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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경제공동체 구상

정치, 정책/미래정책과 정치 전략

by 소나무맨 2013. 5. 2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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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경제공동체 구상- 한반도 평화옵션 2013: 핵위기 전환을 위한 제언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  webmaster@selfg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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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06  12: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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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경제공동체 구상]

한반도 갈등과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위기해소를 위한 비전과 전략 수립을 위한 정치권과 전문가, 시민사회의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5월 1일(수)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사)연구센터 코리아컨센서스와 이인영 의원(민주당)이 공동 주최한 <한반도 위기, 대응과 제안 :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경제공동체 구상>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최근 한반도 상황을 주변강국들의 역학관계와 남북한 정치경제상황 속에서 분석 진단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항구적 노력이 시대적 과제임을 확인하는 한편, 위기 해소를 위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나아가 이번 토론회는 시의적절할 시점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반도 경제 공동체 구상을 연계해서 논의의 영역을 심화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하겠다.


■ 토론회 진행내용

- 제 1회의 : 외교안보분야
   ․ 사회 : 백준기(KCRC 코리아컨센서스 소장)
   ․ 발표 1 “한반도 평화옵션 2013:핵위기 전환을 위한 제언”
               /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 발표 2 “북핵문제와 대미,대중전략”
              / 홍현익(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 토론 : 서보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이남주(성공회대),
             이정철(숭실대),최형익(한신대), 홍익표(국회의원)

- 제 2회의 : 경제분야 
   ․ 사회 : 이남주(성공회대)
   ․ 발표 3 “비핵화와 남북경협 병행가능한가”/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 발표 4 “한반도 경제공동체 구상과 남북한 경제협력방안”/한홍렬(한양대)
   ․ 토론 : 김창수(코리아연구원 정책실장), 배종렬(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
              이영훈(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반도 평화옵션 2013: 핵위기 전환을 위한 제언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1. 들어가며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이다. 위성 발사로 촉발된 국제사회 규범과 북한의 자주권 사이의 대결 양상 격화, 북한과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 및 비핵화에 대한 비타협적 자세,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등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북한의 전쟁 위기 고조 언행, 북한과 미국 사이의 ‘핵 강압 외교’, 개성공단의 폐쇄 위기, 남북한 대화 채널의 완전 단절, 북미간 뉴욕 채널의 유명무실화, 당사국 간의 책임 공방과 전가, 중재자의 부재 등이 맞물리면서 한반도 위기가 구조화․상시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한미 양국의 대결 정책의 상징으로 간주해온 한미합동군사훈련 ‘독수리 훈련’이 4월 30일로 끝나고 5월 7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이 극단적 대결 양상의 ‘출구’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우려되었던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나 4차 핵실험도 구체적인 징후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단 개성공단과 관련해서는 남측 입주기업 대표단의 방북 요구를 북한이 수용할 것인가의 여부, 남측 정부가 개성공단에 대한 송전을 중단할 것인가의 여부가 핵심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대화 재개의 문턱을 낮추면서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나올 지의 여부도 주목된다.

본 글에서는 단기적인 정세 전망보다는 한반도 위기의 본질적인 성격을 규명하고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담는데 주안점을 두려고 한다. 특히 올해가 정전협정 60주년이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해 한반도 핵 위기가 본격화된 지 20년째 되는 해라는 점에 주목해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아우르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를 제언해보고자 한다.


2. 한반도 위기의 진단과 평가

(1) ‘네 가지’ 관성적 이해

한반도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위기의 발생 및 전개 과정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반도 위기를 바라보는 관성 된 이해구조가 여전히 만연하다. 크게 네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우선 북한의 도발이나 벼랑 끝 전술이 있을 때마다, 그 원인을 북한 내부로 돌리려는 시각이 크게 유행해왔다. 특히 최근 북한의 위협적인 언사를 두고 김정은 체제 내부의 불안정과 30세에 불과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젊은 호기를 도발의 원인으로 분석하는 시각들이 많다. 우선 이러한 내인론은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김정은 체제가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2012년 들어 북한의 경제사정도 호전되었다는 사실관계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내인론에 경도될 경우 현 정세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이해는 물론이고 대북정책의 함의와 과제를 추출하기도 어려워진다.

