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의 연동전략--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2013. 11. 19. 15:20정치, 정책/통일, 평화, 세계화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의 연동전략

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webmaster@selfg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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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8  23: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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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제 : 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사회 :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토론 : 김준형(한동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장)
  
   ▲ 토론 : 정낙근 (여의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의 연동전략

Ⅰ. 문제제기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북한은 핵무력의 지속적인 건설과 함께 경제건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한창 고조되던 지난 3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도(道)별 개발구 설립을 지시한 이후 5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개방을 위한 작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북한은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천명한 이후 관광과 오락, 유통업을 중심으로 경제개발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15억 9,000만 달러의 외자를 유치해 14개 개발구를 건설하기 위한 ‘개발구 투자제안서’를 공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을 보면, 경제적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을 지역별로 도입해 초보적 단계의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사실상 개혁.개방과 관련하여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현재와 같은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우리가 열렬히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일이다. 하지만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내걸고 있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개혁.개방에 나설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경제특구에 대한 진출은 북한체제를 강화시키고 핵무기 포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핵무력을 더욱 강화하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 이럴 경우 우리의 대응방향은 북한의 개혁.개방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경제협력을 제한하고 외자유치를 저지하는 일일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당장 끌어낼 수 없는 것이라면, 핵무기 포기를 전제로 개혁.개방을 통해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할 수는 없을까? 북한이 추진 중인 개혁.개방이 성공을 거두어 더 이상 핵무기가 없어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때 협상에 의한 핵무기 포기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북한의 비핵화를 입구로 삼기보다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도와줌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출구에서 비핵화를 달성할 수는 없을까? 하지만 여기에는 북한이 개혁.개방한다고 해도 비핵화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先비핵화 실현→ 後개혁.개방 지원’이나, ‘先개혁개방 지원→ 後비핵화 실현’ 방안 모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가능한가? 대안으로 북한의 비핵화 실현과 개혁.개방 지원을 프로세스로 접근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차피 한반도 비핵화나 북한체제의 개혁.개방이 단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양자를 하나의 과정 속에서 밀접하게 연동시켜 나가며 실현해 나가는 ‘연동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Ⅱ. 한반도 정세의 특징과 한반도문제의 해결과제

1. 미.중 신형 대국관계의 동요와 한반도 정세 파급영향

(1) 흔들리는 신형 대국관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제5기 지도부 출범 이전부터 미국과 새로운 대국관계를 맺자고 제창해 왔다. 금년 2월 오바마 2기 행정부와 3월 시진핑 체제의 공식 출범 이후 미.중 양국은 발전적인 관계를 모색해 왔고, 마침내 6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신형 대국관계를 맺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신형 대국관계를 보는 미국 내의 시선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 내 외교.국방 관계자들은 중국이 주창하는 신형 대국관계를 받아들일 경우 자칫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국이 손 놓고 보고만 있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신형 대국관계에 동의하면서도 대(對)중국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선언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방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재정균형을 위해 국방예산에서만 향후 10년 동안 최소 5,000억 달러에서 최대 1조 달러까지 감축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중국을 자국의 힘만으로 견제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동맹국들의 힘을 빌려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고 있다.

미.일 외교국방 장관회담에서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였다. 또한 한.미 안보장관회의(SCM)에서는 북한의 핵도발에 대응한 ‘맞춤형 억제전략’의 구축에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의 일본 집단자위권 용인, 미.일 주도의 MD 참가, 그리고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의 재추진 등 한.미.일 군사협력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한.미.일 군사협력 문제가 거론되면서 중국의 반발이 점차 거세지고, 북한의 은하3호 및 제3차 핵실험 이후 형성되었던 5:1 구도가 점차 흔들이는 모양새이다. 중국은 올해 초부터 악화됐던 북.중 관계를 조기에 회복한 데 이어 북한의 6자회담 조기재개 방안에 찬성하고, 한국의 MD참가 가능성을 경계하며 한.미의 맞춤형 억제 전략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와 같이 미.중 신형 대국관계의 구축이 지체되고 있지만, 이것이 곧바로 미.중관계가 대립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또한 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나 평화.안정을 위한 노력을 중단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신형 대국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동북아의 주도권 유지를 위해 이에 앞서 한.미.일 3각 협력체제의 구축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반발도 한국이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여 대(對)중국 견제망에 참여하는 것을 막아보고자 하는 데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중국정부는 지난 10월 22일 한.미 국방장관이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해 발표한 ‘맞춤형 억제전략’에 대해 경계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정부가 ‘맞춤형 억제전략’으로 대북 군사위협을 고조시킨다고 주장하거나 미국의 대한(對韓) 핵우산이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여 핵무력 증강을 촉진시킨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2) 미.중 관계 변화의 한반도정세 파급영향

미.중 신형 대국관계의 구축이 지연되고 해상영토를 둘러싼 중.일 간의 분쟁이 계속되면서, 동북아 신질서는 미.중 양국이 신형 대국관계의 구축이라는 큰 틀에 합의했음에도 미국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에 따른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강화, 더 나아가 한.일 군사협력의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불확실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먼저, 미.중 신형대국관계의 동요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재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의 은하3호 시험발사와 제3차 핵실험 이후 6자회담을 둘러싼 전략적 공조체제는 북한을 상대로 한 5:1 구도였다. 그러나 ‘선결조건’을 내세운 한.미.일 3국과 ‘조건 없는 재개’를 내세운 북한 간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2.29합의+α>의 전제조건을 내세우며 6자회담의 재개에 앞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구축에 역점을 두어 왔다. 이에 비해 중국과 러시아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통해 북한 핵문제를 관리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달성함으로써 한.일 및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빌미를 없애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음, 6자회담의 재개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남북관계의 정상화도 늦어지고 있다. 남북관계는 우여곡절 끝에 개성공단의 국제화에 합의하면서 조기에 정상화되는 듯했으나, 예정된 날짜를 이틀 앞두고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로 중단되면서 다시 난항을 겪고 있다. 북측이 강력히 요구했던 금강산관광의 재개를 위한 대화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이 내세운 경제강국의 건설에 소요되는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특히 한국과의 관계 회복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일 3국은 3자협의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보유 단념’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특히 한국은 남북 간의 합의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한,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 이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개선도 늦춰지고 있다.

