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자랑거리라면 역시 깨끗한 환경이지. 대둔산에 반딧불이도 살구, 개천에 가면 쉬리도 있구.” “백일홍, 연산홍 피면 보기에 참 이쁘잖어.”
논산시 양촌면 수락1리 마을 정자에 동네 20여 명이 모여 마을의 자랑거리를 하나둘 늘어놓자 다른 편에서 이를 부지런히 받아 적는 사람이 있다. 그는 글씨를 적은 종이를 창문 가득 붙였다. 다른 쪽에서는 마을 지도 그리기가 한창이다.
색연필을 쥔 일흔이 넘은 할머니들의 웃음이 연신 터져나온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자랑거리와 보물을 찾는 이 모임은 논산시에서 진행하는 ‘살기 좋은 희망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이다. 희망마을만들기는 낙후되어 쇠퇴일로를 걷고있는 농촌 마을을 주민들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기존 농촌지역 지원사업과 달리 주민 스스로 마을의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역 구성원이 협력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논산시청 건설과 농촌개발담당 윤천수 계장은 “과거 농촌마을 발전을 위해 외부 컨설팅 회사가 계획을 짜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으로 사업을 추진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그 사업은 주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주민 합의를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마을 리더를 중심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농업에 대한 정부 정책 방향을 알려주고 농촌 지도자로서의 역할과 자세를 가르치며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 이후 외부 컨설팅 회사와 함께 마을의 자원과 주민들의 역량을 진단하고 각 마을별 워크숍을 실시했다. 지역이 가진 대표 자원은 무엇인지 주민들이 스스로 꼽아보게끔 하고 이를 슬로건과 브랜드로 만들었다.
수락1리의 경우 청정한 환경이 가장 큰 장점이라는 지역주민 의견이 많았다. 이에 따라 ‘쉬리와 반딧불이가 사는 마을’ ‘와서 보고 살고 싶은 마을 전국 1위’라는 슬로건을 정했다. 컨설팅을 진행한 오우식 퍼포먼스웨이 대표는 “대부분 지역주민들이 ‘마을을 발전시킬방법을 우리에게 묻는 건 처음’이라며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마을 사업이나 발전계획이 성공을 거둔 다른 농촌 마을 견학도 이어졌다. 전북 진안군 꽃잔디마을, 충청북도 옥천 안터마을 등 선진 지역을 방문한 논산시 천호리 오인호 이장은 “한 사람의 훌륭한 리더가 마을을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는지 깨달았다”며 “연 수입이 2배로 늘었다는 사례를 보면서 우리 주민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견학 후 주민들은 다른 마을 사례를 참고해 마을발전 과제를 발굴하고 목표를 다시 가다듬는 작업을 했다. 마을별 발전계획은 전문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마을 특성 살려 꽃길 만들기·소박물관 건립도
추진사업이 진행되는 틈틈이 마을 리더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심화교육도 이뤄졌다. 작은 농촌 마을이라 지역주민이 수십명에 불과하지만 민주적 토의를 거쳐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웃 친인척 간 해묵은 갈등, 정부 지원금을 둘러싼 지역민들 간 다툼이 늘 있었다. 주민들 스스로 지역을 발전시켜 나가기 힘들었던 것에는 이런 분쟁도 한몫했다.
그러나 희망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한 마을 리더들이 지역발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지역주민들에게 단합을 호소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을 발전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협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부 지원금을 기다리기보다는 마을 환경 개선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일목요연한 사업계획서를 완성해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요청했다. 타당성이 인정된 사업은 이미 지원 예산책정을 마친 상태다.
수락1리 주민들은 마을 꽃길을 조성하고 하천을 정비해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나섰다. 마을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민박 네트워크를 만들며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외지인의 귀촌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마을 리더인 안충호 이장은 “실개천 위로 시설물을 설치하고 조롱박을 키워 ‘조롱박 터널’을 만들어 경관을 꾸미고 수확물로 공예품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웃 마을인 논산시 천호리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개태사 때문에 마을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어려웠다.
농지 면적도 좁아 농가 소득은 늘 바닥 수준이었다. 희망마을만들기에 참여한 천호리는 개발을 막는 장애물이던 고찰 개태사를 오히려 적극 내세웠다. 문화마을로 테마를 잡고 소박물관 건립을 목표로 세웠다. 마을 토박이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농기구, 주방기구 등을 집집마다 앞마당에 전시해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지역발전위원회 윤광일 지역활력과장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사업을 계획할 수 있도록 주민들을 교육해 지역발전을 이끌어내고, 일부 성공 사례를 통해 인근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박미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