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공모전 이야기부문 수상작 … ③ 최우수상 - 2 ‘안심병동이야기’--힘들었던 봄, 엄마 곁에 있었던 든든한 그녀

2013. 12. 31. 14:29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힘들었던 봄, 엄마 곁에 있었던 든든한 그녀

서울사랑 공모전 이야기부문 수상작 … ③ 최우수상 - 2 ‘안심병동이야기’

이진자 | 2013.11.28

 

진료받는 환자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올빼미버스 등 시민 말씀대로 탄생한 10가지 정책을 직접 경험한 체험담, 영상, 그리고 웹툰을 공모하는 <제7회 서울사랑공모전>이 지난 10월에 있었다. 서울톡톡에서는 그 중 이야기부문에 선정된 13편을 매주 한 편씩 소개한다.

[서울톡톡] 봄이다. 마음속의 봄은 이미 온 지 오래지만, 아직도 쌀쌀한 날씨 때문에 섭섭한 마음까지 든다. 지구 온난화라고들 온 세상이 난리지만, 올 봄은 유난히 춥고 더디 오고 있다. 아파트 정원의 벚꽃이 화들짝 피었지만, 아직도 바바리를 벗지도 못하고, 목에는 스카프를 여미며 봄이 멀게만 느껴져, 이른 아침 하늘을 바라본다.

남편이 은퇴를 하던 날도 쌀쌀한 봄날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갑자기 나를 동네 술집에 불러내던 그 밤에도 아파트에는 하얀 벚꽃 천지였다. 그 날 밤, 남편의 갑작스런 명예퇴직이라는 말에 '명예'가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못하는 술 한 잔을 마시고, 함께 아파트로 들어오는 그 길에서 느껴지던 밤공기는 아직도 내 가슴에서 한기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난 벚꽃이 춥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학교 앞에 개업을 한 김밥 집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온 몸을 던져 겨우 한 사람의 인건비 정도의 이익을 내고 있지만, 남편과 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생을 즐겨가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충고하지만, 우리는 김밥 재료를 다듬고, 김밥을 말고, 김밥을 사간 사람들이 다시 또 찾아주고, 단골이 된 사람들과 세상 살아가는 한 자락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는 게 삶의 기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뭐 그리 거창하겠는가? 한때는 남 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아주 잠깐이지만, 남보다 더 낫다는 거만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이제는 그저 별일 없이 오늘 하루를 보낼 수만 있으면 된다는, 꿈이 아주 소박해져서, 포대로 들어오는 쌀값이 2,000원만 내려도 그날이 그렇게 행복하게 느껴진다.

막 김밥집 문을 따고 들어가는 중에 받은 전화는 다급한 올케의 목소리다.

"어머님이 쓰러지셨어요!"

엄마! 한 동안 잊고 있었다는 죄책감과 앞으로 닥쳐올 불길함에 엄마라는 단어에서 꿀꺽 침이 삼켜진다. 엄마는 씩씩했다. 늘, '나는 괜찮아, 너네 괜찮으면…….'이 말은 엄마의 상용어다. 그런 엄마가 괜찮지 않다고 올케는 통보하고 있다.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달려간 나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평소의 건강했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하루아침에 중환자가 되어 있었다.

응급실은 전쟁터 같았다. 빨리 봐 달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 힘없이 링거를 맞는 사람, 우는 아이를 달래는 사람, 아프다고 떼쓰는 사람, 바삐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 쉴 새 없이 울리는 방송과 전화벨 소리……. 그러한 소음 가운데 엄마는 말이 없이 초췌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여러 가지 검사가 지루하게 끝이 나고, 의사는 뇌졸중이라는 진단을 담담하게 통보했다. 2주간 혈관을 뚫는 약물을 투여해야하고, 경과는 지켜봐야 한단다. 현재 오른쪽 뇌에 병변이 생겼으니, 왼쪽 편마비가 올 수도 있단다. 다행한 건 일찍 발견이 되어 예후가 좋을 수도 있다, 뭐 그런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2주! 난, 김밥집 문을 2주 닫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교회 김밥 주문과 동네 부녀회 봄 소풍 김밥 주문 생각들이 엄마의 예후 걱정 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옛말에 한 부모는 열 자식을 섬기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섬기지 못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자식의 이기심을 부모들을 알기나 할까? 올케는 이미 병원 입원 이후는 나와 상관이 없다는 표정으로 빨리 집에 가야한다며 내 곁을 떠나버린다.