이처럼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은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정상화와 같은 한반도 정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일 관계가 예전보다 악화됐기는 하나 미.일동맹과 한.미 동맹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미국을 매개로 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군사 교류.협력도 유지되고 있다. 또한 북.중 관계와 북.러 관계가 냉전시대보다 약화됐으나 여전히 우호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지역에서 냉전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나 안정과 평화의 질서로 이행하기에는 넘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2.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계의 현황과 과제

미.중 강대국 관계가 동북아 및 한반도 정세를 큰 틀에서 규정하고 있기는 하나, 역으로 한반도 정세가 미.중 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노린 잇단 도발은 대응수위를 둘러싼 미.중 간의 협력과 대립의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한국의 과거사에 대한 단호한 대일 입장은 동북아 신질서의 주도권을 노리고 있는 미.중 양국의 전략적인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의 향방은 미.중의 동북아전략의 핵심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1) 북핵문제 악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과제

북한은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 이후 핵무기 보유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 구상’을 내걸며 비핵화를 우선순위에 놓는 정책을 표방했지만, 외교적 협상보다 레짐 체인지를 통한 북핵 해법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남북한의 동상이몽이 맞물려 북한의 핵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북한은 2009년 4월 5일 장거리로켓(은하2호/광명성2호)을 시험 발사한 데 이어, 외무성은 4월 14일자 성명을 통해 6자회담을 거부하고 핵시설의 원상복구와 연료봉 재처리 방침을 밝혔으며, 4월 29일자 성명에서는 핵실험과 ICBM 발사 및 경수로연료의 자체생산 방침을 밝혔다. 마침내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실시하였고, 북한 외무성은 6월 13일에는 우라늄 농축의 착수 방침을 밝히고, 11월 3일에는 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를 8월 말에 끝내고 무기화에서 성과를 거두었다고 발표하였다.

2010년에 들어 천안함 사태 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5월 12일 북한은 자체 기술로 수소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핵융합반응에 성공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북한당국은 11월에 미국의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하여 영변지역에서 2,000개가량의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하면서 자신들의 핵제조 능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북한은 오바마 2기 행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둔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북한은 2013년 1월 24일의 국방위원회 성명과 2월 12일의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제3차 북핵실험이 미국을 겨냥한 것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2001년과 2010년의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자국을 핵선제타격의 대상명단에 올리는 등 대북 적대시정책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자국의 핵실험이 「유엔헌장」 제51조 규정이 허용하는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 이후로도 북한은 핵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오고 있다. <10.3합의>에 따라 75%가량 불능화했던 영변 핵시설을 원상회복시켜 2013년 8월부터 재가동하고 있으며, 영변에 건설 중인 경수로 시험로도 2014년 상반기까지는 완공되어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영변을 비롯해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몇 곳에서 우라늄농축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6자회담이 중단됐던 지난 5년 동안 오히려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되었다. 2011년부터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미.북 간의 접촉이 이루어져 2012년 2월에는 <2.29합의>가 도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은하3호 1호기’ 우주로켓의 발사로 6자회담의 재개는 무산되었다. 아직은 언제 6자회담이 재개될지 쉽게 전망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중국의 활발한 중재로 6자회담의 재개조건을 둘러싼 미.북 간의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렵사리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과연 이 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전망이 불투명하다. 국가노선으로 내세우고 국내법적으로도 뒷받침해 놓은 북한의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이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이라는 6자회담의 목표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미.중 사이에 처음 개최된 2009년 7월 제1차 전략.경제 대화(S&ED)에서 중국 왕광야 외교부 수석부부장이 미.북 직접대화를 통해 북한의 ‘이유 있는 안보우려(reasonable security concerns)’를 해소해야 북핵문제가 풀린다고 미국에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이른바 북한의 ‘이유 있는 안보우려’를 해소해 주면서 핵포기를 유도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최대의 과제이다.

(2) 남북 군사적 대립의 지속과 한반도 안정.평화의 과제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과 2009년 1월 김정은 후계체제의 내부 결정 이후, 북한은 김정은 정권의 출범을 앞두고 군사강국의 건설이라는 김정일 시대의 국가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에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완성하고 김정은 시대에는 경제강국의 건설에 주력한다는 국가전략을 세워놓았으나, 갑작스런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이러한 전략이 차질을 빚게 되었다.

결국 김정은 정권에 들어와서도 두 차례의 ‘은하3호’ 우주로켓의 시험발사와 제3차 핵실험 등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를 악화시키는 도발이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김정은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국제사회에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능력 보유는 미국의 핵비확산 전략에 대한 정면 도전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요인이 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 정례적인 독수리 연습(’13.3.1~4.30) 및 키리졸브 훈련(3.11~21)을 실시하여 미국의 확장억제력 제공능력을 점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북한은 이것이 자신들에 대한 핵전쟁연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하고 남북불가침합의를 전면 폐기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유엔사-북한군 간 직통전화와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직통전화,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차례로 차단해 버렸다.

미국은 이번 훈련에서 미 공군의 B-52 전략핵폭격기를 미 본토에서 세 번이나 출격시켜 핵무기 모의투하 훈련을 실시하였다. 또한 B-2 스텔스 폭격기를 한반도에 공개 출격해 폭격훈련을 실시했으며 최신예 F-22 전투기도 오산기지에 배치하였다. 또한 미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이 부산에 입항하고, SBX-1 레이더와 이지스급 구축함이 동해 인근에 배치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 외무성은 “B-52의 재출격 시 군사적으로 대응할 것”을 공개적으로 경고한 데 이어, 3월 26일 북한은 1호 전투근무태세에 돌입한다고 발표하며 군사태세를 한층 강화하였다. 3월 29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직접 작전회의를 긴급히 소집하여 전략미사일부대의 사격대기를 지시하고, 3월 30일 “남북관계가 전시상황에 돌입한다”고 선언하였다.

