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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과 통폐합 및 구조조정의 방향--윤지관(덕성여대 영문학과 교수)

교육, 도서 정보/교육혁신 자치의 길

by 소나무맨 2013. 8. 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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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과 통폐합 및 구조조정의 방향

윤지관(덕성여대 영문학과 교수)  |  webmaster@selfg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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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4  11: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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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대학교육의 이념과 상충하는 평가기준


- 취업률 지표는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로 추진된 구조조정 혹은 구조개혁은 90년대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되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진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김영삼 정부가 5.31 교육개혁조치를 통해서 대학의 ‘경쟁력’을 의제화했다면. 국민의 정부는 BK21 사업이라는 대규모 재정지원을 조건으로 학부정원 감축, 학과 통폐합 등을 유도하였고, 참여정부에서는 더욱 본격적으로 대학구조 개혁에 나서 유사학과 통폐합과 특성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조치는 사학의 설립기준을 대폭 완화한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하여 사학이 난립하게 함으로써 작금의 고통스런 대학 구조조정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대학정책도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경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 몇몇 국립대의 정원축소와 통합을 이루었을 뿐 사립대학의 팽창이 장래에 야기할 문제적 국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참여정부는 사립학교법 개혁을 추구하여 족벌화된 사학지배구조를 민주화할 발판을 만들었으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발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행 사립학교법으로 후퇴하였다.

그러나 대학이 현재와 같은 총체적인 위기국면에 도달하게 된 것은 지난 이명박 정부의 무절제한 신자유주의적 정책방향이 초래한 재앙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는 대학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과도하게 늘어난 대학정원을 축소시키고 대학교육의 질적인 발전을 기해나갈 토대를 닦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학정책은 두 가지 최악의 방향을 밀어붙여 대학교육의 심각한 혼란과 왜곡을 초래하였다. 하나는 부실사학들의 퇴출 시나리오에 따라 모든 대학을 성과지표를 매개로 한 상호경쟁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 비리와 전횡으로 대학교육을 황폐화시킨 끝에 퇴출된 구재단을 정상화의 이름으로 대학에 복귀시킨 것이다. 인구 감소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대학 구조조정의 과정은 이 두 가지 정책적 과오 때문에 악몽이 되었고 대학현장을 거의 망가뜨려 놓았다.

수년전부터 진행되어오다 작년 후반기부터 올해 들어 수십 개 대학에서 학과 통폐합 문제가 한꺼번에 돌출한 것은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정상적인 구조조정 과정이 아니라 바로 이명박 정부의 마구잡이 식 퇴출정책 탓이다. 전체 대학에 성과지표에 따른 순위를 매겨서 하위 15프로를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지정하게 되고, 이것이 퇴출을 위한 첫 단계가 된다. 이미 43개 대학이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지정되었고 연속 지정되는 경우 경영컨설팅을 거치게 하고 결국 퇴출대상으로 지목되기 때문에, 대학들이 성과지표를 높이기에 사력을 다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대학의 체제를 개편하고 교육의 질을 제고하려는 방향이 아니라 상호경쟁을 통해서 희생자가 가려지는 생존게임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 자체가 큰 문제이지만, 그 기준에도 그야말로 대학 교육을 왜곡시키는 암적인 지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취업률이다. 취업률의 반영비율이 20프로에 달하고 요건에 미달하면 바로 대상대학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학마다 취업률 올리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삼아, 단순히 취업독려 차원을 넘어서 갖가지 편법들을 동원할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대학교육의 내용, 정책, 개혁방향 등 거의 모든 것을 취업률이라는 지상명제에 종속시킨다. 여론이 악화되자 4년제 대학의 경우 반영률을 15프로로 5프로 줄인다지만, 무리한 학과 통폐합이 속출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취업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고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동안, 대학은 말하자면 그 본령이 훼손된 채 취업률을 섬기는 물신(物神)의 장소가 되었다.