이해가 간다. 변변치 않은 남편, 고3부터 줄줄이 이어진 아이들 3명, 그리고 엄마, 엄마를 모시고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난 올케에게 늘 죄인이다. 다행히 엄마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돌보고, 올케와 그리 사이가 나빠 보이지도 않았고, 건강해서 입원 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의 사건은 더욱더 내겐 암담하게 느껴진다.

입원 설명을 하던 의사가 '안심병동'이 있는데 가시겠냐고 묻는다. 안심병동? 간호사가 보호자 대신 모든 간병과 간호를 다 해준단다. 보호자가 사인만 하면. 즉 다시 말해서 간병인도, 보호자도 필요가 없단다. 세상에 이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듣지 못했다.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의료의 질은 높여주고, 간병비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란다. 하지만 엄마를 보호자가 아닌, 간호사에게 맡긴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생각하는 간호사는 늘 바쁘게 종종걸음으로 다니는 집단으로 보였기에 과연 이런 엄마를 어떻게 수발할지 걱정이 앞섰다. 소변과 대변은 어떻게 할지, 밥은 어떻게 먹일지, 그 일을 바쁜 간호사가 해 준다는 게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하루 간병료를 생각하니 내가 말아야 할 김밥 줄 수가 생각이 났다. 엄마를 방치한다는, 어쩌면 딸로서 무책임 하다는 생각으로 난, 약간은 풀죽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엄마가 입원한 병동은 신경과 병동이었다. 서울의료원은 2011년에 삼성동에서 이전해서 그런지 병실이 매우 깨끗하고 시설이 좋아서 우선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입원한 병실 바로 앞에는 간호사실과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간호사가 책상과 컴퓨터를 옮겨놓아 늘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구조여서 우선 마음이 놓였다. 간호사로부터 여러 가지 설명을 들으면서 엄마를 방치한다는 죄책감이 서서히 줄어들고, 앳되게 보이는 간호사가 점점 믿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에게 맡기고 가세요."

이 한마디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난 그만 속에서 울컥 뜨거운 그 무엇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 그런 말을 들어 볼 수 있겠는가?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은 아직도 전화 한 통이 없다. 모시고 사는 게 늘 불만인 동생이라 그도 이해가 간다. 병원을 나서면서 난, 푸른 봄 하늘에 우뚝하게 서 있는 서울의료원 건물을 몇 번을 뒤 돌아보면서, 엄마를 혼자 남겨 두고 떠나왔다.

다음날 면회를 갔을 때, 엄마가 눈을 뜨고 어눌하지만 말하기 시작했다. 기적이었다. 의사는 다행히 약물요법이 효과를 보고 있는 거 같다고 설명한다. 엄마는 예쁜 환자복을 입고, 공기 침대를 깔고, 머리맡에는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엄마의 체위변경 시간표가 붙어 있고, 간호사의 병실 순회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간호사를 부르는 콜벨은 스프링으로 되어 있어 엄마는 누워서도 간호사를 언제든 부를 수가 있었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병원을 나는 오늘 보았다. 간호사는 환자가 너무 좋아지고 있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외할머니 입원했어?"라며 심드렁하게 묻고는 학원으로 바삐 떠나버린 딸이 갑자기 야속해진다. 퇴원이 다가오면서 엄마는 걷기 시작했다. 후유증은 거의 남지 않았다. 그래도 일찍 발견하고 서울의료원에 모시고 온 올케가 고맙게 느껴졌다. 퇴원일에 엄마는 병원에 조금 더 입원하면 안 되겠냐고 한다. 그 정도로 간호사와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말도 마라. 내 딸도 그렇게는 못한다. 한 밤 중에도 이것(콜벨)만 누르면 재깍 와서 나를 도와준다. 집에 가면, 내가 누구를 불러야 할지……. 좀 더 입원 하면 안 되겠냐? 더 좋아질 때까지"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의사에게 부탁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게 보호자 없는 병동의 목적이라는 말을 듣고 부끄러운 얼굴로 퇴원을 서둘렀다.

엄마는 지금 매우 건강하게 잘 지낸다. 덕분에 혈관개선제와 혈압 약을 꼬박꼬박 드시면서. 서울시민의 세금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는 서울시가 서울시민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도 없고 잘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서울의료원 안심병동이야 말로 서울시가 하는 시민정책 중에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멋진 정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정책이 보다 많은 병원에서 실시되어 누구나 환자를 안심하고 간호사에게 맡기고 생업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힘들었던 봄이 지나가고 또 여름이 지나가고, 오늘은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서울의료원 안심병동의 간호사들이 고맙고 보고 싶다. 아울러 이러한 제도를 추진해 준 서울시에도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