4월 4일 북한군 최고사령부 명의로 미국에 대한 핵타격을 최종 승인했다고 밝히고 무수단급 중거리미사일을 동해로 이동시켰다. 또한 4월 9일 북한 아태위원회는 남한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소개(疏開)를 권고하고, 4월 16일 북한군 최고사령부 명의로 최후통첩장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북한은 대미, 대남 핵위협을 통해 단지 자신들이 핵무기 보유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할 의지까지도 갖고 있음을 과시하고자 하고 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남북관계도 더욱 악화되어 갔다. 3월 30일 북측은 처음으로 개성공단의 폐쇄 가능성을 언급한 뒤, 4월 3일 남측 근로자의 입경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마침내 4월 8일 김양건 북한 당 통일전선부장이 개성공단의 가동중단과 북한근로자들의 철수를 선언하였다. 4월 26일~5월 3일 개성공단에 있던 남측 인원이 전원 귀환하였다. 이로써 민족협력의 대표적 사업이었던 개성공단이 가동 중단되고 일시 폐쇄된 것이다.

금년 5월부터 한반도 긴장상태가 점차 완화되고 있다. 한.미 독수리 연습이 끝나자 북한은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을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로 파견하여 북.중 관계의 회복과 6자회담 재개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 뒤 6월 6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기 위한 협의를 우리 정부에 제안하면서 남북 당국자대화가 재개되었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7차례나 열려 7차 실무회담에서 극적으로 개성공단의 재가동 조건을 타결 지었다.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계기로 남북한의 긴장이 다소 완화되는 국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뒤이어 이산가족상봉이 시행 이틀 전에 무산 되고 금강산 관광 재개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남북관계는 또다시 긴장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와 같이 악화되어 있는 남북관계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 지위 추구방침을 포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상존하는 상태에서 남북관계 정상화를 이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행히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구상이 내걸었던 ‘선비핵화’ 방침과는 달리, 북핵문제의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을 연계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유도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길을 찾느냐 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최대과제이다.


Ⅲ. 남북군사회담과 6자회담의 경과와 교훈

1. 남북군사회담의 경과와 교훈

남북으로 분단된 정전체제하에서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문제는 군사문제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전체제 아래에서는 남북 교류.협력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남북군사대화가 필요하다. 또한 아무리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해도 작은 군사충돌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도 군사문제의 해결이 불가결하다.

(1) 군사정전체제 관리주체의 변화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온 한국전쟁에서 어느 측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군사정전협정을 체결하고 해방 초기의 38선을 대신해 휴전선을 긋게 되었다. 휴전 성립 이후 남북관계는 군사정전위원회가 정전체제를 관리해 왔지만,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관리주체도 부분적으로 변화하였다. 북한의 정전체제 무실화 시도 이후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이 이를 대체하였다.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이 활발해진 뒤에는 이를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남북장성급회담이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정전체제 아래에서의 군사회담은 회담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섯 시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군사정전위원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던 시기(1953.7.28~1991.3.25)이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유엔군과 한국군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을 타방으로 하는 군사정전위원회가 성립되어 정전협정 다음날인 7월 28일의 첫 회의 이래 지금까지 460차례의 본회의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북측은 1991년 3월 25일 군사정전위 회의를 거부한 뒤 1994년 5월 공산 측 군사정전위원회를 해체하고 북한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함으로써 더 이상 군사정전위원회는 열리지 못하고 있다.

둘째, 남북고위급회담의 일환으로 남북군사분과위원회가 개최되던 시기(1992.3.13.~9.5.)이다. 냉전이 해체되고 고위급의 남북대화가 시작되면서 남북군사대화가 시작 되었다. 군사정전위원회가 열리지 못하던 시기에 이루어진 군사대화는 남북고위급회담의 군사분과위원회 형식으로 8차례 개최되었다.

셋째, 군사정전위원회가 가동 중단되고, 사실상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이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신하여 개최되던 시기(1998.6.23.~2002.9.12.)이다. ‘한국방위의 한국화’ 방침에 따라 미군이 맡아오던 군사정전위원회 유엔 측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하자, 공산 측이 수석대표의 자격을 문제 삼아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거부하였다. 군사정전위원회의 가동중단이 장기화되자, 유엔 측에서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을 제안하고 이를 북측이 수락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이 시기에 회담은 14차례 개최되었다.

넷째,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 대신에 남북군사회담이 가동되던 시기(2002.9.14.~ 2008.10.2.)이다. 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과 1~5차 군사실무회담은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이 열리던 시기에 병행 개최(2000.9.24.~2001.2.8.)됐으나, 6차 이후의 군사실무회담 및 남북장성급회담들은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이 중단된 시기에 개최되었다. 남북한은 2004년 5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총 6차에 걸쳐 장성급회담을 개최하였다. 이 과정에서 남북은 2차 회담의 결과로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군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3차 회담에서부터는 서해 북방한계선, 즉 NLL로 대표되는 남북 간 해상 불가침 경계선 설정 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별다른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남북군사회담이 중단된 채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이 개최된 시기(2009.3.2.~3.6)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제15, 16차 단 두 차례만 회담이 열렸을 뿐이다. 남북 간 군사대화가 2008년 10월 2일의 37차 남북군사실무회담을 끝으로 중단 되자, 북측은 한동안 열리지 않았던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의 개최를 유엔사 측에 제의하였다. 북측의 이러한 제안이 남북군사회담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을 들어 남측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군사회담이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마저 열리지 않을 경우 정전체제의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판단에 따라, 유엔사는 남측과 협의하여 북측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6년 6개월 만에 제15, 16차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이 개최되었다.

  
 

(2) 남북한 군사회담의 중요성과 평화체제 이행

그동안 북한은 한국이 정전협정의 서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줄곧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남북 간 교류.협력이 강화되고 이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남북한은 비무장지대에서 철도 연결 및 도로 건설에 합의했지만, 한국군이 비무장지대 남측구역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유엔사로부터 관리권의 일부를 이양 받아야 했다. 2000년 9월 25~26일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1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비무장지대를 개방하기 위해 유엔사 측이 그 권한의 일부를 남측에 이양한다는 편지나 보장각서가 필요하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2000년 11월 17일 제12차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에서는 경의선 철도 연결 및 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비무장지대 일부구역 개방에 관한 국제연합군과 조선인민군 간 합의서」에 서명 및 비준을 실시하였다. 2002년 9월 12일 제14차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에서는 동해선 DMZ 개방과 관련된 문제와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관한 문제에 관해 토의하여 「비무장지대 일부구역 개방에 관한 국제연합군과 조선인민군 간 합의서」에 서명 및 비준하였다. 이 두 개의 합의서는 철도와 도로가 통과하는 구역에 대해 남과 북의 군이 관리(administration)한다고 합의함으로써 정전협정을 보완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전관리의 일부 임무가 한국군에게 이양되어, 비무장지대의 일부 구역이나마 남북한이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커다란 진전이다. 뿐만 아니라 향후 평화협정 논의에서 한국의 당사자 자격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 근거를 일부 확보하게 됨을 의미한다.