최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평가방식에 대한 개선책을 8월 중으로 내놓겠다는 전제 아래, 최소한 예술 인문학 분야 성과에서 취업률 지표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없앨 예정이라고 했다. 이같은 방향은 교육부 수장으로서 지금까지의 중요지표였고 대학교육을 혼란시키던 취업률이라는 물신을 부정한 최초의 발언으로 주목된다. 실상 최근의 대학들의 학과 통폐합 과정에서 소위 ‘돈 안 되고 취업 안 되는’ 학과로 낙인찍힌 철학과 국문과 회화과 등 인문 및 예술학과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이 방향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취업이 대학진학의 지상목표가 아니기로는 비단 인문학과 예술뿐이겠는가? 순수학문이라고 할 자연과학도 그런 대상이고, 응용학문 영역의 공학 경영학 등도 상대적으로 기술습득과 취업에 더 유관하다 뿐이지 나름대로의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인문학과 예술도 정신만이 아니라 기술의 차원과도 결합되어 있고 그것을 통한 취업도 중요한 목적이다. 따라서 인문학과 예술은 취업과 무관하고 여타의 학과들은 취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지나친 이분법적 발상이다. 또한 일반대학의 교육이 취업자체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는다면 전문대와의 차별성도 없어지거니와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게 되고, 전문대는 전문대대로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실제로 대학의 경쟁력을 국제적으로 평가하는 중요한 기관들에서 취업률이라는 지표를 사용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이것은 또다른 중요지표인 입학생 충원률도 마찬가지다. 서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진행하던 구조조정 자체는 강도 있게 추진하겠다고 하는데, 앞으로 내놓을 신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안을 보아야 하겠지만, 최소한 취업률 지표만큼은 완전히 철폐하는 것이 지난 정부의 과오를 바로잡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II. 대학 구조조정의 방향
-경쟁 통한 퇴출방식을 지양하고 교육현장을 살리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소위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와 함께 국제적 경쟁력을 키우자는 국가적 사회적 필요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조직이든 경영을 위한 새로운 혁신은 늘 요구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혁신의 과정에서 경영합리화와 효율성이 강조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대학은 기업과는 달리 교육기관이고 그 본래의 기능인 연구와 교육의 내실화라는 기본 요건이 있다. 전자의 명분으로 후자를 훼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인데, 실상 지금까지의 정부주도의 대학 구조조정이 이같은 경영 효율성 논리를 앞세우고 대학들이 여기에 부응해온 탓에 대학 구조조정의 최종목표인 교육의 질의 향상을 오히려 저해하는 악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런 국면에서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수 혹은 대학정원의 3분 의 1까지의 축소가 불가피한 물리적인 시한이 정해진 시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지난 정부가 진행한 대학 구조조정 사업은 교육의 질 개선이라는 원래의 목적보다 이 시한폭탄 앞에서 대학들을 경쟁의 질곡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지난 3월 28일 국정과제 현안보고에서 교육부는 대학평가제도를 개선할 계획을 이미 밝힌 바 있고 “정량지표 외에도 교육의 질을 반영”하고 “설립목적 유형 지역 등 개별대학의 특성을 고려”하겠다고 한 바 있다. 취업률 지표에 대한 장관의 최근 언급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의 일정한 전환이 기대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과잉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조금 수정 내지 개선하는 것으로 풀리지 않는 것이 현재의 대학현실이다. 지금까지 시행되어 왔고 적어도 올해에는 그대로 시행될 예정인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그것이 어떤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지 간략하게 제시해보겠다.

현재 대학구조조정 정책의 문제점은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과다한 대학정원과 대학수의 조정을 대학들 간의 상호경쟁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 다. 대학들이 퇴출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건 지표경쟁에 매달리게 되면서 구성원들은 고통스럽고 대학교육은 왜곡된다. 특히 한국의 대학들은 서울 소재 일류대학, 기타 서울 소재 대학, 수도권 대학, 지방 국립대학, 지방 사립대학으로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어서 지방대학은 지표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지방대학들의 수도권 진출 시도 등이 이어지는 원인이다.

둘째, 대학의 자발적 구조개혁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억압적인 조정요구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지원을 매개로 획일적인 평가기준을 강요하고, 그에 따른 재정지원제한을 가하기 때문에 이 생존을 위한 요구 앞에 대학의 정상적인 운영과 원칙은 무너지게 된다. 교수와 학생의 정당한 교육권 및 수업권의 요구는 무시되고 이 구조조정의 필연성을 내세운 강압으로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통한 정상적인 개혁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셋째,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여 각 대학들은 기업경영식 효율중심의 구조조정을 진행함으로써 교육현장을 왜곡시킨다. 기업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대학의 목적은 교육과 연구 그 자체의 충실성이다. 대학도 기업의 속성을 일부 가지지만, 취업률 지표와 연관된 취업 위주의 교과편성이나 학과 통폐합 및 신설이 속출하는 것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학들이 무비판적으로 부응한 결과다. 이 때문에 고액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권리는 침해되고 실적에 목을 매야 하는 교수들의 학문기반도 침식당한다.

