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B정부의 실패한 ‘대학구조조정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친구들 여러 명이 등산을 하다가 사나운 곰을 만났다. 곰이 돌진해 오자, 이들은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에 처진 사람이 앞선 친구에게 말했다. “야, 도망만 가면 어떻게 해? 우리가 곰을 따돌리는 건 불가능해!” 앞선 친구가 대답했다. “내가 곰보다는 느리지만, 너보다는 빠르거든.” 경쟁에서 뒤쳐진 자는 가차 없이 버려지는 신자유주의 경쟁의 모습이다. 이 우화는 우리나라의 대학간 경쟁에도 꼭 들어맞는다. 다짜고짜 덤벼드는 포악한 곰은 대학평가이며, 혼자 살겠다고 허겁지겁 도망가는 자들은 바로 우리의 대학들이다. 뒷사람이 잡히면 다른 이들은 잠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지만, 매년 또 새로운 경주가 시작된다. MB정부가 시작한 이 잘못된 대학구조조정정책은 해당 대학과 대학이 소재한 지역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이 정책은 전국과 지역별 쿼터(마지막 순위 15%)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모든 대학이 지표를 높이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상대평가를 통해 후순위 대학이 반드시 나오게 설계되어 있고, 이렇게 희생자를 골라내는 것이 원래 목적이기도 하다. 구조조정정책의 무리한 추진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다. 평가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취업률이 낮은 기초학문분야나 예술분야의 학과들이 폐과되고 있는 등 대학 내에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기학과 중심으로 대학체제가 재편되고 있어 학문기반이 협소해지고 있고 기형화되고 있을 뿐아니라, 이를 둘러싼 학내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평가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는 지방대학의 몰락도 계속되고 있다. 지방대학의 몰락으로 지역의 경제·사회·문화가 심각한 타격을 받기 시작했고, 수도권 집중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 대신 취업률과 학생충원율을 올리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급기야 교육부가 나서서 2014년 평가부터는 인문학분야와 예체능분야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평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하에서는 MB정부의 실패한 ‘대학구조조정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인 바, 구체적으로 평가지표의 문제점과 정부여당 일각에서 추진 중인 ‘사립대학구조조정법(안)’의 문제점을 검토한 후 기초학문분야와 지방대학을 살릴 수 있는 공정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부실대학과 부정·비리사학 처리 과정
국가가 대학평가를 하여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대학의 재학생에 대해 학자금대출 기회까지 차단해 버리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세계최초인 것 같다. 이런 독특한 대학평가를 실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저출산으로 인해 고교 졸업자 수가 2012년의 67만명 수준에서 2018년 58만명 수준이 되는데, 이는 현재의 대학입학정원과 비슷한 수치이다. 다시 2024년도가 되면 고교졸업자 수는 41만명으로 감소하여, 입학정원을 크게 밑돌게 된다. 그래서 대학의 대규모 파산(?)이 시작되기 전에 부실대학을 중심으로 입학정원을 줄이자는 문제해결 방식이 제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을 평가하여 점수가 낮은 대학에 재정지원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머리 좋은 사람만 대학에 가고, 졸업 후 취직이 되어야 비용이 낭비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이는 교육을 투자의 효율성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사고로서, 고등교육이 개인의 삶과 사회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보지 못하는 반쪽짜리 사고이다. 이에 대해서는 반박할 내용들이 많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이 정도로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비리사학재단의 원상복귀’가 이명박 정부의 부패성을 보여주는 정책이라면, ‘대학구조조정정책’은 MB정부의 정책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증명하는 실례에 속한다. 교육부 산하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는 부실대학의 퇴출을 다음 순서에 따라 진행시키고 있다(교육부, 2011. 8. 9). 먼저, 평가순위 하위대학 15%에 대해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규정된 절대지표 2개 이상을 미충족할 시에는 대출제한대학으로 선정하며, 이를 대상으로 다시 실사를 통해 경영부실대학을 선정하여 구조조정을 유도한 후 감사 결과 이행 여부 등에 따라 퇴출절차를 추진한다. 이것이 구조개혁우선대상대학의 퇴출루트이다. 