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획 - 7대 폐습 이젠 결별하자]미국선 애플·구글 등장하는데… 한국, 아직 ‘40년대 기업’ 위세

2015. 9. 4. 16:32도시와 혁신/대한민국, 혁신이 살 길이다(연재)

 
 
 
[광복 70주년 기획 - 7대 폐습 이젠 결별하자]미국선 애플·구글 등장하는데… 한국, 아직 ‘40년대 기업’ 위세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ㆍ(4) 탈피해야 할 ‘재벌위주 경제정책’

▲ 각종 특혜 받으며 문어발 성장
저성장 국면 땐 정부에 ‘SOS’


▲ 국제 경쟁력 하락하자 내수로
중소기업·영세상인 몰락 불러


▲ 진입장벽 허물지 않으면
창조경제도 선진국도 요원


“서울 도곡동 삼성래미안에 사는 김형렬씨(42)는 쏘나타를 몰고 여의도로 출근한다. 이 차는 삼성화재에 보험을 들었다. ‘갤럭시6’로 사무실 직원과 통화한 그는 회사에 도착해 삼성 노트북으로 작업할 것이다. 오후엔 신라호텔에서 바이어를 만난다. 저녁엔 아내와 CGV에서 영화를 보고, 시간이 남으면 엔제리너스에서 커피를 마실 생각이다. 롯데마트에서 롯데카드로 장도 봐야 한다. 그의 취미는 프로야구 관람이다. 다음주에는 SK와이번스의 경기를 보러 가고 야구가 끝나면 친구들과 삼겹살집에서 ‘클라우드’ 맥주와 ‘처음처럼’ 소주를 섞어 마실까 생각 중이다.”

한국인과 한국경제는 재벌에 포위돼 있다고 할 정도로 해방 후 70년을 거치면서 재벌편중 구조가 고착됐다. 대기업사옥들이 모여 있는 서울시내의 야경.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재벌에 포위된 한국인, 한국 사회

한국인들의 일상은 재벌에 포위됐다. 일하고, 먹고, 마시고, 자는 것까지 이들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다른 나라에도 대기업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처럼 소수의 기업집단이 경제를 싹쓸이하는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다.

광복 이후 70년간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는 재벌의 역사였다. 한국경제60년사 편찬위원회가 펴낸 <한국경제60년사>를 보면 재벌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시작됐다. 한국 정부는 미군정으로부터 넘겨받은 일본인의 재산과 기업을 민간에 불하했는데 이 과정에서 뇌물과 로비가 판쳤다. 당시 한국 정부가 받은 귀속재산 가치는 국내 총자산 가치의 80%에 육박했다. 쇼와기린맥주는 동양맥주(OB맥주)로, 선경직물은 선경이 된다. 영강제과는 해태제과에 넘어갔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국의 원조물자 배정 등으로 원면, 원당, 소맥 등 ‘3백 산업’ 기업이 성장했다. 삼성그룹의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이 최대 수혜기업이었다. 국제기구의 원조자금은 시멘트, 유리, 플라스틱 산업 등에 투자됐는데 수혜를 입은 락희화학은 오늘날 LG그룹의 모태다. 6·25전쟁 당시 군수물자 제조와 수송업체로 성장한 기업이 정주영의 현대그룹, 조중훈의 한진그룹이다. 삼양식품과 금성사, 한국타이어도 군납과 관련이 깊다. 1950년대 삼성은 이미 삼성물산, 제일제당, 한국타이어, 안국화재, 조선양조, 한일은행, 신세계백화점, 동양TV 등 18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문어발 경영’을 시작했다.

재벌들은 군수물자 조달과 전후복구 사업에 참여하면서 수입 허가, 외화 배정, 은행 대출 등에서 특혜를 받았다. 당시 ‘신흥재벌과 정치권력의 결탁’이라는 신문보도가 나올 정도로 정경유착은 이미 사회문제가 됐다. 1960년 4·19 때 국민들은 ‘부정축재자’ 처벌을 요구했고, 1961년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10여명의 재벌 총수를 체포했다가 “사업보국의 의지로 경제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풀어줬다.