또 한 가지 관성적인 접근은 북한이 도발과 벼랑 끝 전술을 통해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역시 객관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이 지원을 원했다면 대북 지원 중단이나 취소 경고에도 불구하고 로켓 발사나 핵실험을 강행한 이유가 잘 설명이 안 된다. 또한 북한의 유력한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과 관련해서도 고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어진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북한은 핵문제가 “경제적 흥정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곧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대규모의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안보 대 경제’의 교환 방식에서 중국도 언급한 있는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 해소”를 포함한 한반도 안보 문제의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이 있을 때마다 반복되어온 ‘중국 역할론’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만큼, 중국이 강도 높은 대북 제재와 압박에 나서면 북한의 언행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위성)이 ‘자주의 무기’라는 성격도 갖고 잇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북한이 ‘자주권’을 가장 중시하는 한, 중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 동참은 북한의 언행을 순화시키기보다는 더욱 거칠게 만든다. 실제로 북한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규탄 성명이나 제재 결의에 동참할 때마다 핵실험으로 응수해왔다. 더구나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광명성 3-2호 발사에 대해 제재 결의 2087호를 채택하자 북한은 “잘못 되였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바로잡을 용기나 책임감도 없이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겁쟁이들의 비렬한 처사”라며 중국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이렇듯 북중관계가 악화되면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및 중재력이 저하되는 경향이 오히려 더 강하다.

끝으로 ‘북한식 패턴’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한미 양국 내에서는 지난 20년간 북핵 게임을 ‘도발-대화-보상-도발’이 이어지는 ‘북한식 패턴’으로 규정하고는 이러한 패턴에 더 이상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대단히 강하다. 그러나 지난 20년간의 대북협상을 이러한 틀 내에 가둬두는 것은 사실관계에 맞지 않다. 북한도 약속을 위반하고 도발한 경우도 많았지만, 한국과 미국도 북한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켜왔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네 가지 관성적인 접근이 제대로 된 대북정책을 수립하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북한의 도발 원인을 내부적 원인에서 찾으려고 하고, 그 의도는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는 데 있으며, 북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고, 북한의 도발적 언행에 대화로 응수하는 것은 북한의 패턴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인식틀이 바로 그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을 전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과거와 현재의 대북정책에 대한 성찰적 접근을 통한 대안적 정책 수립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중국의 역할 역시 대북 강압 외교보다는 신뢰 프로세스의 중재자로 상정하는 것이 현실적이고도 바람직하다.

(2) 현상유지 VS. 현상타파

오늘날 한반도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성격은 미국의 현상 유지(status qua) 전략과 북한의 현상 타파 전략 사이의 충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위기의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정전체제 하에서 여러 가지유무형의 기득권과 이익을 추구해왔다. 한국도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한국과 미국은 정전체제가 비정상적인 상황임을 크게 느끼지 못해온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스스로를 정전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교차수교를 이루지 못했고, 정전체제 하에서는 안보와 경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인식이 대단히 강하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현상, 즉 정전체제 유지를 선호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통해 주한미군 및 한미동맹의 안정적인 유지와 아시아-태평양의 원활한 개입 토대를 구축하려고 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혹은 재균형(rebalance)을 선언한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이름 하에 대북 무시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북한 위협을 근거로 아태 지역에서의 전략 증강 및 동맹체제 강화에 매진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것을 대외전략의 핵심적인 목표로 내세워왔다. 예전에는 이러한 목표와 비핵화를 교환 가능한 것으로 여겼다가 최근 들어서는 핵의 위력을 앞세워 정전체제를 크게 뒤흔들어 평화협정 체결을 노리고 있다. 특히 비핵화 문제에 대한 비타협적인 자세를 분명히 하고 있어 핵보유국 지위로 평화협정 체결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아마도 북한의 이러한 변화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이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교훈, ‘핵과 위성’을 김정일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면서 체제 정당화를 극대화하려는 국내 정치적 계산,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는 강한 불신, 중국에 대한 배신감, 세 차례의 핵실험에 따른 기술적인 성과, 경제발전을 위한 대내적 분위기 조성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처럼 최근 수 년 동안 누적되어온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집착과 미국의 평화협정 외면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이 간극을 좁혀 협상의 가교를 놓아야 할 몫은 한국에게 있다. 이는 단순히 중재의 의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모두 한국에게는 사활적인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대북정책의 중대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를 비핵화와 병행해 달성하려고 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설득해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를 양국의 공동의 목표에 명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선(先) 비핵화, 보다 본질적으로는 북한 붕괴 및 흡수통일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평화협정과 평화체제를 대북정책과 한미공조의 목표에서 제외시켜버렸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어디에도 아직까지는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라는 단어를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한반도에서의 현상유지가 과연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60년 전에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의 전쟁을 통한 현상타파 시도는 엄청난 사상자와 후유증을 담겼다. 1990년 중후반에 한미 양국에서 유행했던 북한붕괴론도 허상으로 끝났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북한 정권교체(regime change) 시도도, 이명박 정부의 흡수통일 시도도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강한 집착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무력을 통해서든, 제재와 압박을 통해서든 비평화적인 방식으로의 현상타파 시도는 더욱 악화된 현상유지로 귀결되어 왔다는 것이 한반도 문제의 근본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대화와 협상, 즉 평화적인 방식으로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가시화되지 않으면 정전상태의 불안정성은 더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어느 일방에 의한 의도적인 전면전 가능성은 낮다고 하더라도, 우발적 무력 충돌 및 무력 충돌시 확전의 위험성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핵의 위력을 믿고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려는 군사 모험주의적 행태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은 북한의 도발시 “도발 원점뿐만 아니라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응징하겠다.”는 확전불사론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무력시위도 한반도 위기 고조의 한 원인이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화재로 이어지는 봄철 산불처럼 한반도 정세는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의 핵 능력 증가이다. 현재 5-10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과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를 총가동할 경우 매년 3개 안팎의 핵무기를 추가로 만들 수 있다. 2020년이면 북한의 핵보유량이 30개 안팎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수년 이내에 핵무기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게 될 전망이 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북한의 핵보유량이 늘어날수록 군사 모험주의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은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핵 능력 강화는 한국의 핵무장론을 더더욱 부채질할 위험성이 크다. 미국이 북한의 위협과 한국의 핵무장론을 이중 억제하고자 무력시위에 나서면 한반도 정세는 더더욱 악화 될 수 있다는 것도 2013년 봄에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북한발 핵확산의 우려도 커지게 된다. 북한은 경제적 목적이든,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든, 이란에게 핵을 이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미국이 북한과 이란의 핵 거래를 구체적으로 포착할 경우 북한이 금지선(red line)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하곤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고 할 것이다. 한반도 전쟁위기가 급격히 고조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위험한 시나리오이다.