정전체제의 관리에서 남북군사회담의 중요성은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나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의 목적이 가진 차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나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이 정전체제의 유지.관리를 통한 전쟁 방지라는 소극적 평화가 주목적이라면, 남북장성급회담을 위시한 남북군사대화는 정전체제의 틈을 비집고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통해 평화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적극적 평화가 주목적이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전관리 임무에서 남북군사회담의 비중과 역할을 점차 높여나가고 해상경계선 획정이나 외국군 문제 등 평화협정의 체결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들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기존 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원칙은 견지해야 할 것이다.


2. 6자회담의 경과와 교훈

당면한 한반도문제의 최대현안은 북핵문제이다. 북핵문제의 출발점은 NPT 회원국인 북한이 비밀리에 핵프로그램을 가동한 뒤 이것이 드러나자 NPT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처럼 북핵문제는 북한이 국제적인 합의를 위반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국제현안으로 간주되어 미.북 양자회담을 통해 해결이 모색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의 해결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과제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도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전략적 공조체제의 변화

6자회담은 그 출발점부터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단일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핵문제 해결에 대해 북한을 제외한 5개 참가국들의 이해가 일치하였다는 점에서 6자회담은 기본적으로 5:1 전략적 공조체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략적 공조체제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을 상대로 한.미.일 3국이 사전협의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3:2:1 구도가 만들어진 시기이다. 이 유형은 제1~3차 6자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이 상대의 의중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구도이다. 한.미.일 3자협의가 먼저 이루어진 뒤, 6자회담에서 3자협의에 기초해 북한과 협상하는 구도이다. 제1차 6자회담에 앞서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03.6.12~13)이 열렸고, 제1, 2차 6자회담에 앞서 3자협의(’03.8.13~14)가 열렸다. 제3차 6자회담을 앞두고도 3자협의(’04.6.13~ 14)가 개최되었다. 그 뒤 6자회담이 장기간 열리지 못한 기간 중에도 세 차례나 3자협의(’04.9.9~10, ’05.2.24~26, 7.14~16)가 개최되었고,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이후 2008년 12월 제6차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가 끝날 때까지 열리지 않았다.

둘째는 한.미.일 3국에 중국과 러시아가 동조하여 북한을 압박하는 5:1 구도가 형성된 시기이다. 여기서는 특히 중국이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느냐에 의해 3:2:1 구도와 구별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9.19공동성명. 직후 BDA 문제에 따른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중국이 동조한 일을 들 수 있다. 또한 2012년 12월 12일 북한의 은하3호 로켓발사와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결의에 찬성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6월 13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제외한 5자 협의 이후 미국이 대표로 북한과 협상하는 방식의 ‘5자협의체’ 구상이나, 2013년 5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제의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도 한.미.중.일.러 5자회의 이후에 북한이 참가하는 방식의 5:1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는 ‘한.미.일 對 북.중.러’의 3:3 구도가 만들어진 시기이다. 이는 냉전시대 동북아 안보구도와 유사한 것으로, 북한이 선호하는 가장 안정된 안보구도이다. 미.중간 갈등이나 남북 대립으로 한반도 긴장이 상시화된 전통적인 냉전구도와 유사하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으로서는 중.러 등 강대국에 의지해 체제를 유지하기가 용이하다. 미국이나 일본 내 강경파들의 경우에도 동북아 신질서가 만들어지기 전의 냉전질서인 3:3 구도를 미.일 동맹 강화에 이용하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넷째는 ‘미.북 對 한.중 對 일.러’의 ‘2:2:2 구도’가 형성된 시기다. 이 구도에서는 기본적으로 미.북 양자협의가 이루어지나 종종 미.북.중 3자협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3자협의에서 중국이 당사자라기보다 중재자 역할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2:2:2 구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 구도는 지금까지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가장 좋은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미.북.중 3자회담(’03.4.23~25) 뒤에 제1차 6자회담이 처음 개최되었으며, BDA문제의 발생으로 북한이 대포동2호 미사일 발사, 제1차 핵실험 실시 등으로 사태가 악화됐을 때 미.북.중 3자협의(’06.1.18, 10.31, 11.28)를 가진 끝에 13개월 만에 제5차 6자회담 2단계회의가 재개된 사례가 있다.

끝으로,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설상가상으로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를 끝으로 한반도 비핵화 문제 논의마저 중단되면서, 한반도상황이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대청해전과 천안함사태, 연평도사태 등이 발생하였고, 불똥이 미.중 관계로까지 확대되어 냉전시기와 유사한 3:3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 뒤 2009년 1월 미.중 정상회담으로 일시 한반도의 긴장상황이 완화됐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한이 은하3호와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도발을 자행하자 중국도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에 협조하면서 일시적으로 5:1 구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금년 5월 이후 북.중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하고 남북대화를 통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5:1 구도는 점차 완화되었다. 최근에는 6자회담 재개조건과 한.일 및 한.미.일 군사협력체제 문제를 둘러싸고 3:3 구도의 형성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2) 안보-안보 교환의 불가피성과 등가성 모색

북한보다 40배 이상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경제적인 보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안보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경제적으로 궁핍하기는 하지만 보유한 안보자산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북한으로서는 경제적인 보상만으로 안보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경제적 보상 외에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보-안보 교환을 핵심적인 요소로 인정하고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안보분야에서 북한과 남한, 그리고 미국이 ‘등가라고 판단되는 지점’에 합의하기가 쉽지 않다. 북핵 관련국들이 안보-안보 교환의 합의에 이른 사례로는 1994년 10월 .제네바 미.북 기본합의문.과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공동성명>이 있다. 전자가 북한 핵시설의 동결을 위한 중간수준의 합의라면, 후자는 북한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지향하고 있다.

