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8) 상암동 DMC
우석훈 |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경제학 박사
ㆍ종편, ‘돈월드’로 갈 것인가 ‘경제 휴머니즘’으로 갈 것인가
“수백만 시청자들이 조국과 기업의 미래가 달린 주제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얻게 된다는 것 외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중략) 그들이 옳다면 TV는 바보상자가 되어 세상과 격리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겠죠. TV는 지식을 전합니다. 깨달음도, 영감도 선사합니다. 하나 그것은 최소한의 참고용으로 쓰일 때만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TV는 반짝이는 바보상자에 불과합니다. 좋은 밤 되시고 행운이 있으시길 바랍니다(Good night and good luck).”
■ 사업적 문턱 넘어서서 일단 순항
방송 프로듀서 닉 클루니의 아들이자 영화배우인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함께 프로듀서의 배역을 맡았던 영화 <굿나잇 앤 굿럭>은 미국의 전설적 방송인 에드워드 머로와 그의 동료들 얘기이다. 그들이 활동하던 당시 미국은 “너는 공산주의자야”라는 말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피해를 입던 때였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포드 회사의 컨베이어 벨트를 풍자했던 찰리 채플린이 대표적인 피해자다. 할리우드에서 수백명의 배우와 감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매카시즘 광풍이다. 이 미친 짓을 멈추게 한 것이 1954년 3월9일 방영된, 머로가 진행했던 CBS의 <그것을 직시하라(See It Now)>라는 뉴스쇼였다.
대선이 끝난 한국 자본주의는 매카시즘 광풍에 맞섰던 에드워드 머로의 CBS 뉴스쇼와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는 종북이다”를 넘어, 5·18 북한군 침투설을 흘리면서 과거에 대한 소위 ‘해석투쟁’에 매진하는 TV들이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것을 직시하라’는 얘기를 한 사람은 공익을 제1의 가치로 삼는 공영방송들이 아니라 구국의 일념(!)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한 노기자, 바로 조갑제였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살아있네, 살아있어.”
지난해 말 대선 이후 종편의 시청률은 많이 올라갔고, 사회적 영향력도 높아졌다. 종편은 채널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갑질’의 제작 시스템과 고연령대 위주의 시청자층, 자본 잠식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종편의 정치적 입장은 정해진 듯하지만, 경제적 입장은 유동적으로 보인다. 사진은 최근 준공된 상암동 JTBC 사옥.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한국의 대표적 보수신문들이 아직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이름이 특수한 TV 방송국에 대한 논의를 하기 전, 우연히 일본 아사히신문 본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쪽 관계자에게 신문 경영 상태를 물었더니, “신문 쪽은 그런 대로 흑자인데, 방송 쪽 적자 폭이 커져서 언젠가 한번은 구조조정 같은 걸 해야 한다”며 표정이 어두워지던 걸 본 기억이 있다. 내가 아사히TV에 대해서 알고 있는 기본 경영구조이다. 바로 이 아사히TV가 종편의 원형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하는 말, 딱 그대로이다. 일본의 대표적 정론지인 아사히신문은 일본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다. 일본식 비유를 더 들자면, 한국에서 극우보수지로 주로 거론하는 산케이신문이 TV를 설립한 경우가 우리의 종편 채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선을 경계로 종편은 시청률이 많이 올라갔고, 사회적 영향력도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케이블 채널들이 초기 출발 후에 최소한의 성과를 내는 데에 4~5년이 걸린다는 전례를 감안할 때, 종편 출범은 대성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사업이라는 눈으로만 보면, 초기 출발의 문턱(thresh-hold)은 이미 넘어섰다. 그래도 그 안에서는 자신들을 어떻게 볼까. 