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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해냄
조정래는 "문학과 우리 역사 그리고 사회적인 긴급한 문제에 한해 발언한다"는 원칙을 문학인생 45년간 지켜왔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한국 근현대의 비극을 꼬집고 '정글만리'를 통해서는 세계정세의 격변 속 이정표를 제시하면서도 소설 이외의 매체를 통해서는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 그가 그간 인터뷰와 강연, 신문 칼럼 등에 공개했던 의견을 엄선하고 보충한 산문집을 출간했다. 그는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리는 노정이고,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라고 정의하며 이 책이 "매 순간 진정을 다 바친 내 인생의 결정들"이라고 적었다.
책에는 소설을 통해 미처 하지 못했던 그의 문학론, 인생관, 민족의식, 사회인식 등이 담겨있다. '정글만리'를 쓰게 된 동기부터 한국과 중국의 미래에 대한 전망, 한국의 영세중립국화에 대한 견해, 비정규직 문제 개선, 방어적·공생적·개방적 민족주의에의 지향과 같은 굵직한 주제들 안에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민중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서 계속해서 그리고 있는 것이 민중입니다. 백성, 곧 이름도 없고 권력도 없으면서 꿋꿋하게 일정 지역을 지켜내며 살아온 무리들 말입니다.(중략) 중국 5000년의 거대하고 찬란하고 감동 어린 문화는 바로 그들의 인내와 피땀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85쪽)
"역사는 끝나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입니다. 그리고 그 과거가 우리처럼 슬프고 비참할수록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만 또 그런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참극을 막기 위해 역사 공부는 필수적인 것이고 소설 또한 역사 공부의 딱딱함과 건조함을 피해 다른 방법으로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일깨우고 체험케 하는 것이고 그것이 소설가의 여러 임무 중에 또 한 가지라 생각합니다.
소설가로서의 사명감도 돋보인다. "소설이란 타인의 영혼을 흔드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 하루 16시간 이상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에서는 비장한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이 밖에도 재능보다는 노력을 믿는 인생관,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기여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는 문학론 등 그의 가치관과 철학이 집대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