넷째, 구조조정의 주요 대상이 한국 대학의 80프로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인데, 현재 사립대학들의 지배구조는 소유권 논리를 앞세운 족벌체제가 공고해져 있다. 특히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중규모의 사립대나 군소대학들 가운데는 족벌지배체제로 운영되는 곳이 많고, 무엇보다 지난 정부에서 비리 족벌재단들을 대거 복귀시켜 사학족벌의 지배력은 더 강화되어 있다. 이 같은 비민주적 족벌체제 하에서 구조조정의 과정이 왜곡될 위험은 더욱 크다. 한국의 대학을 개혁하려면 이 같은 족벌체제를 혁파하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의 구조조정 정책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전무하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구조조정 정책에는 대학의 장래에 대한 긴 안목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한국 대학의 구조적 문제는 사학의 지나친 팽창 및 족벌체제의 지속으로 대학교육의 공교육적 성격이 크게 위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초창기에는 국공립에 대한 정원축소 및 학과 통폐합을 추구해온 결과 사립대학은 팽창하는 데 반해 국공립 정원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행현상을 보여왔다. 물론 현재는 부실사립대학들의 퇴출이 직접적인 목표가 되었지만, 이것은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장기전망도 교육이념도 부재한 ‘영혼’없는 것임을 방증한다.

이 같은 문제점들이 단순히 약간씩의 개선이나 보완을 통해 시정될 성격의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대학 간 경쟁을 위주로 대학을 정리한다거나 획일적 기준에 근거한 위로부터의 억압적 구조조정으로는 대학교육의 현장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대학평가와 구조조정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다. 대학 구조조정의 올바른 방향은 이미 문제점을 지적하는 가운데 드러났지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교육현장을 억압할 것이 아니라 살리는 방향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하며, 학과 통폐합, 교과과정개편 등 대학의 근간에 관련된 영역에서는 구성원들과의 충분한 소통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민주적인 논의절차가 각 대학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2) 대학의 구조조정은 상호간의 지표경쟁이 아니라 교육내용의 질적인 충실성을 진작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취업이나 실용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방식은 대학 교육에서 길러질 수 있는 건전한 판단력과 사고력 그리고 창의성의 개발과는 어긋난다. 대학교육의 이념에 충실한 방식의 구조조정이 되어야 한다.

3) 취업률을 비롯한 획일적인 평가기준은 철폐되어야 하며 대학들의 특성에 따른 질 평가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일반대의 경우 연구중심과 교육중심의 특성이 고려되어야 하고, 일반대와 전문대의 특성도 더 고려되어야 한다.

4) 대학의 장래와 구성원들의 교육과 연구의 현장이 대부분 비민주적인 족벌사학의 지배구조가 온존하고 있는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학지배구조를 선진화할 수 있는 요건을 반드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III. 장기적인 전망과 대안
-대학구조조정은 대학체제 재편으로 이어져야 한다

