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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의 위기] 5-2. 진보적 발전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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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의 위기] 5-2. 진보적 발전전략

진보개혁의 위기는 진보개혁에 대한 환멸과 서민·중산층의 ‘삶의 위기’를 초래했다. 참여정부의 사이비 개혁 세력은 그 ‘위기’를 심화시켰다. 참여정부의 45개월은 ‘진보적인 것’을 ‘새로운 것’이 아닌 ‘낡은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분배’와 ‘복지’에는 ‘해롭고 나쁜 것’, 혹은 ‘불온한 것’이란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로 인해 이 사회에는 과거 어느 때 보다 신자유주의, 성장과 경쟁 제일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 진보개혁 진영이 탈출구를 찾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진보가 투쟁과 반대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거 방식 대신 실천적 대안을 내놓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실력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위기에서 대안으로’라는 모토 아래 10개 싱크탱크가 처음 머리를 맞댔다. 김대중도서관에서 지난달 24일 ‘한국경제의 대안을 찾아서’라 는 주제로 열렸던 첫 토론회 모습.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제공

진보가 나서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대안으로 삶의 위기를 구출하자는 ‘정공법’을 시도되고 있다.

최근 대안 찾기 작업은 싱크탱크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두드러진 현상은 싱크탱크들의 연대이다. 지난달 24일 한국의 주요 진보개혁 진영 싱크탱크들이 대안 모색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진보정치연구소,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 등 10개 싱크탱크가 ‘위기에서 대안으로’라는 기치 아래 ‘한국 경제의 대안을 찾아서’란 주제로 첫 토론회를 열었다. 새사연 손석춘 원장은 “그 동안 진보 진영은 경제나 외교·통상 같은 현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약했다. 안티 신자유주의만 있었지 어떻게 대안을 찾아보자는 계기는 없었다”며 연대 배경을 설명했다. ‘느슨한 연대’에 싱크탱크간 이견 노출, 진보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지만 진보진영 주요 싱크탱크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이들은 20일 진보정치연구소 주관으로 두번째 토론회 ‘사회연대국가전략’를 열었다. 내년 1월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주관으로 ‘차베스 대통령 집권 후 베네수엘라 국가 모델’, 2월에는 코리아연구원 주관으로 진보적 외교·안보·통상 정책에 대한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다. 정당·대학 산하 및 부설 연구소, 민간 연구소등 10개 단체를 중심으로 이들 진보 싱크탱크는 큰틀의 경제·사회 체제에 대한 전략은 물론 개별 의제에 대한 정책 구상도 짜고 있다.

민주노동당 부설인 진보정치연구소는 진보 진영에서 가장 활발하고 안정적으로 대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상대 장상환 교수가 소장이며 전문 연구원 10명이 일하고 있다.

연구소 김윤철 정책실장은 “경제, 복지, 정치 등 각 분야에서 사회적 공론 형성을 위한 대안 만들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그 결과물의 하나로 20일 열린 10개 싱크탱크의 2차 토론회에서는 ▲사회연대적 성장 모델 ▲사회연대적 복지 모델 ▲진보정당 헤게모니 프로젝트로 구성된 ‘사회연대국가전략’을 발표했다.

한겨레 전 논설위원 손석춘씨가 원장으로 있는 새사연은 교육인, 의료인, 법조인, 언론인, 기업인, 문화예술인, 종교인, 노동조합 간부, 그리고 일반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계를 아우르는 100여명의 생활인이 모인 민간 싱크탱크다. 세대로는 386이 주축이라고 한다. 정회원은 수입의 10%를 회비로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회원 10명당 1명의 연구원을 고용해 현장 전문성과 학문성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새사연도 최근 ‘노동중심 국민경제론(그래픽 또는 각주)’을 발표했다.

지난해 2월 창립한 ‘새로운 코리아 구상을 위한 연구원’은 동국대 박순성 교수가 연구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고려대 김연철, 한신대 백준기, 숭실대 이정철 교수 등이 연구위원으로 참여중이다. 코리아연구원은 최근까지 북핵 위기, 미국 중간선거,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한 정치·외교 연구 결과를 많이 내놓았다. 1월에는 한·미, 한·일, 남북, 한·중, 한·러 관계의 전망과 과제 등 외교뿐만 아니라 ‘한반도 정세전망과 시민사회운동의 과제’, ‘진정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제 정책 방향’,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정책 방향’ ‘2007 대선 국면과 진보·개혁 진영의 과제’ 등에 관한 특별 기획을 진행하기로 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주도해 만든 희망제작소는 ‘인간·생태·문화’에 중심을 두고 개발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 찾기 작업을 진행중이다. 거시적 담론보다는 미시 담론,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의 현실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창국 전 국가인권위원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국민대 조원희 교수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안연대회의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대안 정책을 개발하고 한국이 처한 현실에서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일 민노당 심상정의원실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8일에는 한국사회과학연구소, 한국사회경제학회화 함께 ‘글로벌 체제하의 통합과 갈등’이란 주제로 공동 학술 대회를 열었다.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은 진보 성향 대학으로 알려진 상지대·성공회대·한신대의 민주대학 컨소시엄으로 만들어졌다. 신정완(성공회대), 홍성태(상지대), 윤상철(한신대) 교수 등 3개대학 정치·경제·사회학과의 교수 25명이 참여하고 있다. 사회운동연구소, 세교연구소, 좋은정책포럼, 참여사회연구소도 10개 싱크탱크에 참여한 단체들이다.


