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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심고 도망가고...도시에 나타난 수상한 사람들--- 게릴라 가드너

숲에 관하여/숲, 평화, 생명, 종교

by 소나무맨 2014. 5. 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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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새로미 기자]

▲ 부천시 계수범박동  근처에 버려진 토기를 이용해 꽃을 심었다
ⓒ 박새로미



[5월 1일 오전 10시] 작전명 : 메이데이, 꽃으로 점령하라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자 세계 게릴라 가드닝의 날. 부천시 게릴라 가드너들은 삼정동에 집결하길 바란다 오버.

게릴라 가드닝은 버려진 공간이나 쓰레기로 방치된 공간을 정원으로 가꾸는 운동이다. 처음 이 운동은 땅을 땅답게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졌다. 방치된 땅은 대부분 주차장이나 쓰레기장, 혹은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로 변하기 쉽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꽃으로 이곳을 '공격'한다. 그렇게 꽃밭을 공유화하는 것과 동시에, 땅주인에겐 땅을 소중히 다루길 충고한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반란을 일으킬 장소를 물색한다. 이날 공격한 부천 삼정동 담벼락은 주민들이 무단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었다. 세계 게릴라 가드닝의 날인 만큼 화단을 만드는 데도 총력을 기울였다.

가드너들은 "동네 주민들에게 티 내면서 하는 건 게릴라가 아니라 정규군이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마실 나온 할머니는 꽃밭을 보곤 "여기 담벼락은 늘 쓰레기를 버리거나 자동차를 세워놔서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꽃을 심어주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한편 한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우려를 내비쳤다. "주인이 없기 때문에 이 꽃들은 다 뽑아갈 것이다, 그리고 물은 누가 먹이나?"라고 말이다. 공유지의 비극이다. 하지만 내 것처럼 생각하고 아낀다면 유지되는 건 어렵지 않다. 게릴라 가드닝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문제의식을 심어준다. 그리고 시민이 주인이라고 마음먹는다면 문제의식은 주인의식으로 바뀔 것이다.

게릴라 가드닝을 하는 주체와 비용이 궁금했다. 질문을 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역시 게릴라가 맞았다.

▲ 삼정동 담벼락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하던 곳.
ⓒ 박새로미

▲ 삼정동 담벼락 꽃으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켜라.
ⓒ 박새로미

[5월 13일 오후 2시] 작전명 : 게릴라 가드너와 접선하다

게릴라 가드너 금미정씨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게릴라 가드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원래 이 게릴라 가드닝은 남모르게 해야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참여도가 낮아서 적은 인원으로는 부천시를 변화시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부천은 뉴타운 재개발구역으로 가장 많이 선정된 도시이기도 해요. 곳곳을 돌아다녀보니 혼자서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게릴라를 공개모집 하려고요."

미정씨는 처음부터 게릴라 가드닝을 알았던 건 아니라고 했다. 2년 전 부천시에서 주관하는 게릴라 가드닝 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됐다.

"참 의미 있는 일이구나 싶었어요. 함께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재밌잖아요. 앞으로 혼자서라도 이 일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정보검색을 하면서 게릴라 가드닝을 깊이 있게 알게 되었죠."

그 후 '금미정 대원'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작은 정원도 만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홀로 쓰레기를 치우고 흙을 고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뿌듯했다. 정원을 만드는 활동들은 모바일 커뮤니티로 공유됐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도 게릴라 가드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다양한 직업을 지니고 있어요. 화가, 공예가, 건축가, 금융업, 자영업, 지역활동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죠. 각자 사는 방식이나 전문분야는 다르지만 게릴라 가드닝에 관심을 갖는 거죠."

▲ 금미정 대원 게릴라 가드너.
ⓒ 박새로미

'꽃'과 관련된 전문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라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래서 시민정원사 교육을 수강하는 가드너들도 있다고 한다.

"부천시 측에서도 게릴라 가드닝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예산도 어느 정도 편성돼 있고요. 이 가드닝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 비용 면에서는 도움을 주고 있긴 해요. 하지만 계획하고 행동하는 건 저희 몫이에요. 공무담당자에게 한 발 물러나 있으라고 말해요.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 하잖아요."

3월, 5월, 7월, 9월이 되면 양묘장에서 재배된 꽃을 각 관청에 보낸다. 그중 일부가 게릴라 가드닝으로 사용된다.

"주변 사람들 모르게 꽃을 심는 거잖아요. 다음이 중요하죠. 꽃을 가꾸는 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어야 해요."

미정씨는 정원이 유지되고 있는지 수시로 찾아가본다고 했다. 관리하는 사람을 정해놓으면 편한 일이지만 누군가의 소유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게릴라 가드닝은 공유를 지향한다. 부천 게릴라 가드닝은 공유지를 중심으로 한다. 장소를 정할 때 그 주변 사람들에게 땅 주인을 묻는다.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 시청 원도심과에 협조를 요청한다.

"공식적으로 한 게릴라 가드닝은 부천시의회 옆 영화의 거리, 계수동 공동쓰레기장, 고강동 공원, 삼정동 담벼락, 이렇게 네 곳이에요. 영화의 거리 주변엔 항상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어요. 작년에도 했었는데 그땐 실패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좀 더 화려한 꽃을 심어서 눈에 띄게 해놨어요. 지금은 보존되고 있어요."

▲ 부천시 계수범박동  전체적인 모습. 마을주민이 공동으로 쓰레기를 버리던 곳이었다.
ⓒ 박새로미

▲ 고강동 꼬지공원 공원은 시에서 관리해줄 거라고 생각해서 시민들이 가꾸지 않는다. 그래서 자생력이 강한 식물을 심었다.
ⓒ 박새로미

영화의 거리에 심은 팬지와 비올라는 시기적으로 조만간 시든다고 한다.

"일년초라서 뽑아내야 해요. 그리고 지켜보려고요. 혹시라도 꽃을 심는 시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게릴라 가드닝을 하면서 늘 즐거울 순 없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이런 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에 델 때가 있다고 한다.

"계수동은 시청에서 취지를 설명하려고 하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피하시더라고요. 시민이 하는 활동이라고 다시 말씀드리니, 그제야 받아주셨죠."

아무렇지 않게 꽃을 뽑아가는 사람들도 빈번하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상한다.

"그래도 주민들이 정원 주변을 가꾸고, 청소하고, 내 것처럼 아끼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이런 활동을 옆에서 지켜보던 마을 주민이 자기도 게릴라 가드닝을 돕고 싶다고 말할 때가 제일 보람되죠."

금미정씨는 "꽃 하나가 사람 기분을 좌우하잖아요. 정말 작고 보잘 것 없는 꽃이지만 누군가에겐 기쁨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며 앞으로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 부천시의회 영화의 거리 담배꽁초가 즐비하던 곳. 꽃으로 투쟁하라!
ⓒ 박새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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