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1945년 해방 이후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친 책-- 경향

2016. 10. 10. 11:57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해전사’ ‘전환시대의 논리’ ‘태백산맥’ 부동의 빅3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ㆍ해방 이후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친 책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경향신문은 창간 70주년을 맞아 출판인들을 대상으로 ‘1945년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을 조사했다. 이를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10월4일까지 출판사 대표, 편집자, 출판기획자, 번역가, 출판평론가, 서평가 등 출판계 전문가 57명에게 5권씩 추천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모두 104종의 책이 추천됐다.

응답자 중의 일부는 ‘사상계’,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뿌리깊은 나무’ 등 정기간행물을 추천 목록에 올렸다. 엄밀히 말해 단행본은 아니지만 해당 출판물의 사회적인 영향력과 한국 출판 역사에서의 비중을 고려해서 분석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 1위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차지했다. 2·3위는 <전환시대의 논리>와 <태백산맥>이 각각 올랐다.

[책과 삶-70주년 창간기획]‘해전사’ ‘전환시대의 논리’ ‘태백산맥’ 부동의 빅3

이들 책은 2007년 경향신문이 지식인 6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국내 저술’(2007년 4월30일자 보도)에서도 차례로 1~3위였다.

응답자의 대부분이 40~60대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인데, 독재와 민주화의 격랑이 일으킨 자장 안에서 청년기를 보낸 이 세대 출판인들에게 이 3종의 책들은 여전히 고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저자는 리영희

이번 조사 결과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으로 뽑힌 책은 24명이나 추천한 <해방전후사의 인식>(1979)이었다. 2위는 23명이 추천한 <전환시대의 논리>(1974)였다. <우상과 이성>(1980)도 3명의 추천을 받아, 두 책의 저자인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저자’로 평가됐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0~1980년대 당시 청년 세대에게 한국 현대사와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명저로 평가된다.

1979년 10·26사태를 열흘 앞두고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1권은 송건호 오익환 백기완 진덕규 등 진보적 지식인들이 집필에 참여해 해방의 민족사적 의미, 분단의 배경과 과정, 친일파 문제 등을 다뤘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1권은 출간한지 열흘 만에 4000권이 나갈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일명 ‘해전사’로 더 잘 알려진 이 시리즈는 1980년까지 모두 6권으로 완간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0~1980년대 청년들에게 ‘사상의 은사’로 불린 리영희 전 교수의 첫 저서다. 그 속편 격인 <우상과 이성>(1977)과 함께 치밀한 논리와 팩트의 힘을 통해 독재와 냉전이 드리운 우상의 장막을 논파한 역작이다.

지난 8월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 관료가 페이스북 댓글에서 두 책을 두고 “대한민국 지성사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 책”이라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두 책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예다.

이 외에 10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책들은 <태백산맥>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전태일 평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백범일지> <자본론> 등 6종이다.

■소설 <태백산맥>, 시집 <노동의 새벽>

추천받은 104종 가운데 인문사회·교양과학 등 비문학은 79종, 문학작품은 25종이었다. 문학작품 중에선 소설이 21종, 시가 4종이었다.

소설에서는 <태백산맥>(1986)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이 각각 19명과 18명으로부터 추천받아 다른 작품들을 압도했다.

<태백산맥>은 빨치산을 소재로 한국 현대사의 좌우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으로 조명해 1983년 월간 ‘현대문학’ 연재 당시부터 이적성 논란에 시달렸다. 1994년에는 작가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으나 이에 아랑곳없이 수백만부가 팔리는 대중성을 확보함으로써 냉전 체제가 강요한 이념적 억압을 깨뜨리는 데 기여했다.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무수히 많은 대하소설이 등장했지만 광복 후 우리 겨레가 겪은 무수히 많은 이념적, 사회적 갈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새로이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여타 대하소설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난쟁이 가족을 통해 1970년대 급격한 도시화의 그늘을 그린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출간 6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렸고, 2005년 100쇄를 찍으며 지금까지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난쏘공’으로 불린 이 책은 1970~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소설의 형태를 띤 ‘의식화 교재’나 마찬가지였다.

