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교육’ 현장을 가다](3)피에르 프랑수아 모로 파리4대학 교수
“과거 교육은 개인의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한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오늘날에는 교육을 통한 사회적 계층 이동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교육이 대중화됐지만 그것이 민주화로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피에르 프랑수아 모로 파리4대학 교수
지난달 13일 파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프랑스 파리4대학(소르본)의 피에르 프랑수아 모로 교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직면한 교육 문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전세계적으로 교육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유치원과 초·중등교육 분야에서 의무 교육이 이뤄지고, 국가는 교육에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었다. 선진국의 경우 20대 젊은이 3명 중 2명은 대학교육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중이다. 바야흐로 교육의 대중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교육의 양적 성장은 학력 인플레만 가져왔을 뿐 활발한 계층 이동 등 의미 있는 사회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고 모로 교수는 설명했다.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50년 전만 해도 프랑스의 대학은 극소수에게만 열려 있었다. 학생 대부분이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지금은 격세지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 프랑스 고교생의 80%가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르고, 가난한 집안의 학생도 원하면 거의 모두 대학에 갈 수 있다.
이렇게 되자 언제부턴가 프랑스의 ‘있는 집’ 아이들은 일반 대학이 아닌 그랑제콜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랑제콜은 고급 관료 및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프랑스의 독특한 고등교육 기관. 그랑제콜 신입생도 역시 성적순으로 뽑지만 관료 등 사회 지도층 자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자녀의 학업 성취도가 비례하는 것은 프랑스나 한국이 모두 똑같다. 프랑스 정부는 그랑제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국가 인재를 양성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랑제콜에 진학하는 4%의 학생들에게 프랑스 고등교육 예산의 30%를 배정하고 있다. 결국 부유층 자녀들이 그랑제콜로 들어가고, 국가는 그랑제콜에 특혜를 베풀고, 국가의 지원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은 졸업생은 사회의 지도층이 되고, 그 자녀들이 다시 그랑제콜에 들어가는 순환 구조가 생겨나는 것이다.
교육의 불평등은 부모의 경제력 외에도 정보의 격차에서 발생한다. 모로 교수는 “아직도 프랑스 저소득층의 상당수는 그랑제콜 준비반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며 “반면 교직원이나 부유층은 자신이 그랑제콜 출신이기 때문에 자녀가 어디에 진학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랑제콜이나 명문대학이 대도시에 몰려 있다는 점도 문제다. 대도시는 주거비 등 생활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지방이나 저소득층 학생들은 대학 학비 면제 조건만으로는 그랑제콜 진학이 어렵다. 모로 교수는 “초·중·고교 수업료를 없애고 대학 학비를 저렴하게 책정하는 것만으로는 교육의 민주화를 이루기 어렵다. 대학 내부의 장학금 등이 많아지고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시설이 충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의 수월성만큼 평등성이 강조되고, 좌파 정권이 수 차례 집권했던 프랑스에서 이 같은 그랑제콜이 지금껏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로 교수에 따르면 프랑스에도 그랑제콜을 철폐하려는 노력이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1981년 좌파 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랑제콜 폐지 논의가 활발했다. 그러나 결국 그랑제콜 폐지 정책은 이행되지 못했다.
“그랑제콜 학생들의 반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교수·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모두 그랑제콜 출신이었고, 이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랑제콜의 부작용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 문제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그러나 모로 교수는 한국의 서울대 문제 등에 대해서는 한국과 프랑스의 사회·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조언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모로 교수=파리 4대학 및 리옹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스피노자 철학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랑제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지만 그랑제콜 폐지론자는 아니다. 대중교육과 엘리트 교육 간의 모순과 갈등은 어느 한쪽을 제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파리|오창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