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획 - 7대 폐습 이젠 결별하자]“재벌 중심적 사고가 사회 지배, 논의 다양성 잃어”

2015. 9. 4. 16:30도시와 혁신/대한민국, 혁신이 살 길이다(연재)

 
 
[광복 70주년 기획 - 7대 폐습 이젠 결별하자]“재벌 중심적 사고가 사회 지배, 논의 다양성 잃어”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ㆍ신광식 교수 ‘담론 봉쇄’ 지적

재벌이 70년간 한국에 미친 폐해는 경제력 집중만이 아니다. 재벌 중심적 사고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된 점도 지적될 필요가 있다. 학계, 언론, 관료, 사법, 문화 등 각 분야가 재벌의 경제력에 포획되면서 다양한 사고와 담론이 봉쇄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역동성을 잃었다.


신광식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61·사진)는 16일 “재벌은 경제력 집중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기득권의 인식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논의가 다양성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열풍이 불 때 한국 사회는 무덤덤했다. 피케티 이론의 허점을 공격하는 데 급급했을 뿐 왜 세계가 피케티에 주목하는지에 대해서는 성찰이 부족했다. 신 교수는 “피케티가 뭘 말하려 했고 우리 사회는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자각과 자성이 생겨나기를 기대했는데 그런 것 없이 넘어갔다”고 말했다.

재벌의 사외이사 제도는 지식인 사회의 입을 막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1200~1300개가량 되는 대기업 사외이사 자리가 지식인과 퇴직관료들에게 용돈 주는 자리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경제적 이득이 있다보니 재벌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하기 꺼려지게 된 것”이라며 “전문지식이 있고 영향력 있는 이들이 침묵하고 있으니 한국 사회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 여론이 치우치는 또 다른 이유는 재벌이 싱크탱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설립한 경제연구소는 재벌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기 힘들다. 민간연구기관도 재벌의 연구용역비를 받는 경우가 많아 비판적 분석을 하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기관의 입도 닫게 만들었다. 아무리 문제제기를 해도 언론이나 학계가 받아주지 않으니 연구를 꺼리게 된다. KDI의 연구보고서를 검색해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를 다룬 보고서는 2012년 나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에 관한 해석’이 마지막이다.

신 교수는 “한국이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분명 재벌의 역할이 컸지만 (재벌의) 기득권만 옹호해서는 한국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새로운 아젠다를 내놓고 경쟁과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위기상황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