정부는 재벌의 부정에 눈감은 채 각종 특혜를 주며 성장을 도왔다. 기업들은 정부보증으로 차관을 들여왔고 재정·금융 혜택도 받았다. 1965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와 베트남 특수도 재벌 성장에 기여했다. 이 시기 부실기업 정리를 통해 현대, 대우, 신동아, 한진 등은 덩치를 키웠다. 현 재벌체제가 모습을 갖춘 것은 1970년대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은 철강, 비철금속, 조선, 전자, 화학, 특수강 등 6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발표했다. 큰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는 중화학공업 역시 재벌들이 차지했다.

기업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도 이 시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980년 ‘경제력 집중’이라는 용어를 동원해 재벌 문제에 우려를 표명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공정거래법’을 만들어 과도한 경제력 집중 방지에 나섰다. 1986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설립되고 공정거래법이 강화됐지만 재벌은 더 커졌다. 삼성이 반도체산업, 현대가 자동차산업을 키우는 데도 정부는 막대한 지원을 했다. 당시 재무부 공무원은 1983년 삼성의 반도체산업 진출을 이렇게 회고한다.

“아침에 출근하니 ‘반도체산업’ 관련 보고서가 책상 위에 있더라. 반도체가 무엇인지 몰라 백과사전을 꺼내 읽어봤다. 그래도 이해가 안되는데 오후에 삼성 관계자가 찾아왔다. 그제서야 이게 삼성과 관련 있는 줄 알았다. 보고서의 핵심은 일본에서 반도체 기계설비를 들여와야 하는데 세금을 최대한 깎을 수 있는 방안과 삼성이 매입하려는 기흥 땅에 대한 매입 편의를 지원하라는 거였다. 초기에는 반도체 기술이 없어 국책연구기관에서 기술과 인력까지 지원해줬다.”

재벌은 민주화의 과실도 따먹었다. 정부의 견제가 약해지자 곧 사업다각화 명목으로 계열사 수를 불려나갔다. 삼성은 2000년 45개 계열사에서 올해 67개로 22개 계열사를 늘렸다. 같은 기간 롯데는 28개에서 80개, CJ는 18개에서 65개, 현대차는 16개에서 51개 등 3배가량 계열사를 늘렸다.


■ 한국 경제의 덫이 된 재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자 정부는 다시 재벌에 ‘SOS’를 치고 있다. 투자여력이 재벌밖에 없다는 논리다.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들은 재벌 특혜로 이어진다. 지난달 9일 정부는 8차 투자활성화 대책으로 ‘산악관광진흥구역’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3만㎡ 이상 대규모 개발 사업자에게만 산 정상을 깎을 권리를 주는 조치다.

문제는 재벌의 성장이 더 이상 한국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중진국에서 벗어나기 힘든 덫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2000년 이후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된 재벌들이 내수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중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의 몰락이 가속화됐다. 중소기업 우위업종에서 재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8.3%에서 2011년에는 30.9%로 확대됐다. 창업 부진의 원인도 재벌 중심의 경제에서 찾는 시각이 많다. 미국은 애플, 구글 등 2000년을 전후해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했지만 한국은 1940년대 창업한 삼성, 현대, LG가 여전히 최고 기업을 차지하고 있다. 진입장벽을 허물지 않는 한 창조경제가 어렵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재벌 외 기업들은 하청업체로 전락하면서 실업과 소득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졌다. KDI 자료를 보면 1999~2009년 10년간 연평균 부가가치 증가율은 중소기업이 7.3%, 대기업이 6.7%였지만 1인당 부가가치 증가율은 대기업(7.2%)이 중소기업(5.8%)보다 오히려 높았다. 이는 대기업이 기술 개발로 생산성을 높이는 대신 하청을 통해 직원 수를 줄이고 납품가격을 낮춘 결과다. 실제로 직원 수를 보면 중소기업은 1.5% 증가했지만 대기업은 0.4% 감소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차는 1990년 1.48배에서 2009년에는 1.89배로 늘어났다.

김주훈 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중소기업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임금을 깎으면서 대기업과 임금격차가 벌어졌고, 좋은 인재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양극화가 커졌다. 그 결과 경제역동성이 떨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