즉, 평가하위 15% 대학은 부실 정도에 따라 하위대학(재정지원 제한) → 대출제한 대학(재정지원 + 대출 제한) → 경영부실 대학(재정지원ㆍ대출 제한 + 컨설팅) 선정 → 퇴출 등의 절차를 밟는다. 다음으로, 중대부정·비리대학 및 감사결과 불이행 대학 등은 구조개혁대상대학 포함 여부에 관계없이 별도로 퇴출 절차를 추진한다. 이것이 두 번째 퇴출루트가 된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고등교육을 지원할 수 없었던 정부는 사학운영에 대해 불간섭주의 입장을 견지하였고, 이틈을 타서 사학비리가 횡행하기 시작했다. 사학운영은 최고의 수지맞는 사업으로 인식되어, 대학설립인가를 받기 위해 엄청난 뇌물을 바쳐야한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가운데 지방 토호들이 속속 사학경영자로 변신하였다. 이러한 사학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리사학이면서 부실대학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93년 취임한 김영삼정부는 “전국에 사학비리가 횡행하여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상태3)”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여 상지대・인천대 등 비리사학재단을 퇴출시키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문민정부의 사학비리억제정책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승되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무너지고 말았다. 대통령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엄청난 물의를 빚고 물러났던 사학재단 이사들을 ‘종전이사’로 예우하면서 속속 대학운영 일선에 복귀시켰다. 당연히 사학비리는 다시 창궐하고 있다. 사립대학의 구조개혁을 통하여 교육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부정비리대학의 퇴출이 우선이건만 경영부실대학에 대한 규제 혹은 컨설팅 등을 통한 지원과 퇴출절차만 규정하고 중대 부정비리대학 처리절차는 빠져있다. 분명한 것은 국민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대학은 경영부실대학이 아니라 비리대학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구조개혁대상대학으로 선정되어 퇴출되었거나 절차를 밟고 있는 대학들 대부분이 중대한 비리가 발견된 대학들이라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III. 사립대학 퇴출정책의 문제점들
2011년에 이어 작년에도 교육부(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2013학년도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 및 학자금 대출제한대학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일반대학 23개, 전문대 20개 등 사립대학 43개가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됐다. 이들 대학은 2013년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각종 정부재정지원에서 제외되고, 이 중 13개교는 학자금 대출 제한대학으로도 선정돼 내년 신입생이나 재학생의 학자금 대출이 제한됐다. 이 대학들은 사실상 ‘부실대학’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재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이 된 대학은 13개교이며, 작년에 처음으로 선정된 대학은 30개교였다. 그러나 현재 시행 중인 사립대학 구조조정정책은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대학구조조정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여러 대학에서 비인기학과나 취업률이 낮은 학문분야들이 통폐합되는 등 대학교육과 학문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수도권 대학에서조차 순수학문분야가 퇴출되는 등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개별대학의 근시안적인 경쟁력 강화가 오히려 한국 고등교육 전체의 중장기적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둘째, 지방대학에 불리한 지표가 많아 지방대학 육성정책과 충돌하고 있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은 운영방식이 다르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거의 없는 사립대학은 비용효율성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고, 국립대학은 이러한 면에서 비교적 여유가 있다. 반면, 사립대학의 교수들은 연구성과에 대한 서 국립대학보다 있는 경우가 많아 지방대학과 수도권대학은 학생모집과 충원환경이 다르다. 이러한 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정책의 목표가 오로지 입학정원의 감축에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을 위한 지표구성이나 배점이 공정하지 못하다. 셋째, 대학 운영비가 크게 증가하여, 이것이 주요한 등록금 인상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학은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고 명성을 얻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에 교수-학생비율, 전임교원확보율, 교원의 연구실적 등의 지표를 개선하고 기타 교육·연구시설들을 확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 인한 비용증가가 수업료 인상을 초래하게 된다고 Howard Bowen 등이 주장하고 있다. 