현재의 대학구조조정 국면은 경쟁을 통한 퇴출방식이 중심이기 때문에 그것이 대학들로서의 생존의 위기이자 그것을 명분으로 대학이념을 훼손하는 일방적인 조치들이 함부로 취해질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더 오래 지속되면 대학교육의 본령이 무너지고 대학현장도 구성원들의 생존투쟁과 분쟁으로 혼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로서 고등교육이 제 기능을 못하고 이처럼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져든다는 것은 엄청난 국익의 손실이기 때문에 어떤 정부든 대학구조조정의 명분으로 대학교육 자체의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편향 때문에 이미 심각한 훼손을 입은 대학현장을 더 이상 방치한다면 이는 현 정부의 큰 실정이 될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가 필연적으로 야기하게 된 대학의 구조조정은 대학 및 교육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달리보면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병폐와 왜곡된 구조를 쇄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해방 이후 태생에서부터 사학 중심의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이후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도입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 대학교육의 80프로를 차지하게 되었다. 국가의 기능을 대신한 그 기여는 인정되어야겠지만 현재에 이르러 지나친 사학의 비중과 그 족벌성으로 야기된 폐해는 한국대학이 선진화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대폭적이고 필연적인 구조조정이 목전에 다가왔기 때문에 공립 대 사립의 비율이 2대 8인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한국 고등교육의 왜곡된 구조를 적어도 5대 5 (민주당 대선공약) 혹은 그 이상으로 정상화할 수 있는 계기가 열린 것이다. 이같은 고등교육 체제의 개편이야말로 대학 구조조정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 개편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고질적인 사학비리나 부패가 종식될 토대가 갖추어지고, 대학교육이 공교육이 중심이 되는 선진국 형 고등교육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사학세력이 막강한 기득권을 행사해온 현실에서 과연 이 같은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과거 참여정부 당시 사학의 족벌지배를 완화하고 민주적인 거버넌스를 도입하려는 정부여당의 시도에 맞서 사학수호 세력이 총결집하여 이를 막는 바람에 개혁 사립학교법이 제대로 시행도 되기 전에 재개정되었던 일도 생생하고, 그 중심에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있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다른 점이 많다. 당시에는 사학들의 팽배와 높은 등록률 및 고액등록금으로 사학들의 기반이 견고했다면, 지금은 많은 사학들이 풍전등화와 같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면서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학 지배세력들의 저항력은 과거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고, 일차적인 정리대상인 부실사학이나 한계사학들도 퇴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공립과의 통합 내지 공영화를 통해서 대학이 오히려 정상화될 계기가 열리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사학족벌의 지배구조를 그대로 둔 채 개혁을 운운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문제는 현 정부가 대학교육을 선진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과연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현장이 훼손되지 않고 유지될 뿐 아니라 교육의 질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얻는 일이다. 정부는 대학들이 교원의 신분보장과 학생의 수업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이를 뒷받침해야 하며, 그런 가운데 학과의 통폐합 및 대학들 간의 연합 내지 통합, 지방 한계사학들의 지방 거점 국립대에의 편입 내지 공영대학으로의 변화 등을 추구하면 학생정원이 줄어드는 대신 교원의 수는 전체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대학교육의 질적 평가에 결정적인 지표 가운데 하나인 전임교수 확보율이 지금의 기준인 60프로보다 획기적으로 상승하게 되고 법으로 규정된 100프로에 근접하게 된다. 물론 서울 지역 대규모 사학들은 규모를 줄이는 것에 미온적일 가능성이 크고, 지방의 경우에도 여건에 따라 통폐합과정에 어려움이 돌출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학령인구의 3분의 1 감소라는 절체절명의 상황 때문에 교과부가 이니시어티브를 쥐고 있는 드문 여건인 점을 감안할 때, 현 정부가 이 절호의 기회를 활용할 의지만 있으면 정책적 변화를 통해 구조개편이 가능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체제개편의 큰 그림에 따라 4년제 일반대는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으로 대별하고 대부분 연구중심인 서울의 대형대학들이 학부정원 감축에 협조케 함으로써 구조조정이 지방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지방거점대학을 육성할 기반이 생긴다. 일반대학들의 취업중심 방향이 약화되면 전문대학의 입지도 더 굳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일률적인 평가기준의 개선과 취업률과 학생충원률 중심의 마구잡이식 퇴출이 아닌, 대학교육의 현장을 살려가고 대학교육의 이념을 실현해나가는 방향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이 정부 5년은 대학 고등교육의 획기적인 진전을 이룩한 기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난 정부처럼 고등교육체제에 대한 근본적 전환의 전망이 없이 시장에서의 도태 방식으로 구조조정 정책을 계속해나간다면, 대학이념이 근본적으로 훼손될뿐더러 대학들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이 구조조정은 학생들의 학습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와 교수들의 권리와 생존권을 위협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의 많은 부실사학 내지 군소사학들에서 비민주적인 족벌체제가 들어서서 학내불만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진행될수록 대학들에서 분규가 폭발한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10여년 전 각 대학들에서 일어났던 전국적인 분규사태 이상의 큰 고통과 사회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이 대학구조조정 문제가 안고 있는 폭발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지난 정부의 방침을 손질하는 방식의 미봉책에 머물지 않는 정책전환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 고등교육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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