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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교육’ 현장을 가다](4)일본- 이지매 대안학교 ‘도쿄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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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맨 2013. 9. 14.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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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교육’ 현장을 가다](4)일본- 이지매 대안학교 ‘도쿄슈레’

 

교칙·처벌·시험이 없어 ‘재미’ 있는 학교

“학교는 가고 싶을 때 가요. 잠에서 깨면 깨는 대로 가요. 학교 가기 싫은 날은 등교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뭐라고 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학교생활이 재미있어 가죠. 오전 10시에도 가고 11시에도 갑니다.”

호리키타 에이타(가명)는 이지메(집단 괴롭힘)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후 지금은 도쿄 신주쿠구 와카마쓰초에 있는 ‘도쿄슈레’에 다니고 있다.

자유로운 수업시간 도쿄 슈레의 수업광경.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혼자 노는 등 자유롭게 학생이 선택해 수업을 받는다. <도쿄/ 선근형 기자>

 

도쿄슈레는 정규교육을 포기한 학생, 소위 ‘후도코(不登校)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다. ‘정신을 자유롭게 쓰는 곳’이란 뜻의 그리스말 ‘슈레(shure)’를 그대로 따왔다. 학교를 뜻하는 독일어 ‘슐레(schule)’와는 무관하다. ‘슈레’의 뜻에 충실하기 위해서인지 도쿄슈레에 교사는 있지만 ‘선생(센세이)’이란 칭호는 쓰이지 않는다.

일본 교육의 고민은 이지메, 학교 부적응, 개인성격 등을 이유로 공교육을 포기하는 초·중생이 매년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에는 사상 최고인 13만4000여명을 기록했다. 1991년(6만6000여명)의 2배 이상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눈을 뜬 오쿠치 게이코(현 도쿄슈레 이사장)는 자녀들이 이지메를 당한 학부모들과 함께 ‘등교 거부를 걱정하는 전국 네트워크’를 결성한 후 1985년 도쿄슈레를 세웠다. 오쿠치 자신도 아이가 이지메를 당한 바 있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현재 도쿄슈레는 도쿄 내 신주쿠, 오지, 오타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에이타가 다니는 신주쿠슈레 교사(校舍)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 주택가의 2층짜리 건물이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면서 10~15세쯤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하나 둘 신수쿠슈레에 모습을 나타냈다. 지각했다고 선생님에게 꾸지람 들을까 걱정하는 아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같이 여유 있었고 느긋했다.

학교 활동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지만 원하는 시간에 나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한 후 원하는 시간에 하교한다. 교과목도 학생들이 매주 자율적으로 회의를 열어 결정한다. 국어수학 등 일반 교과목 외에 동물 키우기나 만화보기, 요리, 악기 실습, 컴퓨터 배우기 등이 있다. ‘혼자 놀기’라는 과목도 있다.

수업 후 하교하는 도쿄 슈레 학생. 이 학교의 등·하교는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다.

학생들은 교사를 ‘스태프(staff)’라고 부른다. 한 스태프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유를 말해주지 않고 지시하고, 아이들은 이런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안쓴다”고 설명했다.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도쿄슈레에는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이 구분이 없다.

남자 아이들 대여섯명은 1층 공간 한 구석의 서고 앞에서 만화책을 뒤적이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 여자 아이는 게임기 속 강아지와 놀고 있다. 올해 초부터 슈레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사와리지 에이코(가명)는 “공부에 대한 부담과 압박이 없어 좋다”며 “친구들과 재미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이곳 생활에 만족한다”고 전했다.

또 한편에서는 탁구를 치고 있는 학생들과 이들을 응원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인터넷 검색을 하는 학생, 사무실 구석에 펴놓은 이불 위에 널브러져 소설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슈레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매일 전체 학생의 70~80%가 등교한다. 이노우에 쇼고(가명)는 “정규학교를 다니는 의미를 알 수가 없어 포기하고 이곳에 와서 하고싶은 대로 하다보니 공부에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쇼고는 “대기업의 CEO가 돼 일본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곳 스태프들은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아닌 언니, 누나, 오빠, 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한 스태프는 “이곳에는 학생과 스태프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며 “학생도 스태프도 슈레가 학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오쿠치 이사장은 “학생들의 무책임과 무질서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자주적으로 행동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습관을 배운다”고 강조했다.

도쿄 슈레의 학교 안내서에는 14세 여학생의 체험담이 담겨 있다. “이지메 때문에 날마다 죽음을 생각했는데 도쿄슈레에 오고나서부터 죽는다는 생각도 사라졌고 스스로 웃는 모습을 발견한다. 슈레에서 활동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제 삶의 원천이다.”

〈도쿄|선근형기자 s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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