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젊은이여, 인생의 9가지 화두를 고민하라! | |
한승동 기자 | |
강상중 지음·이경덕 옮김/사계절·9500원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재일동포로서는 처음으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강상중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밀리언셀러 <고민하는 힘>(슈에이샤)에는 서울대 방문 체험담이 실려 있다. 그가 목격한 것은 이른바 엘리트 학생들이 기술과 전문지식을 익히고 유용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놀 시간도 없이 “미국화된 프로그램을 필사적으로 소화시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토익 900점을 넘지 않으면 취직하기 힘들다”며 공부에 열중하는 그들을 보며 그는 위화감에 사로잡혔고 “너무 나이가 많아서”라는 20대의 얘기를 듣고는 자신의 청춘기와 너무나 달라 깜짝 놀란다. 강 교수는 그런 학창시절을 보내면 일류기업에 취직하고 많은 월급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결과 “정기가 모두 빠져나간 바싹 마른 늙은 몸만 품고 살아야 할” 불행과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살다가 10년 뒤 자기 삶을 돌아보면 거기에는 삭막함만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유독 서울대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강 교수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서울대, 너마저!’에 가깝다. 강 교수가 흐린 납색 빛깔로 그리는 일본 사회는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가혹한 경쟁 시스템, 점점 얇아지고 약해지는 사회 안전망,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격심한 차이로 만신창이가 된, 젊은이들이 견뎌내기에는 너무나 혹독한 곳이다. 그 속에서 그가 본 것은 “타인과 깊지 않은 무난한 관계를 맺고, 가능한 한 위험을 피하려고 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별로 휘말리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구애되지 않으려고 행동하는 그런 ‘요령이 뛰어난’ 젊음”이었고 “정념과 같은 것은 사전에서 잘라낸, 또는 처음부터 탈색되어 있는 청춘”들이었다. 강 교수는 그런 바싹 마른 건조한 청춘들이 얼핏 원숙한 듯 보이지만 “진짜로 원숙한 것이 아니라 바닥이 얕은 원숙함, 곧 원숙한 기운만 풍기는” ‘표층적 원숙’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것을 ‘발기불능’에 비유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들에겐 당장의 자기방어책이 절실하겠지만 설사 위기를 모면한다 한들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래 봤자 건조한 청춘들의 발기불능은 치유되지 않으며, “고립과 시기심이 가득하고 꿈과 희망은 위축되고 있는” 지금 일본의 난관을 돌파할 파괴력은 나오지 않는다. 한국 상황 역시 별로 다를 바 없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자아·돈·앎·청춘·사랑·구원 등 주제 다뤄 일본·미국 닮아가는 삭막한 한국에 깜짝 “토익·전문지식이 인생 해답인지 되묻길” 강 교수가 눈을 돌린 곳은 “때로 스스로를 말살시키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던” 자신의 우울했던 청춘시대에 길잡이가 되어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다. 소외당한 규슈 재일동포 고물상 아들이었던 그는 17살 사춘기 때 디아스포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22살 때 정면돌파를 위해 찾은 조국에서 그는 문득 “내가 인생에 대해 묻는다기보다는 인생이 내게 묻고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체험한 뒤 그때까지 쓰고 있던 일본 이름을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자아의 질곡’에서 해방된 것도 아니고 인생의 해답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해답이 없더라도 내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해답”을 찾았다. 그때 20세기 최고의 사회학자 베버에게 푹 빠졌고 “대학시절 내내 난해한 그의 저작과 격투를 벌였다.” 베버를 통해 그는 또 어릴 때부터 읽었던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소세키의 작품들을 새롭게 발견했다. 소세키의 <그 후>에 나오는 주인공 다이스케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그가 느꼈던 베버는 “험난한 세계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발버둥치면서 필사적으로 묻고 있었다.” 베버(1864~1920)와 소세키(1867~1916)는 인생길 해답이 자동적으로 주어져 있던 전통사회가 붕괴하고 자아 해방 및 자유 확대,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고립과 소외, 의미상실, 빈부·계급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한 근대의 ‘세기말’을 살며 ‘실존적 공허’를 뼈저리게 앓았다. 100여년의 세월을 거쳐 지금 우리는 제국주의 대신 ‘글로벌 머니’가 종횡무진 배회하는 신자유주의의 폭주 속에 근대의 파산, 또 한 번의 세기말을 맞고 있다. 강 교수는 1세기의 간격을 둔 베버·소세키의 시대와 지금의 발기불능 청춘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고민은 양태와 진폭이 좀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그는 베버와 소세키가 지금의 발기불능 청춘들과는 달리 ‘인간적으로 산다는 게 무언가’ 하는 근본적 문제와 진지하게, 끝까지, 정신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신경쇠약과 위궤양에 시달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고민하며 맞붙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 진지성이 그들의 위대성이었다. 1950년생인 강 교수는 베버와 소세키, 그리고 지금의 청춘들의 중간 세대로서, 그들이 겪었고 겪고 있는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세기말들의 체험을 전달하는 중개자·해설자로 자신의 위상을 설정하고, 베버와 소세키 못지않게 처절하고 진지했던 자신의 인생체험을 곁들여 제대로 사는 게 무엇인지를 얘기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청춘에는 젊은이만이 아니라 ‘최강의 노인’ ‘교란하는 새로운 문화창조자’를 꿈꾸는 ‘젊은’ 노년층도 포함된다. 그가 제시하는 핵심어들 중 하나는 베버를 사숙했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의 말이다. “‘자기의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 자아라는 것 자체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는 것인 만큼 타자를 배제하는 ‘자기중심’은 파멸로 가는 길이며, 서로 배려하고 인정받는 사회 관계 속에 출구가 있다는 얘기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타자와 마주하는 것이 곧 살아가는 힘이요 돌파구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돈이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건 무엇인가,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으면 구원받을까, 무엇을 위해 일하나,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왜 죽어선 안 되는 걸까, 늙어서 최강이 되라. 이 아홉 가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베버와 소세키 얘기로 풀어가는 그의 인생강의는 결코 무겁지 않다. 오히려 경쾌하고 발랄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사계절 출판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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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얻은 힘이 강하다!