「9.19공동성명」은 한.미 등 5개국 사이의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복귀’를 약속하였다. 나머지 5개국은 △한.미 양국의 남한지역 내 핵무기 부재 확인 및 대북 불가침 약속, △5개국의 에너지.경제 지원, △미.일의 대북 수교, △남.북.미.중 4자의 평화협정 체결 및 △동북아 협력안보를 통한 안전보장 제공을 ‘동시행동’으로 이행한다.

그러나 「9.19공동성명」 직후 미국이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문제를 제기하고 중국이 동조하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이른바 BDA국면이 전개된다. 북한은 「9.19공동성명」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미국이 약속을 위반했다고 반발하였다. BDA문제가 「9.19공동성명」 직후 터진 것이 우연한 일인지 기획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미국 조야의 일각에서 「9.19공동성명」이 북한의 핵무기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양보를 약속했다며 비판적인 견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 조야의 일각에서 「9.19공동성명」에 담긴 ‘안보-안보 교환’에 비판적이었던 이유는 부등가교환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까지 북한은 핵실험을 하지 않았고 장거리로켓 발사도 실패를 거듭해 핵.미사일 능력이 검증되지 못했던 반면, 한.미 등은 기존 안보구도를 흔들 수 있는 미.북 수교, 대북 불가침 공약, 주한미군과 NLL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평화협정의 체결 등 안보자산의 제공을 북한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9·19공동성명」의 합의 이행이 BDA문제로 지체되자, 북한은 6자회담을 거부하고 장거리탄도미사일과 핵실험을 실시하며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결국 제1차 핵실험 직후 미.북 양자회담이 열린 끝에 6자회담이 재개되었다. 새로운 <2.13합의>와 <10.3합의>를 거쳐 어느 정도 이행되었으나, 그 뒤에도 6자회담이 개최와 중단을 반복하는 바람에 온전히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오바마 2기 행정부와 한국의 신정부가 출범한 뒤 한.미 양국은 북핵문제의 해법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2013년 4월 12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존 케리 미국 국무 장관은 한.미 외교장관회담 직후에 발표된 「한.미 외교장관 공동성명」(4.13)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였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2005년 6자회담 내용을 실행할 것”이라며, “국제적인 의무의 준수와 함께 약속이행”을 주문하였다.

「한.미 외교장관 공동성명」에서는 「9·19공동성명」의 내용을 실행하겠다고 언급함으로써 한반도평화체제와 미.북 수교, 동북아 다자안보체제와 같은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비핵.개방 3000구상>에 따른 ‘선 비핵화’를 요구해 왔지만,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 <9·19공동성명>에 따른 안보-안보의 등가교환을 다시 거론한 것이다.

한.미 외교장관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를 △6자회담을 통해 △<9.19공동성명>에 기초해 실현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9·19공동성명>의 내용에 만족하지 않는 모양새다.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9.19공동성명>을 발표할 당시와 현재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6자회담의 형식과 <9.19공동성명>의 내용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한.미 외교장관 공동성명>(4.13)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였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실(4.18)은 ‘조선반도 비핵화’로 나아가기 위한 대화와 협상을 위한 실천적 조치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철회 및 한국의 반북 모략소동 중지, 둘째로 핵전쟁연습의 중단을 세계 앞에 정식으로 보장, 셋째로 한국과 주변지역에 끌어들인 핵전쟁수단들의 전면적 철수 및 재투입시도 단념 등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의 성명은 북한이 <9·19공동성명> 발표 당시보다 자신들의 핵능력 가치를 훨씬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한반도 내에서 북한 핵에 대한 가치 평가가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9.19공동성명>을 뛰어넘는 안보-안보 교환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2013년 10월 3일 케리 미 국무장관이 ‘북한이 핵 폐기를 시작할 경우’라는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불가침협정(Non- aggression Agreement)’의 체결을 북한에 제의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성명(10.12)을 통해 케리 국무장관의 ‘불가침협정’ 제안을 비판하며 △‘선 핵무기 포기’주장의 철회, △대북 적대시정책의 철회, △대북 핵위협의 완전한 청산 등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아직까지 미.북 양측은 안보-안보 교환의 등가성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3.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평화, 비핵화프로세스의 연동

(1)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평화프로세스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째 되는 해이지만, 남북한은 여전히 국제법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평화에 관한 논의를 빼놓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논의할 수는 없다. 한반도의 평화는 크게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 그리고 항구적 평화로 나눠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에 곧바로 착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통일부는 평화체제의 전망을 제시하는 대신, 호혜적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교류에 따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정책목표로 내걸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평화론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소극적 평화를 이룬 뒤에 적극적 평화를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상태”의 의미로 된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 군사적 충돌까지 빚고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서 소극적 평화를 달성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인 과제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대북·통일 정책의 목표를 소극적 평화에 국한시킬 경우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 즉 통일로의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 항구적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적극적 평화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적극적 평화의 도달점인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도 밀접히 연결이 되어 있는 문제이다. 금년 4월 12일 윤병세 외교장관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한·미 외교장관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따른 공약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재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2005년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은 북한의 핵 포기에 따른 대가로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고 약속하고 있다. 따라서 ‘9.19공동성명’에 바탕을 두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추진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비핵화프로세스

북한으로부터의 핵 위협이 현실화되어 남북한의 군사적 균형이 깨지게 됨에 따라, 한국으로서는 한·미동맹에 대한 안보의존을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고서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한·미동맹과 한·중 동반자관계의 조화·발전’이라는 한국정부의 균형정책에 제약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병진노선을 비판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계속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그런 도박을 했고, 경제발전과 핵개발을 동시에 병행하겠다는 새로운 도박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그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정부는 북핵문제의 해결에 상당한 정책적인 비중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북핵문제의 해결을 중시한다고 해서 과거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처럼 북핵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북한의 비핵화 그 자체보다도 비핵화 과정을 중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별도의 구상을 제시하지 않는 대신에, 유럽이 공유하고 있는 화해의 경험인 헬싱키프로세스의 동북아 적용을 제시하고 있다. 동북아협력안보기구의 구축을 통해 북한이 변할 경우 상당한 경제적, 외교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 줌으로써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도 생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단순히 외교정책 구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한 쌍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의 과정에서 주변국들과 협조하는 여건을 마련 할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불가결하다는 점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이행과 종합적으로 접근해 균형과 조율을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무력화할 수 있는 억제력을 강화해 나가면서, 남북 간의 실질적 협의와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6자회담을 기본적인 회담 틀로 유지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실효성 있는 남북대화를 추진하여 6자회담 등 비핵화협상에 동력을 주입한다는 방침을 제시해 놓고 있다.