3. 정책 대안

(1) 평화체제 개념의 새로운 정립

냉정하게 볼 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미국이 핵을 가진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 대북 제재 해제 등 관계 개선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한반도의 정치군사 문제가 전면화된 상태에서 남북관계가 교류협력을 통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나가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 억제력에 대한 집착과 한미 양국의 평화체제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악순환을 형성하면 한반도의 정전상태는 대단히 불행한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목표는 평화적인 현상 변경에 있으며 이를 위한 유력한 접근법은 비핵화를 평화체제라는 커다란 용광로에 녹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다. 평화체제에 대한 정확하고도 합의 된 개념 정의도 부족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토론과 검토가 필요하지만,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평화체제는 한국전쟁의 완전하고도 공식적인 종결과 상호불가침 약속, 주권 존중과 평등 정신,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북미․북일 수교를 통한 한반도 교차 승인의 완성, 공정하고 완전한 비핵화(혹은 비핵지대화), 통일지향적 남북관계 명시 등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본격적인 정책 대안을 검토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끌어내려 한다’는 의구심이 대단히 강하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 문제 해결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화 협상의 법칙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미간에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미간의 정책 조율 및 국내에서의 초당적․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다만 포괄적인 군비통제 및 군축 협상에서 ‘상호 위협 감소’ 조치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감축, 합동군사훈련의 축소 및 폐지 등은 협상의 의제로 삼는 것까지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두 가지 화학 작용

