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공모전 이야기부문 수상작 … ① 대상 ‘엄마의 퇴근길’새벽 1시, 엄마를 만나러 간다

2013. 12. 31. 14:24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새벽 1시, 엄마를 만나러 간다

서울사랑공모전 이야기부문 수상작 … ① 대상 ‘엄마의 퇴근길’

이은정 | 2013.11.26

 

와우서울작가 원아이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올빼미버스 등 시민 말씀대로 탄생한 10가지 정책을 직접 경험한 체험담, 영상, 그리고 웹툰을 공모하는 <제7회 서울사랑공모전>이 지난 10월에 있었다. 서울톡톡에서는 그 중 이야기부문에 선정된 13편을 매일 한 편씩 소개한다.

 

[서울톡톡] 엄마는 건물 청소를 한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였다. 식당일, 주유소, 가사도우미 등 엄마는 안 해본 일이 없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제일 편하다는 이유로 엄마는 15년째 청소를 하고 있다.

내가 6살, 동생이 4살 때였다. 엄마는 새벽 5시에 출근을 해야 했다. 청소일을 시작하기 전, 엄마는 숫자도 못 읽는 나에게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쳤다.

"저 시곗바늘이 8에 가면 아침, 12에 가면 점심을 먹는 거야. 알겠지? 동생도 잘 챙기고."

그렇게 난 아침나절 내내 시곗바늘을 보다가 8시면 아침, 12시면 점심을 먹곤 했다. 챙겨주는 사람 없이 크는 우리를 안쓰러워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엄마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엄마의 일은 고됐다. 사무실과 화장실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걸레로 복도를 닦고, 지하에 내려가서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는 것. 그것이 엄마의 일이었다. 겨우 30대의 젊은 여자가 하기엔 고된 노동이었을 게 틀림없다. 그렇게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해서 엄마가 번 돈은 한 달에 100만 원이 조금 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 나와 동생은 이제 혼자 밥을 챙겨 먹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엄마는 자식들한테 짐이 되기 싫다며 여전히 건물 청소를 한다. 도봉산역에서 여의도까지, 1시간이 넘는 시간을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15년을 다녔다.

올 초부터 엄마는 밤 11시에 시작해 새벽 3시면 끝나는 일을 시작했다. 낮에 온전히 집에서 쉴 수 있다고 좋아하는 엄마. 문제는 새벽에 일이 끝나니 집으로 돌아오는 차가 없다는 거였다. 결국 엄마는 몇 시간을 버티다 첫 차를 타고 돌아오곤 했다.

"엄마, 택시 타고와. 피곤한데 왜 첫차를 기다렸다가 와?"
"하루 일당을 택시비로 날릴 순 없잖여!"
"그럼 일을 그만 두든가!"
"내비둬어. 놀면 뭐혀."
"그럼 아프단 소리를 하지 말든가! 병원비가 더 들어!"

힘들어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시작한 말인데 결국 엄마한테 못할 소리를 하고 말았다.

지난 9월 심야버스가 생겼다는 뉴스를 봤다.

"엄마, 여의도에서 도봉산까지 오는 버스 생겼대!"
"참말? 좋다야. 아침까지 안 기다려도 되겠다야.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평생을 가난하고 힘들게 살면서도 뭐가 그리 고마운 일이 많은지 엄마는 늘 감사를 입에 달고 사는 분이었다.

그날도 밤 10시, 엄마가 평상시처럼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난 시험을 핑계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엄마 갔다 올겨. 너무 피곤하게 하지 말고 일찍 자아."
"응, 갔다 와."

엄마를 보내놓고 나니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은 잠도 오지 않았다. 새벽 1시, 엄마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N16번, 심야버스를 탔다. 새벽시간이지만 버스는 만원이었다.

'엄마가 이 길을 따라 출근을 하셨겠구나.....'

참 먼 길이었다. 엄마는 이 먼 길을 다니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신의 인생이 한스럽진 않았을까? 엄마는 15년을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하며 우릴 키웠는데 어쩜 난 한 번도 마중 나갈 생각을 못했을까. 도착한 여의도는 조명 때문인지 대낮처럼 밝았다. 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새벽 3시 30분. 멀리서 한 여자가 걸어왔다. 예순이 다 돼 가도 여전히 소녀 같고, 여전히 고운 우리 엄마가.

"엄마!"

그렇지 않아도 큰 엄마의 눈이 더 커졌다.

"여긴 어째 온 겨?
"버스 타고 왔지."
"잠이나 자지 왜 그런 겨."

엄마와 난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엄마 옷에 밴 락스 냄새가 새벽바람에 실려 코끝을 스쳤다. 새벽 3시 40분. 버스가 도착했다. 엄마와 난 버스에 올라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말도 없이 심야버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듣고 있었다. 버스는 새벽길을 씽씽 잘도 달렸다. 도봉산역에 도착한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엄마, 우동 한 그릇 먹고 갈까?"
"그럴까?"

엄마와 난 포장마차에 들러 뜨끈한 우동 한 그릇을 먹었다.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없었던 새벽 데이트. 그날 엄마와 나의 데이트는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다.

엄마는 오늘도 심야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겠지. 난 오늘도 엄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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