대학의 자발적인 노력에도 이렇게 큰 비용부담을 주고 있는데, 대학평가의 시행으로 반(半)강제적 지표개선 노력을 하게 되면 비용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대학마다 취업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당연히 등록금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으로 등장했다. 넷째, 정책의 지향점이 불분명하다.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들에 대해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경쟁을 촉진하고, 자발적 경영개선을 위한 동인을 제공함으로써 대학 경쟁력이 한층 강화 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예정”이라 했다. 그러나 실제 이 정책이 고등교육의 질을 제고하는데 기여하고 있지 못하다. 교육의 질 제고와 관련된 지표들이 많지 않고, 있어도 배점이 작아 교육의 질 제고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학경쟁력 강화란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이 국제수준의 교육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재정지원제한대학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역대학간 살아남기 경쟁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IV. 대학평가지표의 검토
(1) 평가지표 운용의 문제점 교과부가 발표한 구조조정 지표(평가순위 하위대학 선정지표)는 다음 <표 1> 및 <표 2>와 같다. 이 지표와 배점을 기준으로 전국의 대학을 평가하여 하위 15%를 강제로 정부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 가운데 대학교육협의회의 최소 요구 기준은 (전임교원확보율 61%, 교사확보율 100%, 정원내 신입생충원율 95%, 정원내 재학생충원율 70%, 교육비 환원율 100%, 장학금 비율 10%)이다. 이 중 두 가지 이상의 지표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대학은 대출제한대학으로 선정된다. 현재, 197개 4년제 대학 가운데 이 6개 지표 동시에 충족시키는 대학은 약 120개교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나머지 대학들은 취업률 등의 지표로 생존을 위한 전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2012년 12월 6일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학자금대출제한대학,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 등 주요 대학 평가에 사용되는 지표의 일부를 개선‧보완한 「2013년 대학 평가지표 개선안」을 발표했다(<표 3> 참조). 주요 내용은 △교내취업 상한 설정 △유지취업률 도입 및 비중 조정 △등록금 절대수준 비중 상향조정 △정원감축에 따른 가산점 부여 등이다. 논란이 많은 취업률과 관련하여, 교내취업을 취업대상자의 3%비율까지만 인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교내 취업자는 취업률 산정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그 이유는 대학이 취업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교내 취업을 이용하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업의 지속성도 반영한다. 이는 대학들이 조사 기준일 직전에 단기취업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여 일시적으로 취업률을 높이는 편법을 막기 위함이다. 등록금 분담완화 지표의 경우, 그간 등록금 절대수준과 인하율을 4 : 6으로 반영했지만 이번 2013 대학 평가지표 개선안에서는 그 비중을 5 : 5 로 조정했다. 등록금 절대수준이 낮은 대학의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서부터는 정원감축을 통하여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는 대학에 대하여 정원감축률에 따라서 평가점수에 일정 가산점을 부여한다. 이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결국, 정원감축에 이 정책의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대의 경우, 전문직업 양성이라는 설립목적을 고려하여 취업률 비중은 유지하되 재학생충원율 비중을 5%p 줄이고, 교육비환원율과 학사관리 지표의 비중을 각각 2.5%p 늘렸다. (2) 과대하게 평가된 ‘재학생 충원율’(기초학문분야와 지방대에 불리한 지표 ‘재학생 충원율’을 평가지표로 사용하는 평가방식은 현재 지구상에 거의 없다. 지방대학과 기초학문분야에 불리한 지표들로서 부실대학을 선정하고 있다는 평을 듣게 되는 주요 원인이다. 지원자들이 선호하는 수도권대학들은 재학생 충원율 하나만으로 평가에서 유리한 고지에 선다. 수도권대학 가운데 재학생 충원율 이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대학이 적지 않지만, 이 엄청난 배점의 평가에서 지방대학보다 무조건 유리하다. 이미 대학정보공시제가 시행되고 있어 누구든 개별대학의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 취업률이 낮으면 학생들이 선호하지 않을 것이며 재학생 충원율도 함께 낮아질 것이다. 