협상의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체제의 핵 포기에 따른 득실관계 판단에 대해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핵 포기시 얻게 될 이익은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그림의 떡’ 수준이었던 반면에, 핵 보유시 입게 될 손실의 크기는 핵 포기를 유도할 만큼 치명적이지 않았다. 새로운 접근법은 핵 포기시 북한이 얻게 될 이익은 손실보다 확실히 크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하고 또 ‘현재성’을 띠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화학 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하나는 최고 지도자간의 화학 작용이다. 대북 협상 20년사를 되돌아보면 북한과의 대화는 고위급일수록 더 좋은 성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NBA 스타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과 영국 외교관들도 “김정은은 오바마와의 소통을 원한다.”고 전한 바 있다. 10.4 선언을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합의가 있었던 만큼, 이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남-북-미-중 4자, 혹은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6자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선언’ 채택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방북이야말로 김정은과의 화학 작용을 통해 문제 해결의 거보를 내딛을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의제간의 화학 작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비핵화-평화협정-NPT 사이의 ‘화학적인 융합’을 일으켜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적인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북한이 핵 폐기의 대상과 시한과 방식에 동의하고 ‘과도기적 지위’로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핵 폐기 의사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내용에 해당된다. 또 하나는 남-북-미-중 4개국이 정전협정을 대체할 한반도 기본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협정에 북한의 핵 폐기 대상, 시한, 방식을 명시하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한미 양국이 북한을 적대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가장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위기 해결에 결정적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마지막 하나는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의 위성 발사 문제에 대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이 역시 북한의 주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대외적 환경 조성에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제안의 내용과 특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북한이 NPT 체제에 복귀하는데 사전에 핵 폐기를 완료해야 하는 것이 의무 사항은 아니다. NPT에 이러한 내용도 없을 뿐더러 핵 폐기를 공약하고 과도기적 지위로 NPT에 가입한 선례도 있다. 1991년 12월 소련 해체 후 세계 3, 4, 5위의 핵보유국이 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의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 나라의 NPT 가입에서 핵폐기 완료까지는 3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과도기적 지위로 북한이 NPT에 복귀하는 것은 핵 비확산체제 강화를 대외 정책의 핵심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으로 하여금 평화협정 체결에 강력한 인센티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 폐기 우선적인 대상은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와 핵무기 제조 공장 및 핵실험장 폐쇄이다.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는 매년 1-2기씩 순차적으로 폐기하는 방안부터 시한을 정해놓고 일괄 폐기하는 방안을 두루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영변에 짓고 있는 실험용 경수로 및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치 여부는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존중과 원전 제로를 향한 대안적 노력을 두루 고려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 문제는 단번에 100% 검증하겠다는 접근보다는 북한의 IAEA 추가 의정서 가입 등 신뢰구축을 통한 점진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 시한은 2016년 이내로 권고하고자 한다. 물론 2016년이라는 시한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1차적인 목표는 여기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정치적 변수를 고려한 것이다. 클린턴에서 부시 행정부로,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교체는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중대 변수가 된 바 있다. 한미 양국의 정치 일정이 비핵․평화 프로세스에 또 다시 중대 변수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미 양국정부의 대북정책 공조기인 2013-2016년에 비가역적인 비핵․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대북 상응조치도 신속하고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

북한의 핵 폐기 방식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러시아로 이전해 폐기하는 방안을 권고하고자 한다. 이러한 제안은 러시아가 핵폐기에 관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으면서 북한과 비교적 우호 관계에 있고, 외부 이전을 통한 폐기가 북한 내에서의 폐기보다 비용과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으며, 비가역적인 핵무기 폐기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장점들을 고려한 것이다.

평화협정은 ‘기본 협정+부속합의서(혹은 추가의정서)’ 방식을 제안한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 방식과 흡사한 것이다. 상호 주권 존중,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식, 상호 불가침, 한반도 비핵화,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등 원칙적이고 합의 가능한 항목들로 ‘기본 협정’을 체결하고, 북방한계선(NLL), 유엔사와 주한미군, 군축 문제, 평화체제 관리기구 구성과 운용과 같은 까다롭고 세부적인 내용은 추후 ‘부속 합의서’에 담는 방식을 취하는 방안을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3)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러한 제안이 본 합의에 해당되는 내용이라면, 이러한 대타협읠 가능케 하는 출발점을 잡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를 취하지 않아야 한다. 꺼져가는 개성공단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남측에서 먼저 단전이나 단수와 같은 강경 조치를 취하지 말고 개성공단 정상화 의지와 함께 지속적인 대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5월로 연기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계속 유보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같은 맞대응으로 또 다시 위기가 고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5월 7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도 대단히 중요하다. 두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하나는 지난 5년간 한미공동성명에서 사라져버린 평화협정과 평화체제를 다시 명시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과의 양자 대화 및 6자회담 재개의 문턱을 낮추는 데 대단히 효과적일 것이다. 특히 조속한 시일 내에 평화협정 협상에 착수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는 전제조건 없는 대화 의지의 피력이다. 한 쪽에서 대화 재개의 조건을 내걸면 다른 쪽에서도 조건을 내거는 불신의 게임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전제조건 없이 모든 의제를 놓고 협상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미정상회담 이후 대화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대화를 시작한다면,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과 그 이행조치들인 2.13 및 10.3 합의, 그리고 북미간의 2.29 합의를 재구성해 1단계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로는 추가 핵실험 및 위성을 포함한 장거리 로켓 발사 유예, 우라늄 농축과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를 포함한 모든 영변 핵시설의 가동 중단 및 IAEA 감시단 복귀, 정전협정의 준수 의사피력 등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4자간 평화포럼 개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유예, 북한 위성 발사 문제 논의 등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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