손바닥정원도 집 주인이 직접 관리한다.

짚공예와 천연염색에 일가견이 있는 마을 어르신 19명이 1인당 10만원씩 출자해 설립한 마을기업 협동조합 ‘느린손 공방’에서는 어르신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옛 보건지소가 이전하면서 4년 동안 방치돼 쓰레기장이 됐던 공간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달팽이 미술관에서는 마을 주민의 작품은 물론 전국에서 찾아오는 다양한 작품 전시가 열린다.

대흥 슬로시티에서는 예당저수지 붕어찜과 어죽, 민물 새우로 끓이는 매운탕, 광시한우, 충남지역 생산량의 49%를 차지하는 예산사과 등 예산5미로 꼽히는 먹거리도 즐길 수 있다.

대흥 슬로시티는 지난 5년간의 성과와 실적을 인정받아 지난해 1월 30일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 재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신설이 추진되고 있는 고속도로 때문에 대흥 슬로시티는 ‘두 동강’날 위기에 처했다.

평택~부여~익산을 잇는 제2서해안고속도로 노선 계획이 대흥 슬로시티를 관통하는 것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2년째 대흥 슬로시티를 지키기 위해 노선 변경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 박효신 충남 예산 대흥슬로시티 사무국장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중요"

  

대흥 슬로시티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예산 대흥 슬로시티협의회’ 박효신 사무국장(68)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예산군 대흥면 출신으로 한국일보 기자 등 35년 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지난 2003년 낙향한 박 국장은 농사를 지으며 평범한 여성으로 살다 2010년 당시 최승우 예산군수를 만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최 전 군수와 깊은 친분이 있던 옛 직장 상사를 통해 최 전 군수를 만나게 됐고, 그의 화려한 경력을 전해들은 최 전 군수는 대흥 슬로시티의 성공을 위해 함께 일해줄 것을 간청했다. 최 전 군수의 간청은 1년 넘게 이어졌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조건을 붙여 수락했다.

2011년 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은 박 국장은 정말 마음대로 대흥 슬로시티를 가꿔갔다.

그는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전통문화를 이어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며 △모든 사업은 주민이 주인이 돼야 한다는 3가지 원칙을 가지고 출발했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대흥 슬로시티의 성공 요인을 “규정대로 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효율성과 경제성만 따지는 관(官)의 규정은 효율성·경제성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함께 직접 마을 돌담을 쌓았고, 느린꼬부랑길도 주민들이 자신들의 집 앞에 심고 싶은 나무를 직접 골라 심었다.

그는 “ ‘내가 쌓은 돌담, 내가 심은 나무’는 주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스스로 마을의 관리자가 되게 했다”며 “돌담이 무너지면 누구든 나서 보수했고, 나무도 정성들여 가꿨다”고 설명했다.

대흥 슬로시티는 성공의 길을 갔지만 ‘규정’이 괴롭혔다. 왜 등록된 건설회사, 조경회사를 통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했느냐는 이유로 감사에 시달렸다. 수 백건을 지적받았지만 주민 모두가 사심없이 마을을 가꿨기 때문에 헤쳐나갈 수 있었다.

동서리 120가구, 상중리 100가구, 교촌리 50가구 등 전체 270여 가구에 700여 명의 주민들이 사는 대흥 슬로시티의 2011년 2월 주민 설문조사에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주민은 20%에 불과했다. 나머지 80%는 불행하다고 응답했다. 주민들은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로 가족, 건강, 돈을 차례로 꼽았다.

박 국장은 “마을이 살아나면서 외지에 살던 자녀들이 고향을 자주 찾았고, 노인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며 “방문객들이 슬로시티에 사는 주민들을 부러워하면서 주민들의 자부심과 자존감도 높아졌고, 소득도 조금씩 올랐다”고 했다.

2014년 11월 설문조사에서는 주민 90%가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행복하지 않다는 응답은 2%에 불과했다.

박 국장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관심이 신뢰를 쌓았다”며 “수몰로 인한 깊은 패배주의에 빠져 희망이 없던 마을에서 주민들의 자존감 상승하면서 행복지수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슬로시티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뭉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주민들의 자신감”이라고 강조했다.

“10~20년후 마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중”이라는 박 국장은 “앞으로 동서-상중-교촌마을이 통합적으로 할 수 있는 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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