학생들이 외면하는 대학은 결국 자연스럽게 퇴출된다. 따라서 이 지표들은 대학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관리할 지표들이다. 심각한 비리나 부패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재학생 충원율이 낮다고 대학을 구조조정하는 국가가 있는지 의문이다. ‘재학생 충원율’ 지표의 비중을 없애거나 크게 낮추어야 할 것이다. (3) 취업률의 문제(기초학문분야와 지방대에 불리한 지표 '취업'은 당연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취업률로 인해서 기초학문과 인문학∙예체능학 등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애로우 교수는 대학교육 자체가 생산성을 직접 향상시키지는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이든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이든 회사의 일반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인사담당자들의 증언이다. 노동시장의 성과(취업)에 대해 대학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취업률은 노동시장의 수요에 의해 사실상 결정되므로 낮은 취업률은 수요부족이 일차적 원인이다. 대졸노동력에 대한 기업측의 수요가 고정되어 있으면, 개별 대학이 아무리 노력해도 동시에 모든 대학의 취업률이 상승할 수는 없다. 기업과 정부 등 노동수요자들의 노력이 있어야 취업률이 상승할 수 있다. 이 역시 지방대학에 엄청나게 불리한 지표이지만, 4년제대학 평가점수의 15%, 전문대학 평가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7월 4일, 교육부가 발표한대로 2014년 평가부터는 인문학분야와 예체능분야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평가에서 제외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대학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취업률 통계에서 제외되는 분야보다는 취업률을 올릴 수 있는 상경계나 공학계를 더 확대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도 인문학∙예체능계의 푸대접과 축소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또 나머지 분야들에서 겪어야 하는 부담과 고통은 여전히 계속된다. 아마 교수도 두 그룹으로 나뉠 것이다. 품위 있게 교육과 연구에만 몰두하는 교수들(인문학과 예체능계 교수들)과 학생들 취업을 위해 뛰어다녀야 하는 교수들(기타 분야 교수들). (4) 상환율 지표의 부적절성 연체율(상환율)이 지표구성에서 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상환율을 지표에 포함시킨 것은 이 법률안이 취업후 학자금융자제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판단을 하게 한다. 그러나 친구의 상환능력이 급우의 대출조건이 된다는 의미로서, 이는 일종의 연좌제이다. 대출상환율이 낮은 대학이 불이익을 받게 하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취업후 상환학자금융자제도를 대학에 대한 지원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생겨난 오류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취업후 상환학자금융자제도는 대학에 대한 지원제도가 아니라 개별학생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인 것이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반값등록금제도나 취업후상환학자금융자제도를 시행하면 등록금부담이 감소하여 대학진학률이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로 인해 부실대학까지 살아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이거나 착각이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는 그 가격(등록금)에 의해 결정되지 않아 왔다. (5) 국제기준과 먼 평가지표들 The Times나 Guardian 등 세계적인 대학평가기관들은 재학생(또는 신입생) 충원율을 평가지표로 사용하지 않는다. 장학금 지급률, 교육비 환원율, 등록금 인상수준 등은 정부가 ‘대학교육의 질 관리’라는 공공적 관점에서 필요한 지표들이다. 이들 지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져야 할 것이다. 전임교원 확보율도 중요하지만, 교수1인당 학생 수가 더욱 일반적 기준이며, 이에 더해 학생만족도, 외국인 교수 및 학생비율, 학계의 평가, 교수 연구업적(논문 수 및 인용빈도), 고용주 및 노동조합의 평가 등이 더해져야 한다. 한국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원한다면, 재학생 충원율이나 학사관리와 같이 국제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지표들은 제외시키고 국제기준에 맞게 지표로서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V. 사립대학구조조정법안의 문제점
