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교육’ 현장을 가다](7)일본-학교의 틀 깬 교육실험
-아이들끼리 스스로 돕는 ‘학년없는 학교’-
일본 오사카 인근(와카야마현 하시모토시)의 산 속에 위치한 기노쿠니 학교에는 ‘학년’이 없다. 나이와 학년에 상관없이 같은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한 반을 이루고, 한 가지 학습주제(프로젝트)를 6개월~1년에 걸쳐 수행한다. 프로젝트는 미끄럼틀 만들기, 양 기르기, 농사 짓기, 원두막 만들기, 정원 조성하기, 별장 만들기 등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프로젝트에 관여하지 않는다. 기본적 학습목표만 설명해 줄 뿐이다. 어린아이는 나이 많은 아이가 보살핀다. 프로젝트 수행에 적응을 못하는 아이도 적응을 잘하는 아이가 이끄는 등 함께 성장한다.
일본 와카야마현 하시모토시 소재 기노쿠니 학교 학생들이 미끄럼틀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교과목 강의도 받지만 농사 짓기, 정원 조성하기 등을 직접 하는 수업이 더 많다. 하시모토/선근형기자
기노쿠니 학교는 오사카 시립대 교수 출신 호리 신이치로(현 교장)가 중심이 돼 1992년 세웠다. 영국의 서머힐을 모델로 삼았다. 호리 교장은 80년대 일본이 이지메(왕따), 약물 중독, 폭주족 등으로 학교 붕괴 현상이 발생하자 “제도권 교육을 극복해야 일본에 미래가 있다”고 보고 기노쿠니 학교를 설립했다.
기노쿠니 교육의 지향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와 함께 즐겁게 배우는 교육”이다. 학생들은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직접 실천하고 느낀다.
‘별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학생들은 별장이 너무 크면 만들기가 힘들고, 너무 작으면 모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회의를 거듭한 끝에 적당한 크기와 모양을 정한다. 건축자재들이 어떤 크기로 생산되는지 조사한 결과도 반영된다. 기초공사를 하고, 틀을 짠 뒤 지붕을 올리는 작업이 한 학기 내내 이뤄진다. 목수가 임시교사로 참여해 아이들을 돕기도 한다. 시멘트와 모래를 어떤 비율로 섞어야 하는지, 지붕의 기울기는 어떠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익힌다. 봄에 시작한 별장 만들기는 여름방학 시작 무렵에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낸다.
별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은 도형의 형태, 각도, 면적, 길이, 사변형의 성질, 비율 등을 몸으로 배우고 익힌다. 학생들은 별장을 만들기 위해 계산을 하는 것이지 계산 자체를 위해 머리를 짜내지 않는다.
교사 사와지리 코이치는 “이 같은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지식을 창조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며 “이것은 암기된 지식과는 결코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학습이 기노쿠니 학교의 전부는 아니다. 기초학습 시간도 있다. 자유선택교과와 개별학습시간이 있어서 학생들은 스포츠, 댄스, 목공, 도공, 음악, 영어회화, 수학 등 다양한 교과를 자유롭게 선택한다.
학습에 대한 평가는 기노쿠니 학교에서도 이뤄지지만 방식은 전혀 다르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는 태도와 능력, 감성, 함께하는 즐거움(사회성) 등을 놓고 평가한다. 학생의 장점이 무엇이며, 어떤 점이 더욱 발전됐는가를 파악해 서술형으로 기술된 성적표가 학부모들에게 전달된다.
기노쿠니 학교 학생들은 일반학교 학생들보다 학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기노쿠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중학교로 간 아이들의 성적이 상위권인 경우가 많다. 기노쿠니 고교 졸업생의 7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호리 교장은 “외우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는 수업에 익숙한 교육환경은 학생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남들은 기노쿠니 학교를 ‘교육 실험’이라고 부르지만 이게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과정의 이나가키 히로코는 “학교생활이 너무 재미있다”며 “언니, 오빠들이 잘 도와줘서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지만 괜찮다”고 밝혔다.
고교 과정인 히라야마 사토시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이곳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 처음에는 갈등했지만 일반 교과 공부도 스스로 하다보니 더 잘 된다”고 말했다. 또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할 때 이곳에서의 생활이 큰 자산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하시모토|선근형기자 ss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