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30. 18:04ㆍ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책 읽는 GE, 가을 독서 5선
2014/10/07 21:24
‘바야흐로’라는 말 뒤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가을입니다. 바야흐로 가을입니다, 라고 조용히 읽어보세요. 정말 계절이 옆에 바짝 다가붙지 않나요. 바야흐로 가을이고, 그러니, 가을에 하기 좋은 수많은 것들이 생각납니다. 산의 공기는 청명할 것이고, 바다의 색깔은 선명할 것입니다. 여름의 햇볕을 견뎌낸 식재료들은 농익은 맛으로 우리를 식탁에 초대하겠지요. 햅쌀로 빚은 새 술도 맛나게 느껴질 때입니다.
책은 어떨까요? 나가서 놀기 좋은 철이라 부러 책상에 잡아둘 핑계를 위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좋은 계절에 읽는 책은 또 다른 맛이 날 것입니다. 여행길 동무로 청해도 좋고요. 식탁 위에 두고 밥 삼아, 안주 삼아 읽어도 좋을 일입니다. 좋은 가을날에 어울릴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가을 독서, 참 좋지 아니한가요!
1. 메이드 인 공장-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지음, 한겨레출판, 2014.09
이건 좀 특별한 책입니다. 예전에도 ‘공장’에 대한 책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으면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하루키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정도가 떠오릅니다. 실제 ‘공장’에 대한 책은 아니지요. 소설가 김중혁은 20대의 어느 날, 공장 취재를 다녀온 뒤 그만 공장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감흥을 이렇게 적고 있어요.
“공장에서는 만들어지고,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지고 있었다.소음이 리드미컬하게 들렸고, 화학약품은 향기롭게 느껴졌다.원료를 넣으면 어찌 되었든 제품이 만들어졌다. 나는 공장이 무척 부러웠다.”
이 책은 그로부터 근 이십 년이 지나 콘돔 공장, 간장 공장, 지구본 공장, 브래지어 공장, 라면 공장 등 각자의 기호에 따라 흥미로워할 15곳의 공장들을 주인공 삼아 쓴 책입니다. 어느 공장 이야기가 나와 맞을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2. 구름 읽는 책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김성훈 옮김, 도요새, 2014.08
구름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적운, 적란운, 층운, 층적운, 고적운, 고층운, 난층운, 권운, 권적운, 권층운. 휴, 이중 세 가지 이상을 생각해냈다면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런 모임이 있냐고요? 선언문도 있는 걸요.
“우리는 구름이야말로 대자연의 시이며 최고의 평등주의자라 생각한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파란하늘주의’를 만날 때마다 맞서 싸울 것을 맹세한다. 매일 구름 하나 없는 단조로운 하늘만 올려봐야 한다면 인생은 너무나 지루해질 것이다.”
와우! 대단하지 않나요. 이 책은 각각의 구름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각 구름에 얽힌 온갖 역사와 문학의 이야깃거리들을 총출동시킵니다. 우리 머리 위에 이처럼 재미있는 과학과 이야깃거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워지는 책이에요. 이제 ‘구름’을 즐길 시간입니다.
3. 네이키드 퓨처
패트릭 터커 지음, 이은경 옮김, 와이즈베리,2014.09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등장했던 범죄 예측 기술은 이미 우리 곁에 당도해 있습니다. 충격적인 주장이지요. 영화에서는 3명의 예언자의 미래 예지 능력에 기반하지만 지금 이야기 되는 범죄 예측 기술은 빅데이터와 사물 인터넷에 기반합니다. 일상의 흔적이 그런 예측을 가능하도록 만들지요.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SNS에 접속하고, 교통카드를 태그하고, 신용카드나 전자지갑을 사용하면서 개인이 1년에 쏟아내는 데이터 양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흔적들은 범죄 모의를 추적하는 단서가 되기도 하고, 또 개인에 맞춘 맞춤 광고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과학 전문기자 겸 편집자인 패트릭 터커의 첫 번째 저서인 <네이키드 퓨처>는 사물 인터넷의 현재를 점검하는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불평이나 체념만으로 대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새로운 기술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기술의 양면성(기회와 위협)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적당한 흥미거리 정도로 사물 인터넷을 소개하는 신문이나 잡지 기사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그것의 현재와 근(近)미래를 낱낱이 다루고 있는 <네이키드 퓨처>에 도전해보세요.
4. 일본의 제품 디자인
나오미 폴록 지음, 곽재은 옮김, 미메시스,2014.09
<일본의 제품 디자인>의 원제는 <Made in Japan>입니다. 아름답고 실용적이며 내용까지 충실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이 번역서 제목입니다. ‘Made in Japan’이라는 강렬함과 간결함이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일본제’ ‘일본산’이라는 것은 ‘좋은 물건’의 대명사와 같습니다.
이 책에는 손의 열을 전달하여 딱딱하게 언 아이스크림 표면을 녹이는 아이스크림 스푼세트인 ‘15.0%’부터 도시락 통을 닮은 모양으로 주방에 잘 어울리도록 만든 ‘즛토 밥솥’까지 디자이너와 장인들이 고심해 만든 일본 제품 100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100개의 제품들이 선택된 중요 포인트는 일상에서 충분히 쓰이는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주방용기 세트인 ‘올라운드 볼’을 디자인한 미야기 소타로의 이런 말처럼요. “디자인은 미적으로 만족스러우면서도 쓰임새 있는 물건을 만드는 일에 관한 것이다.”
각 제품마다 디자이너의 개발 스토리와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특히 이 책의 장점입니다. 쇼핑 욕구를 억누르며 보아야 할 책이에요, 조심하시길요!
5. 유라시아 신화 기행
공원국 지음, 민음사, 2014.09
전작<여행하는 인문학자>의 타이틀을 아예 프로필로 삼아버린 공원국 작가의 새 책입니다. 새 책의 작가 소개에는 이런 말이 있네요. “생활, 탐구, 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10년 동안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래서 ‘유라시아 신화’를 탐색하는 이번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의 목차 앞에는 여행 경로를 표시한 지도가 실려 있는데,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뭔가 호쾌하고 장대한 이 여행기의 내공이 기대가 됩니다. 정말 말 그대로 유라시아의 중심과 가장자리를 촘촘히 따라가고 있어요.
이런 문장은 어떤가요. “태고부터 유라시아 세계는 이야기로 이어져 있었다. 비단보다 훨씬 가벼운 이야기는 비단보다 훨씬 먼저, 그리고 빨리 이동하면서 유라시아의 문화를 하나로 묶었다.” 위대한 이야기들이 엮이면 이야기의 묶음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몽골과 시베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중국, 인도의 이야기들이 묶이고 엮인 이 책을 새로운 ‘이야기책’으로 추천합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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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GE시리즈
1. 여름 독서 12경, 그 첫 번째 (링크)
2. 여름 독서 12경, 그 두 번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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