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는 의롭지 못한 사회·정치에 저항해야”
“예수는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다 정치범으로 살해됐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바로 정치범이라는 증거다. 예수의 삶을 따르는 교회나 성직자는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침묵하면 안된다. 의롭지 못한 사회 구조나 정치에 저항하는 것은 성직자의 권리이자
의무다.”
지난달 26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씨(54)는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의 천주교 고위직 사제들이나 대형교회 목사들이 입으로만 믿음을 외치면서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예수의
삶과 메시지를 따르기보다 교회 조직과 재산 유지를 우선 순위에 두기 때문”이라고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김씨는
최근 마태오 복음 해설서 <행동하는 예수>(메디치)를 펴냈다. 지난해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에 이은 두번째
책이다. 그는 앞으로 루카 복음을 해설한 <가난한 예수>, 요한 복음을 해설한 <기쁜 예수>를 써 4대 복음 해설서를
완결할 계획이다. 그는 <행동하는 예수>에 대해 “마태오 복음은 ‘가르치는 예수’와 ‘행동하는 예수’라는 두 모습이 두드러지면서도
‘행동’이 예수의 진짜 가르침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다가온 예수, 불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서 고난 받은 예수의
모습을 우리 시대 교회의 한복판에서 살펴봤다”고 했다.
김근수씨의 신작 <행동하는 예수>는 지난해 나온 <슬픈 예수>에 이어 4대 복음서를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한 두 번째
책이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고위직 사제·목사들 조직·재산 유지 급급 강정마을·대한문 등 ‘길거리 미사’가
예수 가르침에 가까워”
김씨는 한국인 첫번째 사제인 김대건 성인 동생의 후손이다. 친가뿐 아니라 외가, 처가가 모두
조선시대부터 신앙을 지켜온 200년 천주교 집안 출신이다. 전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 광주가톨릭대학에
입학했다. 2학년을 마치고 독일 마인츠대학에 유학해 가톨릭신학과에서 공부했다. 1997년 사제품을 포기하고 군사독재에 의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등 6명의 예수회 신부가 암살당한 엘살바도르로 옮겼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UCA대학교에서 남미 해방신학의 대가인 소브리노 신부에게 3년간
배웠다. 이때 로메로 대주교가 총에 맞아 숨진 성당을 50번 넘게 방문했다고 한다.
그는 2002년 가족을 이끌고 아내의 고향인
제주에 정착했다. 제주 시내에서 김근수어학원을 운영하며 살았다. 지금도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지난해 교황 프란치스코 선출 무렵
<슬픈 예수>를 펴내며 오랜 은둔생활을 끝내고 신학자로서 세상에 나왔다. 주로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성서를 해설한 이 책은 한국 가톨릭계와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씨는 “진정한 성서
신학은 고고학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살펴보는 학문”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태도를 ‘현장신학’이라고 명명했다. 한국형 해방신학쯤 된달까. 그는 해방신학이나 한국 개신교의 민중신학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의심이 덜한
용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현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드러나는 모든 곳이다. “교회가 교회 안에 머무르기보다 거리,
광장, 시장, 시위 장소 등 고뇌와 갈등이 어우러진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강정마을, 대한문, 밀양 등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길거리
미사를 주목했다.
“그곳에서 열리는 미사가 명동성당 미사보다 훨씬 예수의 가르침에 가깝다. 지금 길거리 미사가 열리는 곳에 고통받는
예수가 있다. 이처럼 아름답고 가슴 먹먹하고 감동적이면서 품격 높은 미사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다. 행동으로, 몸으로 자비와 정의를
실천하는 길거리 미사는 ‘순교자의 나라’인 한국 가톨릭의 대단한 자랑이다.”
그는 틈날 때마다 현장의 미사에 참여한다. 김씨는
<행동하는 예수>의 프롤로그에서 ‘예수를 바라보고 존경하는 것보다 예수 뒤를 바짝 따르는 걸음이 훨씬 중요하다’고 썼다. 최근 교황
프란치스코도 똑같은 말을 했다. 한국의 염수정 추기경을 포함한 신임 추기경 서임 예식에서다. 교황은 마르코 복음을 인용해 추기경들에게 “지금도
여전히 앞서 걸어가고 있는 예수의 뒤를 따라 십자가 고통의 길을 함께 걸어가자”고 당부했다.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사제들이 먼저
순교의 자리, 희생의 자리로 가라는 말씀이다.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을 확실히 편들고 있다. 자본주의 병폐를 뚜렷하게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황에게 열광한다.”
그는 교황이 가톨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그가
<행동하는 예수>에서 한국 교회를 매섭게 질타할 수 있었던 것도 교황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한국 교회
현실을 돌아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는 최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비판한 정진석 추기경과 염 추기경에 대해 “가톨릭에서 선거 출마나
공직 진출이 아닌 성직자의 정치·사회 참여는 적극 권장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염 추기경이 로마 교황청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제단을
‘대단히 비이성적’ 혹은 ‘비합리적’이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애꿎은 사제단을 나무라지 말고 추기경이 앞장서서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의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행동을 정치라고 한다면 예수는 완전히 정치인이다. 하지만 예수는
권력을 원하지 않았다. 사제단에도 권력을 갖겠다는 사제는 아무도 없다. 반대로 예수를 교회 안에 가두려고 하는 그분들이야말로 부당한 세력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더 정치적이다. 부자, 권력자들과 손잡는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는 거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기 위해 부자들과
결별했다. 종교인과 교회는 가난하게 살고, 가난과 싸우고, 가난한 사람의 손을 잡아야 한다.”
김씨는 교황의 방한 이야기가 나오자
“교황이 한국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운명과 한국의 고난받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길 바란다”며 “교황이 방북을 제안해 북한 방문까지
이루어지면 좋겠다. 또 서울에서 열리는 시복식은 민주주의 투쟁 현장이었던 광화문이나 시청에서 했으면 한다. 특별히 대한민국의 아픔이 집중된 현장
중에서 적어도 한 곳, 그중에서도 평화의 문제가 걸려 있는 강정마을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경향신문 입력 : 2014-03-02 21:2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