그게 참을 수 없이 궁금해서 노트와 펜을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주로 방송작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광화문 인근에서 주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대부분의 인터뷰는 앞으로 MBC 등 공중파는 물론이고 CJ 등 주요 케이블 그리고 종편들이 모이게 될 상암동 DMC 근처 그리고 여의도 KBS 본사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외주사 등 제작사들이 이 근처에 많이 모여 있고, 방송 관계자들이 주로 움직이는 곳도 이 근처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을 종합하면 ‘종편의 잠재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채널마다 약간씩 특성이 달라 획일적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좀 더 잘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못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봄가을에 정기 개편을 하는 공중파의 경우는 프로그램 기획이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기획 기간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시청률이 떨어졌다고 바로 프로그램을 폐지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종편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기획 기간이 짧고, 시청률에 대한 반응도 훨씬 더 즉각적이다. MBC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방송 중의 하나로 <무한도전>을 거론할 수 있는데, 이 방송의 파일럿 버전이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 시절에는 파일럿이 지금과 같이 성공할 것이라고 본인들은 물론, 심지어 음향 파트 쪽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의 종편 분위기에서는 이런 방송이 나오기가, 당분간은 쉽지 않아 보인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획기간과 적은 제작비는 소위 ‘갑질’이라고 부르는 갑의 횡포가 만들어지기 딱 좋은 구조이다. 기획은 을이 하는 것이고, 갑은 앉아서 지시만 하는 구조. 그게 아직 채 자리잡지 않은 종편의 제작 시스템에 대해 많은 작가들이 지적한 것이다. 여기에 3~4편 정도를 ‘시즌’으로 묶어서 계약하는 기상천외의 계약 방식도 종편의 등장과 함께 새로 생겨났다고 한다. 재방송 비용 미지급 같은 크고 작은 불만들이 많았는데, 이런 얘기들을 뒤집으면 ‘잠재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점차적으로 시청률이 높아지고, 광고 수주액 증가 등 매출액이 늘어나고, 방송 운영의 노하우가 늘어나면서 지금의 종편이 보여주는 제작 과정의 어수선함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BAU(Business-As-Usual), 즉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고 그냥 사업의 눈으로 본다면, 초기 출범기의 거대한 리스크의 상당 부분을 종편들은 일부 해소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 경제적 입장은 유동적, 프로그램 실험 주목
사업의 안정성으로만 본다면 본궤도에 오른 것은 MBN이다. 일단 시청률이 안정적이고, 방송 품질 역시 안정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하던 방송이 종편 채널만 변경된 것 아닌가? 작가들이 지적한 것을 종합하면 TV조선은 아직 초기 출발의 장벽을 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데스크의 방송 개입이 너무 많아 제작진이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 단계와는 좀 거리가 멀다. 나머지 종편은 일단 데스크 방침 자체가 제작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실제 제작진도 어느 정도는 그런 약속이 지켜진다고 말하고 있다. 사장 등 간부들이 콩 내라 감 내라 하면 훨씬 더 좋은 방송이 만들어질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나머지 종편들 출범 초기보다는 훨씬 더 방송의 모습에 가까워졌는데, TV조선은 아직 방송 고유의 패턴에 익숙해지지 못한 듯싶다. 여기에 조선일보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자 단점인 ‘고유 브랜드’ 특성이 사소한 문제를 일으킨다. “조선일보가 하면 다르다!” 물론 다르기는 한데, 다르기 때문에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지나칠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생긴다는 게 문제다. TV조선 작가들이 출연진을 섭외할 때 채널 이름을 먼저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좀 충격적이었다. 조·중·동이라고 하면서도 그중에 제일은 조선이라, 그랬던 신문의 특성이 TV 체계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더 강화된 느낌이다. 조선일보에 글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TV조선에 출연하는 것은 정말로 큰 결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건 사업이라는 눈으로만 볼 때 결코 작지 않은 리스크이다.
4개 방송 모두 시청자 주연령층이 50~60대로 고연령층에 잡히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약점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강점이다. 주소비계층인 30~40대가 광고주의 타깃 고객이다. 그렇기 때문에 MBN, JTBC는 시청자 연령층을 낮추는 것을 주전략 중의 하나로 잡고 있다. 경제적인 이 약점이 높은 투표율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으로는 강점이 된다. 어쨌든 종편은 확실하게 표를 쥐고 있다.