청와대 전 참여혁신 수석비서관 박주현 변호사가 만든 시민경제사회연구소는 ‘한국형신성장동력 복지모형과 그 실현을 위한 조세재정 개혁 과제(그래픽 또는 각주)’란 제목의 664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내 주목을 받았다. 연구소는 대안의 유통과 소통을 위해1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올려 놓았다.

현장 운동가들도 대안 작업을 준비중이다. 인권·노동·학술·환경 영역 진보 진영 20여개 운동 단체의 활동가 70여명이 내년 2월 1일 창립 목표로 한 ‘진보전략포럼’이 대표적이다. 참세상의 홍석만 사무처장은 “정세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운동의 싱크탱크로서 한국사회의 주요 전략에 대한 진보적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들의 대안 제시도 활발하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신정완 교수는 최근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 구상(그림참조)을 발표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중소·중견기업 발전 전략’을 내놓았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국가가 재벌을 지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일자리, 공공 부문, 중소기업, 골목경제에 대한 지원을 통해 지구화 시대의 완충적 선순환 기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생태·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제시했다.

최근 진보 진영이 내놓은 대안은 사회·경제적 토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보수 진영의 ‘기업하기 좋은 정부=작은 정부론’, ‘성장 우선·제일주의’을 극복하면서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됐던 ‘성장 전략의 부재’, ‘이념형’을 벗어나 ‘성장’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게 특징이다.

그러나 몇몇 구체적 작업 결과물을 빼고는 여전히 실현성·구체성이 부족한 ‘스케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고려대 박상훈 교수는 “지금 나온 전략들은 실현 가능성과 총체적 비전이 약하다”며 “특히 경제 발전 전략은 사회·교육정책과 정당 체제와 결합할 수 있는 체계적 대안이어야 하는데 아직은 단편적”이라고 평가했다. 박교수는 “진보는 정치의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힘이어야 하는데 대부분 비정치적 접근이 많다”면서 “정치적 조건을 갖추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없어 진보파도 정책 로드맵만 양산하는 인상”이라고 말했다. 서울산업대 정이환 교수는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많이 부족하다”며 “아직도 진보 진영의 대안 논의는 거대 담론 투쟁 수준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적 대안의 부재’도 지적되고 있다. 신교수는 “모두 ‘한국적’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하지만 대부분 스웨덴과 독일, 덴마크 등 유럽의 경험을 취사선택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보수 담론에 대항하는 현실적인 대안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무장한 진보’를 강조했다. 분단 현실과 세계화 체제 문제를 그냥 지나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현재의 세계화 체제에서 국내 논의만으로는 그것이 무엇이든 ‘반쪽’ 미만의 진실일 뿐”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미 FTA의 개혁 없이 또는 이를 포함한 발전 전략 없이 진행되는 국내의 프로그램은 온전히 그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진보 진영은 WTO(세계무역기구), IMF(국제통화기금)의 해체 내지 개혁 의제도 선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북대 김형기 교수는 “현재 한국의 정세에 비추어 볼 때 진보적 성장 담론과 진보적 안보 담론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큰 문제”라며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므로 반드시 통일 문제가 포함되어야 하고 한반도 전체 수준에서 사회 발전 전략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가 해결해야 과제로 ▲현장과의 연대 ▲대중과의 소통 ▲사회적 대화 문제도 제기됐다. 새사연의 손석춘 원장은 “‘어떤 사회가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치밀한 정책 대안 만들기 뿐만 아니라 싱크탱크와 노동·농민운동 영역의 현장 운동가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 김형기 교수도 “진보적 사회 발전 전략은 그 자체로 고립된 학술적 논의에 그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며 “진보적 사회 운동과 연계하여 제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사회 계층과 대화하면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대 이정우교수는 “사회적 대화 모델의 필요성과 현실적 가능성이 충분히 논의되어야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가 생략되고 있어서 자칫 사상누각이 될 수 잇다”고 우려했다. 2007년 대선 국면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 박주현 소장은 “대선은 발전 전략을 상품으로 내놓고 국민들로부터 판단을 받아볼 수 있는, 큰 줄기의 변화를 내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진보·개혁 진영은 정교하게 책임감 있게, 국민의 삶과 연관된 전략을 대선 국면에서 분명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목·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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