이처럼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6자회담을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속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동북아 평화안보 실무그룹 회의를 6자회담에서 독립된 정부 간 협의체로 분리·운영한 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하위개념으로 관리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3)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바람직한 접근법: 출구론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정착, 통일기반 구축을 3대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위한 핵심적인 원칙으로, 남북 간 상호체제의 인정과 정치.군사 분야에서의 신뢰구축 조치의 추진, 비핵화와 남북관계의 분리대응을 내세우는 등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비핵.개방.3000 구상’과 차별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관련국들의 동의와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합의된 목표가 없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추동력을 얻기 어렵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동된 비전이 빠진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공허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해결과제들(tasks)과 최종상태(end state)에 대한 참가국들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동안 진행되어 왔던 남북군사회담이나 6자회담의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입구(entrance)에서 당면한 현안을 중심으로 쉬운 문제부터 논의하여 합의.이행을 통해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조금씩 더 어려운 문제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입구론적 접근법이고, 다른 하나는 먼저 회담이 지향하는 출구(exit, 최종상태)를 분명히 한 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단계별 실현방안을 모색하는 출구론적 접근법이다.

지금까지 진행됐던 남북대화들의 경우, 입구론적 접근법과 출구론적 접근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현안이 발생할 때나 정례적으로 개최됐던 남북군사회담이나 남북장관급회담 등은 당면한 현안들을 다루었거나, 남북고위급회담이나 남북정상회담의 이행을 위한 회담의 성격이 강했다. 출구론적 접근법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채택한 남북정상회담을 들 수 있다. 특히 <10.4정상선언>에서는 남북연합의 형성이라는 최종상태를 출구에 두고 후속 정상회담, 각급 각료회담, 의회 간 대화와 접촉 등에 대해 거론하고 있다.

6자회담의 경우에도 입구론적 접근법과 출구론적 접근으로 나눌 수 있다. 제1~3차 6자회담은 각국이 자신의 협상카드를 한꺼번에 내놓지 않고 상대방의 의중을 타진해 나가면서 의견을 좁혀가는 협상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제4차 6자회담은 협상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과 양보사항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회담이 나갈 출구를 먼저 확인한 뒤 입구를 찾아가는 역발상의 접근법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라고 하는 비전을 출구로 하고, 당면한 북핵문제의 진전을 입구로 하여 문제해결의 순서(sequence)를 좇으며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접근법에 따라 .9.19공동성명.이 채택되어 그동안 장기적인 숙제로만 여겨졌던 한반도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됐다. <9.19공동성명>이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동북아 핵군축회담을 주장하는 등 어쩌면 기존의 해법으로는 더 이상 북핵문제를 풀 수 없다는 한계 인식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출구론적 접근법의 의의는 한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한 곳에 갇혀있던 한반도 문제나 북핵문제의 해결과제와 최종상태라는 출구를 제시했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이러한 합의내용들은 남북이 안보-안보 교환을 통해 이룩한 등가점에 대한 모색의 결과이다. 그러나 캄캄한 방에서 출구까지 나아가는 데는 지난 60여 년간 쌓여온 수많은 냉전의 잔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핵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냉전의 덧게비들도 함께 걷어내며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Ⅳ.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비핵화/안정.평화의 연동 로드맵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대북 억제력의 확보를 통해 전쟁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여 소극적 평화를 추진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은 소극적 평화를 토대로 정치적,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 가는 적극적 평화를 추진하는 데 있다. 이처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낮은 수준에서 점차 높은 수준으로 안보 틀(Security Arrangement)을 만들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토대를 만들고, 이러한 토대 위에서 교류.협력을 심화 발전시켜 경제공동체의 형성과 남북연합을 수립하여 궁극적으로 한반도문제를 해결해 항구적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1. 제1국면: 소극적 평화를 위한 대북억제력 확보와 각종대화 재개

소극적 평화는 대북 억제력의 확보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서, 이 국면에서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한 사이에서 신뢰를 만들어 간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대북 억제력의 확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소극적 평화가 1차 목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 직전 북한은 우주로켓의 시험발사와 제3차 핵실험 실시로 한반도 긴장상황을 조성하더니, 한.미 연합군의 키 리졸브 및 독수리 훈련에 강하게 군사적으로 반발하면서 한반도정세를 위기로 몰고 갔다. 이러한 북한의 안보위협 속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Kill-Chain)의 추진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적극 대응할 수 있는 태세와 능력을 갖춤으로써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확고한 국방태세를 확립하고자 하고 있다.

남북 간에는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를 비롯해 금강산관광, 위탁임가공 등 당면한 교류·협력사업 외에도 서해 5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해소의 필요성 등 많은 군사적 과제들도 쌓여 있다. 이와 같은 강력한 대북 억제력의 구축과 더불어 남북당국자 간의 대화채널을 복원하여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고 평화공존의 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초 개성공단의 중단 이후 재가동을 위한 남북당국자회담이 개최되었지만, 아직까지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이에 따라 유엔안보리의 추가 대북제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어느 정도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이 제약받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자 회담이 재개되고 6자회담의 재개 논의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더불어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금년 봄에 조성됐던 한반도의 핵전쟁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본격화해야 한다. 북핵문제의 진전을 위한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남북 간 협의 및 미국·중국 등 6자회담 관련국들과 조율을 거쳐 2008년 12월 이래 중단됐던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노력도 본격화해야 한다. 6자회담은 중단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기존 대화 틀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6자회담의 재개를 둘러싸고 관련 국가들 간에 입장 조율이 진행되고 있어 조만간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2. 제2국면: 적극적 평화의 착수와 낮은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

(1) 우발충돌방지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과 .남북기본협정.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제2단계의 기본방향은 대북 억제력의 확보를 통해 확보한 소극적 평화를 토대로 한 단계 높은 대화로 발전시켜 남북관계를 안정궤도로 올려놓고 지속가능한 적극적 평화를 실현하는 데 있다. 적극적 평화는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 만들어진다. 적극적 평화를 추진하기 위해 남북군사대화를 통해 지난 시기에 합의·이행해 왔던 남북군사당국 간 합의를 복원할 뿐만 아니라, 서해상의 평화를 위해 제한적이나마 운용적 군비통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첫째, 남북 장성급군사회담을 재개하여 기존 남북군사합의를 복원하고 미비한 사항은 추가협의를 통해 보완하는 조치를 취한다. 그동안 남북한이 합의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는 유형별로 △직통전화망 개설, △교류·협력의 군사적 보장과 △우발적 충돌방지 및 △선전수단 제거 등 네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남북장성급 회담을 개최하여 먼저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전화를 재설치하고, 「6.4합의서」에 따른 서해상 우발적 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신뢰구축 조치를 복원한다.

