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 살리기 --김정욱 (물포럼코리아 이사장/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 교수)

2013. 10. 10. 16:48강과 하천/강, 하천, 도랑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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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 살리기


김정욱 

(물포럼코리아 이사장/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 교수)


  베르사유 궁전에 변소가 없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유럽 사람들은 예전에 변소 없이 살았다. 분뇨는 요강 같은데 받았다가 창밖으로 아무데나 던져 버렸고 뒷골목은 그 자체가 변소였다. 모자나 코트는 똥 벼락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하이힐은 똥을 밟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더럽게 살다보니 도시의 강이란 것은 분뇨가 채여서 한번 빠졌다 하면 똥독이 올라 죽을 정도였다. 그러니 물이란 것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군인들은 물을 마시면 전염병을 옮긴다 하여 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포도주와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온 세상에 전염병을 퍼뜨렸는데 특히 미국의 원주민들은 전혀 이런 병에 면역이 없어서 90퍼센트 이상이 다 죽는 비극을 겪었다. 이 바람에 미국의 원주민들은 싸움도 못해본 채 백인들에게 땅을 다 뺏겼다. 강이란 것은 더럽고 냄새나고 전염병이나 옮기는 수채 같은 곳이어서 작은 도랑은 덮어서 하수도로 만들고 큰 강들은 물을 빨리 빼기 위해서 직강화하고 둑을 쌓아 사람이 접촉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물을 엄하게 다스렸다. 경국대전에는 도랑이나 강에 분뇨나 재나 오염을 버리는 행위를 엄하게 곤장으로 다스리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산에서는 오줌도 누지 않았고 똥은 싸들고 내려왔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금강산이나 백두산에서 관광객들이 누는 분뇨를 싸들고 내려와서 처리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관습헌법’에 따른 것이다. 마을은 산기슭에 만들고 마을 뒤에는 숲을 두며 논밭은 마을 아래에 두는데 가장 아래에 논을 두어 논이 오염을 최대한 걸렀다. 그리고 도랑으로 흘러들기 전에 숲을 만들어 두어 도랑으로 흘러드는 물을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처리했다. 물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물길을 바꿔 돌리는 것을 가장 하책으로 쳤고 둑을 쌓아 물길을 제한하는 것을 중책, 있는 그대로 가만 두는 것을 상책으로 쳤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도랑과 강이 최근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우리는 4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유럽이 수백 년에 걸쳐서 망가뜨린 물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했다. 우리의 도랑들은 말라 버렸고 강은 오염되어 수돗물을 안심하고 그냥 마시는 국민이 1 퍼센트도 안 될 정도가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물길을 돌려 도랑을 직강화하고 도랑가의 나무를 베어내고 콘크리트로 둑을 쌓았고 둑에는 음식점이며 여관이 들어섰다. 땅 바닥은 콘크리트로 덮어 비만 오면 땅바닥에 있던 온갖 오물과 찌꺼기가 다 도랑으로 강으로 쓸려 간다. 그리고 산중턱에는 골프장들이 지하수를 빼 쓰는 바람에 도랑들이 말랐다. 높은 산에는 고랭지 채소 밭이 들어서서 흙, 비료, 농약이 씻겨 내려오는 바람에 산골의 도랑마저도 오염되었다. 이렇게 해서는 하수처리장을 아무리 지어도 도랑에서 어린이들이 물장구를 치고 놀 수가 없다. 그리고 발도 못 담그는 물로 만든 수돗물을 사람들은 마시지 않는다.

  도랑이란 것은 이리저리 굽이돌도록 제 길을 찾아 줘야 한다. 그래야 물살이 빠른 곳 느린 곳이 생기고 여울과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수초가 자라는 곳, 모래가 쌓이는 곳, 자갈과 돌이 있는 곳 등 다양한 서식처가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생물들이 제각각 살 곳과 산란할 곳을 찾을 수가 있다. 수변에 한 10 미터 정도만 수림대를 잘 만들어줘도 물은 상당히 깨끗해 질 수가 있다. 이 수변구역이 바로 땅과 물을 연결하는 고리 구실을 한다. 물에 사는 대부분의 곤충들이 이 수변 식생대가 있어야 탈바꿈을 하고 생명을 이어갈 수가 있다. 많은 육상동물들도 이 곳 물가에서 살거나 이곳을 이용하여 물에 접근한다. 도랑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도랑의 유역을 잘 관리해야 한다. 산에는 산림이 제대로 있어야 하고 땅에는 빗물이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그러고서 하수 처리장을 지어야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범적으로 도랑 살리기를 한 곳들이 집값들이 껑충 뛰었다. 일본에서도 도랑 살리기를 잘해서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고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잘 사는 도시를 꾸민 사례가 여럿 있다. 한국 사람들은 도랑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또 가까이 하고 싶어 한다. 가재 잡고 물장구치던 도랑의 추억을 우리 어린이들한테도 물려주어야 한다. 도랑이 살아야 큰 강도 살고 그래야 수돗물도 안심하고 마실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