공사 중인 채널A 사옥 | 김정근 기자
종편을 재심사할 때 2개 채널은 취소될 수도 있다는 말이 여의도 일대에 파다하게 떠돌았던 적이 있는데, MBN이 종편 시청률 1위를 계속 달리는 지금 이 시나리오가 실제로 실현되기는 불가능하다. MBN을 탈락시킬 수는 없으니까 장기적으로는 어떤 채널도 취소되는 일 없이 현재의 구조가 계속 간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방송 관련 정책이 언제 타당성 평가나 객관적 기준으로 이루어진 적이 있는가?
상황은 대체적으로 이해가 갔는데, 남은 질문은 야당 특히 민주당의 몫일 수밖에 없다. 논리적으로 고사작전, 무시작전 혹은 활용작전, 이 세 가지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외면해 고사시킨다, 이게 지금까지의 시민단체나 야당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방송이라는 특수상품의 특성을 고려하고, 여기에 지금까지의 종편 성적을 추가하면 고사나 파산은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대선에 이기고, 진보 버전 국보위의 허문도가 등장하는 게 유일한 방편이다. 그러나 허문도 같은 역사적 기인이 또 등장하겠는가, 그것도 민주당 쪽에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듯싶다. 고사하기에는 너무 많이 나갔다. 특히 종편의 일부 프로그램은 공중파의 시청률을 이미 넘어섰다. 포맷상으로, ‘떼토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집단토크쇼는 오히려 공중파에서 역수입되는 양상이다. 수년 전 혁신이라고는 벌어지지 않은 KBS와 MBC가 앞으로도 수년간 종편만큼 혹은 그 이상 포맷 실험을 할 가능성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종편 고사라는 일은 불가능하다. TV조선 정도가 과연 자본잠식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 또 다른 갱생의 기회를 가질 것인가, 그런 질문 앞에 설 테지만, 조선일보가 망하는 일이 벌어지겠는가?
남은 선택은 무시와 활용, 두 가지밖에 없다. 일견 달라 보이지만 사실 이 두 개는 마찬가지다. 시청률이 안 나오면 무시, 시청률이 공중파 이상으로 높아지면 활용, 결국 힘의 논리에 불과한 것 아닌가? 어느 쪽이든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선택하든, 아니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든, 종편 시청률이 올라가는 데에는 별 상관이 없다. 이미 경제적인 최초 분기점은 넘어선 상태에서, 민주당이 정책적으로 내릴 수 있는 선택은 거의 없다.
■ 굿나잇 앤 굿럭, 종편!
경제와 관련해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한국 자본주의와 종편, 과연 어떠한 관계를 가질 것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따뜻한 성장, 자본주의 4.0, 이름만 다르지 핵심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런 몇 가지 개념들에 가까운 방향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움직여나가려고 하는 게 최근의 경향이다. 낙수효과를 얘기하던 IMF 경제위기 이후의 경제 담론과는 분명히 다른 방향으로 경제 여론이 움직여나가고 있고, 보수주의자들도 분명히 그러한 논의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종편이 한국 자본주의의 진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울트라 보수’의 입장에서 대기업 중심주의의 기존 경제 담론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따뜻한 성장’을 내건 상업방송 SBS 수준의 자본주의 조정을 얘기할 것인가? 나는 이게 종편의 ‘경제적 공익’이라고 보고 싶다. 대기업 중심의 ‘갑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담론만을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전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입장을 정리할 것인가?
채널A에 경제 방송이 하나 있다. <웰컴 투 돈월드>라는 방송이 그것이다. 시청률이 잘 나오기는 한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에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면서 재테크가 경제담론의 전부처럼 행세하던 시절에 유행한 재테크 방송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악랄한 재테크 방송이었던 <경제 비타민>의 종편 버전인 셈이다. 시대가 바뀌긴 했는데, 방송 내용은 그대로이고, 포맷만 바꾸었다. 이게 종편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경제 방송의 전부인지, 아니면 또 다른 내용의 방송이 준비되고 있는지, 최소한 경제라는 관점에서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돈월드’로 갈 것인가, ‘경제 휴머니즘’으로 갈 것인가, 종편에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종편의 정치적인 입장은 이미 정해진 듯싶지만, 경제적인 입장은 아직은 좀 유동적인 것 같다. 내년이면 많은 종편들이 상암동으로 이사를 간다. 그때까지는 종편들이 좋든 싫든, 계속해서 실험을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