또한 남북 양측은 금강산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반영하여 북한지역 내 남측 방문자의 안전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한다. 그리고 교류.협력에 따른 각종 군사적 보장 조치를 재설정하거나 미비점을 보완한다. 특히 천안함 사태로 취한 조치들을 해제하는 문제와 서해상의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감시할 수 있는 다양한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과 서해 5도 및 인접 북한지역의 공격무기 배치제한 등 운용적 군비통제에 관해 협의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둘째,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추진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남북당국자회담을 통해 새로운 안보의 틀(Security Arrangement)을 만드는 노력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 합의를 계승하고 변화된 안보환경에 맞게 일부 내용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7.4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 남북 간의 기존 합의들의 수정, 종합하여 「남북기본협정」(가칭)을 체결하도록 한다.

남북실무회담을 통해 협정의 초안에 대해 합의점에 도달하면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 남북회담을 개최하여 미래 지향적인 남북관계의 정립을 위한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한다.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협정」이 체결되면, 남북한이 함께 각자의 헌법이 정한 동의절차를 거쳐 발효시킴으로써 법적 규범력을 갖도록 한다. 남북기본협정이 발효되면, 짧은 기일 안에 평양과 서울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

(2) 낮은 수준 안보-안보 교환의 새로운 균형점 모색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은 즉각적으로 IAEA 감시단의 복귀를 허용하며,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의 가동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재가동하고 있는 영변 원자로를 중지시키고 , 「2.13 합의」 및 「10.3 합의」에 따라 불능화했다가 중단했던 영변 원자로의 불능화작업에 다시 착수해야 한다. 또한 우라늄농축시설을 포함해서 핵시설들을 재신고 하고, 신고내용의 검증문제에 대해서도 관련국 간에 협의한다.

이에 상응하여 미국은 .2.29합의. 때 약속했던 대북 영양지원을 재개하다.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다시 불능화하더라도 추가적인 보상을 실시하지 않는다. 다만, 「10.3 합의」에서 북한에 제공하기로 하고 아직 전달하지 않은 나머지 중유 20만 톤의 공급을 완료하는 문제를 6자회담 참가국들과 협의한다.

또한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하여 위의 합의들을 준수.이행하고 비확산 및 추가 핵실험의 금지와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 유예를 이행하는 동안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 제재를 유예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미국, 중국 등 유엔안보리 이사국들과 긴밀히 협의한다.

아울러 역내 해상영토분쟁과 과거사문제 등의 갈등요인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동북아 평화협력 대화에 착수한다. 3차례 개최됐다가 중단된 6자회담 산하 동북아 평화.안보 실무그룹 회의를 재개하여,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제도적인 틀이자 장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체제안정 보장방안의 하나로서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논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3. 제3국면: 적극적 평화의 발전과 중간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

(1) 위협감소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와 <남북평화협정>

남북한 사이에서 낮은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이 이루어지고 합의가 준수된다면, 한 단계 더 나아가 보다 발전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들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유럽의 경우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가 제1세대 신뢰 구축조치(CBMs)에서 제2, 3세대 신뢰안보구축 조치(CSBMs)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남북한의 경우는 아직까지 평화협정도 체결되지 않은 ‘법적인 전쟁상태’에 있기 때문에 제2, 3세대와 같은 높은 수준의 신뢰안보구축은 시기상조이다. 다만, 남북 간의 합의에 대한 제도적 구속력을 갖추기는 어렵더라도 기존의 자발적 준수를 넘어 정치적 구속력은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북평화협정의 체결 전까지 남북한이 할 수 있는 위협감소를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의 수준은 「남북기본합의서」 제12조에서 합의한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 △DMZ세계평화공원의 추진을 포함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군인사 교류, △군사정보의 교환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불가침 부속합의서」 제3조에서 합의한 대로 군사분계선 일대의 무력증강, 상대방에 대한 정찰활동, 상대방의 영해·영공에 대한 봉쇄, 서울과 평양에 대한 안전보장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하기로 한다. 앞에서 합의한 서해 5도 및 인접 북한지역에 대한 상호 공격무기 배치제한의 이행 성과를 보아가면서 그동안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논의됐던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치방안 등을 통해 해상군사경계선 문제의 해결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적극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북한의 핵문제와 남북간의 해상군사경계선 획정 문제, 그리고 외국군 주둔 문제 등에 대해서는 우회하고, 북한의 3대 확산억제 조치가 완료되는 조건에서 <남북평화협정>의 논의에 착수한다. <남북평화협정>은 미국과 중국의 보장자로 참여하지 않은 불완전한 것이지만,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미.북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남북평화협정>은 남북한 당국이 합의하고 국내법적인 동의절차에 따라 발효시킴으로써 법규범력을 갖추도록 한다. 남북평화협정이 이루어지면, 서울과 평양에 상호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그동안 정전관리업무를 맡아왔던 미군에 대신하여 한국군이 그 임무를 위임받는다. 남북 간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면 현지에서 긴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평양.남포.원산 등지로 남북 교류협력이 확대될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남북한 사이에서 평화공존의 제도화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3단계인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가 시행될 수 있다. 남북 임가공교역과 농수산물 위탁재배, 북한산 모래채취 등 경협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개하고, 나진선봉과 황금평 경제특구에 대한 우리 기업의 진출방안에 대해서도 협의한다. 아울러 최근 북한이 내놓은 1도 1개발구 정책에도 적극 호응하여 남북경제협력을 심화시켜 남북경제공동체의 기반을 닦는다.