『고민하는 힘』. 저자는 엄밀하고 탄탄한 학문적 작업과 사회적인 발언으로 일본 사회과학계와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는 비판적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다. 이 책은 그가 예리한 학자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이자 조언자로서 삶에 대해 이야기한 최초의 책이다.
경제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난해 이후, 고용 불안과 취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더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내몰리고 있고, 그로 인한 고민과 시름은 깊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쏟아져 나오는 책들은 더 극심해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강조하거나, 감성을 자극해 심리적 위안을 주는 데 치중하고 있다.
이 두 가지 탈출구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고, ‘고민의 힘’이 살아가는 힘이라고 말한다. 일본 독자들은 진지하고 치열한 고민이야말로 이 어려운 시대를 잘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이 책의 메시지에 뜨겁게 호응하고 있다. 일본보다 경제적?사회적 시스템이 훨씬 열악한데다 진지한 성찰보다는 속도전에 휩쓸리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이 책은 고민하는 삶의 가치를 일깨워줄 것이다.
저자소개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서 폐품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재일교포 1세이다. 일본 이름을 쓰며 일본 학교를 다녔던 그는 차별을 겪으면서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고, “나는 해방되었다”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이후 일본 이름 ‘나가노 데츠오(永野鐵男)’를 버리고 본명을 쓰기 시작했고, 한국 사회의 문제와 재일 한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다.
재일 한국인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아 대학원에서 유예기간을 갖던 중 은사의 권고로 독일 뉘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독일에서 그는 베버와 푸코, 사이드를 통해 ‘재일(在日)’이라는 자기규정과 문제의식이 근대화와 서구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보다 보편적인 컨텍스트로 이해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1998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 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일본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일본 지식인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냉정한 분석과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 때문에 강연회를 할 때마다 극우파의 공격에 대비해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도쿄 대학 정보학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재일 강상중』,『내셔널리즘』, 『세계화의 원근법』, 『20세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두 개의 전후와 일본』,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등이 있다.
옮긴이 이경덕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현재 저술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 기행』 등을 썼고,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공역),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주술의 사상』, 『욕망의 연금술사, 뇌』 등을 옮겼다.
목차
1장 나는 누구인가?
2장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3장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4장 청춘은 아름다운가?
5장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6장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7장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8장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9장 늙어서 '최강'이 되라
출판사서평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인간이 현대 사회에 들어와 그 관계를 잃어버리고 저마다의 성(城)에 갇혀 병들어가고 있다. 저자는 100년 전 이미 이런 세상을 예견했던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말을 빌려, ‘고민하는 힘’으로 삶의 의미를 되찾아보자고 독자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는 순간 우리는 따듯한 타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으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 삶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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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인간이 현대 사회에 들어와 그 관계를 잃어버리고 저마다의 성(城)에 갇혀 병들어가고 있다. 저자는 100년 전 이미 이런 세상을 예견했던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말을 빌려, ‘고민하는 힘’으로 삶의 의미를 되찾아보자고 독자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는 순간 우리는 따듯한 타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으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 삶이 그렇게 무의미하거나 외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