<태백산맥>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음으로 많은 추천을 받은 소설은 각각 9표를 얻은 최인훈 <광장>(1976)과 박경리 <토지>(1977)다. 3표를 얻은 황석영 <객지>(1974), 나란히 2표를 얻은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1989), 김훈 <칼의 노래>(2002)가 뒤를 이었다.

시집으로는 박노해 <노동의 새벽>(1984)이 4명으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시인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이는 김수영이다. 김수영 시선집 <거대한 뿌리>(1974)와 <김수영 전집>(1981)은 각각 3표와 2표를 얻었다.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여론 조성에 앞장섰던 자유경제원은 올해 상반기 ‘김수영 비판 연속 세미나’를 통해 ‘민족 민중문학 진영 평론가들이 문화계를 장악하기 위해 김수영을 신화로 만들었다’고 공격했는데, 이 역시 김수영 시인의 문학사적 위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가장 큰 영향 미친 해외저술은 <자본론>

추천받은 104종 가운데 국내저술은 59종, 해외저술은 45종으로 국내저술의 비중이 더 높았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10종의 책 가운데서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10명)을 제외하고는 9종 모두 국내저술이다.

한국에서 ‘자본론’ 또는 ‘자본’으로 번역된 <자본론>은 1987년에 최초의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이후 1989년 고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비봉출판사)이 나왔고 2008년에는 1987년판의 번역자인 강신준 동아대 교수가 새로운 번역본을 선보였다. <자본론>은 2008년 교수신문 조사에서는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해외저술로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6명·1981),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4명·2010),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3명·1974),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3명·1992),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3명·1966) 등이 뒤를 이었다.

■2000년대 이후는 <정의란 무엇인가>

104종 가운데 2000년 이후 출간된 책은 16종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것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4명)이다. 2010년 5월에 출간돼 연말까지 60만부가 팔린 이 책은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출판계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

샌델이 하버드 교수라는 점을 부각한 ‘하버드’ 마케팅의 승리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당시 6·2지방선거 후 개각에서 드러난 후보자들의 윤리적 흠결, 성접대 검사 사건, 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제 등이 포개지며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건드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 뒤를 이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2000), <시크릿>(2007), <총, 균, 쇠>(2005), <칼의 노래>(2002) 등이 나란히 2표를 얻었다.

<총, 균, 쇠>와 <칼의 노래>의 영향력이 주제의 깊이나 문학성 측면에서 측정된 것이라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시크릿>은 2000년 이후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 된 자기계발 장르의 영향력 때문으로 풀이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200만부 넘게 팔렸다. <시크릿> 또한 2007년 한 해 동안에만 75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설문에 참여한 분(가나다순)


강경미(꾸리에 대표), 강맑실(사계절 대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일우(창비 대표), 고세규(김영사 이사), 금정연(서평가), 김기중(더숲 대표), 김성실(시대의창 대표), 김언호(한길사 대표),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김학원(휴머니스트 대표), 김현종(메디치 대표),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김흥식(서해문집 대표), 노만수(출판기획자), 노승영(번역가),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재영(오월의봄 대표), 박혜숙(푸른역사 대표), 박효상(사람인 대표), 백원근(책과사회 연구소장), 선완규(천년의상상 대표), 송영석(해냄 대표), 안지미(알마 대표), 안희곤(사월의책 대표), 염현숙(문학동네 대표), 유재건(엑스플렉스 대표), 유정연(흐름 대표), 윤양미(산처럼 대표), 이갑수(궁리 대표), 이권우(출판평론가), 이수미(나무를심는사람들 대표), 이승우(길 기획실장), 이재민(너머북스 대표), 이정원(들녘 대표), 이현우(서평가), 이홍(출판기획자),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장의덕(개마고원 대표), 장인용(지호 대표),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종주(뿌리와이파리 대표), 정홍수(강 대표), 조기조(도서출판b 대표), 조미현(현암사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주일우(문학과지성사 대표), 지평님(황소자리 대표), 표정훈(출판평론가),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한예원(교양인 대표), 한철희(돌베개 대표), 홍순철(북칼럼니스트), 홍승권(삼인 대표), 홍지웅(열린책들 대표), 황승기(승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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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071936005&code=960205#csidxc0cc6989642b8f3aade2383603326f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