(2) 중간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 추진

북한은 IAEA의 의무를 준수하고 NPT에 재가입하며, 앞서 북한이 신고한 내용에 기초하여 해체작업에 착수한다. 북한이 재처리 또는 농축하여 보관 중인 핵분열물질들은 높은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이 완료될 때까지 IAEA의 감시 하에 북한지역 내에 보관하도록 한다. 북한의 핵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의 비확산을 위해서도 북한은 국제레짐의 관리 하에 들어가야 한다. 이미 가입한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을 비준·발효할 뿐만 아니라 아직 가입하지 않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의 회원국이 되어 국제적인 의무를 다함으로써 대량살상무기의 포기 의지를 한국 및 국제사회에게 보여야 한다.

이러한 조치와 동시에, 북한과 미국, 일본은 각각 평양과 워싱턴, 도쿄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한다. 또한 동북아 평화.안보 실무그룹 회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고위급 회의’를 개최하여 동북아 안보협의회(CSC-NEA)를 발족한다. 동북아 안보협의회의 의제로는 △테러·마약 △에너지·물류·환경 △인도주의·재난 대응 등 협력이 용이한 비전통적 안보분야부터 추진한다.

  
 

4. 제4국면: 높은 수준의 안보-안보 교환과 항구적 평화

항구적 평화는 남북한의 분단이 극복되고 ‘법적인 통일’이 이룩된 최종상태를 가리킨다. 남북관계가 제1, 2, 3국면을 거쳐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 핵문제의 진전과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이루어졌다면, 본격적인 대규모 남북경협이 재개될 수 있다. 북한이 북핵문제의 해결에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고, 북·미 및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 및 각종 국제규범의 준수에 성실한 태도로 임한다면 <한반도 평화조약>의 체결에 착수할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기과제인 남북 간 교류.협력이 확대.강화 되고 군사적 신뢰구축이 성과를 거둠에 따라, 남북한은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고 미국, 중국이 보증자로 서명하는 방식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착수한다. .남북평화협정.에 의거해 설치된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한반도 평화조약의 체결을 위한 핵심쟁점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다.

<한반도 평화조약>의 첫 번째 핵심쟁점인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의 설정문제의 해결에 착수한다. 남북장성급회담을 통해 우발적 충돌방지 및 공격무기 배치제한 조치를 취한 뒤, 공동어로구역과 북한 민간선박의 NLL 이남 통과해역 설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다. 그 다음에 「10.4정상선언」에서 합의했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방안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통해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설정문제를 해결한다.

< 한반도 평화조약>의 두 번째 핵심쟁점인 정전협정상의 외국군 철수문제는 유엔사와 주한미군을 분리하여 처리한다. 북한의 남침에 따라 유엔안보리 결의로 구성된 유엔사는 해체하도록 하되, 성격 변화를 전제로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보장한다. 북한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하는 대가로, 「9.19공동성명」 제1항의 “미합중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조항을 원용하여 <한반도 평화조약>의 문안을 통해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서면 보장한다.

항구적 평화를 추진하기 위해 .남북평화협정.의 체결을 통한 평화공존의 제도화와 비전 코리아 프로젝트를 통한 남북경제공동체의 건설로 .한반도 평화조약.의 체결에 박차를 가한다. 이와 함께 6자회담이 성과를 거두어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절차에 들어가면, 이와 동시에 북한에 대한 관련 국가들의 체제 안전보장이 제공되도록 한다.

최종적으로 핵무기를 비롯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완전히 폐기되었을 때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외무장관이 참석하는 한반도평화포럼을 개최하여 <한반도 평화조약>에 서명한 뒤 비준 동의 절차를 거쳐 발효하도록 한다. 남북경제공동체의 완성과 함께, 평화협상이 원만히 진행되어 <한반도 평화조약>이 체결된다면 ‘사실상의’ 통일 상태인 남북연합을 수립하여 항구적 평화에 진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미.북 수교는 「북한관계법안」(가칭)에 맞춰 북한과 미국 간 수교협정이 미 상원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한.미 간에 사전조율을 마친다. 이 법안에는 북한이 추가개발의 금지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레짐의 통제 아래에 들어온 것을 포함한다. 미.북 수교 직후 미국의 개발협력이 폭넓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미.북 무역협정을 체결하여 최혜국대우(MFN) 지위를 보장받도록 한다. 북.일 수교도 사전에 쌍방의 이해를 조절한 뒤, 북한의 핵 포기 절차에 맞춰 실시한다.

  
 

Ⅴ. 요약 및 결론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언급을 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언급을 남북정상회담을 당장 추진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지만, 지난 5월 방미 때 미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은 (북한 지도자를 만나서)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라는 태도를 보인 것과 비교해서 진일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북한은 경제와 핵무기를 동시에 개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단호하지만,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핵문제는 직접 연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 추진과 남북관계 발전(개혁.개방 지원)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서는 바람직한 방안과 현실적인 방안의 두 가지를 모두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람직한 방안으로는 북한이 병진노선을 포기하도록 설득한 뒤에 이를 받아들일 경우 북한이 추진하는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先비핵화, 後개혁.개방 지원’이다. 하지만 경제개발을 원하면서도 아직까지 낙후된 경제사정과 불안정한 권력기반 때문에 체제보위를 우려하는 집권 2년차의 젊은 지도자가 이 방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차선책으로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비핵화 추진과 개혁.개방 지원의 프로세스로 연동시켜 접근하는 방식이다. 당장 북한의 핵 포기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최선책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단계적이나마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막으면서 완전한 핵 포기로 견인하는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차선책으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어떻게 연동시켜 접근할 것인가? 우리는 지나간 경험의 분석을 통해 ‘안보-안보 교환의 등가성’을 확보하면서 추진해야만 두 가지의 목표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2:2:2 구도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2:2:2 구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반도 비핵화프로세스에서 핵심역할과 중추역할, 지원역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두 개의 프로세스에서 한국이 모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협상에서 내놓을 우리의 전략적 자산을 고려했을 때 두 개의 프로세스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현실적인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하며 일본, 러시아가 지원하는 형태가 현실적이다. 이에 비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이 핵심당사국이 되고 한국과 중국이 중추적 역할을 하며 일본과 러시아가 지원하는 형태가 현실적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는 단기간에 완료되기 어려운 중장기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종상태와 실현해야 할 과제들을 규정한 출구를 명확히 설정하면서 이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5년의 임기 동안 이러한 중장기 과정 중에서 어디까지 실현할 수 있는지 분명해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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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