부실사립대학 퇴출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여당이 준비해온 ‘사립대학구조개선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의 내용도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⑴ 대학을 유상양도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 제27조 ①항에 “......합병법인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상대방 사립대학법인(이하 ”피합병 법인“)의 재산출연자 등 합병교부금지급계획서에서 정한 자에게 합병교부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는 대학을 유상양도(매매)하는 행위가 합법화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제24조에서도 매수라는 표현이 거듭되고 있다. 대학은 비영리공익기관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매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조항들은 폐지되어야 한다. 법안 제안이유에서 “만약 대학이 파산한다면 그 피해가 학생과 지역사회에 돌아간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사학재단 운영자의 입장만을 고려하고 학생과 지역사회에 대한 배려는 없다. 부실대학의 퇴출여부를 평가할 때 지역의 입장을 반영하여야 한다. ⑵ 교육부문의 자원이 타부문으로 전출될 가능성 제28조 ⑤항에서 해산하는 사립대학법인은 “......잔여재산 일부를 사립학교법 제10조제4항 및 제35조에도 불구하고 잔여재산처분계획서에서 정한 자에게 귀속시키거나...... 사회복지법인의 설립을 위한 재산으로 출연할 수 있다.”고 하고 있어, 잔여재산이 일반인이게 귀속되거나 사회복지법인이 될 수도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부실사학의 자원을 사회복지부문으로 이전시켜봐야 부실복지기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립학교법에는 “잔여재산의 귀속자는 학교법인이나 기타 교육사업을 경영하는 자 중에서 선정”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교육부문에 투하된 자원은 경영주체가 바뀌더라도 지속적으로 교육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더구나 잔여재산 가운데는 교육발전을 위해 지원된 공적자원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3) 부실대학 처리방향의 문제점 제24조에서 “교육기술부장관은 사립대학법인의 승인된 구조개선계획에 따라 보유자산의 처분, 합병 또는 인수, 일부 사립대학의 양도(이하 ‘자산인수’라 함)를 추진하는 경우에” 한국사학진흥재단에 자산인수를 권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사학진흥재단은 처분 자산을 직접 매수하거나 제3자가 매수하도록 알선할 수 있다. 이 규정에 따라 한국사학진흥재단은 스스로 부실대학을 인수할 수도 있고 제3자에게 매수하도록 알선할 수도 있다. 즉 한국사학진흥재단에 사학처분권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방안은 잘못 운영될 경우, 사학진흥재단의 영리화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식이 모색되어야 하며, 부실대학의 공영화(정부책임사립대학)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학이 소재한 지역사회와 협의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대학들은 거의 100% 공영대학(정부책임사립대학)이다. 의회에서 결정한 대로 등록금을 받으며, 정부의 공적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교수연구비 등 대학운영비의 상당부분을 지원해 주는 준국립대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현재의 대학운영자가 보상을 원한다면 이에 합당한 보상을 해준 후 운영권을 완전히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국공립대학의 최적비중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 없지만, 일단 재학생의 50%를 수용할 수 있을 때까지 국공립화 또는 공영대학(정부책임사립대학)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재학생 충원의 어려움으로 경영난에 빠졌던 미국 뉴저지주의 사립대 럿거스(Rutgers)대학을 주립대학으로 개편한 것이 좋은 실례이다. 사립대학에 공적자원을 지원하는 경우, 공공성 확보를 위해 법인이사회를 전면개편해야 한다. 미국의 사학법인들은 이사의 수가 많아, 편법과 불법운영이 불가능하며 담합이 어렵다. 이사들도 4-5년정도 이사직을 수행하다 퇴임하기 때문에, 종전이사라고 주장하면서 권리분쟁을 일으키는 일도 없다. 대부분의 사학들이 본교와 타교의 교수들, 직원대표와 학생대표, 지역의 고용주 대표,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유사한 방식의 이사구성이 바람직하다 (4) 학생과 교직원 신분보장 미흡 법안 제32조에는 통・폐합대학의 재학생 보호 조항이 있다. 그러나 이 규정 역시 허술하여, “국가가...... 그 재학생들의 다른 대학에로의 편입학을 지원하는 등 재학생 보호를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한다.”는 선언에 그치고 있다. 재학생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통・폐합인지 불분명하게 된다. 대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법률로 확실하게 보장하여야 한다. 제31조에는 교직원의 면직 조항이 있는데, “사립대학법인이 이법에 따라서 해산하거나 다른 사립대학에 통・폐합되면서 해당학과를 기준으로 폐직이나 과원이 된 때에 준용한다.”고 하고 있다. 이 규정은 사립대학이 통폐합될 경우 인수대학 측에서 폐과조치를 통해 사실상 교수・직원을 합법적으로 면직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하여야 한다.”