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6 13:12
영국 출신의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작품. 화염병 대신 꽃을 들고 있는 시위대를 그린 벽화로, 게릴라 가드닝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많이 쓰인다.
국민 1인당 가장 넓은 면적의 정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영국에서조차 해마다 신문에서 도시 속의 정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큰 걱정을 한다. 그러나 도시 속에서 정원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은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 더욱이 주거의 형태가 전통적인 가옥에서 공동주택으로 대부분 변해버렸고, 이런 상황 속에서 개인이 소유한 정원을 기대하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가 돼버린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원은 정말 이렇게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형태로 정원이 진화하고 있는 중은 아닐까?
필자는 정원이 정말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그 모습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아직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진행형으로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정원의 진화.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그 따끈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게릴라(Guerrilla)’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다. 스페인어로 게릴라는 ‘작은 전쟁(Little war)’라는 의미다. 1516년 스페인은 페르시아로부터 침략을 당하자 정식 군인이 아닌 농부들과 주민들이 작은 조직을 구성해 페르시아의 대군과 맞서 싸웠다. 이때 대규모의 군대가 전면적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의 인원으로 치르는 전쟁이라는 뜻으로 게릴라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스페인은 다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에 침략을 당했는데, 이때도 그들은 전면전이 아니라 게릴라 전투를 펼쳤고, 이후 ‘게릴라’라는 말이 군사 혹은 전쟁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전쟁 용어인 게릴라가 어떻게 정원과 연관을 맺게 되었을까? 1970년 미국 뉴욕, 휴스턴 거리의 한 공터에서 한밤중에 모종의 일이 진행되었다. 이들은 예술가 리즈 크리스티(Liz Christy)가 주축이 되어 모인 친구들로, 자신들을 ‘그린 게릴라(Green Guerrillas)’라 칭하며 지저분한 공터의 쓰레기를 치워버리고 꽃밭을 만들었다.
다음날, 뉴욕의 시민들은 쓰레기로 가득했던 빈터가 현란한 꽃밭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놀라워하며 반겼지만, 리즈와 그의 친구들은 땅 주인으로부터 ‘불법 침입’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고 말았다. 이에 리즈는 다시 땅의 주인을 상대로 ‘아무리 자신의 땅이라 할지라도 이웃에게 불편을 끼치고 관리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것은 땅에 대한 권리가 없다’는 취지의 역소송을 진행한다.
이 소송은 무려 7년 동안이나 지속됐는데, 뉴욕 타임즈가 이 이상한 소송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면서 리즈와 그의 친구들이 벌인 그린 게릴라 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결국 소송은 뉴욕 시에서 이 땅을 사들여 공공을 위한 공원으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일단락이 났고, 이후 리즈의 사례는 세계적으로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용어와 운동을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게릴라 가드닝은 말하자면 남의 땅을 허락을 구하지 않고 불법으로 점유한 뒤, 그곳을 정원으로 꾸미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게릴라 가드닝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디에 행하고 있을까?
한밤중에 정리 되지 않은 공터에서 꽃을 심고 있는 게릴라 가드너들. 이들은 비어 있는 상태로 방치되는 곳을 깨끗이 치우고 그곳을 아름답게 가꿈으로써 토지의 소유주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선 전 세계적으로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단체가 운영 중에 있다. 이미 한국에도 몇 차례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단체는 자원봉사자로 구성이 돼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 때문에 회원의 수나 신상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게릴라 가드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역을 추천하고, 추천을 받은 조직은 심사를 통해 어느 날, 몇 시, 어느 장소에서 게릴라 가드닝이 일어난다는 것을 공지한 뒤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이들이 이런 활동을 하는 주된 목적은 땅에 대한 올바른 관리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땅이 비어 있는 상태로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될 경우, 대부분은 지저분한 쓰레기가 모이거나 혹은 탈선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그린 게릴라들은 이곳을 깨끗이 치우고 꽃을 통해 경각심을 심어주면서 땅 주인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게릴라 가드닝의 장소는 개인 혹은 국가 소유의 땅 모두가 대상이 된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쓰레기를 버리곤 하는 고속도로 주변도 게릴라 가드닝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또 상가 주변 지역, 상습적으로 주민들이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장소에서도 게릴라 가드닝이 일어나고 있다.
도심 속 작은 자투리 공간에도 게릴라 가드닝이 일어난다. 도심 곳곳에 정원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지역의 환경을 아름답게 바꾸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될 것이다.
버려진 땅, 관리가 소홀한 땅을 대상으로 게릴라 가드닝이 일어나지만, 그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먼저 미관상 지저분해 보이는 장소를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해 꽃을 위주로 정원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고, 채소와 허브 등을 심어 텃밭으로 변화시키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 두 경우 모두 지속적인 정원의 유지와 관리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땅의 관리를 잘 하지 못하고 있는 개인 소유자나 국가, 지방정부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값비싼 다년생식물을 쓰기보다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큰 꽃이 피어 눈길을 끌 수 있는 일년생 초화식물과 채소류를 이용한다.
게릴라 가드닝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국의 경우 18세기, 한 농부가 버려진 땅을 점유해 사과나무를 심고 그곳에서 사과를 수확하는 이른바 농사 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는 지금도 전통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행위이지만, 이 경우 대다수가 불법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게릴라 가드닝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채소와 허브 등을 심어 만드는 텃밭 정원 형태의 게릴라 가드닝의 경우,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관리되어 커뮤니티 가든(Community Garden)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게릴라 가드닝은 일회성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운동이 일어난 뒤, 지속적인 방문을 통해 관리를 실시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대부분 꾸준하게 물을 줘야 하는 재배종의 식물보다는 씨앗이 해마다 스스로 발아할 수 있는 수종이나 산야에서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는 종을 선호한다.
그러나 뉴욕의 리즈 크리스티가 그랬던 것처럼,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힘을 합쳐 게릴라 가드닝을 일으킨 뒤 지속적으로 그곳을 관리하는 사례도 많다.
SNS를 통해 모인 시민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뜰에 마련된 정원을 가꾸는 모습.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게릴라 가드닝에 대한 관심과 실제 활동들이 증가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게릴라 가드닝이 새로운 형태의 정원이 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의 소지가 많다. 대부분은 일회성으로 일어나는 데다 꾸준한 사후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정원의 새로운 형태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강하다.
그러나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매우 크다. 우선 개인이 도심 속에서 정원을 갖는 일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버려진 땅을 이용해 식물을 심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정원을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또 사후 관리의 측면은 빈약할지라도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도시의 미관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효과도 매우 크다. 특히 우범화되거나 쓰레기 더미로 변할 수 있는 환경을 정원으로 바꾸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이로 인해 지역 주민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리됨으로써 정원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많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게릴라 가드닝은 반드시 단체에 소속되어야만 실행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아무런 소속이 없이도 개인이 버려진 땅이나 관리가 소홀한 땅에 씨앗을 뿌리거나 식물을 심어 환경을 변화시키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되고 있다.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우리가 사는 주변 환경을 돌아보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촉구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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