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공모전 이야기부문 수상작 … ⑤ 우수상 - 2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참외 2알

2013. 12. 31. 14:34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참외 2알

서울사랑 공모전 이야기부문 수상작 … ⑤ 우수상 - 2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

김준래 | 2013.12.03

 

과일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올빼미버스 등 시민 말씀대로 탄생한 10가지 정책을 직접 경험한 체험담, 영상, 그리고 웹툰을 공모하는 <제7회 서울사랑공모전>이 지난 10월에 있었다. 서울톡톡에서는 그 중 이야기부문에 선정된 13편을 매일 한 편씩 소개한다.

[서울톡톡] 몇 해 전, 우리 부부는 서울 근교의 모 장소에서 송년행사를 겸한 어느 조그만 친목모임에 참석했다. 각종 레크레이션과 다과를 곁들인 순서가 이어지면서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여흥을 즐겼다. 모임의 열기가 점점 무르익으면서 그날의 하이라이트인 이벤트가 시작되었는데, 참석한 부부들이 무대 위에 올라 출제된 문제에 답을 맞히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도 무대에 올라 기다리고 있는데 진행자가 갑자기 "남편들은 모두 지갑에서 돈을 다 꺼내어 아내에게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했지만 어쨌든 진행자가 시키는 대로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아내들에게 주었다. 그런 후에 진행자가 낸 문제를 본 신랑들은 모두 난감해 했다. 그 문제는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가장 값진 선물하기>였기 때문이었다.

아내들은 모두 좋아라 웃으면서 신랑들이 어떤 선물을 하나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했지만 남편들은 갑자기 주어진 문제에 쩔쩔매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서 있을 수만도 없는 일. 서서히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가서 보석류들을 구걸(?)하는 등 각양각색의 다양한 모습들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난감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어쨌거나 선물을 준비하는 시늉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주머니도 뒤지고 하염없이 무대를 왔다갔다하며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창밖 아래로 시장이 보였는데, 그 순간 불현듯 머릿속에서는 전통시장과 관련된 옛 추억이 떠오르면서 아내에게 정말 값진 선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유난히도 입덧이 심했던 아내는 큰아이를 임신하고 나서 그야말로 물만 먹어도 구역질을 해댔다. 입덧이 절정을 이루던 어느 추운 겨울 밤, 아내는 갑자기 참외가 먹고 싶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농업의 발전으로 한 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재배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철지난 과일을,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2~3달 동안 거의 못 먹고 지낸 아내를 생각하니 참외밭에서 가서 캐서라도 오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뛰고 뛰어도 워낙 늦은 시간이여서 대형 할인점이나 슈퍼마켓은 문이 닫혀 있었고, 심지어 길가의 과일가게도 보이지 않아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전에 살았던 지역의 전통시장에 가보자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동네에서 전통시장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가 걸렸는데, 겨울밤이라 그런지 택시도 잘 잡히지 않아 덜덜 떨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정성이 통했던지 전통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과일상점에 비닐랩으로 포장되어 있는 노란 참외를 보고 감격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과일상점 사장님은 처음에 혼자서 싱글벙글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의아하게 생각하였지만 내 얘기를 듣고는 본인의 일처럼 기뻐하며 덤으로 참외 1개를 더 주었다. 대형 할인점이나 슈퍼마켓 같으면 느낄 수 없는 훈훈한 전통시장의 정이 느껴졌다.

그 길로 날듯이 집으로 돌아와 아내 앞에 노란 참외를 꺼내놓는 순간 아내는 감격해서 진짜 눈물을 보였다. 더 기뻤던 것은 물만 먹어도 토하던 사람이 참외를 정말 맛있게 먹는 것이었다. 그날 밤 아내가 정말 달게 자는 모습을 보며 남편으로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무언가 해주었다는 기쁨과 함께 그동안 그냥 노인들이나 찾는 보잘 것 없는 장소라 생각했던 전통시장이 주었던 이 감동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떠올렸던 기억에서 다시 현실의 무대로 돌아온 나는 천천히 그 감동을 되새기며 지갑 속에서 노란 메모장을 꺼내어 갖고 있던 볼펜으로 정성스럽게 참외 2알을 그렸다.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순서대로 아내에게 줄 값비싼 선물에 대하여 진행자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계를 풀어 주겠다는 사람, 구두를 벗은 사람 등 예상했던 선물이었지만 모두들 재미있는 듯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와서 진행자에게 의외의 선물을 내놓자 진행자뿐만 아니라 참석자 모두가 의아해 하는 눈치였지만, 제가 그 선물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 하자 서서히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설명을 마친 후 나는 아내를 보며 "여보, 지금 내 수중에는 돈이 한 푼도 없지만 당신을 위해 추운 겨울밤을 정신없이 뛰어 다니며 참외를 사려고 했던 그때의 그 마음 그대로 소중한 당신에게 주는 내 사랑의 선물이야,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라고 말하자 탄성이 일면서 좌중은 완전히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가장 값진 선물하기>의 1등과 함께 여러 부부의 질시어린 눈총도 받아야 했다.

그날 이후, 난 가끔씩 노란 메모장에 참외를 그려 아내에게 사랑을 전한다. 화장대 위에나 침대 머리맡이나 부엌의 싱크대에 노란 참외 2알을 그린 쪽지를 붙여 놓으면 아내는 이내 발견하고는 내게 사랑의 윙크를 보낸다.

특히,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싸움의 해소제로는 이 선물만한 치료제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말다툼한 다음날 몰래 화장대 위에 참외 2알을 그린 쪽지를 붙이고 출근하면 퇴근 후에는 언제 우리가 싸웠나 할 정도로 다시 원래의 부부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이고 점점 인간관계가 메말라간다고 하지만 나는 전통시장에서 샀던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로 오늘도 아내에게 사랑을 전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