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4. 10:11ㆍ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바야흐로 여름의 한복판입니다. 온다던 비는 시늉만 내고는 지나가버렸네요. 매일매일, 덥고 습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잠을 설치게 하며 기어이 진을 빼놓는 열대야도 더 빨리 시작된 것 같고요. 하지만 덥다~ 덥다~, 아무리 말로 푸념을 늘어놔 봐도 말이 바람이 되는 법은 없지요. 열기를 식히기 위해 물로 뛰어들거나 이열치열이 최고라 생각하며 산에 오르는 등 저마다 여름을 견디는 피서법이 있을 겁니다. 옛 선인들은 바람 드는 곳에 책상다리 하고 앉아 책을 읽으며 여름을 넘겼다고 하네요. 공부에 풍류가 더해져서 멋스럽게 느껴집니다. 우리도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을 청해 놓고 잠시 책 속으로 떠나보면 어떨까요?
‘책 읽는 GE’라는 제목 아래 여름 독서를 위한 책 12권을 소개합니다. 분야도 여름휴가 때의 단골 종목인 경제․경영 서적이나 여행 책부터 과학․기술, 음식, 종교 등까지 다양하게 담았습니다. 또 반짝거리는 신간들에 더해 오래 묵었지만 여전히 참신하고 울림이 있는 구간(舊刊)들도 함께 소개합니다. 어쨌든 이번 여름 잠시 더위를 잊으며 도전해볼 만한 책들만 가리고 가려 모았습니다. 오늘은 먼저 새로 나온 책 여섯 권부터 살펴보도록 하지요. (*신간과 구간은 일반 서점의 기준을 따라 출간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책은 신간으로 분류했습니다.)
책들아, 반짝거려라!
1. 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 - 르네상스인을 꿈꾸는 공학도를 위한 필수교양 새뮤얼 C. 플러먼 지음, 김명남 옮김, 유유, 2014.06
엔지니어에게 인문학이 꼭 필요할까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토목기사 출신의 저자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플러먼은 무언가를 생산하고 세상을 유지․진화시키는, 그러니까 ‘세상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엔지니어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들의 이야기에 통 귀를 기울이지 않지요. 엔지니어들이 대중과 교감하는 능력, 바로 교양과 인문학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교양과 인문학이란 결국 교감과 공유의 바탕이자 그 능력인 셈이지요.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서구 교양의 핵심을 훑으며 자기 목소리로 번안해내는 저자의 능력은 꽤 놀랍습니다. 꼭 엔지니어가 아니더라도 기술과 교양의 접점에 관심이 많은 이들, 혹은 엔지니어와 접촉이 많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2.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 최고의 과학자 13인이 들려주는 나의 삶과 존재 그리고 우주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청어람미디어, 2014.06
시인이자 과학자(그것도 노벨화학상 수상자이기도 한)인 로알드 호프만 코넬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새의 날갯짓에서 시를 읽어내기 위해서 날개 속의 혈관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걸 알아서 해로울 것도 없습니다. 정반대로 자연을 더 많이 알면 실재라는 마법에 접근할 길이 새로 열려요.” 실재에 대한 지식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상상력이 더 커진다는 말. 한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룬 고수가 들려주는 가르침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12개의 실제 인터뷰와 1개의 가상 인터뷰(근대적 사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가 실려 있는 이 인터뷰 모음집은 고수들의 경연장입니다. 화학, 천문학, 행동과학, 경제학, 생화학, 인류학, 뇌과학, 신경과학, 지리학, 물리학 등 각 분야의 입문용으로도 충분한, 그러면서 더 깊은 배움을 갈망하게 만드는 인터뷰의 매력에 푹 빠져 보시길요.