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5) 부정비리대학의 처리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문제 제5차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 발표한 “중대한 부정․비리대학, 감사결과 불이행 대학 등은 구조개혁 대상대학 포함 여부와는 관계없이 별도로 퇴출 절차”를 추진한다는 결정은 사학비리의 척결을 통한 고등교육의 정상화를 염원하는 많은 국민들의 바람과 일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대한 부정․비리대학의 퇴출에 대해 별도의 절차를 마련하기보다 법안에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임시이사파견대학의 정상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이러한 방향과 일치되지 않는 결정들을 내렸다.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퇴출판정을 받았던 비리사학들을 속속 복귀시켜 한국 대학교육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비리재단과의 유착관계가 의심되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해체되어야 하며, 이 단체에 대한 수사와 함께 그간의 시대착오적인 결정들은 무효화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생명은 자율과 자치이다. 사학의 자율성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비리가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 사학의 자율성을 핑계로, 학생들의 학습권 및 교수/직원들의 교권과 노동권을 짓밟는 사학비리까지 보호되어서는 교육이 발전할 수 없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대신하여 과거처럼 교육부가 비리사학 처리권한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VI. 합리적 구조조정방안(대학입학정원의 단계적 축소방안)
교육부의 목표는 결국 대학입학정원의 축소에 있다. 이 지표에 가산점을 주기로 한 사실만 보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점수는 순위결정에서 결정적이다. 하지만, 입학정원의 축소를 추진하면서도 새로운 대학들이 설립허가를 받고 있다. 평가중심의 구조조정은 기초학문분야의 쇠퇴와 응용·실용학문 중심의 학문체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전공분야별 대학신입생의 비중을 OECD 주요회원국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공학·건설분야가 압도적으로 큰 것이 특징이다. 공학․건설분야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응용․실용학문분야가 커다는 것을 의미하는 바, 대학구조조정정책이 지속된다면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되어 기형적 학문체제가 형성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국가의 장기적 학문기저가 흔들리게 되어 학문경쟁력은 오히려 후퇴하게 될 우려가 있다. 아울러 응용․실용분야 전공자들의 임금도 지속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교육과 연구활동을 수행하지만,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학은 지역사회에서 유력한 고용주이자 소비자로서 경제적으로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평생교육 등의 공급을 통하여 지역사회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키며 정치의식을 고양하고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러가지 지식과 기술을 전파한다. 지방대학은 그 대학이 소재한 지역의 경제・사회・문화의 중심이다. 그래서 지역대학은 서울 등 수도권에서 보다 지방에서 그 존재가치가 더욱 커지는데 이 지방대학들이 평가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취업률과 충원율 지표가 약간 낮다고 해서 폐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역대학을 통해 고등교육에 접근할 수 있었던 지방 학생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방대학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언론이나 인사들은 지표가 낮은 대학을 부실대학(사실상 지방대학)으로 간주하면서 은근히 폐교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방대학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등록금수입극대화를 추구하는 대학들은 자율적 정원감축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대학이 공정하게 고통을 분담하도록 하면 된다. 대학별 모집정원을 단계별로 20-30%정도씩 감축하면 된다. 모든 대학이 매년 2-3%씩(2013년 기준) 10년에 걸쳐 입학정원을 줄여도 되겠고, 인구에 비해 대학입학정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의 대학들은 3%, 기타 지역의 대학들은 2%씩 매년 입학정원을 감축하면 자동으로 해결된다. 법률에 의한 일괄 정원조정이 필요하다. 지역별로 대학입학정원을 배정할 수도 있다. 여야 합의로 가칭 ‘사립대학구조개선 촉진법’에 추가하면 된다. 이것이 공존을 위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구조조정방안이다. VII. 