3. 어떻게 그들은 한순간에 시장을 장악하는가 - 빅뱅 파괴자들의 혁신 전략 래리 다운즈․폴 누네스 지음, 이경식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2014.06
전화번호부, 비디오카메라, 삐삐, 손목시계, 지도, 책, 휴대용 오락기, 손전등, 가정용 전화, 구술녹음기, 워크맨, 알람시계, 트랜지스터라디오, 내비게이션, 신문, 잡지, 여행사, 음식점 안내책자, 휴대용 계산기. 이 물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스마트폰의 희생자들입니다. 서로가 경쟁업체로 여긴 적도 없는데 어느새 한쪽은 급속히 몰락해버리고 말았지요. 두 저자는 오늘의 산업지형을 뒤흔드는, 마치 빅뱅처럼 시장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이들은 먼저 스마트폰처럼 기존의 안정적인 산업 기반을 한순간에 초토화시키는 이러한 혁신을 ‘빅뱅 파괴자’라 부릅니다. 빅뱅 파괴자들의 배경, 전략,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지요. 이 파괴자들에 이끌려 새로운 산업혁명이 도래하게 될까요? 시대를 읽는 ‘큰 눈’의 하나로 추천합니다.
4. 포크를 생각하다 - 식탁의 역사 비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 까치글방, 2013.12
한글판 부제 그대로 식탁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원서의 부제는 ‘A History of How We Cook and Eat’이지요. 우리가 어떻게 조리하고 어떻게 먹었는지, 즉 어떤 도구의 도움을 빌어 비로소 지금의 음식문화에 이르렀는지, 도구들이 음식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풍성하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식탁 위에 놓인 숟가락에서 기술의 진보를 떠올리기는 어려운 일일 테지만, 이거야말로 기술이 갖고 있는 휴머니티와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가령, 이런 문장. “나무숟가락은 스위치로 작동되지도 않고, 괴상한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특허나 보증서도 없고, 미래주의적이거나 번쩍거리거나 기발한 점도 없다. (중략) 그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는 디자인과 응용공학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소들을 아우르는 수많은 결정이 투입되었고, 그런 요소들은 이후 우리가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기술은 스스로 반짝거리지는 않지만 우리 삶을 반짝이게 하지요. 식탁 위의 기술사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지 않으시겠습니까.
5.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더숲, 2014.06
‘자본론’이라는 말 때문에 혹시 멈칫 했다면 걱정이 과했던 거라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 느린 삶, 서로 나누는 삶을 주창하는 <킨포크>나 ‘효리’ 블로그보다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만 문장들은 유쾌하고 발랄합니다. 일본 오카야마현에서도 외진 동네인 가츠야마의 빵집 <다루마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편 기발하고 한편 혁명적입니다. 일주일에 사흘 휴무, 한 달의 장기휴가, 낡은 집에서 채취한 천연균으로 발효시키는 빵 등… 그렇지만 정말 놀라운 건 이 빵집의 경영이념입니다. ‘이윤을 남기지 않기!’라니요.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경영이라는 화두에 대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 보세요.
6. 미술관에 간 붓다 명법 지음, 나무를심는사람들, 2014.06
불교미술은 우리 문화의 정수이자 중요한 자산입니다. 불상, 탑, 사리탑, 불화, 거기에 불교건축인 절에 이르기까지, 국내나 아시아 쪽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불교미술에 대한 설명서나 개설서, 가이드북도 많지요. <미술관에 간 붓다>는 다른 책들처럼 불교와 미술의 전문용어로 겁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전문적인 용어 이전에 감상 대상인 불교 문화유산에 담겨있는 당대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저자가 우리만의 고유한 것 중 하나로 꼽는 것이 바로 ‘미소’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고통’을 강조하며 그에 대한 위안과 탈출을 제안합니다. 세계의 많은 종교 예술품에서 고통의 이미지를 전시하거나, 혹은 그 고통을 치유하고 해결해주는 존재로서 근엄하고 위압적인 신상(神像)을 내세우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 불교미술에서처럼 시종일관 미소가 주인공인 것은 드문 예이지요. 이처럼 우리 불교미술의 뿌리를 찾아 읽는 저자의 목소리를 가이드 삼아 산사(山寺)나 박물관 으로 떠나보세요. 아는 만큼 보이고, 또 본 만큼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책 읽는 GE’가 맞춤 서비스를 해드리겠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책을 추천 받고 싶을 때, 혹은 이미 읽은 책 중 다른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픈 책이 있다면 gekoreablog@ge.com으로 연락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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