결론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일부 대학의 구조개선을 통해 국민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공급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와 문제의식이 정책에 바르게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학을 지원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솎아내기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대학 죽이기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평가지표는 학생과 학부모의 판단을 위해 필요하지만, 무리한 구조조정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현행 지표에 의한 경영부실대학들은 대부분 불리한 여건의 지방대학들이다. 분야별로는 기초과학과 인문학분야 및 예체능분야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모든 대학과 학문분야에 공정한 평가지표가 개발되어야 한다. 재학생충원율과 취업률이라는 도깨비 방망이 대신 국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지표들이 추가되어야 한다. 대학의 설립목적과 지역을 고려한 평가체제가 필요하며, 대학별 중점분야와 성취가 반영된 평가방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부실대학의 처리에 대해 지역사회의 여론을 수렴하여야 하며, 이 대학들은 공영대학(정부책임사립대학)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정비리 사립대의 처리도 마찬가지다. 부실대학은 학생과 학부모가 알아서 판단하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리되어질 문제인데, 정부가 앞장서서 무리하게 (교육부실대학이 아니라) 경영부실사학의 퇴출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학생과 지역사회의 피해를 우려한 것이라면 학생과 교수 및 지역사회의 의견을 중심에 놓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대학의 구조개선을 통한 교육력 강화는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소위‘대학구조조정정책’이 기초학문분야와 지방대학의 퇴출을 통한 대입정원 감축에만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되며, 이 기회에 한국의 고등교육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 다. <표 4>은 앞의 논의를 축약한 것이다. 첫째, 정책목표가 ‘대학의 경쟁력과 교육성취도의 강화’에 있지만, 현재의 방식은 기초학문분야 몰락을 통해 오히려 학문기반을 약화시키고 지방 경제・사회・문화의 구심점인 지방대 몰락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초학문분야 지원책이 절실하고, 특혜에 기반한 지원이 아니라 재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대학 육성법이 속히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사원 채용시 전공분야별 차별을 없애서 학문이 고루 발전할 수 있게 협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교육의 질 개선’ 목표는 오히려 교육비 상승을 가져와 등록금 인상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가지표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통한 대학운영비 지원을 통해 교육비 상승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만큼 수익률이 높은 공적투자분야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셋째, ‘부정비리재단의 복귀’는 사학비리의 창궐을 가져와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권침해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비리재단 복귀를 주도한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해체하고, 이 기능을 다시 교육부로 이관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부정비리대학은 정부책임사립대학으로 전환하여 일종의 공영대학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다. 넷째, 대학입학 정원을 적정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립대학의 모집정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다. 이를 모든 대학에 대해 공평하게 적용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법률로 규정하면 된다. 모든 사립대학이 (2013년 기준으로) 매년 2-3%씩 감축해 나가면 된다. 뒷사람을 처지게 하여 이를 공격하는 것이 곰의 전략이라면, 곰은 경쟁대신 협력으로 전략을 바꾼 사람들의 집단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의 구조조정정책은 현명한 전략이 되지 못한다. 당사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공존의 방식을 찾는 것이 좋다. 신자유주의 고등교육정책과 이를 이용한 대학 내의 상업주의 만연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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